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하니까, 잘하고 싶었어요

수백 번 생각을 거듭할 정도로 신중하지만, 목표를 위해 과감히 직장을 그만둘 정도로 강단 있는 사람.
나뭇결처럼 정직하고 단단한, 자신을 똑 닮은 카누를 만드는 옥병철 대표의 옥천라이프.

 

 

  • 나무

흔히 ‘직장인 사춘기’라고 하나요? 전 그게 좀 심하게 왔어 요. 대전에서 웹디자이너로 한창 일할 때였는데, 나름 롤모델로 삼고 있던 분조차 저와 비슷한 고민을 하더군요.
그럴 바엔 아예 다른 일을 해볼까 싶었고, 그때 원목가구가 눈에 들어왔어요. 나무로 만든 것들을 좋아하기도 했고, 남자들은 장비를 써서 뭔가를 직접 만들고픈 로망이 있잖아요(웃음). 바로 고향인 경남 거제로 내려갔죠.

선박설계 일을 하면서 열심히 돈을 모았어요. 수중에 현금으로 7000만 원정도 모였을 때 회사를 그만두고 주중에는 짜맞춤 가구를, 주말에는 목조 선박을 배웠죠. 목조선박은 공방 앞에 카누를 딱 세워두면 멋있을 것 같아서 홍보용으로 배운 건데(웃음)…. 하다 보니 푹 빠져서 주객이 전도됐네요.

지금은 카누나 카약, 패들을 주문제작 위주로 만듭니다. 얼마 전부터 자투리 목재를 활용해 버터나이프나 쿡사(kuksa·자작나무로 만든 핀란드 전통 컵) 등 캠핑용 식기를 만들고 있어요. 올해 목선반(木旋盤)과 옻칠을 따로 배웠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하. 옥천은 2014년에 왔어요. 어디에 서도 찾아오실 수 있게 중간 위치에 공방을 차리고 싶었는데 대전은 너무 비쌌고, 옥천은 대전과 멀지 않으면서 대청호도 있고 금강도 가깝거든요.

거제랑 옥천이요? 많이 다르긴 한데 큰 불편은 없어요. 계속 타지에서 생활했고, 여행도 혼자 곧잘 다녔고. 내가 일을 저질렀으니, 이걸 우선 해결해야 겠다는 생각이 우선이었고(웃음)…. 근데 2015년 공방을 다 짓고 나니까 갑자기 너무 외로운 거예요. 지금은 캠핑이나 카누 소모임 등에 참여하면서 간간이 사람들을 만나고 있어요. 반려견 마루도 그때 만났답니다.

 

  • 카누

카누(canoe)와 카약(kayak)은 둘 다 모터가 없는 무동력 배예요. 가장 큰 차이점은 갑판에 빈 공간이 있느냐 없느냐겠네요. 카누는 앞뒤가 비어서 안에 짐을 실을 수 있고, 카약은 바다에서 주로 타다 보니 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허리만 넣을 수 있게 막혀 있어요. 그리고 따로 ‘카약 스커트’를 두르기도 합니다. 저는 디자인까지 하진 않고, 제가 좋아하는 카누 디자이너의 도면을 사서 만드는 편이에요. 도면을 따라 몰드를 만들고, 적삼목을 얇은 띠 형태로 가공한 시더스트립(cedar strip)을 몰드에 맞춰 한 층씩 쌓아올려 요. 그렇게 배 형태가 어느 정도 잡히면 파이버글라스(fiber glass)와 에폭시를 표면에 발라 마무리합니다.

작업 중간 기계와 손, 스크래퍼를 이용해 샌딩(sanding)을 해주는데, 분량도 많고 가장 고된 작업입니다. 손목이 나갈 것 같아요(웃음). 개인적으로 스테이플러 자국을 싫어해서 시더스트립을 일일이 클램프(clamp·목 공용 고정기)로 고정해서 형태를 잡거든요. 2~3일이면 끝날 작업에 보름을 투자 하는 셈이죠. 재료도 가능한 한 고급을 고집하고요. 그렇게 카누 하나를 제작하기까지 한 달~한 달 반 정도 걸립니다. 저는 카누가 정말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만큼 ‘잘’ 만들고 싶어요. 중간에 어떤 과정을 생략하기도 싫고요.

하지만 카누시장이 거의 전무한, 손으로 만든 물건의 가치를 잘 알아주지 않는 국내 상황에서 300 만~400만 원대의 제 카누는 받아들이기 힘들지도 모르죠. 해외 디자이너가 직접 제작해서 판매하는 카누가 1500만 원 정도임에도 불구하고요. 금전적인 부분만 빼면 스트레스는 전혀 없어요(웃음). 선례가 없으니 신경 쓸 일도 없고! 1년에 몇 척못 파는 상황이 올 수도 있지만, 누군가 알아봐주시면 좋겠습니다.

 

  • 펜탁스 K-5

사진 저작권 문제가 귀찮아서 ‘내가 직접 찍자’고 시작했던 취미가 사진인데요. 펜탁스를 계속 써왔어 요. 풍경을 찍으면 원색이 아주 생생하게 담기거든요. 그런데 최근까지 아껴 쓰던 펜탁스 K-5가 지금 수리 중이에요. 렌즈는 몽땅 사망했고요. 얼마 전 강원도 영월 동강에 캠핑 갔다가 카누 타면서 물에 풍덩 빠뜨렸지 뭡니까. 어라연(魚羅淵) 지나서 ‘된꼬까리’라고 물살이 거친 여울이 나오는데, 신나서 가다가 돌을 못 보고 전복하고 말았죠.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무슨 자신 감이었는지 하필 그날만 방수백에 안 넣어놔서…. 알고 보니 거기가 옛날부터 뗏목이 많이 뒤집어졌던 곳이래요. 하도 고꾸라져서 된꼬까리가 됐던 거죠.

불미스러운(?) 사건이 있긴 했지만, 가을은 카누 타기 가장 좋은 계절입니다. 백패킹이나 캠핑을 더 색다르게 즐길 수 있기 때문이죠. 무게가 보통 20kg 중반이라 남자는 혼자서도 충분히 들 수 있어요. 혼자서 놀 땐 호수처럼 카누타고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곳에 가고, 보통은 여럿이 차 2대를 끌고 강에 가죠.

도착지점에 차 한 대를 놓고, 나머지 차에 캠핑장비랑 짐을 싣고 출발점으로 갑니다. 그리고 카누를 타고 내려오는 거예요. 정말 매력 있어요. 밖에서 보는 풍경과 카누에서 보는 풍경이 180도 다르거든요. 허리선으로 수면이 지나가는 느낌, 그 스릴. 패들링은 연습이 필요하겠지만, 초심자용 카누나 카약을 타면 넘어질 일이 없답니다. 지금까진 ‘만들기’만 했으니까, 앞으로는 카누의 매력을 많이 알리고 싶어요.
사람들이 카누를 직접 만들어서 타는 것도 배우고 수리도 하고 보관도 하는 곳. 이게 ‘라온보트’의 최종 목표겠죠.

 

*라온보트

거제 출신 보트빌더, 옥병철 대표가 대전·대구·원주 등을 거쳐 정착한 옥천의 고급 우든보트 공방. 나무와 클래 식한 디자인이 어우러져 세월 속에서 가치를 더해가는 카누를 고집한다.

단짝이자 가족인 삽살개 ‘마루’가 라온보트의 든든한 파수꾼.

|충북 옥천군 금강로 64|010-3818-0831|zzookumi@naver.com|

이현화 사진 임익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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