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는 마음, 남원

세상에 불멸인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사랑. 변하지만 변질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 또한 사랑.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 백 번 천 번을 노래해도 좋을시고. 사랑1번지 ‘남원’에서 ‘님’을 생각했다.

 

 

간절함이 해피엔딩을 만든다 – 광한루 600년과 춘향의 도시

그래, 이곳은 남원. 춘향과 몽룡의 세기의 사랑을 품은 도시구나. <춘향전>에서 비롯된 상징물이 시내 곳곳을 물들이고 있다. 남원시 중심부를 흐르는 길고 긴 요천을 바라본다. 그 길이가 60.030㎞, 유역면적 485.70㎢로 남원대교, 춘향대교, 승월교 등의 교량이 뽐내듯 요천에 나란하다. 4월의 요천은 벚꽃이 훤하고, 5월의 요천은 절세미인으로 일컬어지는 춘향처럼 반짝인다. 남원 시민의 하루는 요천과 더불어 평화롭게 흐를 것만 같다. 조깅을 하거나 자전거를 타고 이 길을 달리는 이들을 따라 천천히 걸어보았다.

승월교에 5월의 ‘춘향제’를 알리는 붉은 플래카드가 화려히 나부낀다. 재와 미를 겸비한 어떤 여인이 올해의 춘향이 될까? 춘향이 하도 유명하다 보니 관련된 이런저런 말도 많다. 그중 하나가 원래 절세미인이 아닌 박색이라는 것이다. 아무렴 어떤가. 당대에 대히트를 친, 뮤지컬과 영화로도 재탄생된 <춘향전> 에서 이몽룡과 성춘향은 사랑을 했다. 실제로는 불가능에 가까운, 신분을 초월한 해피엔딩도 이뤘다. 그안에는 흙수저도 금수저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 춘향이 그저 아름답기만 하고 그녀 안에 간절함이 없었다면 변 사또의 유혹에, 회유에, 모진 핍박에 굴복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중요한 것은 생김보다 내면이다. <춘향전>의 정확한 창작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예로부터 전해지던 설화가 판소리로 불리다가 소설로 정착된 것으로 본다. 조선시대의 한글소설로 남원 사또의 아들이 주인공, 아름다운 누각으로 손꼽힌 광한루가 선남선녀를 비추는 배경으로 등장하며 광한루 하면 춘향, 춘향 하면 남원의 공식을 만들어냈다. 600년 전 광한루를 세운 황희 정승이 이를 알면 광한루가 주인공이 아닌 배경인 것에 조금은 속상해하실까. 아니, 오늘날 수많은 사람이 광한루를 마음에 품고 찾아오는 데 일등공신이니 그럴 것 같지는 않다.

광한루의 원래 이름은 ‘광통루’로 1419년 황희 정승이 세웠다.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청백리로 익히 알려진 그분이다. 광통루는 세종 16년 중건되며 정인지에 의해 ‘광한루’라 개칭되었으니, 달 속에 항아가 살고 있는 전각을 뜻한다. 이름처럼 아름다운 광한루는 보물 제281호로 진주 촉석루, 밀양 영남루, 평양 부벽루와 함께 우리나라 4대 누각으로 손꼽힌다. 명승 제33호로 지정된 광한루원은 조선시대 대표적인 정원으로 선조 때 남원부사 장의국이 요천의 물을 끌어들여 못을 만드니 은하수를 상징한다. 이후 전라도 관찰사 정철이 광한루를 크게 고쳐짓고 삼신산을 상징하는 방장섬, 봉래섬, 영주섬을 만들었다. 정유재란 때 모두 불타버린 광한루를 1639년 남원부사 신감이 복원하여 오늘도 아름다운 광한루를 본다.
항아가 살고 있는 광한루 옆에는 오작교가 드리워져 있다. 이승 사람이 은하수를 건너 신선의 세계에 닿고자 하는 마음이 아닐는지.

요천 건너 춘향테마파크가 있다. 춘향의 일대기를 다섯 마당으로 구분해 조성한 공원으로, 춘향전의한 장면을 재현해놓은 집과 모형이 이색적이다. 춘향과 몽룡이 첫날밤을 보내는 장면이며 그를 흐뭇하게 바라보는 월매, 말을 타고 떠나려는 몽룡을 온몸을 다해 붙잡는 춘향의 절절함까지! 세기의 사랑은 이처럼 파이팅 넘치게 이뤄졌다. 춘향테마파크는 남원관광단지 내에 조성되어 있다. 호텔, 카페, 예식 장, 놀이기구, 국립국악민속원 등 어현동 일대가 남원관광단지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 안의 낮에 들렀던 덕음산 전망대를 저녁 어스름 다시 찾았다. 남원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핫 플레이스다. 승월교에 조명이 켜졌다. 낮도 좋았지만 오히려 찬 공기가 스며든 이 시간이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끝을 모르게 흘러가는 요천을 바라보며 두고 본 것들을 되새겨보았다. 어떤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한 키는 간절함이 쥐고 있는 것 같다.

 

알면 알수록 황송한 하룻밤 – ‘남원예촌’

광한루원 북문에 조성된 남원예촌은 허울만 좋은 한옥 호텔이 아니다. 남원시가 짓고 이랜드 그룹이 운영하는 한옥 호텔의 자부심은 안과 겉에서 잘 드러난다. 날렵하게 빛나는 신기술 속에서도 우리는 선조들의 지혜가 드러나는 대목에서 얼마나 자주 감복하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최기영 대목장을 비롯해 중요무형문화재 이근복 번와장 (기와) 등 대한민국 한옥 명장이 직접 시공에 참여한 남원예 촌은 황토, 대나무, 해초 등 자연에서 얻은 재료와 순수한 고건축 방식을 그대로 재현했다. 모든 객실의 난방 또한 구들을 들여 가동된다. 대청마루 뒤에 자리한 장작이 그저 소품이 아니었던 것이다. 손님 오면 어른들은 구들장이 지글지글 끓는 아랫목을 내어주곤 했다.

그 귀한 자리에서 하룻밤 머물면 내 몸의 독소가 어디로 사라진 듯 개운하다. 잘 자고 일어나 조식 한 상도 받는다. 가지런한 찬과 더불어 전복죽, 소고 기미역국이 정갈하고 맛도 좋다. 내 속에 명품이 깃든다. 기품이 간직된다.

  • 디럭스 대청

두 가족이 함께 남원예촌을 이용한다면 디럭스 대청을 추천한다. 객실의큰 문을 열면 가운데 대청마루를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다. 객실 공통으로 네스프레소 캡슐커피, 약과, 한과 등이 제공되며 광한루원, 춘향테마파크 등의 명소를 무료 입장할 수 있다.

|전북 남원시 광한북로 17|063-636-8001|www.namwonyechon.com|

 

한없이 가벼웠던 나를 기억해 – 옛 서도역

봄에 하얀 꽃무리가 떨어지니 춘설이다. 아기 눈처럼 말간 하늘과 흰 구름, 무슨 소리를 하는지 지저귀는 새들의 울음소리가 긴 철로를 따라 쉼이 없다. 어디 먼 데서 찾아온 손님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 옛 철도역을 찾은 때가 화창하다. 서도(書道), 이름 그대로 풀이하면 글씨를 쓰는 법 되겠다. 고등학교 재학 시절 무슨 바람에서인지 서도부에 가입했다. 학교 근처 화방에 가서 벼루며 화선지, 붓을 사면서 설레던 기억이 남아 있다. 제법 가격이 나갔던 화선지에 신중을 기하며 써내려간 글은 ‘한 일’ 자. 그 한 줄이 처음이자 끝인 것처럼 쓰고 또 썼지만 서도부 선생님의 얇은 입술은 쉬이 칭찬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게 나의 서도는 곧 다가온 졸업과 함께 값비싼 문방사우를 남겨두는 것으로 끝이 났다. 여기, 남원 서도를 와보니 조금은 알겠다. 나는 그저 한없이 가벼운 존재였음을, 내 모든 것들에서.

서도역 초입의 집 담벼락에 새겨진 문장이다. 우뚝 발길이 멈춰져 나도 가슴에 새긴다. 기자가 방문한 서도역은 이제 그 앞에 ‘폐’나 ‘옛’이라는 관형사가 붙지만 낡고, 지난 것으로 그저 치부되지 않는다. 서도역은 1934년 10월 1일 역원배치 간이역으로 운수영업을 시작하여 1937년 10월 1일 보통역으로 승격되었다.

2002년 전라선 철도 이설로 신역사를 준공, 이전하면서 옛 서도역을 일제강점기 준공 당시의 모습으로 재현했다. 그렇게 새로운 명칭 ‘구서도역영상촬영장’으로 재탄생되었다. 지난해 방영해 큰 인기를 끈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8회에서 구동매(유연석)가 고애신(김태리)을 기다리던 장소로도 등장했다.

한편 서도역은 최명희 작가가 혼신의 힘으로 써내려간 대하소설 <혼불> 도입부의 배경이자, 중요한 문학적 공간이다. ‘매안마을 끝 아랫몰에 이르러, 치마쪽을 펼쳐 놓은 것 같은 논을 가르며 구불구불난 길을 따라, 점잖은 밥 한상 천천히 다 먹을 시간이면 닿는 정거장’, 소설의 주인공 ‘효원이 대실에서 매안으로 신행 올 때 기차에서 내리던 곳이며 강모가 전주로 학교 다니면서 이용하던 장소’인 것. 꽃대궐을 이룬 나무 사이로 녹슨 철로, 짙은 갈색의 목조 건물이 한데 어우러진 이곳은 모든 시간을 멈춰 세울 듯 신비로운 힘을 갖고 있다. 남원 첫 여정이 서도역인 것은 우연일까? 영 떠나기 싫은 마음을 애써 누른 채 혼불문 학관으로 걸음을 옮겼다.

 

최선을 다해 살아낼 것 소설 <혼불>의 의미

아이들이 소풍을 온 모양이다. 혼불문학관의 드넓은 마당에 세상 철없는 모양의 순수함이 뛰어다닌다.
일찍이 신구 선생님은 텔레비전에 나와 이렇게 외쳤다. ‘니들이 게 맛을 알어?’ 그 물음에 강압이 없어서 묘하게 알고 싶어지는 ‘게 맛’이었는데, 혼불문학관에서 큰 나비처럼 날아다니는 저 녀석들이 <혼불>을 모른다는 게 무슨 대수겠는가. 그저 지금은 나비처럼 가볍게 날아다닐 때다. 언제고 스스로 알고 싶고, 알게 되는 때가 오니까. 전시관에서 한 학생이 선생님인 줄 아는지 기자에게 꾸벅 인사를 한다. 나도 너처럼 이곳에 대해 잘 모른단다. 나도 한 명의 학생처럼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최명희 작가의 족적을 훑어 본다.

<혼불>은 1930~1940년대 남원과 전주를 배경으로 몰락해가는 양반가의 며느리 3대와 그 문중에 땅을 부치며 살아가는 상민들의 굴곡진 삶을 다루고 있다. 혼불문학관이 있는 노봉마을은 소설에서 ‘매 안마을’로 등장하는데, 실제 노봉마을은 삭녕 최씨가 500년간 대대로 살아온 곳으로 최명희 작가의 부친 생가가 남원시 사매면에 위치한다. 최명희 작가는 생전에 노봉마을에 자주 드나들며 소설의 소재들을 발굴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학관 바로 옆에는 청암부인이 조성했던 청호저수지가 있고, 마을 위쪽에는 소설의 중심무대가 되는 종가가 있다.

최명희 작가는 17년에 걸쳐 10권의 소설을 집필했는데 난소암에 걸린 것을 숨긴 채 마지막 소설을 완결한 다. 그 후 2년 만에 세상을 떠나며 “혼불 하나면 됩니다.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참으로 잘 살고 갑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모국어가 살아야 민족이 산다는 신념으로 써내려간 한 문장, 한 문장은 아침 이슬처럼 영롱하고, 빠르게 사라져가는 고유한 말과 문화를 기억하게 한다. 올해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 주년을 맞이한 해로 민족정신을 고취하게 하는 여러 행사가 다채롭기도 하다. 그 어떤 날보다 일제강점 기의 고난을 반추할 기회도 많은 것이다. 소설의 제목인 ‘혼불’은 사람이 죽기 전 빠져나오는 불덩어리 같은 것을 가리킨다. 당시 우리나라의 혼불은 꺼질 듯 위태로웠으나, 한 사람 한 사람의 열망으로 지켜낼 수있었다.

비단 그때뿐이랴. 하나의 콩알에서 거대한 생명력의 파고를 느끼며 주먹을 불끈 쥐어본다. 그대, 살아 있으면 잘 살아내야 한다.

정상미 사진 손준


SH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