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_정은영

우리나라 근대사에 알게 모르게 숨어 있는 남성 중심적인 힘.

어쩌면 우리가 믿어왔던 것들이 옳지 않을 수 있다는 질문과 함께 작가는 성별에 대한 규범을 깨고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편견을 예술로 끄집어낸다.

 

  

장장 10년, 세월도 강산도 변한다는 시간 동안 여성국극 프로젝트에 매달렸다. 해방 이후 여성배우를 중심으로 창단되어 전성기를 누린 여성국 극은 1960년대부터 쇠락의 길을 걸어 이제 존재조차 위태로운 공연예술 장르다. 2008년 여성국극을 우연히 접한 정은영은 여성배우들이 성별을 넘나들며 표현해내는 다채로운 표정과 목소리, 연기에 매료되어 곧 사라질지도 모를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화하기로 결심한다. 문제는 턱없이 부족한 역사적 자료였다. 여성국극의 흥망성쇠를 기억하는 백발성성한 80·90대 원로배우들을 한 명 한 명 쫓아다니며 인터뷰를 하고, 그들의 불분명한 기억과 개인 소장용 사진을 바탕으로 당시의 기록과 책, 자료를 꾸준히 수집했다. 이 과정에서 작가가 발견한 건 여성국극을 바라보는 남녀 차별적인 시각. 여성국극이 탄생한 배경부터 요즘 아이돌 가수 못지않은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음에도 급격히 소멸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결국 당시 사회를 지배했던 뿌리 깊은 남성 중심의 규범과 맞닿아 있다.

정은영은 페미니스트적 시각에서 이렇게 무의식적으로 행해진 남성 중심적인 힘을 비주얼 아트를 통해 비판하고자 한다. 아직도 여성국극의 화려했던 시절을 기억하는 이가 있고, 여성국극을 보존하고 살리고자 노력하는 젊은 배우들이 있기에 작가의 프로젝트는 그 자체로도 가치가 크다. 작가는 항상 우리 사회가 직시해야 할 문제를 예술적 언어로 표현해왔다. 사회적이고 철학적인, 동시에 정치적인 메시지를 작품에 담곤 하는 데, 그 골자에 페미니즘도 있다. 1990년대 한참 뜨거웠던 페미니즘 운동의 영향도 있었지만 영국 리즈대에서 ‘시각예술에서 페미니스트 이론과 실제’ 과정을 들으며 예술로 끊임없이 질문하고 실천해야 함을 배웠다. 덕분에 남녀의 단순한 구분을 넘어 인간과 인간의 동등한 만남에 의미를 두며, 아웃사이더, 즉 사회적으로 배제된 사람들을 위한 예술에 초점을 맞춘다.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사회적 차별과 편견을 예리하게 끌어내는 작가. 정은영의 메시지는 확실하다. 예술을 통한 변화, 더 나은 사회에 거는 기대다.

 

현재 내가 행하는 예술의 목표는 두 가지다.
사회가 정의 내린 이분법적 남녀 규범을 깨는 것, 그리고 예술을 통해 페미니즘을 실천하는 것.

1997년 이화여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2000년 동대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04년 영국 리즈대 학교 대학원을 졸업하고, 2006년부터 <유랑하는 별들>, <탑승객:여행자의 책>, <시연>, <사랑이 넘치는 신세 계>, <전환극장>, <틀린 색인>, <변칙 판타지> 등의 개인전과 수많은 단체전에 참가했다. 2013년 에르메스재단 미술상, 2015년 신도리코 미술상, 그리고 2018년에는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2018을 수상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현재 <올해의 작가상 2018> 전시회를 개최하고 있다. 정은영, 정재호, 구민자, 옥인 콜렉티브(김화용, 이정민, 진시우)가 올해를 대표하는 4팀의 작가로 참여해 현대사회에서 발견한 사회적 문제에 대해 미학적으로 또 정치적으로 탐구하고 그 과정을 예술로 풀어낸다.

│2018년 8월 11일~2018년 11월 25일(월요일 휴관)│서울관 통합권 4000원│서울 종로구 삼청로 30│02-3701-9500│www.mmca.go.kr│

 

정동의 막, HD 단채널 영상, 15분 36초, 2013
젊은 여성국극 배우가 무대에 오르는 과정을 담은 작품. 연습과 공연, 무대 뒷모습 등을 통해 여성의 성적 역할에 의문을 제기한다.

 

변칙 판타지-한국, HD 단채널 영상, 1시간 26분, 2016
남산예술센터와 요코하마 공연예술미팅 지원의 국제 공동제작 프로그램. 여성국극에서 남성을 연기하기 위해 남자다운 목소리와 몸짓을 익히는 배우 남은진과 아마추어 게이남성합창단 ‘지보이스’의 어울리지 않는 듯 어울리는 변칙 앙상블.

 

나는 왕이야, HD 단채널 영상, 6분 23초, 2018

 

유예극장, HD 단채널 영상, 35분 12초, 2018
쇠락해버린 여성국극을 중심으로 화려했던 시절을 회상하는 원로배우들의 구술과 당시 관련 도서 및 자료, 현재 여성국극과 연계된 공연예술 장르에 종사하는 젊은 예술인들의 이야기가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영상작품.

 

 

김정원 사진 손준석

 

 


 

 

SRT매거진 페이스북으로 이동

SRT매거진 인스타그램으로 이동

SH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