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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구의 여름밤이 남긴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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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명 북구의 여름밤이 남긴 기억
상품요약정보 문화 인사이트
‘다리 위의 소녀들’을 통해 만나는 뭉크의 숨겨진 이야기.

📌전원경(세종사이버대 교양학부 교수)
예술작품의 참된 의미와 가치를 알려주는 글을 쓰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는 예술 전문 작가


3년 동안 세계를 암울하게 만들었던 팬데믹의 그늘이 물러가고 드디어 여름휴가의 계절이 다가왔다. 여름이 오면 언젠가 떠났던, 잊을 수 없는 휴가에 대한 기억도 함께 떠오른다.

주말을 틈타 친구들과 훌쩍 떠난 제주도 여행을 떠올리는 사람도, 몇 년 동안 모은 저축을 털어 큰맘 먹고 결행한 유럽 여행을 잊지 못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어찌 보면 여행을 떠나는 심리는 이성적으로는 잘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우리는 큰돈과 시간을 들여 낯선 곳으로 가고, 그 낯선 곳에서 집에 두고 온 안락함과 편안함을 찾으려 한다. 

편안한 집을 두고 굳이 먼 곳에서 새로운 안락함을 찾는 이유가 도대체 무어란 말인가? 아마도 그 대답은 ‘낯선 곳이 주는 생생한 감정과 느낌을 얻기 위해’일 것이다. 처음 가보는 장소, 이해할 수 없는 언어가 사용되는 이국의 거리에서 맞닥뜨리는 감정들은 금방 간 칼날처럼 예리하게 빛나며 반짝거린다. 이 순간의 감정과 느낌을 통해 익숙한 일상에 지쳐 있던 우리의 머릿속은 말끔히 비워지고 지쳐 있던 몸은 새롭게 충전된다. 낯섦이 주는 매혹과 두려움, 여행의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휴가철마다 많은 사람이 적잖은 경제적 지출, 고생스러운 여정을 마다하지 않은 채 비행기나 기차에 몸을 싣는 이유는 여행의 매력이 그만큼 크다는 뜻이기도 하다.


노르웨이 화가 에드바르 뭉크(Edvard Munch, 1863~1944)가 그린 ‘다리 위의 소녀들’ 역시 지금 그런 순간, 휴가를 통해 몸과 마음이 재충전되는 신선한 순간을 맞고 있는지도 모른다. 뭉크 하면 우리는 흔히 ‘절규’라는 그림, 유령 같은 인상의 남자가 갑자기 맞닥뜨린 공포에 소스라치게 놀라는 그림을 연상하곤 한다. 이 그림의 어둡고 불안한 인상이 너무도 강렬하기 때문에 뭉크에 대해서는 으레 우울한 그림을 그린 화가라는 느낌이 앞선다. 하지만 뭉크의 모든 그림이 그처럼 어두운 장면만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리 위의 소녀들’은 ‘절규’처럼 노르웨이의 저녁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그 분위기는 천양지차로 다르다.


푸른 밤, 백야의 여름 저녁

그림이 담고 있는 시간은 저녁에서 밤으로 건너가는 무렵인 듯하다. 세 명의 소녀가 다리를 건너다 나란히 멈추어 서서 다리 밑을 내려다본다. 수면 위로 떠오른 커다란 물고기를 보고 호기심에 멈춰 섰거나, 아니면 멀리 지나가는 배를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소녀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흰색, 빨강, 연한 녹색의 드레스를 입었다. 편안한 차림과 모자로 보아 그녀들은 휴가 여행을 떠나온 참일 것이다. 소녀들의 밝은색 드레스는 녹색과 황토색이 주조를 이룬 그림 사이에서 예쁜 펜던트처럼 도드라진다.


그림의 배경이 된 북유럽의 여름밤은 창백한 기운으로 가득하다. 하늘 저편에서 노란 달이 떠오르고 있지만 아직 완전한 어둠은 내리지 않았다. 낮과 같은 밤, ‘백야’의 밤이다. 커다란 침엽수와 하얀 집들의 전경이 흐르는 물 위에 일렁거리며 비친다. 소녀들이 서 있는 다리와 멀찍이 있는 흰색 담 밑의 황토빛 땅 역시 흘러가는 물결처럼 부드럽게 채색되어 있다. 흐릿한 소녀들의 뒷모습과 맞물린 이 장면은 꿈속 풍경처럼 신비로운 인상을 준다.

뭉크는 ‘다리 위의 소녀들’을 노르웨이의 오스고르드스트란에서 그렸다. 1890년대 말, 뭉크는 오슬로 남쪽에 있는 이 휴양지에 자신의 별장 겸 스튜디오를 마련했다. 이후 화가는 여름마다 별장을 방문해 열두 점의 ‘다리 위의 소녀들’을 그렸다. 소녀들의 포즈와 그림의 시선은 해마다 조금씩 달라진다.
어느 해의 그림에는 소녀들이 다 커서 여인이 되어 있기도 하고, 또 다른 해에는 멀찍이서 소녀들을 바라보는 남자가 등장한다. 하지만 연작의 배경인 커다란 침엽수와 세 채의 하얀 집, 그리고 난간이 있는 다리는 늘 똑같다. 뭉크가 자신의 별장 스튜디오에서 내다보이는 오스고르드스트란의 풍경을 그렸기 때문이다.

다리 위의 소녀들. 에드바르 뭉크, 1901년, 캔버스에 유채, 136 x 125 c m, 노르웨이 국립미술관, 오슬로

여기 소개한 ‘다리 위의 소녀들’은 1901년 여름에 그린 작품이다. 뭉크는 노르웨이와 독일에서 화가로 큰 성공을 거두었으나 이런 성공이 뭉크 개인의 삶을 행복하게 해주지는 못했던 듯싶다. 그는 어머니와 누나의 잇따른 죽음, 학대에 가까운 아버지의 무관심 속에서 고통스러운 유년기를 보냈고 어른이 되어서는 알코올 중독, 우울증, 공황장애와 싸워야 했다.

뭉크는 “질병, 광기, 죽음은 평생 날 따라다닌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성과의 만남 역시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툴라 라르센이라는 여성과 30대 중반에 약혼했지만, 뭉크는 결혼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지 못하고 계속 결혼을 미루었다. 두 사람은 취중에 큰 다툼을 벌였고 그 와중에 둘 중 한 사람이 우발적으로 쏜 권총의 총알이 뭉크의 왼손에 맞았다. 약혼은 당연히 파국으로 끝났다. 만년의 15년 동안 뭉크는 집 정원에 사나운 개를 풀어놓아 누구도 집 주위에 오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그러나 뭉크에게도 오직 암담한 어둠만 가득했던 것은 아니다. 오스고르드스트란의 여름 풍경이나 달이 떠오르는 바다를 그린 그림들은 맑고 고요하며 신비스러운 기운으로 가득하다. 십 년 이상 몰두한 ‘다리 위의 소녀들’ 연작도 마찬가지다. 북유럽의 고요한 자연 속으로 떠난 휴가는 고독하고 불우한 화가에게 포근한 위로가 되어주었다.


철학자 알랭 드 보통의 말처럼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노여움과 분노에 차 있을 때, 자연은 사람이 주지 못하는 위로를 준다. 올여름에도 많은 사람이 더위와 교통체증과 피곤을 감수하며 휴가를 떠날 것이다. 푸른 바다나 계곡이 줄 수 있는 무한한 안도감과 위안이 우리로 하여금 여름마다 가방을 꾸리게 하는 가장 큰 이유일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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