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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골 물’ 맛보실래요?

기본 정보
상품명 ‘해골 물’ 맛보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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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매치(miss match)의 미학을 보여주는 생수 ‘리퀴드데스’.

📌김동훈(서양고전학자)
인문학의 서사를 담아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이상가



2021년 마블 NFTs와 나란히 신생 브랜드 리퀴드데스(Liquid Death)가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브랜드로 선정됐다. ‘데스(죽음)’라는 이름 자체가 파격적이기도 하지만 제품 중앙에 썰렁하게 그려진 ‘해골’은 왠지 B급스럽다. 뭐 그럭저럭 괜찮은데 솔직히 남에게 대놓고 권하기는 마뜩잖다. 이 ‘해골 깡통’을 아이들이 쥐고 흔드는 광고를 보니 어김없는 캔맥주다. 하지만 타 브랜드보다 2배 높은 고함량 전해질 생수, 알고 보니 알프스 깊은 산속에서 뽑아 올린 청정 캔 생수다.


‘해골 물’은 저 먼 7세기 신라의 원효도 마신 적이 있다. 일명 ‘해골바가지 물’, 꿀맛 같은 물을 마신 뒤 그 마음이 변했는지 느닷없이 유학길을 때려치우고 요석공주와 결혼했다. 게다가 승복을 벗고 광대와 걸인의 ‘바가지’를 집어 들고 몸을 흔들며 노래와 춤을 췄다.


그 최애 바가지를 ‘무애(無碍)’라 이름 짓고 밑바닥 사람들에게 들이밀며 ‘장애 없음’이란 묘한 말을 했다. 민초들의 마음에서 장애 의식을 싹 쓸어버린 그 ‘물바가지’도 알고 보면 ‘해골 물’의 위력이었다.


그런데 기술이 발달한 오늘날에도 변함없이 사람들은 ‘해골 물’에 끌린다. 도대체 이 끌림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 정체는 일종의 미스매치, 즉 부조화의 아름다움에 있다, 사람들은 고대 말 서로마를 침략했던 고트족(Goth)은 물론 중세 말 이질적 형태로 융합된 고딕건축에도 매혹되었다. 르네상스 말 바니타스화의 구석에 박힌 해골에 눈길이 갔는가 하면 근대 말 유럽과 미국의 프랑켄슈타인식 고딕소설에 귀를 기울였다. 전혀 어울리지 않을 듯한 해골과 물의 조합이 빚어내는 어색하고 낯설지만 엄숙한 듯 이상야릇한 감정, 그것이 미스매치가 주는 숭고함이다.


돈만 밝히는 기업을 찾아라

최근 아무리 환경 운운해도 비용 절감 상 어쩔 수 없이(?) 페트병을 선택한 기업들이 타격을 입고 있다. 뭐, 리퀴드데스 덕분이라고 굳이 말하고 싶지는 않다. 대신 돈만 밝히는 기업들을 귀신같이 찾아내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있는 소비자가 있다는 사실 정도만 언급하자. 리퀴드데스가 ‘플라스틱에게 죽음을’이라는 사망선고를 외친 이후로도 비슷한 상황이 전개됐다.


브랜드명의 ‘데스’가 데스 투 플라스틱(Death to Plastic)의 그 ‘데스’임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다. 소비자는 재활용이 어려워 대부분 쓰레기 매립지나 심지어 바다에 버려지는 플라스틱 대신 재활용률 80%의 알루미늄만 사용하는 이 기업에 열광한다. 더구나 수익의 10%를 환경단체에 기부까지 하는 외골수 환경운동 전사의 등장에 박수를 보냈다. 리퀴드데스의 인스타그램 팔로어만 156만 명, 인기 있는 미국 생수 브랜드의 팔로어를 모두 합친 것보다 더 많다.


창업자 마이크 세사리오는 ‘곧은 자’를 뜻하는 ‘스트레이트 에지(Straight Edge, sXe)’의 추종자다. 미국 록 문화의 한 조류인 스트레이트 에지는 하드코어 펑크에서 갈라져 나왔다. 하드코어 펑크 밴드들은 공연 도중 악기를 때려 부수고 괴성을 지르거나 울부짖기를 예사로이 한다. 게다가 힘이 남아도는지 각종 탈선을 즐겼다. 이러한 경향에 반대하며 등장한 스트레이트 에지는 알코올, 담배, 비처방 약물 등을 하지 않는 건전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을 강조한다.


일러스트 이새

세사리오가 캔 생수의 브랜드명을 ‘리퀴드데스’로 정한 것도 스트레이트 에지의 영향 때문이다.
세사리오는 어느 날 공연장에 갔다가 가수들이 스폰서인 에너지드링크 회사의 눈치를 보느라 그 회사의 빈 캔에 물을 몰래 넣어 마시는 광경을 보았다. 그때 불현듯 떠오른 아이디어 하나로 창업을 결심했다. 로커들이 무대에서 캔으로 힙하게 물을 마시는 비전이었다.

로커들의 스폰서 회사들, 그리고 크리스천 비율이 70%나 되는 미국인의 해골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다. 상처를 받았을 세사리오의 응수는 ‘곧은 자’처럼 뜻밖에 날카로웠다. ‘리퀴드데스’라는 헤비메탈 밴드를 창단해 음원을 발매했다. 더군다나 SNS에 올라온 ‘해골 깡통’에 대한 악플들을 보란 듯이 음원의 모든 가사로 삼았다. 이 가사에는 지금도 찬반 댓글이 달리는 중이다.


그렇다 해도 리퀴드데스의 해골은 정말 매력적이다. 추했던 해골에 마음이 끌린다면 분명 마음에 어떤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실제의 해골은 추하다 해도 깡통이나 바니타스화의 해골은 최소한 유쾌하다. 이 마음의 변화는 어떻게 생겼을까? 해골을 꺼려하던 마음의 빗장이 한순간 사라졌기 때문이다.


해골을 ‘악마의 것’으로 치부하거나 추하게 여긴다면 바니타스화는 도저히 유쾌할 수 없다. 해골을 악으로 보는 고정관념이 사라져야 결국 죽음으로 끝나는 헛된 인생 앞에서 멋지게 살 궁리를 하게 된다. 서양철학에서는 이것을 숭고함이라 했다. 불쾌함을 유쾌함으로 바꾸어 아름다움을 느끼는 이 숭고함에 이르려면 장애물을 헐어야 한다.


세사리오가 스폰서를 의식해 물을 숨겨서 마시던 위선에서 벗어나게 하려다 환경 문제를 전면에 부각시킨 브랜드명을 탄생시켰다. 원효가 해골 물을 마시고 추함에 대한 마음의 고정관념을 버리자 가난과 무지몽매로 서러운 인생들이 눈에 확 들어왔다.


우리는 무엇에 끌리는가? 아직 끌리는 대상이 없다 해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해골 깡통이 됐든 해골바가지가 됐든 바가지를 준비하면 그만이다. 리퀴드데스가 로커의 해골 깡통에 당당하게 물을 채웠듯이 장애를 주었던 추한 바가지에 ‘무애’, 즉 그 장애 의식을 없애면 각종 차별과 금지, 통념이 사라져 곧 최애 바가지가 될 것이다.


리퀴드데스는 유혹한다. “척하지 마! 그냥 잠자코 끌리는 것에 충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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