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 꽂힌 일상 여행자

처음과 끝을 내 손으로, 근본 있는 삶을 꿈꾸며 충남 논산에 귀농한지 6년 째인 ‘꽃비원’ 오남도·정광하 부부. 파란 하늘에 떠 있는 구름에서, 비온 뒤 웃자란 이름 모를 풀에서 즐거움을 찾는 그들은 꽃비원이 일터이자 곧 쉼터라고 말한다.

 

근본

 

산장 주인의 꿈을 농장 주인으로 대신 이룬 농부, 오남도입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저는 시골을 불편하게 여겼어요. 다만 국어시간에 ‘소나기’를 읽고는 막연히 ‘내 아이는 시골에서 자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남편은 농대 원예과 2년 후배예요. 캠퍼스커플이라고 하긴 좀 애매한 게, 캠퍼스에선 정말 신입생 환영회 때 ‘만나기만’ 했고 진짜 만난 건 졸업 후거든요. 각자 회사가 우연히 같은 건물에 있었던 거죠(웃음). 회사생활을 하면서 퇴근하고 뭔가 작은 거라도 하나씩 내 손으로 만드는 기쁨이 크더라고요. ‘근본’이란 게 참 중요하잖아요. 내가 쓰고, 내가 먹을 것들의 처음과 끝을 안다는 것. 그렇다 보니 먹을거리도 어디서 왔는지 궁금해지고, 물건을 살 때도 뒤를 돌려 라벨을 보게 되고, 알면 알수록 먹을 게 점점 없어지고, 내 손으로 직접 키워야 할 것 같고… 그렇게 귀농을 생각하게 됐어요.

결혼하고 남편 일 때문에 3년 정도 미국에서 살았는데 그때의 경험이 결정적이었던 것 같아요. 파머스 마켓(Farmers Market)에서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얼굴을 맞대는 광경이 참 좋았거든요. 과일이나 채소를 접할 때 농부를 알면 맛도 달라져요. 나만을 위해서 준비된 것 같은 뿌듯함? 내가 느낀 기쁨을 남들에게도 전해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귀농 1년 만에 도시형 대안 장터 ‘마르쉐’에 출점하기 시작했고, 저희 생산물을 계절별로 꾸린 ‘꾸러미’를 선보이게 된 거죠. 꽃비원을 지속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도 마르쉐일 거예요. 거기서 좋은 인연을 많이 만났죠. 농부는 가장 오래된 직업이면서 동시에 생활 자체잖아요. 옛날에는 의식주에 필요한 것들을 직접 키웠으니까요. 4차 산업시대에 사람들의 시간이 많아지면, 땅을 기반으로 한 원예활동이랄지 농사가 힐링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옛날부터 이어져왔던 문화를 간직하고 연결해주는 사람, 이것이 농부의 미래 역할 아닐까요?

자급자족

자급자족과 반농반X를 실현 중인 농부, 정광하입니다. 대학 졸업할 무렵 읽은 쓰지 신이치의 <슬로라이프>가 제 인생을 바꿨어요. 그때는 돈을 많이 버는 게행복이라 생각했는데 사실 행복은 주관적이잖아요. 농촌에서 자연과 함께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굳힌 뒤, 아내에게 그 책을 선물했어요. 은근 아날로그 감성이 있으신 것 같아서 한번 잘해보려고(웃음)….

과수원을 기반으로 다품종 소량 생산을 염두에 뒀기에 땅을 사야 했어요. 과수원은 묘목을 심어서 3년 차부터 수확하기 때문에 땅을 빌려서 짓기가 어렵거든요. 서울이 고향인 아내의 심리적 마지노선이 충남이었고, 후보지 중 땅값이 가장 저렴했던 곳이 바로 여기 논산 연무대육군훈련소 옆이었어요. 은행에서 저리로 돈을 빌려 땅을 사고, 월세 15 만 원 빌라에서 생활을 시작했죠. 훈련소 때문에 외지인이 워낙 자주 드나들어서 저희도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나 봐요. 마을회의에 거의 못 나가도 6개월 된 아들이랑 매일 셋이서 밭에 매달리니 이해하시더라고요(웃음). 마을 홈페이지 같은 걸 해결해드리면서 돈독해진 것도 있고요. 이제 6년 차인데, 지금은 빌린 땅 800평을 더해서 3000평가량 돼요. 과수원으로 치면 굉장히 소규모죠. 다른 분의 노동력을 빌리지 않고 저랑 아내랑 막내처제랑 셋이서 일하는데, 앞으로도 이런 소농 혹은 가족농 형태를 계속 유지하려 해요. ‘자급자족’에 의미를 두고 싶거든요. 가장 원초적이긴 하지만 식량주권을 가장 잘 지킬 수 있는 방법이니까요.

노지에 풀약(제초제)도 치지 않고 토종 위주로 농사를 지어서 마을 어르신 들이 많이 걱정하셨지만, 지금은 ‘그렇게라도 먹고살면 됐다’고들 말씀해 주세요 (웃음). 자연을 컨트롤할 수 없으니, 농사가 의외로 참 단조롭지 않아요. 자연의 변화를 보며 즐거움을 느끼시는 분이라면 귀농하셔도 좋을 겁니다.

 

꽃비원

저는 꽃비가 내리는 과수정원, 꽃비원입니다. 이 감성적인 이름은 정광하 농부가 귀농을 꿈꾸며 끼적인 노트 한쪽에서 태어났습니다. 소똥 치우며 자란 과수원집 아들이던 그는, 어느 날 TV에서 일본 모쿠모쿠농장을 보고 ‘슬로라이프’를 실현할 모델이 떠올랐던 거죠. 모쿠모쿠농장은 돼지를 콘텐츠로 1차(농·축·수산업)×2차(제조·가공업)×3차(관광)산업이 한곳에서 동시에 이루어지는 ‘6차 산업’의 교과서랍니다. 사과, 배, 포도 등의 꽃이 흩날리면서 사람들이 소풍 삼아 놀러오는 정원. 아, 이 얼마나 로맨틱한가요. 사과·배·매실·보리수·앵두·포도·복숭아·오가피 등의 나무와 냉이·달래·쑥·고들빼기·미나리·두릅 같은 봄나물부터 상추류와 샐러드 채소, 세이지·바질·차이브·타임·레몬버베나 등 허브까지 60여 종의 작물이 사이좋게 자라는 내 이름은 꽃비원이랍니다.

품종도 남달라요. 명절에 으레 등장하는 신고 배가 흔히 알려진 배라면, 여기는 진하고 달지만 물러서 저장이 어려운 ‘감천’과 맛있지만 다 익어도 푸릇해서 외면당한 ‘만풍’을 취급합니다. 마르쉐에서 시식해본 사람이 ‘내가 알던 배맛이 아닌데?’ 하고 가다 되돌아온다는 중독성을 자랑합니다. 사과는 또 어떤가요. 후지부터 자홍, 서리 내리고 따는 피덱스, 새콤해서 요리에 쓰기 좋은 메이폴, 미니사과 알프스오토메…. 이름만 들어도 침이 흐르죠? ‘꽃 비원키친’으로 오세요. 아침에 농장에서 수확한 재료로 만든 요리를 맛볼 수 있답니다.

오남도 농부가 꾸러미 ‘식구(고객)’인 셰프에게 전수받은 스킬을 유감없이 발휘해 정말 맛있어요. 이 식구 중 5팀은 논산으로 귀촌해 ‘꽃친’이 됐습니다. ‘꽃비원 친구’와 ‘시골에 꽂힌’이란 뜻이죠. 키친 옆에는 게스트하우스 ‘꽃비원 홈’도 있답니다. 단순하고, 오래되고, 예쁜 걸 좋아하는 꽃비원의 하루가 오늘도 흘러갑니다.

  • 꽃비원홈앤키친

최대한 자급자족하며 자연과 가까운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오남도·정광하 농부가 운영하는 식당과 민박집. 1975년 군부대에 납품하던 두부공장 건물을 최대한 살렸다. 직접 키운 농작물을 이용해 구성·과정·관계가 담백한 건강한 요리를 선보인다.

│11:30~20:00 (예약제)│충남 논산시 연무읍 연무로166
번길 12-21│041-742-2358│

 

이현화 사진 오진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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