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여행이뭔지 알게 되었다

‘늦기 전에 떠나라!’ 은퇴 후 아내와 오순도순 여행하는 즐거움을 만끽 중인 이승원 작가의 신조다. 도시 구석구석마다 그림 같은 풍경이 여행자를 유혹하는 스페인 중세도시 톨레도(Toledo)를 젊은이보단 느긋하게, 젊은이처럼 자유롭게 둘러본 여행기.
  • 꼬마기차 타고 인생 여행

특가 항공권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해 시작한 스페인 여행도 마드리드(Madrid)를 마지막으로 끝나간다. 오늘은 톨레도에 가는 날이다. “스페인에서 단 하루를 머물러야 한다면 망설이지 말고 톨레도로 가라”라는 누군가의 말에 꽂혀 선택한 곳이다.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의 무대는 스페인 중부 카스티야라만차 지방이다. 톨레도는 카스티야라만차 자치정부의 수도이며, 톨레도주의 주도이다. 1561년, 마드리드로 수도를 옮기기 전까지 약 천년 동안 스페인의 수도였다.

마드리드의 플라자 엘립티카(Plaza Eliptica)역에서 출발한 톨레도행 버스는 50분 정도 지나 사람들을 톨레도 버스터미널에 내려놓는다. 생각보다 그리 멀지 않은 거리다. 터미널에서 나와 사람들이 많이 가는 방향을 따라 걷는다. 길바닥 한쪽에 핑크색으로 선이 그어져 있다. 그러고 보니 사람들의 뒤를 따라가는 게 아니라 핑크색 선을 따라 걷고 있는 것 같다. 핑크색 선이 길잡이인 셈이다.

발길 가는 대로 걷다 보니 소코도베르(Plaza de Zocodover) 광장이 나타난다. 중세도시로 들어가는 출발점이다. 광장 한쪽에 귀엽고 앙증맞게 생긴 빨간색 꼬마열차가 눈에 띈다.

소코트렌(Zocotren)이라 불리는데, 관광객들을 태우고 톨레도를 한 바퀴 도는 관광기차다. 소코트렌을 타고 톨레도를 감상하기로 한다.

소코도베르 광장을 출발한 기차는 시가지를 벗어나 타호강을 끼고 달린다. 강이 해자처럼 도시를 둘러싸고 외곽에 성벽이 견고하게 버티고 서 있다. 그 모습을 보면 왜 ‘참고 견디어 항복하지 않는 성’이라는 뜻의 도시 이름이 지어졌는지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강을 따라 이어진 도시의 모습마다 한 장의 그림엽서를 방불케 한다. 아내는 이미 꼬마기차 밖으로 펼쳐지는 이색적인 풍경 속으로 깊숙이 들어앉았다. 그런 아내를 가만히 바라보 는데, 그동안 함께 살아온 세월이 생각이 난다. 어렵고 힘들 어도 내색하지 않고 곁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켜준 아내가 고맙기만 하다. 이렇게 여행을 하며 즐기는 것도 모두 아내 덕분이다.

한참을 달리던 기차가 잠시 사람들을 내려놓은 곳은 톨레도 최고의 ‘뷰 포인트’인 톨레도 남쪽 전망대다. 사진에서 보았던 톨레도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파란 하늘에는 흰 구름이 떠다니고, 땅에는 중세의 성당과 왕궁을 비롯하여 작은 건물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그 도시를 강물이 에워싸며 돌아간다. 마치 한 폭의 풍경화를 보는 것 같다. 여기저기서 와~, 하는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멋진 풍경과 함께 오래 도록 머물고 싶은데, 소코트렌은 벌써 출발 신호를 알린다.

 

  • 중세의 골목에서 여유를 느끼다

꼬마기차는 다시 소코도 베르 광장으로 돌아왔다.
점심을 먹기 전에 광장을한 바퀴 둘러보는데, 아내가 갑자기 화장실이 가고 싶다고 한다. 주위를 살펴보니 광장 한쪽에 자리한 패스트푸드점 버거킹이 눈에 들어온다.

화장실 표시를 따라 내려간 건물 지하의 화장실 문에 도어록이 부착되어 있다.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열리는 시스템이다. 패스워드는 영수증에 적혀 있다고 웃으며 말하는 종업원이 얄밉게 보인다. 아무래도 오늘 점심은 예정에 없던 햄버거로 때워야 할 것 같다. 외국에 나가 보면 우리나라처럼 화장실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나라도 드물다. 다행히 아내는 햄버거를 맛있게 먹는다. 혹시 탈이라도 날까 걱정했는데, 마음이 놓인다.

톨레도 대성당을 가려고 코메르시오 거리에 나서자마자 좁은 골목의 하늘에 베이지색 천들이 걸려 있는 이색적인 풍경이 눈길을 끈다. 거리에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데다, 갖가지 상품을 파는 가게에 진열된 물건들을 구경하며 걷다 보니 원래 가던 길과는 다른 골목에 들어서 있다. 골목길 모양도 비슷하고 중간에 옆으로 뻗어나간 길도 많아 처음에 가려던 길을 다시 찾아가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차라리 길을 잃기로 한다. 발길 닿는 대로, 눈길 가는 대로 걸으며 골목길을 즐기고 싶다.

예전에는 여행지에서 길을 헤매면 당황하고 조바심이 나서 불안해하곤 했다. 그러다 우연찮게 마주한 풍경이 마음을 사로잡거나 뜻밖의 행운을 만나 색다른 추억을 만든 적도 있었다. 몇 차례의 경험이 쌓이고, 나이가 들면서 매사에 조급 하지 않으려고 마음을 다스리다 보니, 이제는 설사 길을 잃게 되더라도 여유가 생겨 미지의 세상에서 펼쳐질 풍경을 기대하기도 한다.

톨레도의 골목길을 걷다 보니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유를 알 것 같다. 걸음을 옮기는 데마다 문화유 적지인 도시 곳곳에서 천년 역사의 숨결이 느껴진다. 골목길 구경을 하는데, 검과 창 등을 파는 상점들이 유난히 눈에 많이 띈다. 가게에 진열된 번쩍이는 검을 쳐다보노라면 금방이라도 철갑옷을 입은 중세 기사가 나타날 것만 같다.

중세의 한 시점으로 거슬러 온 것 같은 골목길 풍경에 취해이 골목에서 저 골목으로 쏘다니다 보니 톨레도 대성당 앞이다. 15세기 말 이슬람 사원이 있던 곳에 세워진 성당은 짓는데만 266년이나 걸린 톨레도의 대표적인 유적지이며, 스페인 가톨릭의 본산이다.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 있는 성당의 뾰족한 첨탑이 시선을 압도한다. 고딕 양식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준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외관은 웅장하면서도 화려 하다. 성당의 외벽을 채우고 있는 조각상과 장식들이 어찌나 정교한지 차마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다.

대성당에서 소코도베르 광장으로 나가는 길에 톨레도의 명물 마사판(Mazapan)을 맛보기로 한다. 마사판은 아몬드 가루와 꿀을 반죽해 만든 톨레도의 전통과자다. 원래는 아랍에서 들여온 과자인데, 기근이 심했을 때 수녀원에서 수녀님들이 만들어 주민들에게 나누어 주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가게에서 구입한 마사판은 모양이 너무 예뻐 입에 넣기가 망설여진다. 그래도 그 맛이 궁금하여 한입 베어 무는데, 단맛이 입안에 가득 퍼진다. 진한 커피 한 잔이 저절로 생각난다.

 

  • 마음속에 담고 싶은 풍경

골목길에서 빠져나와 톨레도 여행의 마지막 목적지인 파라도르(Parador)로 향한다. 파라도르는 고성이나 왕궁 등을 개조한 스페인 국영 호텔로 대부분 그 지역에서 경치가 가장 좋은 곳에 위치한다. 톨레도의 외곽 작은 언덕에 자리 잡은 파라도르 역시 조망이 좋기로 유명하다. 우리나라 유명 연예인 부부가 웨딩화보를 찍은 곳으로 알려지면서 한국인도 많이 찾고 있다.

파라도르에 가려면 박물관 앞에서 7-1번 버스를 타야 한다. 버스는 한 시간마다 다닌다. 버스 정류장에서 한국인들이 눈에 띈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사진을 찍고 있는데, 어느 틈엔가 아내는 우리나라 청년들과 말을 나누고 있다.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는지 궁금해 그들에게 다가간다. 크로아티아에서 유학 중이라는 학생은 주말을 이용해 유럽의 도시를 여행한다고 한다. 그는 어제 저가항공을 이용해 마드리드에 도착했다며 오늘 톨레도를 둘러본 다음 저녁에는 다시 마드리드로 가서 축구 관람을 하고, 내일 새벽 크로아티아로 돌아갈 예정이라고 말한다. 그 젊음과 열정이 부럽기만 하다.

버스가 파라도르 정류장에 도착했을 때 버스 안에 남아 있는 사람은 모두 우리나라 사람뿐이다. 버스에서 내려 길을 건너니 파라도르가 눈에 들어온다. 로비에 들어서자 고급스럽고 고풍스러운 실내 장식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소문대로 뛰어난 분위기에 매료되기 시작한다. 감탄사를 연발하는 아내의 표정을 보니, 마음속에는 이런 곳에서 하룻밤 묵으며 호사를 누리고 싶은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 것 같다. 상상의 나래를 더 펼치기 전에 서둘러 카페로 이끈다. 야외 테라스 카페로 나가는 문을 연 순간, 눈앞에 진짜 톨레도의 모습이 나타난다. 오래된 중세도시의 멋진 풍경이 시원 하게 펼쳐져 잠시 넋이 나간다. 카페에서 사랑을 나누는 로맨틱 커플의 모습은 아름다운 중세의 풍경에 낭만을 더한다. 영화 속 한 장면이 따로 없다. 자리에 앉아 한 잔의 커피와 함께 천천히 풍경을 즐긴다. 도시 구석구석마다 눈길을 돌리며 그 풍경을 가슴에 담는다.

앞으로 사는 동안 이런 절경을 얼마나 더 만날 수 있을까 생각하니 지금 이 시간이 소중하고 감사하다. 무엇보다도 아내와 함께 이런 곳에 있다는 것이 더없이 기쁘고 행복하다. 그렇게 한참을 중세의 향기가 남아 있는 톨레도를 바라보다가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억지로 돌린다.

요즘 들어 여행은 그렇게 특별하지 않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우리의 일상에서 벗어나 낯선 거리를 걷고, 시장 구경을 하며, 관광을 하는 등 그곳의 일상 속으로 들어가 즐기며 다니는 일. 그게 여행이 아닌가 싶다. 그런 여행이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고, 살아가는 데 활력이 되면 길을 떠날 이유는 충분하다.

올해, 나는 65세가 되었고, 아내는 환갑을 맞이했다. 은퇴 후시간적인 여유도 많고 제2의 인생에 대한 기대도 많은 지금이 그야말로 여행하기 딱 좋은 나이가 아닌가? 마음이 풍요 로운 삶. 이를 위해 우리 부부는 배낭을 꾸리고, 길을 나선다.

글·사진 이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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