마카오를 여행하는 두 가지 방법

차(茶)만큼 와인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사는 도시, 운전 방향은 반대지만 정(情)은 우리와 다를 게 없는 도시. 화려한 호텔과 아기자기한 골목이 공존하는 마카오에서의 3박 4일.

 

낯선 여행지로 떠날 때면 심장이 반의 반 박자 빨리 뛴다. 마치 새로운 연애를 시작할 때처럼. 연인의 과거를 묻는 건 실례라던데, 나는 그렇게도 남자의 과거가 궁금했다. 사람도 나무처럼 나이테가 있다고 믿어서. 그가 어떤 사랑을 거쳐 어떻게 성숙해왔는지, 내가 사랑해마지않는 그를 함께 완성해온 지난 연인들에게 감사를 표하고자. 취향은 어딜 가지 않아서 혼자 훌쩍 떠날 때도 꼭 사연 있는 도시를 택했다. 오래되고, 섞여 있고, 낮과 밤의 풍경이 완전 다른 곳들. 이끼와 세월의 더께가 섞여 푸릇한, 고색 창연(古色蒼然)한 골목을 헤집어야 비로소 도시와 하나 된 느낌이 드는.

마카오에 간다고 했을 때 주변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홍콩은 안 가?” “카지노 가서 잘되면 날 잊지마.” 그저 웃었다. 아무리 페리로 한 시간 남짓인들, 내 3박4일에 홍콩이 끼어들 자리는 없었으므로. 그렇게 인천에서 세시간 반, 마카오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일기예보대로 약간 구름 낀 하늘과 습한 공기, 멋 내기 딱 좋은 28℃의 날씨…. 마카오는 우리보다 1시간 느리다. 자동으로 바뀐 시간을 스마트폰으로 확인하며 택시를 탔다. 영어가 안 통할까봐 미리 캡처한 호텔명을 한자로 보여주니 고개를 끄덕이는 기사님. 마카오와의 연애,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걸을수록 사랑에 빠지는 도시

사실 호텔 셔틀버스를 타도 됐다. 마카오는 ‘호텔 천국’이라 불릴 만큼 5성급 호텔이 많은데 저마다 무료 셔틀버스를 운행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심 좋게 주변 여러 호텔을 돌아 노선만 맞으면 투숙객이 아니라도 탈 수 있다. 택시를 탄이유는 한자 까막눈에 방향치인 나 자신에 대한 노파심에서다. 목적지인 JW 메리어트 마카오까지 10분 남짓 걸렸을까? 요금은 55파타카 (7700원). 60홍콩달러를 내밀고는 쿨하게 “잔돈은 됐다”라며 손을 내저었다. 포르투갈 문화의 영향인지 마카오에는 팁 문화가 있다. 소용없는 생색이었다. 알고 보니 트렁크에 짐을 실으면 개당 3파타카씩 ‘짐 값’이 발생한단다.

JW 메리어트의 상징, 그리핀(Griffon)이 새겨진 문을 지나 로비에 들어서니 시트러스 계열의 상큼한 향이 가득했다. ‘서틀 소피스티케이션 (Subtle Sophistication)’이라는 시그니처 향인데, 재미있게도 마카오 호텔마다 각자의 시그니처 향을 서비스한다. 후각이 오감 중 가장 오래 기억되기에 일종의 ‘향기 마케팅’인 셈. 그래서 마카오에는 여행객이 지나가면 냄새로 ‘○○호텔에 묵었군’ 하고 짐작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체크인을 마치고 나니 오후 3시 반. 호텔 직원에게 맛있는 국수가게가 근처에 있는지 물었더니 브로드웨이 호텔로 가는 길목의 레스토랑을 추천해준다. 코타이스트립에 있는 호텔들은 단지 마다 코엑스처럼 실내 아케이드 형태의 거대한 쇼핑몰로 연결된다. JW 메리어트는 갤럭시 마카오 소속이라 갤럭시·반얀트리·오쿠라·리츠 칼튼·브로드웨이 호텔과 이어진다. 그러나 내가 원했던 건 영화 <화양연화>에서 장만옥이 보온병 들고 사 먹을 법한 노포(老鋪). ‘로컬 레스토랑’이 어디 있는지 재차 물었다.

그렇게 추천받은 타이파 빌리지(Ta ipa Village). 느긋하게 걸어도 호텔에서 15~20 분 정도면 도착하는 로컬 타운이다. ‘육포 거리’로 친숙한 100m 남짓의 ‘쿠냐 거리(Rua do Cunha·官也街)’가 제일 유명한데, ‘관야로’라는 한자에서 짐작하듯 포르투갈 식민지 시절 관료들이 별장을 짓고 머물던 동네다. 티파니 블루 컬러로 칠해진 것이 전형적인 포르투갈식 건물. 마카오정부가 이 중 5채를 매입해 ‘타이파 주택박물관’으로 꾸몄다.

어차피 목적지를 정해둔 것은 아니었다. 마음 내키는 대로 미로 같은 골목을 휘젓고 다녔다.

그 유명한 아몬드 쿠키와 육포를 파는 가게들, 오래된 광장의 보리수나무, 그 아래서 삼삼오오 마작 두는 노인들, 낡았지만 잘 손질된 자전 거를 빌려주는 노포, 세련된 디저트숍과 매캐니즈 음식을 파는 레스토랑, 기와지붕과 타일이 섞인 알록달록한 집들…. 어디를 봐도 사연 없는 골목이 없었다. 걸으면 걸을수록, 마카오와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나홀로 타이파 골목 탐험

배고픈 줄도 모르고 걷다 점심 겸 이른 저녁을 먹게 됐다. 장미 모자이크 타일에 이끌려 들어간 곳은 테라스가 멋진 ‘타파스 드 포르투갈 (Tapas de Portugal)’. <미쉐린가이드>에서 별 두개를 받은 레스토랑 ‘안토니오’ 바로 옆에 있는데, 셰프 안토니오의 여동생이 운영하는 포르투갈 레스토랑이다. 애피타이저로 타파스 5종과 포르투갈식 소시지구이, 셰프 추천요리인 시푸드 파에야를 주문했다. 소시지를 직접 직화로 굽는 퍼포먼스와 함께 평소 안 먹던 홍합까지 싹 먹어 치울 만큼 훌륭한 맛이 인상적이었다. 포트 와인도 한 잔 하고 싶었으나, 맛은 달콤해도 일반 와인보다 도수가 높은지라 간신히 참았다.

입가심이 필요했다. 아이스크림같이 시원하고 상큼한. ‘Diamond in Green’이란 이름이 재밌어서 들어갔더니, 저설탕 저칼로리를 고집하는 유기농 아이스크림 가게였다. 흑미로 만든 콘에 장미 아이스크림을 주문했다. 음, 이제껏 먹어 보지 못한 신선한 맛이랄까! 입안에서 베르사유의 장미가 피어났다. 도전정신이 없는 자는 무난하게 망고 하드를 주문하시길.

어느덧 저녁 6시가 훌쩍 넘었다. 거리에 하나 둘 조명이 들어온다. 호텔로 돌아가는 길, 타파스드 포르투갈 너머로 작은 갤러리를 발견했다.

‘타이파 빌리지 아트 스페이스’. 마침 원로 아티스트리오 만 청(Lio Man Cheong)의 전시가 한창이었다. 19세기 말~20세기 초에 번성했던 마카오의 폭죽공장에 대한 추억을 그린 수채화가 걸려 있었다. 무려 16단계의 수작업을 거쳐 완성됐던 폭죽은 마카오 사람들의 생계수단이자 자부심이자 애증의 대상이었으리라. 누군가에겐 위험한 폭발물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찰나 반짝일 놀잇감이듯.

 

마카오에서 아침을

오전 8시, 부탁해둔 모닝콜이 정확하게 울린다.

어제 어떻게 잠들었더라, 기억을 더듬는다. 호텔로 돌아와 잠깐 쉬다가 다시 마카오국제공항으로 갔더랬다. 밤 비행기를 타고 새벽에 도착한 친구 J를 마중하고자. 비행기가 1시간 연착하는 바람에 새벽 1시 반이 넘어서야 겨우 만났고, 그대로 자기 아쉬워 마카오 비어를 두 병씩 해치웠다. 아직도 꿈나라를 헤매는 20년 지기여. 퇴근 후 바로 날아와 이국에서 눈뜨는 낭만을 어서 느껴보려무나.

“지금 안 일어나면 밥 없다.” 귀신같이 알아듣고 부스스 일어난 J. 티끌 하나 없는 통유리 너머 스카이 뷰에 감탄부터 한다. “와우.” 그렇지, 이게 바로 28층 이그제큐티브룸의 위엄인 것이다. 어제 택시 안에서도 휘황찬란한 코타이스트립 야경을 보며 이 정도일 줄 몰랐다고 물개 박수를 치던 그녀다. 어지간한 호텔보다 넓은 객실이며, 대리석으로 빛나는 욕실까지 ‘인증샷’을 찍어대는 J의 목덜미를 잡고 2층 이그제큐티브 라운지로 내려갔다.

JW 메리어트 마카오에 가면 이그제큐티브 라운지를 꼭 이용하라는 이야기를 워낙 많이 들어서 망설임은 없었다. 웃돈(?)을 들인 만큼 제대로 즐겨보겠다는 생각뿐! 자리에 여유가 있다면 안쪽에 앉을지 바깥쪽에 앉을지 물어본다. 뷔페와 조금 멀어져도 바깥쪽에 앉길 추천한다. 자리도 더 편하거니와 로비를 압도하는 크리스털 샹들리에가 자연광에 반짝이며 공간을 다채롭게 물들인다. 시간 따라 날씨 따라 빛깔이 달라 애프터눈 티, 해피아워, 이브닝 칵테일 등 라운지 혜택을 즐길 때마다 다른 공간에 와 있는 것 같다.

아침부터 식욕 폭발한 J와 달리 오믈렛과 국수 정도만 야무지게 먹은 뒤, 3층 야외 수영장으로 향했다. 수영복은 탈의실에서 갈아입어도 되고, 룸에서 입고 내려와도 된다. 수영복 위에 로브처럼 가벼운 외투나 하다못해 호텔 가운이라도 걸치는 에티켓 정도는 발휘해주자. 같은 층에 스파와 키즈클럽이 있어 3대(代)가 같이 와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구에서 보디타월을 빌려 선베드에 자리를 잡았다. 어느 틈에 달려온 직원이 상큼한 미소와 함께 차양을 펼친다. 날씨 좋고 물 좋고! 삼각대 달린 셀피봉 세팅 완료, 스마트폰 BGM 세팅 완료.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건 뭐다? 자.신.감. ‘풀 바(the Pool Bar)’에서 칵테일을 주문했다. 모히토에서 마카오 한 잔이 고팠던 J는 블루베리 모히토를, JW 메리어트의 오리지널 칵테일이 궁금했던 나는 ‘벨루가 카스피안 오로라(Beluga Caspian Aurora)’를 골랐다. Havana ooh na-na! 카밀라 카베요가 농염한 음색을 뽐내고, 벨루가 보드카는 생각보다 독해 달큰하니 달아오른다. 아, 이곳이 천국인가요.

 

내일도 모레도 이렇게 살고파

룸에서 갤럭시 리조트를 바라보며 짐작은 했지만, 직접 각 호텔 개별 수영장을 투어한 결과 JW메리어트가 가장 훌륭했다. 갤럭시 리조트의 자랑인 유수풀 ‘그랜드 리조트 덱(Grand Resort Deck)’도 스릴 만점이긴 했지만 우아하게 ‘인생 사진’을 남길 확률은 JW 메리어트 야외수영장이 더 높다. 참, 그랜드 리조트 덱은 호텔마다 작은 다리로 연결돼 걸어서 이동하면 된다. 넘어갈 때 손에 그리핀 스탬프를 콕 찍어준다. 한국어 메뉴를 지원하는 전자식 로커가 있는데 20~25홍콩달러 정도를 현금으로만 받으므로 미리 준비하자.

유수풀을 두 번 돌았더니 배 속에 거지가 부활했다. 로비 라운지에서 커다란 삼발소스 버거를 해치웠음에도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는데, 마침 해피아워 시간인 오후 5시30분이다. 이어 지는 콜드컷과 치즈 플래터, 와인과 샴페인의 향연…. J와 나는 분명 같은 생각이었다. 주류 무제한 혜택이 인간을 이렇게 행복하게 할수있구나. 하루 종일 호텔 안에서만 먹고 쉬고 놀았지만 내일도 모레도 이렇게 살고 싶어라.

 

지구의 모든 골목이 보존되기를

오늘은 여행의 마지막 날. ‘마카오의 반전 매력을 보여주마!’라고 호언장담하며 J를 타이파 빌리지로 안내했다. 알량하게 하루 먼저 왔다고 가이드를 자처했다. 마카오가 왜 ‘동양의 리스 본’이 된 줄 알아? 이 포르투갈 타일은 ‘아줄레주(Azolejo)’라 부르는데 대항해시대 때 건너간 청화백자의 영향을 받았대. 여기 루스터(수탉)는 포르투갈에서 ‘정의’를 상징한대. 억울한 누명을 쓴 청년에게 재판관이 ‘죽은 닭이 울면 용서하겠다’고 했더니 갑자기 접시 위 치킨이 벌떡 일어나 울었다나. 이제 막 하교하는 아이들, 핑크 커플룩을 입고 웨딩촬영 중인 예비 부부, 아이스크림 삼매경에 빠진 꼬마 숙녀들, 먼 곳을 응시하는 노인, 그래피티와 그림이 가득한 벽과 끝이 궁금한 좁은 길들…. 내가 그랬던 것처럼, J도 이곳을 사랑하길 바랐다.

잠시 다리를 쉬고 싶었다. 요기도 할 겸 인도식 타파스 레스토랑에 들어갔다가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1479년 대항해시대. 탐험가 바스쿠 다가마(Vasco da Gama)가 리스본을 떠나 인도로 향했다. 유럽에서 아프리카 대륙을 거치는 인도항로의 개척자인 그는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리스본, 카보베르데섬, 세인트헬레나만, 모잠비크 등을 거쳐 인도 서쪽의 고아까지 2년간 여정이 500년 뒤 마카오에서 9가지 칵테일로 만들어질 줄은. 그래서 가게 이름이 ‘고아나이츠(Goa Nights)’다. 그땐 미처 몰라봤던 스타 믹솔로지스트, 강안(Gangan)이 익살맞은 억양으로 물었다. “어떤 술 좋아해?” 진을 좋아하는 J에겐 리스본을, 테킬라를 좋아하는 내겐 뭄바사를 만들어줬다.

J는 마카오에서의 추억을 모조리 안고 가려는 듯했다. J가 고른 포르투갈 통조림과 치즈에는 뚜껑을 열기 전엔 모를 열기가, 둥그런 보름달이 인상적인 ‘오문’의 마그넷에는 오늘을 박제하고픈 욕망이 담겨 있었다. 나와는 또 다른 3박 4일을 보냈을 친구들을 위해 동전지갑을 집었다. 마카오 동전을 하나씩 넣어주면 그들도 이곳에 오고 싶겠지. 옥상이 멋진 카페 ‘루프톱’에 서는 가족을 위한 맞춤 티셔츠를 주문했다. 디자인을 고르고 문구를 삽입하면 커피 한 잔 마실 시간 동안 무지 티셔츠에 인쇄해준다. First we change Macau, then we change the world. 에코백에 적힌 어느 아티스트의 패기처럼, 지구의 모든 골목이 보존되면 좋겠다. 길을 잃을수록 사랑에 빠지는 도시, 마카오처럼.

 

이현화 사진 오진민 협조 마카오정부관광청, JW 메리어트 마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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