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 포레스트>처럼 살기

시간 정해 놓고 움직이는 건 싫다면서 일머리는 타고난 사람. 골드미스란 오해도 많지만 두 딸과 남편과 함께 행복한 사람. 주중엔 셰프, 주말엔 펜션지기, 수시로 바리스타로 사는 바쁘면서도 느긋한, 정체불명의 박 실장 아니 박 대표를 만났다. 

 

 

박광은
다들 미대 나온 줄 알지만 일본학을 전공했다. 해외여행은 일본과 중국 위주로, 국내여행은 이름난 곳은 다 가봐서 이젠 안유명한 곳 위주로 종종 떠난다. 영화에서 주로 영감을 얻고, <리틀 포레스트>의 혜원처럼 살고 있다.
인천 강화군 강화읍 고비고개로 276|032-934-4672

 

일머리


직업은 많지만 게으른, 게으르지만 일은 빠른 박광은입니다. 12년 동안 직장생활을 하면서는 ‘박 실장’이었는데 요즘 실장이 너~무 많아. 새롭게 ‘박 대표’를 밀고 있어요. 건설회사를 다녔는데 사업을 확장할 때마다 저를 신사업부에 발령내는 거예요. 제일 정직(?)하다나? 덕분에 한 회사에서 건설부터 호텔, 무역, 가구, 홍보까지 두루두루 관리할 수 있었죠. 거래처에서 무시당할까봐 청계천에서 싹쓸이한 외국 잡지와 인테리어 서적을 쌓아놓고 공부했어요. ‘경향하우징페어’는 1회 때부터 다녔고, <실내장식>이란 국내잡지와 <Metropolitan Home>이란 외국잡지를 정기구독했죠.
인터넷도 없던 시절에 사비를 털어가며 일했으니 돈은 항상 모자랐지만요, 하하. 덕분에 인테리어에는 아주 이골이 났어요. 재미도 있었고요. 여기 펜션 ‘팜스테드’도 제가 손수 꾸몄답니다. 이제 눈이 높아져서 웬만한건 멋있지도 않아요. 천연염색을 시작하면서 더 그렇게 됐죠. 새로 나온 물건보다 빈티지에 천착할 수밖에 없더라고요. 쇼핑하는 재미가 없어요.
이태원 빈티지 골목 정도나 갈까? ‘블랙브라운’(이태원 단골가게) 없었음 어떻게 살 뻔했어(웃음)? 팜스테드는 작년까지 카페로 운영하다 올해부터 펜션으로 변신했어요. 펜션은 주말만, 주중에는 양고기 식당이 된답니다. 물론 예약은 하셔야죠? 송중기(가 광고하는 전기밥솥에다)가 지은 윤기나는 강화쌀밥에 말하기도 민망한 3개월 미만 뉴질랜드산 램 어깨갈비로만 대접해드립니다. 사람은 살면서 한 번은 손에서 재주가 나온다더니, 요즘 제 손에 ‘요리의 신’이 왔다는 사실!

 

커피


앞서도 말했지만 요즘 ‘셰프놀이’에 푹 빠졌어요. 여태껏 김치도 못 담그다가 EBS <최고의 요리비결>을 보면서 순두부짬뽕, 토마토파스타… 하나씩 따라 해봐요. 이특도 하는데 나도 할 수있다(웃음)! 문제는, 너무 맛있다는 거예요. 요리의 신이 왔다니까, 내 손에! 커피는 처음부터 잘 끓였어요. 1980년대에 회사 다닐 때 커피는 무조건 ‘원투쓰리’였죠. 커피 하나, 프림 둘, 설탕 셋. 워낙 커피를 좋아해서 하루에 최소 스무 잔은 마시나봐요. 쿠바 커피를 좋아하지만 사기도 힘들고 비싸서 말롱고(Malongo) 제품을 즐겨 마셔요. 프랑스 브랜드인데 공정무역 커피로 유명하죠. ‘스몰 프로듀서’라고 소규모 커피농장의 원두도 취급하고요. ‘그랑드 레제르브’와 ‘콜롬보 수프리모’를 가장 좋아한답니다. 3년 전에는 바리스타 자격증과 홈바리스타 자격증도 땄답니다. 벤처기업 ‘난쟁이캠퍼스를 통해서 아이들에게 바리스타 체험을 강의 하기도 하고요. 자유학기제를 통해 강화도 내에서 50여 개 직업을 체험시켜주는 사업인데, 바리스타 체험이 가장 인기예요. 일손이 부족해서 카페에서 펜션으로 업종을 바꿨지만, 아직도 쓰윽 문 열고 들어오는 손님이 많아요. 팜스테드의 커피를 아쉬워 하시는 분도 많고요. 작은딸은 보따리 싸서 슬로베니아로 갔으니, 큰딸하고 같이 팜스테드 옆에 새로 카페를 열까 싶어요. 그러니까 바리스타, 펜션 사장, 양고기 식당 주인, 천연염색 전문가, 여행작가, 대학강사, 벤처기업 ‘난쟁이캠퍼스’ 대표… 어머, 대체 난 직업이 몇 개지?

 

여행


강화도는 제 드라이브 코스였어요. 서울 양천구 목동 아파트 6 단지 아줌마였던 시절, 강화도에 드라이브 와서 밥 먹고 집에 가면 딱 저녁 할 시간이었거든요(웃음). 막내딸이 “엄마, 나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엄마 맘대로 해!” 해서 강화도에서 ‘한 달 살기’를 했죠. 아침에 눈뜨면 오늘은 오른쪽, 내일은 왼쪽 드라이브 하던 게 벌써 10년이 됐네요. ‘좋은 일이 생길 때마다 1년씩 더살자’ 했던 건데, 이제 평생 살아도 모자라요. 사실 서울 살 때는 목동이 최곤줄 알았어요. 백화점을 하루에도 몇 번씩 들락 날락, 차에 프리패스가 붙을 정도로 쇼핑도 하고. 그런데 강화도에서는 손님도 입던 옷 입고 맞이하고, ‘아유, 좀 못생기면 어때’ 하며 거울도 안 보는 여유가 생겼죠. 물론 처음에는 텃세가 제법 심했어요. 마당에서 빨래하는데 막 들어와서 수도도 잠그고, 여자가 혼자 와서 까만 차 끌고 다닌다고 집앞에 말뚝도 박고 그랬다니까요. 천연염색 하고, 동물 키우면서 버텼죠. 1년 버티기가 가장 힘들고, 3년 버티면 그제야 이웃이 될수 있어요. 강화도에서 함부로 돌 던지면 큰일 나요. 옛날에 유배지였긴 하지만 죽을죄까진 아니고 곧 다시 부를 신하만 보냈던 곳이라 왕손도 많고 잘난 사람도 많거든. 지금도 강화를 늘 여행하는 기분으로 살아요. 여행을 거창하게 말하면 좀 웃기고, 그냥 ‘기분전환’ 아니겠어요? 현관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여행인 거지. 목동 아파트 판돈으로 그동안 잘 썼으니까, 앞으론 돈 좀 벌어야죠(웃음).

 

 

 

이현화 사진 문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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