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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공화국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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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명 부동산 공화국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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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왕 사건’ 이면의 욕망을 짚어보다.

📌오찬호(칼럼니스트)
사회가 상식적이어야 개인도 행복해진다고 믿는 사회학자. 제주에서 책을 읽고 쓰며 산다.


영화 <싱크홀>은 서울 한복판에 생긴 큰 구멍 아래로 빌라가 통째로 빠져버리는 이야기다. 제목이 내용인지라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예견되어 있었지만, 영화는 굳이 빌라의 미래를 암시하는 대화를 도입부에 삽입한다. 직장 상사 동원(김성균 분)의 내 집 마련 집들이에 초대받은 승현(이광수 분)은 축하만 해야 할 자리에서도 다그친다. 그 돈으로 아파트를 사야지, 빌라를 매매하는 건 바보 같은 짓이라고 말이다. 그 빌라, 결국 사달이 난다.

빌라 사는 사람이라면 짜증이 나지 않을 수가 없는 장면, 그 정도로 빌라는 동네북이 되었다. 설정이 아니라, 시대 징후가 그렇다. 누가 SNS에 ‘드디어 내 집 장만’이라는 소식을 알렸다고 하자. 그게 빌라라고 상상하는 사람은 없을 거다. 빌라 살면, 알아서 안 한다. 어디에 산다(live)는 걸 가지고 사람을 분류하고 평가하지 않는 게 상식이겠지만, 한국에선 빌라를 사는(buy) 건 상식적이지 않다고 물 흐르듯이 해석된다. 그래서 누구는 우쭐거리고, 누구는 위축된다.

언젠가부터 빌라는 아파트에 살지 못해서, 아파트로 들어갈 돈이 없어서 ‘머무르는’ 기착지로만 취급받는다. 모두가 같은 기준을 가졌다고 착각하는 이들은, 빌라 거주자에게 이러쿵저러쿵 부동산 투자의 원칙을 설교하기 바쁘다. 그러니 빌라 사는 당사자가 머리를 긁적거리며 ‘나중에 아파트 가야죠’라고 말을 덧붙인다.

일러스트 이새

빌라에 왜 거주하는지를 해명하는 것도 억울한데, 빌라 살다가 봉변마저 당한다. 집으로 날아온 이상한 통지문에는 집이 경매로 넘어갔고, 추후 금융권부터 변제되니 보증금을 받지 못할 수 있다는 친절하고 충격적인 설명이 적혀 있다. 집주인에게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는다. 등기부등본을 보면서 이 정도면 문제 될 거 없다면서 안심시켰던 공인중개소는 사라졌다.

세입자는 전 재산을 잃을 수도 있다는 걱정에 밤잠을 설친다. 하루하루 피가 마른다. 그런데 이런 사람이 여럿이다. 같은 동네에 수백, 수천 명이다. 1000채가 넘는 빌라를 보유한 집주인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소문만 무성하던 이른바 ‘빌라왕’의 등장이었다. 그 사람이 사망하니, 세입자는 발을 동동거린다. 이론적으론, 전세 보증금은 다시 돌려받는 것이기에 다른 곳에 사용되어선 안 되지만 한국에서 그런 경우는 드물다. 따지고 물을 사람조차 사라지니 세입자들은 불안하다.

국토교통부 장관이 직접 대책 마련을 설명하기에 이른다. 언론이 취재하니, 이런 빌라왕이 한두 명이 아니었다. 경찰이 수사하니, 배후세력이 있었다. 악당들은 부동산 컨설팅 회사를 차려놓고 공인중개사를 매수해 주변 시세를 조종하고 바지사장 역할의 집주인을 앞에 세워 ‘개인 간의 평범한 부동산 거래’인 것처럼 위장한다. 이러한 조직적인 사기행각에 누군가는 전 재산을 잃는다. 피해자들 중에는 생애사적 단계에서 빌라를 선택할 확률이 높은 젊은 세대와 신혼부부가 많다.

‘악인’ 한 명의 문제가 아닌 이유

사회생활 본격적으로 시작하려는 사람들 등쳐 먹는 나쁜 사람들의 범죄로 치부하면 그만이겠지만, 이 사건은 규모의 문제일 뿐 그 속성은 한국의 부동산 문화와 별로 다르지 않다. 나쁜 개인의 일탈 이전에 부동산 공화국의 부끄러운 민낯이 드러났음을 부정해선 안 된다. 빌라를 수백 채를 보유하는 게 가능한 이유는 ‘갭투자’ 때문이다.

프로세스는 간단하다. 2억짜리 집에 누가 1억7000만 원에 전세로 살고 있다. 이 집을 3000만 원에 사는 게 갭투자다. 세입자의 보증금은 다음 세입자의 돈으로 해결하면 그만이다. 이번 빌라왕 사건은 이 속성이 악랄해진 것이다. 조직적으로 시세를 조종해, 2억짜리 집을 2억 2000에 전세 계약을 유도한다. 그래서 오히려 집을 사는 사람이 돈을 ‘벌면서’ 집 한 채가 거래된다. 이른바 깡통전세다. 만약 갭투자가 만연해도, 깡통전세가 즐비해도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이는 괜찮은 것일까? 절대 아니다.

갭투자는 ‘반드시 집값이 올라야지만’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집값이 올라 집주인은 앉아서 차익만 챙기면 된다는 전제가 갭투자의 출발점이다. 이 전제는 집값이 오르지 않을 때 세입자에게 큰 문제가 닥친다는 결함도 있지만, 집값이 오를 때 발생하는 사회적 부작용이 더 무시무시하다. 자산 격차는 온갖 종류의 불평등을 야기하고, 이 불평등은 사람의 삶을 좌우한다. 집을 구하는 것이 공포가 되면 연애, 결혼, 출산이 망설여지고 성격은 날카로워진다. 삶을 긍정적으로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니, 갭투자는 어떤 이유로든 사회적으로 권장될 수 없다.

그러나 이 순간에도 포털 사이트 몇번만 검색하다 보면 연예인 아무개의 재테크 비법이라면서 갭투자가 친절하고 긍정적으로 소개된다. 몇 년 전에 20억에 구입한 건물을 60억에 팔았다는 기사는 차고 넘친다. 같은 방법으로 부자가 된 사람들의 인생 설교는 얼마나 많은가. 그런 방법으로 돈이 많은 사람이 될 수는 있지만, 부러움을 받는 수준을 넘어 현자처럼 활동한다면 어딘가 이상하다.

지금은 부동산으로 부자가 된 사람이 자기계발서의 저자가 되고 동기부여 강사가 된다. 열광하는 사람이 있기에 가능한 현상일 거다. 심지어 공중파 예능에도 ‘사부’랍시고 등장해 ‘1억으로 건물주 되는 방법’을 알려주는데 그게 여과되지 않는다. 그렇게 돈을 버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그게 사회적 귀감이 된다면 우리의 ‘사회’는 너무 가볍지 아니한가. 집이 없는 사람들의 목돈을 이용하는 갭투자를 ‘삶의 지혜’처럼 소개하는 세상에서, ‘갭투자를 이용한 집단 사기극’이 발생하는 건 어쩌면 당연했다.

사람은 누구나 주거의 욕망을 지닌다. 이것은 안락하게 거주하고 싶은 마음이지, 그 집을 ‘자가로’ 소유하겠다는 강박을 말하는 게 아니다. ‘미래에 반드시 집값이 오를 것으로 예상되는 자가 아파트’를 뜻하는 것도 아닐 거다. 하지만 한국에선 여러 부작용으로 이어지는 부동산 투기를 순수한 욕망, 어쩔 수 없는 본성으로 해석한다. 그래서 집값 올랐다고 사람이 으쓱해지고, 그런 사람 보면서 자책하는 것도 자연스럽다. 이 자연스러움이 어색해질 때, 갭투자도 당연해지지 않을 것이고 그로 인해 눈물 흘리는 사람도 줄어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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