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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위해서 과거를 덮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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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명 미래를 위해서 과거를 덮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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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는 역사도 있다.

📌오찬호(칼럼니스트)
사회가 상식적이어야 개인도 행복해진다고 믿는 사회학자. 제주에서 책을 읽고 쓰며 산다.


A는 아버지에게 많이 맞으며 자랐다. 어떤 합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엄연한 폭력이었지만 별수 없었다. 물리적인 힘도 상대가 되지 않았고, 체벌이 정당하다고 윽박지르는 어른에게 조목조목 반박하기에는 어렸다. 침묵에는 궤변이 돌아왔다. “이게, 다 너를 위한 거야”라는. 


세월이 흘렀다. 상처는 오롯이 피해자의 몫이었다. A는 사과받지 못했다. 아버지와 아들의 사이가 좋을 리가 있겠는가. 아버지는 명명백백히 자신에게 있는 원인을 인정하지 않았다. 아들이 ‘여전히 고통받고 있다’고 심정을 어렵게 내비치면 도리어 다그쳤다. “사내자식이 미래를 생각해야지, 아직도 지나간 일을 붙들고 끙끙거리냐!”

A는 결혼하면서 큰 결심을 했다. 자신의 문제로 인해 아내와 아이가 불필요한 감정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여겼다. 아버지에게 딱 하나만을 요구했다. 진정한 반성과 사과. 아버지는 받아들였다. A는 삼십 년 만에 그때의 체벌은 폭력이었음을, 자신은 피해자였음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좋은 관계는 오래가지 않았다. 반성을 한다는 건 추후에도 최소한 과거의 그 일만큼은 ‘다르게 해석’하지 않는다는 합의였는데, 아버지는 시간이 흐를수록 예전에 아들을 함부로 대했을 때의 가치관을 떳떳하게 말했다. 체벌은 필요하다, 맞을 놈들은 맞아야 한다 등의 이야기를 흘렸다. 심지어 자신이 강하게 키워서 아들이 잘 컸다면서 과거를 떳떳하게 포장했다. 식민사관(植民史觀)과 흡사한 식자(子)사관이었다. 맞아서가 아니라, 맞았음에도 아들은 바르게 컸지만, 아버지는 자신의 가해를 긍정했다. A는 따져 물었지만, 아버지는 “그때 다 사과했잖아. 또 하라고?”라면서 뻔뻔하게 되물었다. A는 생각했다. 합의는 깨졌다고. 다시 부자지간은 껄끄러워졌다.



통절한 반성과 사죄의 의미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그 집 역사가 그러한데 갈등이 없는 게 더 이상한 거다. 한국과 일본의 관계처럼 말이다. 깔끔하게 인정되지 않으니 일본 덕택에 한국의 근대화가 가능했다는 식의 논리가 끊임없이 튀어나온다. 과거가 정리되기엔 아직 멀고도 멀었다는 거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의 행보는 전광석화다. 대통령은 삼일절 기념사에서 한일관계가 개선되기 위해서는 한국인들이 일본을 바라보는 인식의 변화가 있어야 함을 강조했다. 
과거가 아닌 미래를 내다보자면서 말이다. 이후,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를 ‘한국 기업의 돈으로’ 단칼에 해결하는 해법을 제시했고 여러 논란이 일었다. 한쪽에서는 굴욕스러운 외교 참사라고 비판했고 한쪽에서는 죽창가 타령하지 말라면서 날카롭게 맞섰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이 자주 언급하는 게 있는데, 바로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1998년 10월 8일)이다. 21세기에는 새로운 한일관계가 필요하니 서로 협력하자는 내용이다. 총 11개 항 중 2항에는 ‘식민 통치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사죄’가 명기됐다. 이를 근거 삼아 ‘사과받았으니’ 시야를 넓게 보자는 식의 주장이 이어진다.

그런데 통절한 반성과 사죄가 무엇인가? 이는 잘못을 정말로 인정하고 용서를 구한다는 거지 사죄했으니 이제 과거에 대해서 언급하지 말라는 식으로 해석될 성질이 아니다. 하지만 일본은 그랬다. 특히 아베 총리는 박근혜 대통령과의 일본군 위안부 합의를 하면서(2015년), ‘불가역적 해결’이라는 표현을 넣고야 만다. ‘이걸로 끝이다, 더 이상 시비 걸지 말라!’고 가해자가 천명하니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사과하고 반성한 그 내용에 의문을 표하는 이들이 늘어난다. 식민 지배가 불법이야? 강제로 동원된 거야? 돈은 1960년대에 다 줬잖아! 그런데 뭘 자꾸 재판해? 등등의 말들 말이다. 그러니 문재인 정부는 과거의 합의를 백지화하고 일본은 왜 국가 간 약속을 뒤엎냐고 따진다.


어찌 양국 사이에 냉기가 흐르지 않겠는가. 괜히 가깝지만 먼 이웃 나라가 아니다. 관계가 좋을 때도 있겠지만, 무작정 좋은 상태가 유지될 수 없는 사이다. 때론 외교적·정치적으로 꽉 막힐 수도 있다. 우리가 과거를 다시 언급해서? 아니다. 그들이 과거를 부정할 때 말이다.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위한 속도와 강도에는 정부의 철학이 개입될 수밖에 없고, 그 정부는 민주주의적 선거를 통해 선출된 것이니 하나의 정답이 있다고 할 수 없다. 이 정부와 저 정부의 철학은 다를 것이고 같은 당 정치인들 사이에서도 의견은 갈릴 거다. 하지만 논의 과정마다 ‘과거에서 벗어나 미래를 향하자’는 식의 주장이 성경 말씀처럼 부유하는 건 동의할 수 없다. 빨리 잊어야 하는 과거도 있지만 모든 과거가 그런 건 아니다. 가난했던 유년 시절을 잊는 건 정신건강에 좋지만, 부모에게 짐승처럼 두들겨 맞았던 순간을 단칼에 잊는다고 상처가 무작정 봉합되지 않는다. 원인 제공자의 진정한 사과와 지속된 미안함을 확인해야만 피해자는 미래의 문을 열 수 있다.


1947~1954년 일어난 제주 4·3 사건을 보자. 하루아침에 죽임을 당했던 이들이 이제야 무죄판결을 받고 있다. 70여년간 끊임없이 과거를 붙들었던 사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1968년 2월에 발생한 퐁니·퐁넛 마을 학살 사건은 어떠한가. 민간인 70여 명이 베트남전에 참전한 한국군에 의해 죽임을 당했는데, 이를 한국 법원이 인정한 날이 2023년 2월 7일이다(이후 한국 정부 항소). 55년간 과거를 절대 잊지 않은 가족이 있었고 용기 낸 이들의 증언을 듣고 악착같이 취재한 언론과 진상 규명을 요구한 시민단체가 있었다. 잘못된 과거를 밝혀내고 사과할 사람이 누군지 정확히 세상에 알리는 것, 그게 바로 값진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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