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들의 기억 속 보물들

 

삶, 셀 수 없이 많은 감정을 혼재한 긴 여행
누구는 그것을 품고 살아가지만
시인들은 텍스트로 발현해 많은 이와 교감을 나눈다.

그런 그들에게도 시적 영감을 불어넣는 여행지가 있다.
명의 시인이 말하는 특별한 장소와 그안에 담긴 사연을 들어봤다.

시인 최서진의 충남 보령시 대천

고향을 떠나오기 전 대천 바다와 그 위로 쏟아지는 저녁의 해를 가슴에 담고 왔다. 이 삶에서 일몰(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지금 이 삶을 가장 소중하게 누리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노을빛처럼 소멸하며 존재하는 그대로의 실존, 맹목적으로 추구했던 가치를 죽여가며 새로운 지평을 여는 것. 비로소 삶을 이해하게 되는 순간에 닿는다. 우리는 모두 죽어가므로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 한다. 작품을 쓰기 전에 손바닥 위로 흐르던 노을빛을 가만히 얹혀보면 우리의 옆구리를 찌르던 말들이 사라진다. 사랑을 꿈꾸는 자세로 오래된 외로움을 접어 무수한 꽃잎을 날려 보내는 일이 바다의 음악이 흐르는 時다.

 

시인 최연수의 베트남 하노이

시는 아픈 곳, 후미진 곳에서 온다고 한다지만 어떻게 보고 어떻게 느끼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어디를 가든 아름다움의 내면 혹은 그 너머의 아픔을 읽고자 한다.
그리하여 그것을 내 삶의 일부로 가져온다. 최근에는그 나라의 문화에 접목해 그들의 실생활과 나와 관계망을 엮는다. 예를 들면 하노이의 중앙선 없는 길과 오토 바이 물결 등을 불규칙한 내 삶의 느낌과 연결 짓는다.

 

시인 문설의 제주도

작품 활동에 많은 영감을 준 곳은 내륙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공기를 품은 제주도다. 특히 사려니숲과 재일한국인 건축가고 이타미 준이 설계한 비오토 피아 미술관은 작품에 그대로 녹아들 정도로 영향을 주었다. 사려니숲은 숲이 주는 에너지도 있지만 돌아가신 아버지의 성함과 비슷해 마치 아버지의 품에 안기는 것 같아 더욱 애정이 간다. 또한 지니어스 로사이, 방주교회, 본태박물관 등 천혜의 자연 경관과 공존하는 건축물들이 전해주는 감동과 여운이 스며들기도 한다.

 

시인 곽경효의 전북 익산시 고도리 석불

익산시 금마면 고도리에서 한석불을 만난 적이 있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서로 사랑만 한 죄로 형벌을 받아 평상시에는 바라보기만 하다가 1년에 딱 한 번만나 회포를 푼다는 전설의 석불 한 쌍. 천년 동안 마주 보기만 하는 사랑이라니 얼마나 애달픈 사랑인가. 그 사랑의 간절함과 쓸쓸함이 내 가슴을 아리게 했다. 그 기억을 떠올리며 한 편의 시(‘멀리서 바라보는’)를 썼다.

 

시인 오늘의 인천 강화군 교동도

연산군의 유배지였던 교동도는 낮은 지붕 사이로 햇살이 나른한 곳이다. 폐가의 담벼락에 한참을 기대앉아 그늘을 닮은 문턱을 쓰다듬으면 고요한 슬픔이 만져진다. 허물어진 것들에게서 터지는 빛과 금의 밀착. 간절함이 무성해질 수록 원하는 것은 금 밖으로 지워지고 빛 안에서는 그림자 들만 우글거린다. 언제든 다가가면 듬성듬성 피어 있는 잡초들은 저마다의 상처를 환하게 켜고 작은 조막손을 흔든다.

 

시인 김정수의 강원 인제군 자작나무 숲

그곳에는 도시에서 만날 수 없는 떠돌이 영혼이 살고 있다. 하얀 눈보다 더 하얀 자작나무가 하늘을 찌르는 숲에는 시베리아 벌판을 떠돌던 영혼이 이주해 살고 있다. 영혼과의 대화는 여름보다 겨울이 적격이다. 나무에 기대 눈을 감으면 차가운 영혼이 귀에 속삭인 다. 그 말을 그냥 받아 적으면 북극의 시가 된다. 지친 감성과 영혼이 충만해지는, 숨겨두었던 내 여행지. 이제는 잦은 발길과 목소리에 떠돌이 영혼이 다시 길을 떠났을….

 

시인 진혜진의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타프롬 사원의 스펑나무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절실하게 생각해보는 계기를 선사한 장소다. 뿌리가 땅속에 있지 않고 지상으로 뻗어 나와 사원의 담벼락과 건물을 폭력적으로 휘감아 잠식하는 거대한 뿌리는 공포였다. 그 옛날 찬란 했던 유적지가 인간이 심은 나무의 뿌리로 인해 폐허가 됐지만, 관광 유적지가 된 것을 보면서 ‘나는 나의 뿌리에게 너는 너의 뿌리에게 들어야 할 말이 있지 않을까?’ 라며 생각하고 자작시 ‘가벼운 계보’를 쓰게 됐다.

 

유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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