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의 끄트머리에 서다_한성필

사진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빛과의 싸움이다.
달리 말하면 그것은 기다림이다.
기다림 끝의 결정적 순간이든, 세상의 빛을 렌즈로 끌어모아 이야기를 완성하든.

 

낮도 밤도 아닌, 누군가는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 부르는 해 질 녘, 푸른빛이 보랏빛으로 물들다 이내 어두워지는 시간에 조용히 셔터를 누르고 기다린다. 한성필은 가림막이 설치되어 실제 내부를 볼 수 없는 세계 곳곳의 건물을 대상으로 사진 연작 <파사드 프로젝트>를 이끌어왔다. 그의 사진은 현실인지 가상인지, 보이는 것인지 보이지 않는 것인지 그 미묘한 경계를 파고들어 사람들의 궁금증을 유발한다. 첫 시작은 2004년 겨울, 보수공사가 한창 이던 영국 런던의 세인트 폴 대성당이었다. 우아한 중세 시대 르네상스 양식의 건축물과 심플한 성당 도면 가림막의 겹침, 그것은 입체와 평면,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드는 독특한 피사체로 작가를 매료했고, 가림막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가 카메라를 들게 만들었다. 단순히 사진을 찍던 작업은 변화를 거듭한다. 가림막에 이어 거리의 낡은 벽화도 소재가 되고, 작가의 상상력을 동원한 대형 가림막도 직접 설치하기에 이른다. 어디까지가 건물이고 어디까지가 가림막일까.

무심코 스치면 보고도 보지 않은 것이, 보지 않고도 본 것이 되는 아이러니. 한성필은 스스로 유와 무의 경계, 그 끄트머리에 서 있다. 사실 ‘실제와 허상’은 오랫동안 그가 관심을 가져온 주제다. 이미 <My Sea> 연작을 통해 현재의 바다에 어린 시절 처음 마주한 바다를 투영했고, <Blue Jungle> 연작에서는 상상 속 푸른 숲과 검게 그을린 건조하고 척박한 땅을, <Ground Cloud> 연작에서는 아름다운 프랑스의 상파뉴와 원자력발전소의 구름을 대비했다. 또한 최근 몇 년간은 북극과 남극, 알프스, 아이슬란드 등을 무대로 광활한 대자연과 그 이면에 숨어 있는 이야기를 끄집어냈다. 사진은 누구나 찍는다. 단사진에 담는 이야기가 다를 뿐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자연과 환경, 인간을 주제로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역설하는 작가. 그래서 한성필의 작품은 오래, 그리고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한다.

 

1999년 중앙대 예술대학 사진학과를 졸업 하고, 2004년 런던 킹스턴 대학에서 큐레이팅 컨템포러리 디자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아라리오갤러리, 한미사진미술관, 일우 스페이스, 아트스페이스 벤, 블랑카베를린 갤러리, 휴스턴 미술관 등 전 세계를 무대로 다수의 개인전과 그룹전, 비엔날레 등에 참여했다. 북극과 남극, 알프스, 아이슬란드, 파타고니아 등을 찾아다니며 자연과 환경에 대한 사진 작업도 진행 중이다.

Ground Cloud in Seine 031 Chromogenic Print, 122 × 163cm, 2005

 

My Sea 043 Chromogenic Print, 110 × 90cm, 2005

 

Janus 2 Chromogenic Print, 178 × 230cm, 2008

 

Harmony in Havana Chromogenic Print, 178 × 300cm, 2015

 

Melting Glaciers Chromogenic Print, 180 × 150cm, 2014

 

 

Weigh of Time 10 Chromogenic Print, 300 × 150cm, 2016

 

 

 

1990년대 초부터 25년간 형성되어 온 지구의 문명을 조망하는 <문명 : 지금 우리가 사는 방법> 전시회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펼쳐진다. 우리가 어디에서 어떻게 사는지, 어떻게 일하고 노는지, 어떻게 협력하고 경쟁하는지 등 우리 문명의 다채로운 모습을 각자의 시각으로 담은 사진전으로 한성필, 정연두, 왕칭송, 칸디다 회퍼, 토마스 슈트루스, 올리보 바르비에리, 에드워드 버틴스키 등 32개국 135명 작가가 촬영한 300여 점이 소개된다.

|2018년 10월 18일~2019년 2월 17일(월요일 휴관)|2000원|경기 과천시 광명로 313|02-2188-6000|www.mmca.go.kr|

 

김정원 사진 손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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