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파랑길에서 마주친 부산의 속살들

동해를 따라 걷는 ‘해파랑길’은 부산에서 시작한다. 해파랑길의 3번째 코스, 이름도 예쁜 ‘물새소리길’을 걸었다. 말갛게 씻은 부산의 고운 얼굴이 드러나고 마주친 속살은 오랜 여운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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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등대를 찾아서

▲SRT매거진 해파랑길 부산 등대, 부산 앞바다

해파랑길을 걷고서야 알았다. 부산이 ‘등대도시’라는 걸. 대한민국 4강 신화를 썼던 2002년 한일월드컵. 그 길었던 감동은 2003년 부산 기장군 대변외항 동방파제에 등대로 남았다. 월드컵등대를 시작으로 부산에는 젖병등대, 닭벼슬등대, 장승등대, 갈매기등대, 붕장어등대 등 이색 등대가 속속 들어섰고, 외형만큼 저마다 재미있는 스토리를 담고 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야구등대. 야구배트와 글러브, 야구공을 형상화한 모양이 깜찍하면서도 부산사람의 야구 사랑이 절절히 느껴진달까.

여담이지만 선박은 기본적으로 우측 통행이다. 출항할 때는 하얀 등대를, 입항할 때는 빨간 등대를 오른쪽에 두는 게 원칙. 노란 등대는 위험구역이란 뜻이다. 100여 개의 유인 등대와 무인 등대가 오늘도 조용히 불을 깜박이며 부산 앞바다를 지킨다.

## TIP 야구등대의 정식 명칭은 ‘칠암항 남방파 제등대’. 부산 기장군 칠암항에 있다.

 

  • ‘해파랑길’이란?

오륙도해맞이공원에서 통일전망대까지

동해의 떠오르는 해와 푸른 바다를 길동무 삼아 함께 걷는 해파랑길. 부산 오륙도해맞이공 원에서 시작해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에 이르는 걷기여행길이다. 동해안을 따라 총 10개 구간 50개 코스, 거리 770㎞에 달한다.
www.haeparanggil.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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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팎이 다르다는 것

▲SRT매거진 해파랑길 월전항 방파제등대

이희봉 교수는 저서 <한국건축의 모든 것 죽서루>에서 한국의 누정에 대해 평했다. 누정의 존재 의미는 안에서 바깥 풍경을 바라보는 데 있다고. 월전항 방파제등대 전망대에서 본 월전항 풍경이 꼭 그랬다. 밖에서 짐작한 등대와 안에서 바라본 풍경이 너무나도 달랐기 때문에. 월전(月田)은 우리말로 ‘달밭’. 산꼭대기에 생긴 마을은 달동네요, 언덕배기를 개간한 밭이 달밭이다. 일굴 땅이 모자란 섬마을 사람 나름의 생존법이었을까. 어쩌면 죽성리 왜성에 있던 밭도 달밭인 걸까. 월전의 또 다른 뜻은 월전(月殿). 달 속에 있다는 전설의 궁전이다. 해파랑길을 걸으며 화려한 줄만 알았던 부산의 또 다른 속살을 자꾸만 보게 된다. 안팎이 다른 반전 만큼 치명적인, 비 온 뒤 풍경처럼 파고드는.

## TIP 월전항 방파제등대의 애칭은 ‘장어등대’. 어디선가 장어 굽는 냄새가 솔솔 여행자를 유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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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돌벽이 아니었다

▲SRT매거진 해파랑길 죽성리 왜성, 임진왜란

길고 긴 나무계단을 악착같이 올랐다. 성긴 풀이 종아리를 할퀴어댔다. 마침내 다다른 정상, 그리고 그곳에서 마주한 쓸쓸한 돌벽. 1595년(선조28) 축성한 죽성리 왜성이다. 임진왜란때 한양에서 후퇴한 왜군은 여수에서 울산까지, 강과 바다가 가까운 구릉에 왜성을 쌓아 장기전을 준비했다. 축성을 지시한 왜장 구로다나가마사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때 숱한 조선의 도공과 사기장을 납치했다. 이 중에는 규슈에 정착해 일본 도자기의 시초가 된 조선 도공 다카도리 핫산도 있었다. 비단 장인 말고도 얼마나 많은 조선인이 이 길을 지나며 무고한 눈물을 뿌렸을까. 나랏님 잘못 만나 나가사키를 통해 포르투갈 노예상에게 팔려갔던 백성들….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죽성리 포구는 평화로웠지만 나는 한동안 못 박혀 있어야만 했다.

## TIP 인근에 드라마 <드림>의 배경이었던 ‘죽성드림성당’이 있다. 용궁 사와 함께 들러 소원을 비는 관광객이 많고, 수시로 전시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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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걸음 붙드는 숨비소리

▲SRT매거진 해파랑길 제주 해녀

수중사진 작가 제나 할러웨이(Zena Holloway)를 좋아한다. 제주 해녀를 주제로 작업한 <Flowers for Jeju: the Last Mermaids>를 본 뒤론 줄곧 짝사랑 중이다. 아무런 장비 없이 맨몸으로 바다에 뛰어들어 가족을 부양해 온, 강인하고 신화적인 존재들. 제주도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해녀는 19세기 말부터 부산과 울산 등지로 ‘출가’를 시작했고, 이윽고 경상북도와 강원도, 청진, 남·서해안을 지나 일본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중국 다롄과 칭다오까지 진출했다. 더 먼 바다의 황금어장을 노린 일종의 원정이었다. 보통은 봄에 출가해 가을에 돌아오지만 일부는 출가지에 눌러앉았다. 부산은 우리나라에서 제주 다음으로 해녀가 많은 곳이다. 영도에 이주한 일본 해녀와 교류한 것도 이들이었다.
“가닥 동끗 지나가민/ 등바당을 넘어간다/ 다대끗을 넘어가민/ 부산 영도이로구나/ 이여싸나 이여싸나.” 오르락내리락. 인어가 아니었다. 바다가 허락한 몫만 가져나와 길게 물숨을 내뱉는, 부산 해녀였다.

 

## TIP 제나 할러웨이의 홈페이지(www.zenaholloway.com /portfolio/seawomen)로 가면 감동을 공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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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94

▲SRT매거진 해파랑길 해변, 바다

어릴 때야 뭐든 재미없겠느냐만, 초등학교 3학년 여름바다는 유독 신났다. 거북이처럼 지졌던 모래찜질도, 엄마가 흔쾌히 사준 딸기슬러시도, 파라솔 밖으로 나온 발만 까맣게 탄 자국도 모두 즐거웠던 기억. 그래서 일광해수욕장을 사랑한다. 1990년대의 흥취가 묘하게 묻어나오는 아담한 해변이 가장 즐거웠던 여름을 소환하므로. 늦여름과 초가을 경계의 바다는 초록과 파랑이 섞여 있었고, 목만 내놓고 보말잡기에 열중하는 사람들이 종종 보였다. 산책로를 벗어나 짓궂게 바위를 뒤집어 무늬발게며 풀게를 기어이 찾아냈다. 물론 사진만 고이 찍고 보내드렸지만.

## TIP 숭어, 새끼 돌돔, 새끼 갑오징어 등 기장 앞바다를 잠깐 들여 다보기만 해도 해양생물과 아이 콘택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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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판 없는 밀면집

▲SRT매거진 해파랑길 밀면, 열무밀면

슬슬 시장하다. 이른 아침으로 연화리 전복죽을 푸지게 먹었는데도 걷다 보니 배가 금방 꺼진다. 가자미 미역국을 먹을까, 기장 멸치쌈을 먹을까, 짚불 곰장어를 먹을까. 유리창에 붙은 ‘말미잘 매운탕’이라는 낯선 메뉴도 호기심을 부채질한다. 그렇게 우연히 발견한 빛바랜 민트우윳빛 가게. 간판을 내거는 성의도 없이 그저 ‘밀면’이라 쓴 파란 글씨가 오히려 호승지심을 자극했다. 테이블 네댓 개의 작은 가게를 메운 손님들은 누가 봐도 동네 주민, 그것도 오래된 단골뿐. 메뉴도 밀면과 열무밀면 두 종류였다. 가오리 대신 수육을 얹은 이른바 ‘기장스타일’ 밀면은 호전적이지만 보수적인내 입맛에도 딱 맞았다. 이런 게 바로 여행의, 걷기의 참맛이지.

## TIP가게 주인에게 주소를 물어봤다. 부산 기장군 일광면 일광로 249. 가격대는 4000~5000원.

 

 

 

~ 해파랑길 부산 구간 ~

동해와 남해 분기점인 오륙도해맞이공원에서 시작해

단선철로가 애틋한 동해남부선 월내역까지,

73.7km의 대장정을 시작해보자.

 

 

1코스
쉬워요 | 17.8km | 6시간
오륙도해맞이공원→동생말→광안리해변→APEC하우스→미포

오륙도해맞이공원에서 출발해 미포에 이르는 코스. 광안리해변과 해운대해변을 거치면서 해파랑길 부산 구간 중 최고의 풍경이 펼쳐진다.

│해파랑길 관광안내소 051-607-6395│오륙도 스카이워크 051-607-6363│남구 오륙도로 137 부근│해파랑길관광안내소 옆│

 

 

2코스
무난해요 | 16.3km | 5시간
미포 달맞이공원→어울마당→송정해변→해동용궁사→대변항

▲SRT매거진 해파랑길 송정해수욕장

해운대의 삼포라 불리는 미포, 청사포, 구덕포를 거쳐 대변항에 이르는 코스다. 달맞이공원 어울마당으로 가는 오솔길 갈림길에서 직진하면 청사포 방향으로 이어진다. 구덕포는 철길 굴다리를 통과하면 나오고, 송정해변까지는 해안도로를 따른다.

│해운대구 관광문화과 051-749-4086│해운대구 해운대해변로 264│해운대관광안내소 내부│

 

3코스
무난해요 | 20.5km | 7시간
대변항→봉대산봉수대→기장군청→일광해변→임랑해변

▲SRT매거진 해파랑길 죽드림성당

대변항에서 월전까지 산길을 따라 걷는다. 죽성에는 국수당, 황학대 등 이야깃거리가 많다. 일광해변부터 이어지는 이천항·동 백항·칠암항·임랑항 등에 횟집이 즐비하다.

│기장군청 문화관광과 051-709-4083│기장군 기장해안로 560-4 부근│

 

 

4코스
쉬워요 | 19.1km | 7시간
임랑해변→봉태산숲길→나사해변→간절곶→진하해변

임랑해변에서 진하해변까지 동해안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코스.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일출을 볼 수 있는 간절곶이 있다. 해송숲과 나사리, 송정리를 지나는 해안 풍경은 자연 그대로의 맛을 느끼게 한다.

│울산 울주군청 문화관광과 052-204-0333│기장군 장안읍 임랑해안길 45-4 부근│임랑행정봉사실 옆│

 

 

  • 함께 걸어요! 부파랑 트랙&트립

부산 해파랑길, 줄여서 ‘부파랑’을 전문가와 함께 둘러보는 스토리텔링 투어. 매주 목요일마다 전문 가이드와 함께 관광과 트레킹을 즐길 수 있다. 약 7시간 동안 부산관광공사가 엄선한 포인트만 콕 집어 둘러보므로 가성비 끝장, 가심비 충만! 현재 2코스 ‘파도소리길’과 3코스 ‘물새소리길’을 운영 중이며 1코스와 4코스는 단체예약을 통해서 특별운영한다. 선착순 마감이니 홈페이지를 통해 재빨리 예약하는 센스!

│~12.6(목) (매주 목요일, 선착순 20~40명)│1만 원│www.busanhaeparang.com│

 

 

이현화 사진 문덕관 협조 부산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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