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작가 최갑수의 미식 여행

여행작가로 일하며 처음에는 풍경을 쫓아 다녔다. 커다란 카메라를 들고 사진 한 장을 건지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먹는 시간이 아까워 슈퍼마켓에서 산 빵과 우유로 끼니를 때우며 차를 몰았다. 그깟 점심 먹을 시간이면 60km를 더 갈 수 있다면서!

하지만 이젠 그러지 않는다. 여행이란 것이 ‘먹고 노는 일’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자신을 찾는 것도, 신기한 경험을 하는 것도, 숨이 멎을 듯한 아름다운 풍경 앞에 서는 것도 좋지만 여행은 일단 맛있는 것부터 먹어야 한다.

 

  

최갑수는 20년째 여행작가로 활동하며 글을 쓰고 사진을 찍는다. <당신에게, 여행>, <우리는 사랑 아니면 여행이겠지> 등의 책을 집필했고, 여행을 가지 않을땐 시를 쓰고 음악을 듣고 여행을 궁리한다.

 

인생 커피를 맛보다, 에티오피아 하레르

에스프레소를 하루에 대여섯 잔씩 마신다. 취재를 떠나며 모카 포트와 휴대용 에스프레소 기계를 가져갈 정도로 커피는 삶의 일부다. 어떤 커피가 제일 맛있었느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주저 없이 에티오피아에서 마신 커피라고 대답하겠다. 얼마 전 한 달 사이에 에티오피아를 두 번이나 여행했다. 일정 중커피를 가장 먼저 ‘발견’한 카파(현재 이름은 봉가)에 가게 되었는데, 그곳 노천카페(그래봐야 천막치고 목욕탕 의자에 쭈그리고 앉아 마시는 노점 수준이다)에서 마신 커피는 정말 최고였다. 첫 모금을 입에 대는 순간 ‘와, 정말 신선하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형광등처럼 반짝였다.

다음 일정은 하레르라는 도시였다. 우리가 고급 커피로 알고 있는 ‘하레르’가 나는 곳이다. 거기서 만난 가이드는 말했다.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커피가 있지. 하레르와 그 외지.” 그가 안내한 시장에는 좌판을 펴고 커피를 파는 할머니들로 가득했다. 한 할머니에게 커피 5달러어치를 달라고 했더니 갓 딴 하레르를 통조림 깡통으로 비닐 봉지에 가득 퍼담아 주었다. 과연 어떤 맛일까. 음, 이렇게밖에 말 못하겠다. 가이드 말이 맞았다.

 

처음 맛보는 남미 스타일 음식, 에콰도르

적도 가까이 자리한 에콰도르를 미식 여행지로 소개한다? 남미 음식 하면 바로 떠오르는 세계적인 미식의 도시 페루 리마도 있지만 굳이 에콰도르를 끄집어낸 건 에콰도르 음식을 먹어본 사람이 거의 없다는 이유도 있다. 약간 과장해도 아무도 모를 테니까. 에콰도르 음식은 인접한 칠레, 페루와 비슷비슷하지만 또 다르다.

가장 맛있게 먹은 음식이 메누도(Menudo)라는 일종의 내장탕인데, 돼지의 허파와 간, 내장 등을 잘 손질한 다음 푹 삶아 감자를 넣고 끓여낸다. 에콰도르 서민들이 즐겨 먹는 음식으로 들깻가루만 듬뿍 뿌리면 영락없는 우리네 순대국밥이라 정감이 간다. 물론 고급 레스토랑에서 에콰도르 스테이크를 먹을 기회도 있었다.

그런데 나이프도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고기는 질겼고, TV에도 자주 나온다던 유명 셰프는 초콜릿 소스를 잔뜩 뿌려놓았다. 세상에나 초콜릿 소스라니! 아이러니한 건 나를 제외하고 다들 맛있게 먹더라는 것. 역시 음식과 입맛은 지역적이고 개인적인 취향인 모양. 진정한 미식은 내 입에 맛있는 음식을 먹는 일인 것이다.

 

세계 미식의 떠오르는 중심, 호주 멜버른

1800년대 중반 골드러시 시대에 유럽, 미국, 아시아 등 여러 나라 에서 온 사람들이 함께 일군 도시. 음식문화 역시 다양한 나라의 맛과 특징이 섞여 있다. 가령, 한 테이블 위에 스테이크와 피자, 세비체, 스시, 만두, 비빔밥 등이 나란히 오르는 식이다. 장점을 살리고 단점은 버려 원조보다 맛있는 레시피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마르게리타 피자로 이탈리아 팀의 콧대를 납작하게 만든 레스토랑 그라디(Gradi)가 대표적이다. 2014년 세계피자대회에서 우승한 조니 디 프란체스코가 운영하는 피자집으로 테이블마다 ‘월드 베스트 피자’라고 쓰인 메뉴판이 위풍당당하게 놓여 있다. 갓 구운 마르게리타 피자와 호주 쉬라즈 와인의 조합은 정말이지 최고! 우아한 아가씨와 동네 건달도 멋진 커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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