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에서 배우는 인생 파도에서 발견한 희망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사랑한 그들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가장 즐거웠던 장소에 살기로 한다. 내일은 좋은 파도가 치길 희망하며, 이제는 아이의 고향이 된 양양에서.

 

바루서프양양 김진수·채화경

 

파도

서핑숍 바루서프를 운영하는 김진수입니다. 2014년 4월에 결혼하고 바로 다음 날 여기 강원도 양양군 현남면 남애리에 와서 페인트를 칠했어요. 이야, 벌써 5년째네요. 그렇게 대단한 결정은 아니었어요. 저와 아내 둘 다 익스트림스포츠 업계에서 마케터와 패션 디자이너로 일하며 여름엔 서핑, 겨울엔 스노보드 타러 주말마다 강원도에서 살았거든요. 우리 아이는 시골에서 자랐으면 좋겠다는 소망도 한몫했고요. 기름값도 아까운데 우리 아예 여기 와서 살까? 돈도 여기서 벌고. 그게 ‘바루서프 양양’ 프로젝트의 시작이에요. 물론 망설이긴 했죠. 이제 아내와 아이가 생긴다고 생각하니 당장 꼬박꼬박 들어올 월급이 아쉽더라고요. 도시에서의 삶으로부터 도피하는 것처럼 보일까 걱정도 됐고요. 그때 아내가 저를 끌고 가서 보여준 영화가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였어요. 엔딩크레딧이 올라올 때이미 눈이 촉촉하더라고요(웃음).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 마음을 굳게 먹었죠. 나는 창업을 하는 거고, 창업의 장소가 양양일 뿐이라고. 아마 ‘조금만 벌고 덜 쓰고 살아야지’ 했다면 오늘의 바루서프는 없었을 거예요, 하하. 스노 보드, 스키, 스케이트…. 사람들은 ‘미끄러짐’에서 큰 재미를 느끼죠. 이런 슬라이딩 요소가 큰 운동 중에 저항이 가장 작은 게 서핑입니다. 저한테는 정말 천직이에요. 좋아하는 걸 누군가와 나누는 게 인생에서 큰 즐거움이잖아요.
먹고사는 수단이기도 하지만 사람들에게 제 사랑을 베푸는 기분이 들어요. 서퍼들끼리 하는 얘기가 있어요. 너무 힘들어서 그만 타고 싶은데 더 타고 싶다고(웃음). 많이 탈 땐 연달아 6시간도 탔는데 아이가 태어난 뒤로 1시간쯤 타면 슬슬 나오라는 텔레파시가 옵니다. 아주 강력한 텔레파시가(웃음).

 

음악

하고 싶은 건 꼭 해야 하는 채화경입니다. 남편은 만나기 전부터 알고는 있었어요. 스노보드 아마추어 선수인 데다 익스트림스포츠 경기 해설도 많이 해서 이쪽에서는 유명인이거든요. 소위 ‘초인싸’라고 할 수 있죠(웃음). 남편이 회사 팀장님과 친했는데, 언제부턴가 그분을 통해 자꾸 안부를 묻는 거예요. 하루는 “데스캡 음악 잘 들었대” 하기에 깜짝 놀랐죠. ‘데스 캡 포 큐티(Death Cab for Cutie)’라고 미국 인디밴드인데, 한국엔 듣는 사람이 별로 없었거든요. 알고 보니 이 오빠가 앙큼하게(?) 일촌도 아니면서 제싸이월드에 파도 타고 왔던 거예요. 그때 배경음악이 데스 캡 포 큐티의 ‘Title and Registration’이었죠. 보다 자세한 이야기는 이제 막 오픈한 유튜브 채널 ‘세차뮤직’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9살 차이 부부의 같은 취향 속 갈리는 세대 차이 음악을 이야기할 계획입니다(웃음). 저 혼자서는 ‘젊은 엄마’라는 채널을 따로 운영 해요. 우울감을 해소하고자 시작한 취미랄까요. 사실 서핑을 거의 못했어요. 양양에 온 지 1년도 안 돼서 재희가 생겼고, 올해는 로하까지 태어나 육아하랴 가게 운영 하랴 너무 바빴거든요. 나도 엄마가 처음이라 궁금한 게 많은데, 아침에 잠깐 보는 TV는 60~70대 엄마 위주고…. 의사소통 안 되는 아이와 단둘이 집에 있을 때면꼭 무인도에 갇힌 것 같았어요. 좋아하는 일을 하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마냥 행복하기만 한 건 아니더라고요(웃음). 그래서 틈틈이 유튜브 채널도 운영하고, 수제 비누도 만들고 하면서 이곳에서 더 해볼 수 있는 것들을 고민 중이에요. ‘음악’처럼 우리만의 색깔을 가진 콘텐츠를 바루서프에 입히면 더 즐거울 것 같아요.

 

 

희망

화창한 날, 커다란 파도를 뚫고 전진합니다. 물방울이 날리는 찰나 나타나는 무지개 같은 것. 저는 ‘희망’입니다. 양양에 둘이 와서 지금은 넷이 된 부부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기도 하죠. 부부가 가게를 알아보러 왔던 날, 양양에는 서핑숍이 6개였어요. 진수는 좌절했죠. 더 이상 서핑숍을 낼 자리가 없다며. 그렇게 서울로 돌아가는 길, 화경이 위로할 겸 말을 건넵니다. 지금 차 돌려서 다시 한 번 알아보자고. 그때 구한 자리가 지금 바루서프랍니다. 사실 화경도 구해질 거라 믿고 말한 게 아니었대요. 오로지 저, ‘희망’을 품었을 뿐이래요. 결혼하고, 창업하고, 양양에 살면서 부부는 10년 안에 겪을까 말까한 고생을 압축해서 겪었습니다. 죽도에 ‘서핑타운’이 생겨나고 양양에 서핑숍이 60개로 늘면서 서울에서 하던 것과 비슷한 ‘경쟁’을 해야 했고, 벌써 젠트리피케이션도 생겨났죠. 그런데 숨도 쉬기 싫을 만큼 힘들었어도 죽으란 법은 없더래요. 시간이 지나면 오히려 좋아지기도 하더래요. 내 맘대로 되지 않는 파도에 온몸을 내맡길 때처럼, 부부는 그렇게 인생을 배워갑니다. 오늘은 못 탔지만 내일은 재밌게 탈수 있겠지. 그렇게 아주 작은 희망을 버리지 않고 내일 또 도전하면 파도는 또 줄 것을 주듯, 그렇게 한 발짝씩 나아가서 뭐라도 얻는 게 인생인가 봅니다. 부부는 말합니다. 서핑 타는 놈들은 다 한량이라고. 도시적인 욕망을 가졌다면 여기 내려올 생각도 못할 거라고. 서핑스쿨은 이미 포화상태고 어느 순간이 지나면 하향곡선을 타겠지요. 그때까지도 남아 있는 것. 서핑에 완전히 불이 꺼지더라도 마지막 남는 하나가 되는 것. 그것이 바루서프면 좋겠습니다.

 

 

바루서프양양
BARUSURF YY

양양 서핑타운의 1세대 개척자이자 4살 재희, 77일 로하, 반려견 바루의 엄마 아빠. ‘서핑과 술은 멀수록 좋다’고 생각하는 안전제 일주의 부부 김진수·채화경 대표가 운영하는 청소 년관람가 서핑숍. 게스트 하우스와 서핑스쿨도 겸하고 있다.

|강원 양양군 현남면 동해대로|260 070-4409-2289|

 

 

이현화 사진 임익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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