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1 너를 품에 안으면 _ 전남 장흥

이 안에 무엇을 채우며 살까. 무엇을 보고, 무엇을 만나 이 세상 참 재미있게 살았다고 기억할까? 삶은 선택의 연속이라고 하지. 전남 장흥의 품속을 걷는다. 천자의 면류관을 닮은 천관산에는 바람과 나뿐. 하늘 아래 바다를 안는다. 어둠을 가로지르는 의인의 손길과 차가운 공기를 뚫고 피어나는 동백에게서 가꿔나갈 삶을 그린다.

 

천관산 정상에서 바라보이는 하늘과 바다, 그 안에 장흥

 

전남 장흥, 천관산 정상 ‘연대봉’

“천자의 면류관을 쓰려면 땀을 흘려야지”

같은 공간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 하더라도 서로가 기억하는 그 공간의 분위기는 다를 수 있다. 서로의 가슴에 가장 좋게 남은 기억의 조각 또한. ‘너와 나는 다르다’를 인정하면 그제야 내 안에 무수한 ‘너’ 대신 ‘나’의 존재가 깊어진다. 이 안에 무엇을 채우며 살까. 무엇을 보고,무엇을 만나야 이 세상 참 재미있게 살았다고 기억할까? 꼭 껴입은 외투를 벗어들고 산을 오른다. 겨울바람이 이리도 고마웠던가. 땀으로 흥건한 등이 짜릿짜릿 시원하다. 나는 지금 전남 장흥, 천관산 정상을 향해 가고 있다. 천관산은 지리산, 월출산, 내장산, 내변산과 함께 호남의 5대 명산이라고 불린다. 산책이라고 하면 가볍지만, 산행이라고 하면 무겁다. 가끔 동네 뒷산을 산책하듯 다녀오긴 했어도 호남의 5대 명산이라니. 코앞에 입춘을 걸어두고 설렘이 찾아든 탓이다. 천관산 정상(해발 724m)인 연대봉에서 내려다보는 장흥은 장관이라 하였다. 들과 산과 바다가 어우러져 있다고 했다. 산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 해발 724m라는 높이는 계단 724개보다 영향을 주지 못한다.

최단 코스와 최고로 쉬운 코스는 같은 말이 아니었음을!

이미 머리로는 정상을 밟았고, 그곳에서 바라보는 풍경으로 꽉 차 있다. 천관산문학공원 탑산사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안내 지도를 바라본다. 탑산사 주차장에서 닭봉을 지나면 정상인 연대봉에 닿는다. 최단 코스로 잘 알려진 구간이다. 그 외에도 천관산 동북쪽 장천재에서 금강굴, 구정봉, 연대봉으로 올라가는 코스도 있으니 다음 여정 등을 고려해 들머리를 잘 선택하면 되겠다. 또 하나, 체력도! 최단 코스와 최고로 쉬운 코스는 같은 말이 아니었음을 거친 숨을 내쉬며 깨달았다. 댓잎들의 환호를 받으며 초입을 지나자 천관산이 자꾸만 날 밀어내는 것 같다. 눈앞에 암석이 떡하니 자리해 길을 막거나, 키가 2m라도 한 번에 넘지 못할 바위들이 포개져 있다. 행여나 감기에 걸릴까 꼭 껴입은 외투도 이 길을 오르자니 거추장스럽다. 영상을 찍기 위해 들고 있던 카메라도 버리고 자유의 몸이 되고 싶다. 그래도 그럴 수야 없지. 혹여나 천관산이 날 좋아해 놓아주지 않을까봐 비상식량으로 챙겨온 초코바를 먹으며 오기로 산을 올랐다. 500ml 생수도 너무 무거우니 마셔서 가볍게 만든다. “실장님, 저기 눈앞에 보이는 게 정상 아닌가요?” 포토그래퍼 실장님은 이미 저만치 사라지고 없고, 기자가 기대에 가득 차 가리킨 것은 ‘닭봉’이었다.

혹시 정상 아닌가요? (아닌데요. 저는 닭봉입니다)

멀리서 바라보면 돌 거인의 머리 위에 누군가 소원 돌을 올린 것처럼 아찔아찔 신기하다. 별안간 돌풍이 불어 소원 돌이 내게 굴러올 수도 있으니 서둘러 닭봉을 지난다. 뒤에서 봐도 신기하다. 사람 아닌 누군가 올려놓은 게 분명해. 오른 지 한 시간이 지났을까. 닭봉을 지나자 마법이라도 부린 듯 감추었던 풍광이 나타난다. 억새 능선이다! 가을이면 억새 무리를 보러 많은 사람이 연대봉을 오른다는데, 그럴 만했다. 하지만 꼭 가을이 아니어도, 억새가 피어나지 않은 이 계절에도 아름답기 그지없다. 아, 나는 코끼리 엉덩이만 만져보고 코끼리를 그릴 뻔했다. ‘그래도, 그래도’ 하며 포기하지 않고 올랐더니 산에 또 다른 산이 깃든 듯 신비롭지 않은가. 부지런히 걸음을 재촉하여 연대봉 전망대의 계단을 밟았다. 거대한 산바람이 엉덩이를 힘껏 밀어 올려준다. 그토록 바라던 정상에 서 있는데, 여기 서서 바라본 풍경은 너무도 짧은 찰나일 뿐이다. 돌길을 지나며 내쉰 큰 숨, 찬바람에 오소소 식어 내리는 등의 땀, 내 걸음보다 빨랐던 쨍한 하늘의 구름 떼, 어느 곳에서 바라봐도 신비로운 천관산의 기암괴석…. 연대봉 정상에 서서 그 이치를 깨닫는다. 결과보다 중요한 것은 과정이라는. 뻔하고 지극한 이치. 내려오는 길에 나는 보았다. 장흥의 들이 코팅된 판 초콜릿처럼 햇살에 반짝이는 것을. 거대한 돌 거인을 품에 안으면 설렘이 채워진다는 것을 알았다.

포기하지 않고 올랐더니 산에 또 다른 산이 깃든 듯 신비롭다

 

문학과 숲으로 우거진 길, 장흥을 걷다

“그대 안에 눈먼 소리꾼, 송화가 살고 있지 않은가”

기꺼이 고생을 사서 하는 마음이라면 우리는 언제고 젊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산을 내려오며흙길에 미끄러지고 갑자기 놀랐을 무릎의 안부가 걱정됐으나 마음만은 개운하다. 이번에야말로 좋아하는 산책을 하듯 천관산문학공원에 자리한 문학비들 사이를 걸었다. 전남 장흥은 우리나라 최초의 ‘문학관광기행특구’로 지정된 만큼 지역 곳곳에서 자부심과 지성이 느껴진다. 천관산문학공원은 장흥 출신의 문학가인 이청준, 한승원부터 문병란, 이성복, 박범신 등 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글을 자연석 54개에 새겨 기념하고 있다. “세월과 함께 육신은 흩날려도 한 점 바람으로 삶은 아름다웠다고 기억할 것입니다. 그대 가슴 벅차게 뛰고 있는 이 순간 사랑하십시오. 그 사랑 간직할 가슴 있을 때_ 박미경” 수많은 글귀 중에 오늘, 지금, 나란 사람에게 맞춤한 글귀를 선물처럼 담아왔다.

남포마을, 소등섬_임권택 감독은 ‘소등섬’을 배경으로 이청준 작가의 <축제>를 영화화했다

이제 좀 더 장흥의 아래로, 우물 속 깊은 물을 길러 내려가본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 <서편제>, <축제>, <천년학>에는 공통점이 있다. 작품의 원작자가 장흥에서 태어난 이청준이다. 삶에 희로애락이 있어 웃을 일도 있고, 울 일도 많다지만 어떤 이는 제 삶이 불공평하다고 말한다. 전쟁을 치른 적도 없는 세대에서 ‘헬조선’이라는 말도 생겨난다. 남루하다고 초라할까, 가난하다고 신념을 잃을까. 매일 전쟁터를 향하는 ‘젊은 그대’와 함께 이청준 작가의 ‘눈길’을 걷는다. 8편의 중·단편을 실은 소설집 <눈길>은 학교에 빈 도시락을 들고 오는 가난한 제자를 위해 매끼 밥그릇의 절반을 덜어놓는 은사의 이야기 등이 담겨 있다.

정갈하게 닦인 아담한 옛집은 이청준 작가의 생가다. 뒤안길 담 너머 나무가 타는 냄새가 은은히 넘어오고, 그 앞으로 동백꽃이 붉게 피어 고개를 든다. “내 삶과 문학에 대한 은혜를 따지자면야 그 삶을 주고 길러준 고향과 그 고향의 얼굴이라 할 어머니를 앞설 자리가 있으랴. 나는 늘 가난한 고향이 부끄러웠고 그 고향에서 쫓겨난 꼴이 된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부끄러움이 내 소설을 쓰게 하는 것 같다.” 작가의 자전적 고백이 들려온다. 어린 시절 겪은 아버지와 두 형제의 죽음, 작고 외진 마을, 가난한 집, 홀어머니라는 결핍의 요소들을 그는 문학이라는 예술로 승화했다.

법관이 될 거라는 기대를 받을 만큼 똑똑했던 소년은 우리나라의 ‘정치·사회적인 메커니즘과 그 횡포에 대한 인간 정신의 대결 관계를 주로 형상화’한 대표적인 현대소설가로 이름을 남겼다. 그래서일까, 작가의 수많은 작품은 영화화되어 대중의 심금을 울렸다. 오직 나만 공평치 못한 것 같은 수직적인 삶과 총도 없이 한 방에 떨어져나가는 오늘의 마음을 여전히 다독이는 작품들이다.

1979년 계간지 <문학과 지성>에 발표한 단편소설 ‘선학동 나그네’의 배경이 된 선학동마을을 찾았다. 소설은 임권택 감독의100번째 영화 <천년학>의 원작이자 전작 소설 ‘서편제’의 후속편으로도 큰 화제가 되었다. 마을 어귀에는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한눈에 알아볼, 눈먼 소리꾼 송화(오정해 분)가 머물렀던 선술집이 그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아픔도 슬픔도 내려놓고 송화는 ‘선학동 하늘에 떠도는 한 마리 학’이 되었다. 나보다 훨씬 크면서 나의 작은 몸짓에도 반응하던 마을의 소들, 긴 속눈썹에 매달린 눈물이 송화 같고 학 같다. 어딘가에 송화는 지금도 살고 있겠지. 그대 안에, 혹은 내 안에 있을 송화를 잘 보살펴주자.

 

전남 장흥의 동백과 안중근 의사의 해동사

“향기 없어도 아름답고, 떨어져도 헛되지 않다”

길 위에서 전해 듣기로 ‘용산면 묵촌마을에 가면 동백이 아름답다’ 하였다. 마을 어귀에 보란 듯이 동백이 무리를 지어 서 있다. 약 2000㎡ 규모라니 묵촌마을 동백집성촌 아닌가. 파란 하늘을 머리에 이고 짙은 그늘 드리워진 숲에 붉디붉은 동백이 떨어져 있다. 동백꽃은 한 잎, 한 잎 시들어 떨어지지 않는다. 송이째 떨어져 대지를 숨막힐 듯 화려하게 수놓으니 시련 앞에서도 끝내 자존심을 잃지 않는 드라마의 여주인공 같다. 이 다음 장면은 천관산 동백숲으로 이어진다.

20만㎡에 이르는 천관산 동백숲은 국내 최대 규모의 천연 동백 군락지다.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지정·관리되고 있으며, 지난 2007년에는 ‘단일 수종 최대 군락지’로 한국기록원이 인증했다. 지역에서는 자체적으로 ‘천관산동백숲보전회’를 설립해 지속가능한 환경조성을 위해 앞장서고 있기도 하다. 전망대에 오르자 실로 거대한 초록 물결이 넘실댄다. 동백꽃에는 향기가 없어 나비와 벌이 아닌 새가 나서서 암술과 수술 꽃가루의 결합을 돕는다. 새를 유인한다고 하여 조매화로 불리는 이유다. 생각해보면 무엇을 대할 때 정해둔 기준과 기대치를 늘 적용했던 것 같다. 예쁜 여자, 씩씩한 남자, 향기로운 꽃처럼. 감히 넘볼 수 없는 요새처럼 높고 치밀한 동백숲. 숲속은 짙고 바깥보다 서늘하다. ‘추위를 두려워하랴.’ ‘남들이 걷는 길을 마냥 따라 걸으랴.’ 추운 날 동백이 겁 없이 피어난다. 향기 없어도 아름답고, 떨어져도 헛되지 않다. 나의 걸어왔던 길을 돌아본다. 부디 고고한 빛 사라짐 없이, 일부러 꺾이는 일 없이 언제나 당당하길. 동백이 내게, 내가 동백에게 말을 건넨다.

장흥토요시장 앞에 탐진강이 흐른다. 넓적한 돌 징검다리를 건너면 시내 이쪽에서 저쪽으로 쉽게 걸음을 옮길 수 있다. 다가오는 여름이면 ‘정남진장흥물축제’가 열려 수많은 사람의 웃음이 이곳에 가득할 것이다. 그때를 상상하며 아직은 호젓한 이 순간을 만끽한다. 아이처럼 너풀너풀 징검다리를 건너자 플래카드에 걸린 큰 글자가 눈에 들어온다. ‘2020 장흥 해동사 방문의 해’.

해동사는 국내 유일 안중근 의사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안중근 의사의 본관은 순흥으로, 1879년 9월 2일 황해도 해주에서 성균관 진사 안태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에 잠입하여 이토 히로부미(1905년 대한제국의 주권을 빼앗은 을사늑약을 강제로 체결한 일본의 정치인)를 저격했다. 뤼순 감옥에 수감된 안중근 의사는 사형선고를 받고 이듬해 3월 26일 순국했다. 장흥군 유림과 죽산 안씨 문중은 안중근 의사의 후손들이 제사를 지내고 있지 못하는 상황을 안타까워하며 1955년 죽산 안씨 문중의 만수사 한쪽에 해동사를 건립했다. 해동사에는 안중근 의사 영정 2점과 친필 유묵 복사본, 위패와 영정이 모셔져 있으며, 이승만 대통령이 쓴 ‘해동명월(海東明月)’ 편액이 걸려 있다. 해동사 건립 당시 위패 봉안식을 담은 흑백 사진에는 안중근 의사의 딸 안현생과 5촌 조카인 안춘생이 영정과 위패를 안고 장흥읍 동교다리를 담담히 걷는 모습이 보인다.

현재 장흥군에서는 ‘안중근 의사 문화관광자원화 사업’을 통해 해동사를 역사와 문화, 교육의 장으로 발전시켜나가고 있다. 음력 3월 12일 함께 거행된 만수사와 해동사의 제향일 또한 올해부터는 안중근 의사의 순국일인 3월 26일에 맞춰 추모 행사가 열릴 예정이다.

“아프리카 스와힐리족은 사람이 죽더라도 그 사람을 누군가 기억하고 있는 한 아직 죽지 않은 것이니 사사(Sasa)라 하고, 그 사람을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으면 그제야 비로소 진짜 죽었으니 자마니(Zamani)라고 한다. 우리가 기억하는 한, 안중근 의사의 의로운 선택은 외롭지 않으며, 영원히 존중받을 것이다.”

정상미 사진 이효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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