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를 품은 기차

고속열차, 기차의 아날로그 감성을 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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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의선 

쫓고 쫓기는 기차역, 요동치는 역사의 현장

영화 <밀정>과 <암살>, 1920년대 항일비밀결사 의열단을 소재로 한 작품 속에서 기차는 한국과 중국을 연결하는 중요한 이동 수단으로 등장한다. 상하이에서 톈진과 안둥(현재 단둥)을 거쳐 신의주, 경성으로 이어지는 기차, 그 안에서 쫓고 쫓기는 일본군과의 숨바꼭질은 보는 내내 손에 땀을 쥐게 만든다. 오늘날이라면 몇 시간 만에 주파할 거리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하루 반나절이 꼬박 걸렸던 터, 질주하는 기차와 함께 숨고자 하는 자와 찾고자 하는 자의 1분 1초는 피를 말리는 두려움과 공포의 연속이었다. 일제강점기, 우리나라에는 경성과 신의주를 연결하는 경의선, 경성과 인천을 연결하는 경인선, 그리고 경성과 부산을 연결하는 경부선 등이 개통되어 있었고, 부산을 출발해 중국 봉천(현재 심양), 창춘, 베이징까지의 노선도 차례대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영화의 주 무대이던 경의선은 안타깝게도 남북 분단과 함께 운영이 중단된다. 아픈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끊어져 버린 철길, 그러나 언젠가는 경의선을 타고 신의주를 넘어 중국, 시베리아, 유럽까지 달리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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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포선라이즈 

기차, 로맨스, 그리고 삶

만남과 헤어짐, 그리움과 기다림, 설렘과 안타까움이 공존하는 곳. 사랑하지만 헤어져야 했던 <해바라기>의 안토니오와 지오반나도, 한평생 시골 기차역을 지키는 <철도원>의 오토도, 기억을 지워도 본능적으로 이끌리는 <이터널 선샤인>의 조엘과 클레멘타인도 기차역에서 극적인 순간을 맞는다. <비포선라이즈>의 셀린과 제시도 마찬가지. 기차에서 만나 즉흥적으로 오스트리아 빈에 내린 두 사람은 하루 동안 도시를 여행하며 사랑과 이별, 결혼, 죽음 등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나눈다. 스치는 만남이었지만 서로에게 끌린 그들은 6개월 후 기차역에서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남기고 헤어진다. 영화의 엔딩은 기차역이라는 공간을 통해 헤어짐과 동시에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 그들은 다시 만났을까? 관객 스스로 결말을 상상하고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갈 수 있음에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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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딜런 

기찻길 소년, 노래하는 음유시인이 되다

2016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 문학과 음악의 경계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지만 밥 딜런이 지은 노래에서 춤추는 시적 표현의 가치를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1941년 태어난 그는 기찻길 옆에 사는 평범한 소년이었다. 재미있게도 수증기를 내뿜으며 시끄럽게 달리는 기차에게서 심리적 안정을 찾았다고 그는 회고한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소음일지 모를 기차 경적 소리를 벗 삼아 뮤지션의 꿈을 키운 것이다. 전쟁의 공포 속에서 책과 라디오는 그에게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였고, 시를 쓰고 노래를 부르며 자연스럽게 뮤지션으로 성장했다. ‘Blowing In The Wind’ ‘Like A Rolling Stone’ 등 그는 시대적인 이슈를 음악으로 풀어내며 자유와 인권, 저항, 평화 등 깊이있는 메시지를 던진다. 삶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가사는 하루아침에 뚝딱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시대의 아픔을 겪어온 그의 인생과 철학이 녹아든 것이다. 부드럽고 서정적인, 그래서 더 예리하게 가슴에 꽂히는 메시지. 우리가 밥 딜런을 사랑하는 이유가 바로 그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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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 

누가 범인일까? 쫓고 쫓기는 스릴 게임

밀폐되고 한정된 공간이 주는 특유의 긴장감, 언제 터질지 모르는 위태로움은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넣는다. 추리소설의 배경으로 기차가 자주 등장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소설 <오리엔트 특급 살인사건>은 기차라는 공간을 아주 적절하게 활용한다. 유럽횡단열차 안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 용의자로 의심받는 12명의 승객은 모두 완벽한 알리바이를 가지고 있다. 달리는 기차, 좁은 객실에서 벌어지는 사건, 누가 범인인지 모르는 상황, 두려운 존재와 같은 공간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긴장감은 커진다. 니시무라 교타로의 소설 <종착역 살인사건> 역시 비슷한 구조를 띤다. 일본 도쿄 우에노 역을 출발해 아오모리로 향하는 침대특급열차에서 벌어지는 연쇄살인 사건에는 7명의 친구가 얽혀 있고, 우리는 과거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고, 누가 왜 살인을 저지르는지 풀어야 한다.

2015년에 발표되어 19주 연속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 자리를 지킨 폴라 호킨스의 소설 <걸 온 더 트레인>에서도 기차가 배경이다. 매일 기차를 타는 여자 레이첼과 그녀가 기차에서 지켜보는 여자 메건. 만약 당신이 기차를 타고 가다 뭔가를 목격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관찰자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그 사건 속으로 뛰어들 것인가? 작가는 레이첼을 통해 범인을 쫓고, 이와 동시에 알코올 중독으로 기억이 불안정한 그녀 역시 범인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던진다. 추리소설의 묘미는 퍼즐 조각을 맞추듯 하나씩 풀어가는 재미. 여기에 기차라는 제한된 공간이 주는 극적 긴장감은 독자를 흥분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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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드 모네 

예술적 영감이 샘솟는 생 라자르 역

프랑스의 인상파 화가 모네에게 예술적 영감을 주는 존재는 해돋이, 수련, 그의 연인 카미유뿐만이 아니었다. 1877년 제3회 인상주의전에 출품한 총 8점의 ‘생 라자르 역’ 연작을 보면 그러하다. 그는 생 라자르 역 인근에 작업실을 얻어 오랜 시간 역을 관찰하고 다양한 각도에서 그림을 그려나갔다. 기차역을 스치는 찰나의 빛도, 기차에서 뿜어져 나오는 자욱한 증기도 놓치지 않았다. 모네의 생동감 넘치는 그림에 매료된 소설가 에밀 졸라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고, 훗날 증기기관차 기관사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 <야수인간>을 집필하기에 이른다.

 

오르세미술관내부/사진=하나투어리스트 제공

오르세 미술관

 19세기 미술 작품을 품은 기차역

황금빛 벽면과 햇살 쏟아지는 아치형 유리돔, 그 중심을 지키고 있는 대형 시계. 한때는 사람들이 분주하게 오고가는 기차역이었으나 현재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미술관이 되었다. 1층부터 5층까지 밀레의 ‘이삭 줍기’ ‘만종’, 고갱의 ‘타히티의 여인들’,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 ‘피리 부는 소년’, 로댕의 ‘지옥의 문’, 고흐의 ‘화가의 방’ 등 1814년부터 1914년까지의 근대 예술작품들이 공간을 채운다. 사람들로 북적거리기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머무름의 공간, 그것은 오르세의 운명이었나 보다.

 

 

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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