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인사이트

샤르댕 작품 속
새로운 세계로 나가는 순간

기본 정보
상품명 샤르댕 작품 속
새로운 세계로 나가는 순간
상품요약정보 문화 인사이트
새 학기를 맞이하며 들여다보는 샤르댕의 ‘가정교사’.

📌전원경(세종사이버대 교양학부 교수)
예술작품의 참된 의미와 가치를 알려주는 글을 쓰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는 예술 전문 작가



3월은 새 학기가 시작되는 시간이다. 많은 학생이, 심지어 학교를 떠난 지 오래된 성인들도 3월이 되면 묘한 설렘과 두근거림, 그리고 약간의 부담감 같은 감정을 느낀다. 미지의 선생님과 친구들, 새롭게 시작되는 과목과 더 어려워질 듯한 공부 등에 대한 생각은 상상만으로도 마음속에 묵직한 부담으로 다가오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공부’나 ‘새로운 학교’에 대한 감정을 담은 그림도 있을까? 놀랍게도 이런 주제를 다룬 그림들이 제법 있다.


예를 들면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소크라테스, 피타고라스 등등 고대 그리스의 여러 학자가 모인 학문의 전당을 보여준다. 오십여 명의 학자는 토론하거나 강의를 하고, 또 사색하고 읽고 쓰면서 제각기의 방식으로 공부에 몰두하고 있다. 이 그림의 공식적인 주제는 ‘철학’이지만 수학이나 천문학 등도 망라하고 있으니 우리는 이 그림의 주제를 ‘공부’라고 볼 수도 있을 듯하다. 
그러나 ‘아테네 학당’은 학문에 대한 그림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거창하다.

3월 신학기를 맞아 새 학교로 향하는 걱정과 설렘, 두근거림을 담은 작품으로 프랑스 화가인 장 바티스트 시메옹 샤르댕(1699~1779)의 ‘가정교사’를 선택하고 싶다. 이 그림은 18세기 계몽주의 사상이 담긴 소박하면서 차분한 작품이다.


가정교사. 장 바티스트 시메옹 샤르댕, 1739년, 캔버스에 유채, 46.5 x 37.5 cm, 캐나다 국립미술관, 오타와

그림은 어두운색으로 가라앉아 있는 여염집의 실내를 담고 있다. 문이 반쯤 밖으로 열린 것으로 보아 이 공간은 집의 현관인 듯싶다. 그림 오른편의 여성은 머릿수건을 쓰고 앞치마를 입고 있으며 왼편의 소년은 외투를 입고 구두를 신은 차림새다. 일곱 살이나 여덟 살쯤 되어 보이는 이 아이는 처음으로 학교에 가는 길이다.

푸른 리본으로 머리를 묶고 옆구리에 책을 낀 아이의 표정에는 약간의 걱정과 부담감이 담겨 있다. 가정교사는 그런 아이에게 무어라 말을 건네며 아이의 모자를 솔로 털고 있다. 나폴레옹의 삼각모를 연상시키는 검은 모자는 제법 고급스러운 제품처럼 보인다. 어른의 물건처럼 보이는 모자에 비하면 아이가 지금까지 가지고 놀았을 법한 장난감들 - 카드와 배드민턴 라켓은 바닥에 아무렇게나 던져져 있다. 이 바닥에 놓인 장난감들은 아이가 천방지축으로 놀던 시절은 가고 마음을 잡고 공부를 해야 하는 시기가 왔음을 말해준다.


현관이 조금 열려 있어서 밖의 풍경이 살짝 보이기는 하지만 구체적으로 바깥에 무엇이 있는지는 잘 알 수 없다. 잘 보이지 않는 바깥 풍경처럼 아이가 처음 가게 된 학교라는 곳은 미지의 세계다. 가정교사는 차분하게 아이의 삼각 모자를 털어주면서 그런 아이를 격려하고 있다.


‘가정교사’에 담긴 삶의 진실

이쯤에서 그림을 보는 우리에게는 이런 궁금증이 떠오를 법하다. 왜 아이의 첫 등교를 준비해주는 여성이 엄마가 아니라 가정교사일까? ‘가정교사’의 배경과 등장인물들이 샤르댕의 집안 모습 그대로이기 때문일 것이다.


샤르댕은 서른여섯에 아내를 잃는 불행을 겪었다. 그는 마흔 여섯이 될 때까지 재혼하지 않고 십 년간 혼자 두 명의 아이를 키웠다. 아이를 돌보기 위해서 샤르댕은 중년 여성을 가정교사로 고용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그림 속의 두 인물은 샤르댕의 실제 아들과 그의 가정교사일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샤르댕의 그림은 18세기 초반, 변화하는 프랑스의 사회상을 보여준다. 그전까지 화가들은 성경이나 그리스 신화 속 장면들 같은 거창한 주제, 또는 왕족이나 귀족처럼 부유하고 권세 있는 인물들의 초상화 등을 주로 그렸다. 계몽주의 화가였던 샤르댕은 이런 당시의 경향에서 벗어나 자신의 집과 하녀들, 가정교사와 아이들을 그림에 담았다.


그가 활동하던 18세기 초반 프랑스에서는 파리의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계몽주의가 퍼져나가고 있었다. 시민들은 예전처럼 무조건적으로 귀족에게 복종하지 않았고, 부르주아라는 자신들의 신분에 자긍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학문과 여행을 통해 더 넓은 세계를 탐구하려 했다. 이런 변혁의 시기에 등장한 샤르댕의 그림은 큰 호응을 얻었다. 1737년 왕실의 후원으로 프랑스의 국전인 살롱전이 처음으로 열렸다. 이 1회 살롱전에 샤르댕의 그림은 일곱 점이나 전시되었다.

‘가정교사’는 단순히 처음 학교에 가는 아이의 모습을 떠나 보다 깊은 삶의 진실을 전해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가족이나 가정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 아이들은 자라서 집을 떠나고 새로운 가정을 이루며 부모에게서 떨어져 나간다. 많은 부모가 이 사실을 한사코 부인하려 든다. 실제로 현대에 들어서 점점 더 많은 부모가 다 큰 아이들, 성인이 되어 충분히 혼자 살아갈 수 있는 아이들을 계속 집에 머물게 한다.


샤르댕의 그림은 작품을 보는 부모들에게 무언의 가르침을 전해준다. 언제까지나 자신의 품에 있을 것 같던 아이가 집의 현관을 열고 낯선 세계로 혼자 걸어나가는 순간, ‘가정교사’는 단순히 처음 학교에 가는 아이가 아니라 성장해서 집을 떠나려 하는 소년을 담은 그림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림 속 가정교사는 흰색 모자와 앞치마를 입고 붉은 의자에 앉아 있다. 앞치마와 튼튼해 보이는 의자는 그녀가 바깥이 아니라 집 안에 소속되어 있는 사람임을 보여준다. 반면 검은 공단으로 만들어진 모자, 가정교사의 손에서 아이의 손으로 넘겨질 모자는 아이가 혼자 바깥으로 나갈 때가 되었음을 알리는 상징처럼 보인다. 지금까지 같은 곳에 속해 있던 두 사람의 세계는 이제 달라지려 한다. 앞으로 아이는 점점 집이 아니라 친구와 학교, 바깥의 세상에 소속되면서 어느 순간 완전히 집을 떠나게 될 것이다.


이 그림을 그리는 샤르댕의 마음은 결코 편하지만은 않았을 듯싶다. 어쩌면 이 그림을 보는 이들이 느끼는 심정을 샤르댕 본인이 그 누구보다 절실히 느끼고 있지 않았을까. 아이들은 언젠가는 커서 부모를 떠나며, 결국 집은 머무르기보다 떠나기 위해 존재하는 장소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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