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셀렙 패티 보이드를 만나다

바닥이 있기에 나는 다시 일어났다

 

 

비틀스의 멤버 조지 해리슨, 세계 3대 기타리스트 중 한 명인 에릭 클랩턴. 지금 열거한 이름을 소리 내어 읊어보면, 그들의 존재감이 더욱 와 닿는다. 이들의 음악적 영감 뒤엔 한 여자가 존재했다. 천재 뮤지션들의 뮤즈로 불리는 패티 보이드(Pattie Boyd). 그녀를 <SRT매거진>이 만났다.

 

“와우, 제가 팝 역사상 가장 위험한 뮤즈라고요? 마음에 듭니다, I Love it!” 패티 보이드(73)는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보이드는 비틀스 멤버인 조지 해리슨과 그의 친구인 에릭 클랩턴과 삼각관계의 연인이었다.
비틀스의 ‘Something’과 에릭 클랩턴의 ‘Layla’, ‘Wonderful Tonight’은 그녀를 염두에 두고 만든 노래다. 팝의 역사를 10층 높이의 건물로 치면 그녀의 몫은 목 좋은 1층의 카페 자리에 해당하는 셈이다. 물론 빛나는 길만 걷진 않았다. 차례대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헤어지며 이별의 아픔도 겪었지만, 그녀는 사진작가로서 세상과 마주 섰다. 시련을 숨기기보단, 곱해나가며 삶의 덩치를 키운 패티 보이드. 그녀의 지난날을 나눠 살펴본다.

 

단역 배우, 팝의 아이콘과 사랑에 빠지다
1962년 영국에서 모델로 데뷔한 보이드는 수많은 패션지의 커버를 장식하는 셀렙이었다. 그녀의 운명은 2년 뒤, 1964년 비틀스의 멤버 조지 해리슨과 만나며 180도 바뀌었다. 비틀스는 3집 앨범 발매를 앞두고 영화를 찍고 있었고, 이 영화에 보이드가 단역으로 출연했다. 이과정에서 조지 해리슨은 그녀에게 첫눈에 반해 청혼할 정도로 그녀에게 푹 빠졌다. 왕성한 두 젊은이의 사랑은 1965년 치러진 결혼으로 완성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인도 문화에 푹 빠져 자신에게 소홀한 조지 해리슨에게 실망한 그녀는 당시 그의 절친이던 에릭 클랩턴에게 접근한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에릭 클랩턴은 지울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입고 마약에 손을 대며 슬럼프에 빠져 허송세월을 했었다. 자신을 향한 순애보 때문이었을까? 보이드는 1977년 조지 해리슨과 이혼하고 1979 년 에릭 클랩턴과 결혼을 한다.

그녀로 인해 탄생한 희대의 명곡
보이드는 자신이 만난 뮤지션들이 희대의 명곡을 남기는 데 큰 일조를 한다. 그녀는 에릭 클랩턴의 ‘Wonderful Tonight’이 자신을 위해 탄생한 곡 중 가장 마음에 든다면서 “그와 같이 살 때, 외출을 앞두고 맘에 드는 옷을 찾느라 긴 시간을 보냈다. 기어이 옷을 고르고 그의 방에 들어가니 나를 기다리며 만든 노래라고 들려준 곡이기 때문이다”라고 노래에 담긴 사연를 공개했다. 그러나 그녀의 인생이 전부 꽃길은 아니었다. ‘모두가 행복해질 때까지 아무도 행복해질 수 없다’ 라는 영국 철학자 H.스펜서의 말처럼 그녀는 에릭 클랩턴과의 불화로 1989년 이혼을 한다.
모델로 시작해 세기의 아이콘들의 사랑을 독차지한 뒤, 사진작가로 우리 곁에 돌아온 세기의 팜므파탈. 순탄치 않은 그녀의 인생은 예상외로 담백했다. 미화된 과거는 손에 꽉 쥔 모래라는 걸 알려주듯.

 

 

비틀스와 에릭 클랩턴, 가슴 속에 묻고 사는 두 남자
 
Q 한국에서 첫 전시회를 열게 됐는데, 가장 애착이 가는 사진은 무엇인가?
정말 뽑기 어려운데, 하나를 꼭 고르자면 비틀스 멤버들이 긴 테이블에 앉아 있는 사진이다. 조지 해리슨의 앨범 재킷 사진을 찍기 위해 비틀스 멤버가 LA에 모였는데, 사진작가가 카메라를 세우고 잠시 다른 일을 보고 있었다. 그 틈을 타서 내가 셔터를 눌렀는데, 그 순간 샴페인이 터지며 예상치 못한 멋진 사진이 나왔다.

Q 모델로 활동했는데, 언제부터 사진작가의 꿈을 키웠는가?
19세 때부터 사진기를 들고 사람들을 찍기 좋아했다. 딱히 사진작가가 되겠다고 마음먹고 일한 적은 없다. 그리고 사진작가로 활동하는 세월이 가장 행복하다. 믿기 어렵겠지만, 누군가의 렌즈 앞에 서는 게 부끄러웠다. 누군가에게 카메라를 들이대고 통제하며 멋진 작품을 뽑아내는 게 적성에 맞는다.

Q 한국 팬들도 알 만한 작품이 있다면?
롤링스톤스의 멤버 로니 우드와 작업을 많이 했다. 그는 내가 찍어준 결과물을 무척 좋아했다. 또한 비틀스의 멤버 링고 스타 역시 솔로 투어를 다닐 때, 촬영을 요청해 좋은 사진을 찍은 기억이 있다. 최근엔 젊은 뮤지션의 사진을 주로 찍는다. 장르와 관계없이 사진 작가로서 폭넓은 사진을 찍고 싶다.

Q 언젠가 당신의 스튜디오에 가면 기자도 꼭찍어달라.
얼마 전 건물주가 내 스튜디오를 빼라고 해서 현재 없는 상태다. 그래도 사진 작업은 할 수 있으니 걱정 마라.(그녀가 개인 카메라를 들고 기자와 일행의 얼굴을 찍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굴에서 손을 떼고 렌즈를 보고 웃어보라”면서 취재진의 얼굴을 카메라에 담아갔다.)

Q 사진작가로서 볼 때 조지 해리슨과 에릭 클랩턴 중 피사체로서 누가 더 멋졌는가?
고민의 여지가 없는 질문이다. 에릭이 훨씬 훌륭했다!(웃음) 조지와 달리 에릭은 자신을 꾸미는 것을 무척 즐겼다. 그러나 에릭은 렌즈를 들이대면 화낼 때도 종종 있었다.

Q 팜므파탈로 긴 시간 불려왔는데, 여성으로서 불편한 점은 없었는가?
어떤 의미의 질문인 줄 알고 있다. 당신이 말한 형용사가 나를 따라다니는 꼬리표임도 알고 있다. 예전엔 그런 말들이 나를 따라다니는 걸 알지 못했다. 그들과 헤어지고 나서야 내가 팜므파탈 혹은 누군가의 뮤즈였다는 수식어를 알게 됐다. 솔직히 그게 왜 불편했냐고 질문하는지 이해가 안간다. 난 그저 주어진 인생을 사랑하는 사람과 보냈고, 그 시간을 보낸 결과는 온전히 나의 몫인데 불편해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 행동이다. 내가 선택한 일이라면, 어떤 상황에 맞닥뜨려도 남의 시선을 탓하며 움츠러들면 안 된다.

Q 힘든 시간을 보내며 곁에서 힘이 되어준 사람이 있다면?
힘든 시간을 견뎌야 하는 건, 오롯이 그 결정을 택한 내 몫이었다. 조지와 에릭과의 관계가 완벽하게 끝났을 때, 내겐 물질 혹은 정서적으로 기댈 구석이 없었다. 그래도 남는 건 역시 가족이었다. 특히 여동생과 친구들에게 많이 의지했고 그들과의 꾸준한 대화를 통해 그 시기를 버텼다. 이혼 후 혼자가 되는 외로움과 주변의 시선이 나를 바닥으로 밀었지만, 바닥이 있기에 나는 다시 일어났다.

Q 그 바닥은 어떤 공간이었나?
주머니에 아무것도 챙길 것 없는 빈바닥 이었다. 그래서 홀가분한 마음으로 치고 올라갔다. 힘들 때, 혼자 끙끙 앓는 건 좋은 자세가 아니다. 주변 사람들과 더 많이 어울리되, 그들의 얘기도 들어주며 소통했다. 무엇보다 사진을 촬영하고 그 결과물을 모으면서 내면의 상처가 치유되고 삶이 긍정적으로 변하는 걸 경험했다.

Q 사진이 인생의 가장 큰 행복이겠다.
아니다, 내 강아지를 돌보는 일이다. 호호호(농담이다). 이름은 프레디로 세 살인데, 정말 귀엽지 않은가?
(인터뷰 도중 기자를 촬영하고,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내 반려견을 보여 주는 여유는 무척 매력적이었다.)

Q 한국의 경우 칠순이 넘으면 대부분 소소한 취미생활로 여가를 보낸다. 어떻게 하면 당신처럼 정력적으로 일할 수 있는가?
즐거운 일을 하면 나이와 체력은 중요치 않다. 난 어린 시절부터 취미로 시작한 사진을 힘든 시기를 보내고 직업으로 갖게 됐다. 추억이 가득하니 셔터를 누를 때마다 행복하다. 자기 일에 애착이 생기면, 주변 사람들을 더욱 사랑하게 되는 마법 같은 일이 벌어진다. 팁을 주자면 스마트폰은 멀리할수록 좋다. 오래 살아보니 누군가와 가까워지려면 텍스트가 아니라 음성을 섞어야 한다는걸 깨달았다.

Q 사랑의 철학도 남다를 것 같다.
하늘 아래 특별하고 잘난 사랑은 없다. 나의 경우 사랑이 가진 의미, 그 자체를 깊게 생각안한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자연스레 마음을 열고, 그가 다가왔을 때 받아 들인다. 대부분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누군가 다가오면 문을 닫거나, 관계를 계산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그건 잘못된 행동이다. 사랑이 어려운 건 언젠가 찾아올 이별에 대한 걱정 때문이다. 한 사람은 관계를 끊고 싶어하지만, 상대는 반대하기 때문에 마주하는 게 일반적 관계다. 그러나 이별을 결정한 사람도 결국 사랑한 시간만큼 아프다. 진정으로 상대를 생각한다면 예의를 갖추고 신중한 시간을 갖고 헤어지는 자세도 잊지 마라.

비하인드 스토리
대중의 관심을 받는 사람들의 특징을 꼽자면 영화 같은 인생을 살며, 끝없이 도전해 모두가 부러워하는 결과를 손에 쥐는 거다. 많은 사람이 유명인의 삶을 영위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이해가 어려운 부분도 억지로 집어 삼킨다. 그러나 칠순이 넘은 패티 보이드의 말은 소화가 잘된다. 인터뷰 말미에 동석한 후배 기자가 결혼의 장단점에 관한 질문을 던졌다. 그녀는 “아이를 원한다면 결혼은 좋지만, 그렇지 않다면 사랑하는 사람과 연애하듯 사랑을 나누는 것도 좋다. 결혼에 나이는 중요치 않다. 결혼을 전제로 누군가를 만나기보단 만날수록 결혼에 대한 확신을 주는 사람을 택해라”라고 말했다. 한때 그녀는 마약에 빠져 힘든 시기도 보냈지만, 사진작가로 활동하는 동시에 마약 퇴치에 앞장선 사회적 단체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원치 않은 화려함으로 포장된 그녀의 삶은 우리의 시간과 다르지 않았다.

 

패티 보이드의 <ROCKIN’ LOVE>
4월 28일부터 8월 9일까지 서울 성수동 에스팩토리에서 1960년대 영국 런던의 풍경부터 뮤지션들과의 만남과 헤어짐. 그 이후 패티 보이드의 생활이 담긴 사진전 <ROCKIN’ LOVE>가 열린다. 화려했던 그녀의 삶과 애환. 팝의 역사가 담긴 사진을 잠시 엿보자.

 

Tripod set to capture us with the first bloom of roses in our garden.
결혼 초기 두 사람은 낭만적이고 행복한 결혼생활을 이어나갔다. 조지 해리슨은 패티 보이드를 향한 열렬한 사랑을 담아 작곡한 ‘Something’을 1969년도 비틀스의 앨범 <Abbey Road>에 실어 발표했다.

An idea for the album cover which I took while the other photographer was busy!
다른 사진작가가 바빠서 자리를 잠시 비운 사이 패티 보이드가 찍은 비틀스 멤버의 단체 사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중 모자장수의 다과회 장면을 차용해 찍었다.

My first experience of touring with Eric. Unknown hotel. Unknown city.
조지 해리슨과 불화가 심하던 시기인 1974년 패티 보이드는 에릭 클랩턴의 투어에 따라 나선다. 에릭 클랩턴과 투어에 처음으로 함께하게 된 패티 보이드가 찍은 에릭 클랩턴의 사진으로 호텔도 장소도 기억나지 않지만 선명한 컬러는 사진 속에 남아 있다.

A memorable week in Southern India, after meditating in the Himalayas for 2months.
약물 중독으로 괴로워하던 패티 보이드는 인도의 요가와 명상을 통해 그 상황을 극복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남편인 조지 해리슨에게도 인도의 문화를 소개하게 되었다. 이후 그들은 히말라야에서 두 달간 명상을 한 후 남부 인도에서 기억에 남을 만한 한 주를 보낸다. 그 순간을 기념하고 싶어서일까? 그녀는 조지 해리슨을 카메라에 담았다.

Rare snow in Oxfordshire.
영국의 남쪽에 위치한 옥스퍼드셔에는 눈이 잘 내리지 않는다. 그런 눈이 반가워 외출한 조지 해리슨이 패티 보이드를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유재기 사진 문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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