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애인을 소개하는 <SRT 매거진>
윤기관
매주 만나는 <SRT 매거진>은 내게 무시로 새 애인을 소개해 준다. 이번 애인은 포항이다. SRT 동해선을 중매로 만난 애인, 포항은 이미 우리 부부에게 남다른 추억이 깃든 곳이다.
올해 8월 초 어느 모임에서 주관하는 독도 지키기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포항역에 내렸다. 포항의 랜드 마크는 포철이다. 요즘은 포스코라고 부른다. ‘앗, 포철!’ 순간 나는 44년 전으로 돌아간다.
아내와 부부가 되기로 한 나이는 28살, 25살이었다. 나는 당시 S물산 철강사업본부에서 일했다. 포스코 제품을 수출 대행하는 부서이었다. 자연스레 포항 포스코로 자주 출장 갔다.
매일 깨가 쏟아지던 신혼 9월 어느 날, 포항제철 출장 가방에 색시도 자기 옷을 챙겼다. 오늘을 놓칠 수 없는 날이니 같이 가겠다는 것이다. 회사 업무와 남편 업무 두 가지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왔다. 얼마 후 색시 얼굴이 함박꽃이다. 곧 아빠가 된단다. 포철 출장은 대성공이었다. 첫애는 Made in Pohang이다.
아내가 딸 본향에 한번 가자고 조른다. 포항은 너무 멀어서 접근하기가 어렵다고 둘러댔다. 하지만 멀다는 핑계는 더 이상 변명이 되지 못한다. <SRT 동해선>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수서역에서 오전 6시 30분에 출발하는 SRT 391 열차에 올랐다. 아내는 기차 창밖을 내다보며 사색에 잠긴다. 면사포 벗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따라나섰던 포항 출장길을 소환하나 보다. 포항에 정시 도착했다. 오전 근무 시작이다.
“여보, 딸아이 본향 찾아볼까?” 피식 웃는다. 아내는 부끄러운 듯 눈꺼풀을 아래로 내린다. 포항역에서 우리를 태운 9000번 버스는 구룡포를 지나 영일만 호랑이 꼬리 속으로 들어간다. 호미곶이다. 새천년 광장 구석에 커다란 가마솥이 떡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정월 초하루 해맞이 손님 2만 명분을 끓일 수 있는 가마솥이다.
바닷가로 자박자박 내려가니 바닷물 속에서 싱크로나이즈 하는 손을 만난다. 오른손이다. 육지에 올라 있는 손은 왼손이다. 화합하고 화해하고 함께 사는 사회를 만들어가자는 상생의 두 손이다.
데크 길 한가운데 자리 잡은 포항 문어도 바닷물이 그리운지 꼼지락댄다. 똬리 튼 문어 사이로 보이는 동해 바다 윤슬이 눈부시다. 등대 박물관에 들어가니 초등학생들만큼 재미가 쏠쏠하다. 울릉도 가는 크루즈 항구도 보인다. 수서에서 출발하는 KTX 동해선은 포항을 거쳐 울릉도, 독도까지 데려다준다.
포항 가는 길이 이렇게 가까워졌다. SRT 동해선은 하루 두 번 왕래한다. 당일치기도 충분하다. 호미곶 야경을 보려면 1박 2일로 충분하다.
SRT는 9월 1일부터 경전선, 동해선, 전라선을 새로 운행하기 시작했다. 이 새 노선들은 진주나 여수 엑스포에서 또 어떤 애인을 소개해 줄까? 이러다가 영원한 애인으로부터 눈총받는 건 아닐까. 다음에 새 애인을 만나러 갈 때는 아내와 함께 가야지. 백년해로하겠다고 약속했으니 말이다. 아내와 황혼길을 함께 걷게 해준 <SRT 매거진>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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