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역(驛)-남부시장(場)

100년 된 기름집이 있고 골목 하나가 온통 닭튀김 파는 가게라 고소한 냄새가 연일 진동하는 곳이 전북 익산의 남부시장이다. 사람 사는 냄새에, 세월 가는 흔적까지 고스란히 남아 있어 새것에 질린 이들에게 반가운 장소다.

 

구글어스를 돌리면서 우리나라를 보면, 바다는 푸르고 땅은 온통 초록이다. 동고 (東高)의 산지가 7할이고, 그나마 서편이 황해를 향해 낮아지는 비산비야를 거쳐 들을 이룬다. 송편에 팥고물 앉은 것처럼, 누르스름하면서 연초록을 띠고 있는 땅이 전북 김제와 익산, 이 나라 최대의 곡창인 호남평야다. 북으로 금강, 가운데로 만경강, 남으로 동진강이 흘러 물이 많고 비옥한 백제의 왕도였다. 이 너른 평야가 요르단강 서쪽의 가나안처럼, 누대로 우리 민족의 젖줄 역할을 해왔다.

익산은 예로부터 장(場)이 섰다. 지평의 들에 물산이 풍부하니 사람이 모여들고, 사람들 오가는 곳에 길이 생기고, 그 길 쉬어가는 언덕 오목한 곳에 장이 열렸다. 조선 후기 익산에는 6곳에 장이 섰다는 기록이 <동국문헌비고>에 전한다. 일제강점기 때는 목포로 가는 호남선, 금강 하구로 가는 군산선, 여수로 가는 전라선, 천안으로 가는 장항선 등 4개 철길이 열리고 전군가도의 신작로가 부설되면서 익산은 그야말로 사통팔달의 요충으로 떠오른다. 당시 이리장(場)은 우시장을 비롯하여 미곡·어 류·육류·포목·채소·철물·목재 등 온갖 생필품의 거래가 활발하여 전국적으로도 손꼽히는 큰 장이었다.

 

독립운동 자취 남은 전통시장

익산역에서 택시로 10여 분 가면 익산 남부시장. 이리장이 솜리장으로, 구시장으로 바뀌다가 지금은 남부시장 으로 불린다. 근대의 옛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어 두루 두루 구경할 것이 많다. 작은 공원으로 꾸민 ‘4·4만세운동’ 현장은 아이들과 같이 들러도 좋다. 이리 장날이던 1919년 4월 4일, 남전교회 최대진 목사와 도남학교 문용기 선생이 주도하여 이곳 장터에서 벌인 만세운동은 일제의 간담을 서늘케 한 전북 최초의 성공적인 독립운동으로 기록되고 있다. 문 열사는 태극기를 든 오른팔이 일본 헌병의 칼에 잘리자 왼팔로 태극기를 주워들고 나아가 만세를 불렀고 끝내 그 자리에서 순국했다. ‘순국 열사기념비’는 이승만의 글씨다. 공원 뒤편으로는 일본인이 세운 대교(大橋)농장의 터가 있다. 1915년 당시 이곳의 곡식창고는 호남 최대였다니 일제의 수탈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케 한다. 농장사무실은 등록문화재 제209호로 지정되어 있다.

‘정읍떡기름집’을 하는 상인회장 유근우 씨(61)에게 “여기 점포가 생긴 지 얼마나 됐습니까?” 하고 물었더니, 대뜸 “100년이요” 한다. “우리 부부가 맡은 지가 10년, 장인이 40년, 그 윗대 해서 100년이라요.” 1913년 호남선이 뚫리고, 이듬해 장이 개설 됐으니 그 자리에서 떡을 찧고, 고추를 갈고, 기름을 짠 지 한 세기가 흘렀다. 불판에 뭔가를 볶고 있어서 물었더니, 아주까리라고 한다. “피마자라고 들어봤지요? 마을에서 기른 것을 사다 쓰는데 이것이 요새는 귀해요. 한옥 문지방이나 미닫이 문틀에 쓰기도 하고, 변비 설사약으로 먹기도 해요.” 고추 빻는 기계도 옛날 것 그대로다. 롤러 6대가 붙어 한 세트인데 처음 씨 빼는 기계로 시작하여 거칠게 빻는 것, 표면에 골이 있는 골 롤러, 골이 없는 민 롤러를 거쳐 가루가 몽실몽실해지고, 마지막에 다시 절구로 찧어서 완전한 가루로 만들기까지 손이 많이 간다. 고춧가루용은 1㎏에 1000원이고, 고추장 용은 더 가늘고 곱게 빻아야 하기 때문에 1㎏에 2000원이다. 부인 권봉순 씨(55)는 “요즘처럼 가을 되면 고추 빻으러 오는 손님이 많은데, 추석 때 애들 주려고 빻기도 하고, 지금 빻아야 색깔이 좋아서 11월 김장 때 쓸 것을 미리 빻아 놓기도 한다” 설명 하면서 “들기름, 참기름, 피마자·홍화씨·땅콩·호두·달맞이 기름, 맨날 기름만 짜다가 기름 한번 얼굴에 못 발라보고 다 늙게 생겼다”라고 넋두리가 길다. 그러면서 바닥에 앉아 피마자 기름을 소주병에 담는데 단 한 방울도 흘리는 법이 없다.

 

통닭에 돼지국밥까지 먹을거리 가득한 그곳

남부시장에서 유명한 것이 통닭이다. 옛날부터 익산·전주·삼례 인근에 양계를 많이 해서 그렇다고 한다. 장옥 안에 통닭집이 20여 곳 늘어서 여기저기 닭 튀기는 구수한 냄새가 가득하다. 새마을통닭집 주인 최성준 씨(71)는 거기서 닭을 판 지 올해로 44년 됐다. 처음에는 산 것을 팔았고 그 뒤에는 닭을 잡아서 생닭을 팔다가 지금은 튀겨서 판다. 보통 아침나 절에만 100마리 이상 튀긴다고 한다. “저녁때 축구나 야구를 하는 날이면, 사람들 줄이 꽉 차 골목 안이 북새통이고, 하루 종일 정신이 없어요.” 최 사장님 말에 프랜 차이즈 치킨집하고 뭐가 다르냐고 물었더니, “양이 많지, 그리고 식어도 눅눅해지지가 않아요. 기름을 좋은 것 쓰거든, 밀가루 반죽에 미원 넣어봤자 우리 못 따라와요” 한다.

밥집으로는 여느 시장이 그렇듯이 돼지국밥에 순댓국, 생선탕 집이 더러 있고, ‘윤가네 뼈다귀탕’집 사골시래기뼈다귀탕이 먹을 만하다. “국산 돼지만 써서 전국에서 제일 맛있다고 그래요, 내 말이 아니고 전국에 공사 다니 시는 분들 말이 그래요” 하면서 식당주인이 은근히 자랑하고 지나간다. 남부시장에서 여전히 명성을 유지하고 있는 곳이 한복거리다.

백화점 마트에, 기성 양장집에, 손님을 많이 뺏겼지만 그래도 결혼할 때 한복 한 벌은 맞춰 입는 것이라, 예비 신랑신부 앞세워 꼭 들르는 곳이다. 오색 주단의 한복이 화려하고, 옛날 다방들도 몇 곳이 남아 있다.

남부시장 사람들은 옛 철로가 남아 있는 길에 모노레일이라도 깔아 익산역을 출발하여 중앙동 예술의 거리를 지나고 남부시장 한복거리를 거쳐 구 동이리역, 춘포역으로 이어지는 관광명소가 개설되어 찾는 사람이 많아지고, 예전처럼 장사가 잘되기를 소망하고 있다.

이광이 사진 최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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