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제역(驛) – 평택 통복시장(場)

돼지국밥을 말아 딸 여섯을 어미 힘으로 혼자 키워낸 손정분 씨가 운영하는 ‘진미식당’과 요즘 젊은이들 입맛에 딱 들어맞는 음식으로 인기 끄는 ‘불독 스테이크’며 ‘불타는 랍스터’ 같은 간판이 어우러진 지제역 인근의 통복시장. 그곳의 삶 역시 치열하고도 경쾌했다.

 

옷걸이에서 떨어지는 옷처럼, 그냥 털썩 주저앉고 싶은 때가 있다. 아무런 의미도 희망도 없이, 삶은 그저 아득하기만 하고, 삭풍이 몰아치는 들판에 홀로 버려진 듯한 시간이 살다 보면 온다. 그 기로에서 좌절하고 못 일어나 스스로 삶에 종지부를 찍는 경우도 있고, 한바탕 서럽게 운 다음 이를 악물고 다시 일어서기도 한다. 더구나 어린 자식이 있을 때는 생이 두 몫이므로, 땅 짚고 일어서지 않을 수 없다. 통복시장 한 모퉁이에서 순대국밥집, ‘진미식당’을 운영하는 손정분 씨.

올해 예순 여덟이니까 할머니 대열에 들어간다. 국밥 한 그릇에 800원 하던 때, 탁자 4개가 전부인 작은 점포에서 장사를 시작한 지 37년이 흘렀다. 딸이 여섯이다. 큰 딸이 42세고, 막내딸이 서른이다. 부족한 살림에 애들 가르치고 살았는데 20년 전, 그러니까 막내딸이 열 살 때 남편이 집을 나갔다. 아들 낳는다고 딴 여자 찾아서 새 장가 갔다는 것이다.

모진 세월을 묵묵히 견디며 손씨는 국밥을 말아 팔았다. 쳐다보지도 않던 딸들이 새벽부터 나와 일손을 거들었 다. 큰딸은 작은 국밥집의 동업자가 되었다. 정말 알 수 없는 것이 삶이고, 죽으라는 법은 없는 법. 갑자기 장사가 잘되기 시작했다. 시장 국밥집 골목에 가게가 여럿 있었는데, 사람 들이 일부러 진미식당을 찾아오는 것이다.

 

“나도 왜 그런지 몰랐지, 갑자기 국밥이 맛있어졌을리도 없는 것이고, 나중에 알고 봤더니 시장 사람들이 손님을 보내 준 거라. 어느 집이 맛있느냐고 물어보면, 다 우리 집으로 보내주는 거라요. 내 사정을 아니까, 불쌍해서….”

어느 집 돼지국밥이 안 맛있을까마는, 손씨는 더 정직하게 장사했다. 자꾸 먹는 국밥은 느끼하지 않아야 한다. 손씨는 잡뼈를 쓰지 않고 돼지 무릎뼈만으로 국물을 우려낸 뒤 기름기를 다 걷어내고 몇 번이나 버린 뒤에 우윳빛 나는 깊고 담백한 육수를 쓴다. 고기는 아낌없이 듬뿍 넣는다. 그것이 비결이다. 손님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딸들이 줄줄이 식당으로 불려 나왔다. 좀 큰 데로 식당도 이전했다. 지금은 딸 여섯이 전부 식당에서 같이 일할 만큼 커졌다. 딸 둘은 대학까지 가르쳤고, 다 시집보내고 넷째 딸만 미혼이다.

 

전쟁통에 생긴 경기 남부 최대의 시장

SRT 열차는 부산발 경부선과 목포발 호남선이 두 갈래로 올라오다가 천안에서 합쳐진 뒤에, 평택에서 서울로 가는 KTX와 나뉘어 수서행 전용노선으로 진행하는데, 지제역이 그 분기점을 지난 첫 역이다. 수도권 전철 1호 선의 완행과 고속철의 SRT가 공존한다. 거기서 통복시장은 택시로 10여 분 거리에 있다. 경기 남부 최대 규모의 전통시장이다. 1950년 6·25전쟁 당시 평택의 중심지가 폭격으로 대부분 파괴돼 철도역과 공공시설들을 대거 통복동으로 이전했다.

 

시장 일대는 본래 과수원이었는데, 그 와중에 자연스럽게 시장이 생겨났다. 전쟁 통에 서민들이 힘겨운 삶을 이어가는 터전이기도 했고, 다시 희망을 품고 재기할 수 있었던 공간이 바로 통복시장이다. 이곳은 입지가 좋다.

 

서쪽 평택항으로 수산물이 들어오고, 동쪽에서 내륙의 농축산물이 흘러들고, 남쪽에서 올라온 영호남의 물산 들이 서울로 가는 길목이니, 사통팔달하여 70여 년간 시장이 번성했다.

 

먹을거리도 많고 집집마다 사연도 많은 곳

시장을 돌아다니다가 ‘기운네 김밥집’을 들어갔는데 입이 떡 벌어진다. 아주머니 셋이 큰 테이블 위에서 김밥을 기계처럼 말고 있다. 김 반 장에 흰밥을 반쯤 얹어 옆사람에게 넘기면, 당근·단무지·달걀·채소를 넣어 넘기고, 그것을 말아서 꼬마김밥 하나가 완성되는데 손놀 림이 달인 수준이다. 하나에 400원, 1인분에 3000원이 다. 사람들이 줄을 서고 정신없이 팔려 나간다. 엄인숙 할머니(76)가 처음 가게를 열어 40년 역사를 자랑하는 시장의 산증인이다.

또 들를 만한 곳이 ‘동신 떡방앗간’이다. 방앗간-앙제카 페-떡집, 이렇게 3개가 붙어 한집이다. 방앗간에서 쌀가루·고추 같은 것을 빻거나 기름을 짜주고, 카페에서 녹두·팥·서리태·귀리·율무 등 곡물가루와 커피·차를 파는 쉼터다. 떡집은 말 그대로 떡을 파는데, 특히 주먹 송편이 유명하다. 이 집 역시 온 가족이 함께 일하는데, 예은자 할머니(72)가 시작한 지 47년이 흘렀다.

 

 

젊은이들 발길도 끊이지 않는 이유

오후 4시가 지나면, ‘청년숲’이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 청년숲은 평택시가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해 예산을 들여 기획한 곳이다. 옛 주단거리와 폐점포들이 있던 자리를 새로 꾸며, 청년들의 창업 공간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불독 스테이크, 불타는 랍스터, SWEET 1981, 오츠 카레, TACTAC, 통복이네 떡갈비 등등 가게 이름만으 로도 톡톡 튄다. 일본식 라멘집, 스시를 파는 집들도 손님이 많고, ‘낭만현상소’는 추억에 남을 흑백사진을 찍어 바로 출력해주는데 젊은 연인이 많이 찾는다. 1장에 5000원. 청년숲은 마트로 향하는 젊은 소비자들의 발길을 끌어 전통시장 안으로 유입시키고 시장에 활기를 더하는 중요한 통로 역할을 하고 있다.

시장을 돌아 나오면서 필자를 안내한 상인회 김은경 매니저(57)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김 매니저는 기차 승객들이 많이 찾아오게 홍보 좀 잘해 달라고 부탁했 다. 진미식당 손정분 씨는 개가(改嫁)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더니, “버리면 몰라도, 딸 여섯을 데리고 어느 집으로 가겠습니까?” 하면서 물정 모르는 소리 말라고 한다. 그러면서 “늘 시장 사람들한테 빚을 많이 졌다고 그러셔 요. 그래서 그런지 시장에 행사가 있을 때면 진미식당에서 돈을 많이 낸답니다”라고 덧붙였다.

 

이광이(동화작가) 사진 최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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