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블 버킷리스트 Part 1. 울산

옛날 옛적에 울산에는
착한 고래가 살았어요

울산을 걸었다. 때론 빠르게, 때론 느리게, 때론 멈춰서, 때론 눈을 감고 울산을 보았다.
바다가 짠 것은 고래가 흘린 눈물 때문일까? 과개안을 지나 바다 위 산책로까지
정수리에 햇살을 품고 울산을 탐닉했다.

정상미 사진 이효태

엄청난 해풍을 맞으며 대왕교를 지나 대왕암 꼭대기에 올랐다.

김삿갓처럼 누빈 울산
조선시대 방랑시인 김삿갓이 현대를 산다면 그는 여행 작가나 여행 기자를 직업으로 삼았을 것이다. 그 자신이 회사고 그 자신이 대표가 되어 매임 없이 떠나리. 김삿갓이 빙의한 듯 여행을 할 때가 있다. 저 좋아서 하는 일이지만 내가 보고 즐거운 것, 내가 해보고 신나는 것, 내가 먹어보고 맛있는 것을 알리는 일은 사명감 같다. 혼자만 알기엔 너무나 벅차다! 울산은 4개 구와 1개 군으로 나뉘는데, ‘고래’로 상징되
는 대표적인 도시가 장생포고래문화특구가 있는 울산 남구다. 나는 그곳에서 조금은 슬프고 많이 신났다.
울산 동구에는 대왕암공원이 있다. 울산 시민도 대왕암공원에는 여행하는 마음으로 온다고 들었다. 관광
지 중에서도 관광지인지라 울산을 여행하며 그 어떤 곳보다 가장 많은 사람을 보았다.

울산 동구, 대왕암공원

원래 정상 탈환에는 큰 관심이 없지만 사명감으로 엄청난 해풍을 맞으며 대왕교를 지나 대왕암 꼭대기에 올랐다. 팁을 드리자면 운동화와 바지를 챙기시길. 서로 사진 찍어주기 바쁜 연인과 가족 사이에서 기괴하고 거대한 바위를 바라보았다. 전설이 없으면 이상하다. 이 모습은 물에서 벗어나려는 용의 몸짓이라고 한다. 이무기는 하늘로 승천하여 용이 된다. 자신을 무시했던 모든 것 위에 서서 포효한다. 옛이야기에 사람 심장을 하나 더 먹으면 구미호에서 사람 되는 여우나, 1년만 더 기다리면 용이 되는 이무기 이야기는 나 역시 사람이면서 응원하는 마음이 생긴다. 동해 바다를 벗어나는 마지막 몸부림. 거대한 물보라를 일으키며 하늘로 승천한 용은 대왕암이라는 흔적을 남겼다. 슬도를 향하여 걷는 길에 복선처럼 고래와 관련된 푯말을 마주쳤다. 크고 완만한 해안가는 과개안, 순우리말로 너븐개로도 불리는데 1960년대까지 동해의 포경선들이 고래를 이곳으로 몰아 포획한 곳이다. 자갈에 부딪쳐 흩어지는 파도는 잔잔하고 그 앞에 저마다의 시간을 보내느라 분주한 사람들 뒤에서 고래의 무덤을 생각한다. 둥글고 거대한 해안가에는 귀신고래도 왔었을까?

울산 동구, 대왕암공원

너에게 고래 이야기를 들려줄게
‘옛날 옛적에’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내게 크나큰 설렘과 만족을 주었다. 이야기의 끝이 ‘행복하게 살았답니다’가 될 때까지 주인공이 겪는 고초는 매번 험난하다. 신기하게도 그 고난을 겪으며 주인공은 점점 다부져진다. 내가 만난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남을 쉽게 용서했다. 어려도 용감했고, 연약해도 진실했다. 내가 만약 그런 사람이라면 내 삶의 끝에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고 쓸 수 있을까? 사람들은 모두 이야기의 끝을 모른 채 살아간다. 그래도 아무 상관이 없다. 살아가는 행위가 끝에 써질 이야기보다 먼저니까! 용기를 내고, 진실을 향하고, 용서를 한다면 나는 끝내 이루리. 그대 이야기를 설레며 들으리. 옛날 옛적에 울산에는 귀신고래가 살았다. 귀신은 모두가 잠들 때 느닷없이 나타나 사람을 놀래키는 존재다.

울산 남구, 장생포고래문화특구_ 장생포고래박물관
울산 남구, 장생포고래문화특구_ 장생포고래박물관

고래 앞에 ‘귀신’이 붙었으니 신출귀몰한 거대한 고래를 상상해본다. 최고 70년을 산다는 귀신고래,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 토종고래의 학명이 붙은 이 고래는 더 이상 울산에서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1912년 국제적 포경기지였던 울산 장생포에서 처음 발견된 귀신고래는 순식간에 멸종위기를 겪는 고초를 겪었다. 일제강점기 무분별한 포획으로 귀신고래는 물론 혹등고래와 대왕고래도 자취를 감춘 것이다.지난해 12월 방영한 <MBC 스페셜>에서는 멸종위기를 맞은 우리나라의 귀신고래를 추적했으며, 1977년 울산 방어진 앞 5마일의 해역에서 남하회유하고 있는 귀신고래 2마리를 마지막으로 동해에서 귀신고래를 만날 수 없음을 전하고 있다. 

울산 남구, 장생포고래문화특구_ 장생포고래문화마을

울산 여행을 하며 한 번도 본 적 없는 고래들을 곳곳에서 만났다.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혹등고래, 범고래, 귀신고래, 고래를 포획하던 곳이던 울산대왕암의 과개안. 그리고 고래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었던 그들의 뼛조각으로. 울산 남구에는 장생포고래문화특구가 조성되어 고래와 얽힌 다양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특히 장생포고래박물관은 ‘고래 도시’로서 울산의 역사를 다채로운 조형물과 전시물로 조명하고 있다. 예전에 ‘돼지’와 관련한 취재를 하며 돼지가 버릴 것이 하나 없는 가축임을 알았는데 고래도 마찬가지란다. 고래 입장에서는 하나 좋을 일이 아니지만 인간의 삶에서 고래는 큰 축을 담당했다. 고래 착유장과 관련한 글귀를 옮겨본다.

울산 남구, 장생포고래문화특구_ 장생포고래박물관

“고래는 예로부터 버릴 것이 하나도 없는 동물로 알려져 왔으며, 고래고기, 고래기름, 고래의 심줄 등이 다양하게 쓰여 왔다. 특히 고래기름은 고래의 부산물 가운데 가장 중요하게 이용되어 포경의 주원인이 되었다. (중략) 긴수염고래의 기름은 마가린 등 식료품과 화장품, 비누 등에 이용했고, 향고래의 기름으로는 세제나 윤활유, 기계유, 양초, 약품 등을 제조하였다. 한편, 고래수염이나 향고래의 아래턱뼈 등은 공예품의 재료로 쓰이고, 뼈는 고래기름을 채취한 후 비료나 가축의 사료로 이용되었다.”
신출귀몰한 귀신고래. 제대로 산다면 70년을 살고 충분히 성장하면 수컷은 체장 13m, 암컷은 14m까지도 자란다. 1년간 임신하여 4.6m 정도의 새끼를 낳는다. 우리나라 남녀성인의 평균 신장이 2m가 넘지 않으니 눈앞에서 고래를 본다면 그저 아무 말도 하지 못하리.

고래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대요
고래가 주인공인 이야기를 짓는다면 마지막 문구는 꼭 그렇게 쓰고 싶다. ‘고래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라고. 박물관의 ‘인간과 고래’ 편에는 “고래는 착한 심성을 갖고 있으며, 인간은 이를 이용해 고래를 사냥했다”는 아이러니한 내용이 쓰여 있다. 마주치고 싶지 않은 진실. 포경선이 새끼 고래를 먼저 잡고, 필사적으로 쫓아오는 어미 고래까지 잡는다는 것이다. 배 주위를 맴도는 아빠 고래와 동료 고래들도 포획되고 만다니 이 무슨 일인가. 전시된 거대한 뼛조각을 바라보며 감탄만 하기에는 무수하게 포획된 고래에게 미안할 뿐이었다. 어쩌다 해안으로 떠내려와 죽은 어미의 배 속에서 꺼내진 새끼 고래도 전시물로 보았다. 깊은 바다에서 헤엄 한 번 쳐보지도 못하고 오고 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받게 된 아기 고래는 어른의 허리만큼 닿을 정도로 많이 자라 있었다.

울산 남구, 장생포고래문화특구_ 장생포고래생태체험관

고래가 주인공인 옛이야기가 있다면, 고래는 사람을 용서했을까? 모진 고난을 이겨내고 끝내 행복하게 살았을까? 나는 그런 상상을 하며 밖을 나왔다. 울산은 1986년 포경이 금지되었고, 장생포고래박물관, 고래생태체험관 등을 통해 옛이야기들을 고스란히 전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이들 고래처럼 큰 수난을 겪었다. 수난을 겪은 것이 고래의 잘못 때문인가. 약한 것이 죄인가. 외면하고 싶은 진실을 당당히 마주하고 바른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 오늘을 사는 우리의 몫일 것이다. 언젠가 귀신고래가 동해에 나타나주길. 고향 바다에 찾아와 포경의 고통 없이 마음껏 어미와 새끼가 헤엄치는 모습을 꿈에서라도 보게 되길.

울산 남구, 장생포고래문화특구_ 장생포고래문화마을
울산 남구, 장생포고래문화특구_ 장생포고래문화마을

“고래빵 맛있어요. 드셔보세요.”
장생포고래문화마을에서 붕어빵처럼 고래가 들어 있지 않은 고래빵을 맛봤다. 초여름인데 한여름 같은 날씨에 ‘고래빵연구소’ 앞 벤치에 앉아 널브러진 듯 앉아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고래빵을 꿀떡꿀떡 삼킨다. 레트로, 뉴트로, 복고가 유행인 시대라 장생포고래문화마을을 돌아보는 시간은 특히나 흥미롭다. 어떤 것은 추억이고, 어떤 것은 새로워서 아이처럼 골목과 가게들을 누볐다. “엄마, 우리도 달고나 하자.” 달고나?! 달콤한 소리에 걸음을 멈춘 곳은 ‘동네점빵’. 연탄불 앞에 모여 든 가족들이 1000원을 내고 달고나를 만들고 있다. 뒷모습에도 진지함과 신남이 잔뜩 묻어 있다. 하얀 개가 1만 원짜리 지폐를 물고 있는 청수이용원에 들어가 드라이어로 머리 말리는 흉내를 내본다. 우물에서 물을 길어 펌프질도 해본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재밌는 기분이 들까. 어쩌면 이곳에서 깊어진 생각이 식혀져서 즐거웠나 보다.


 

PART 2 울산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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