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고도 낯선 땅, 에티오피아

천진난만한 아이들이 낯선 이방인에게 손을 흔든다. 환한 미소도 담뿍 담았다. 3000년의 오랜 역사와 아름다운 문화유산을 가진 미지의 아프리카, 찬란한 고대 문명과 커피 향이 가득한 에티오피아가 나를 반긴다.

 

갑작스럽게 떠나게 된 에티오피아, 참으로 낯설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라곤 고작 커피와 초콜릿 피부의 사람들. 아, 맞다. 조카 녀석들이 열심히 외우던 국기카드 덕에 알게 된 수도명 아디스아바바도 있다.

평소의 여행 패턴대로라면 사전 정보 없이 무작정 뛰어들고 보는데, 너무 낯선 곳이라 그럴수 없었다. 설레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여 책을 읽고 여행 정보를 찾으며 에티오피아에 한발 가까워지려 노력했다. 이제 퍼즐을 맞출 시간, 들쑥날쑥하게 혼재된 정보는 에티 오피아를 여행하며 제자리를 찾아간다. 온전히 내 것이 되어간다.

 

 

새로운 꽃, 아디스아바바

여행의 시작과 끝은 에티오피아의 수도이자 정치와 종교, 경제, 교육의 중심지 아디스아바바였다. 산으로 둘러싸인 해발 2355m의 고원도시. 볼거리가 그리 많진 않지만 국제공항을 갖추고 있고 에티오피아 전역으로의 이동이 편리해 여행자들이 모여든다.

짧은 시간 안에 에티오피아의 역사와 문화를 파악하기 좋은 장소는 아디스아바바 국립대학교 내에 있는 국립박물관과 민속학박물관이다. 가장 오래된 인류의 화석이자 직립보행을 한 최초의 화석 루시 (Lucy)를 비롯해 에티오피아의 생활양식, 풍속, 유물 등을 살펴볼 수 있다. 특히 민속학박물관은 에티오피아의 마지막 황제인 하일레셀라시에가 실제 거주했던 곳으로 당시 침실과 거실, 욕실 등도 관람 가능 하다.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는 우리나라와도 인연이 깊다. 6·25전쟁 당시 우리나라에 6037명의 왕실 근위대를 파병한 것. 이런 인연으로 에티오피아 정교회의 중심인 홀리 트리니티 대성당에는 황제·황후의 무덤과 함께 당시 전사한 121명의 유해가 묻혀 있다. 별도의 추모 공간도 마련되어 있는데, 에티오피아와 한국인에게만 개방한 다는 점이 흥미롭다. 대성당은 유럽식 건축 양식에 거대한 샹들리에와 성경을 옮긴 스테인드글라스, 벽화, 조각 등으로 화려하게 꾸며 이곳 사람들이 종교와 예배에 얼마나 많은 정성을 쏟는지 실감케 한다. 에티오피아 특유의 분위기가 묻어나는 예배당을 꼽으라면 세인트 조지 성당이다. 묵직한 팔각형 건물은 성직자, 남자, 여자 등으로 기도 공간이 분리되어 있고, 예배가 끝난 후에도 사람들은 건물 주변을 돌며 기도를 하고 벽에 입을 맞춘다. 느릿느릿 조용히, 간절함을 담아 기도하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경건해졌다.

 

 

아프리카의 예루살렘, 랄리벨라

에티오피아 정교회의 성지인 랄리벨라는 에티오피아 여행의 꽃, 절대 빠져선 안 될 코스다. 1978년 에티오피아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11개의 독특한 암굴교회가 있기 때문이다. 아디스아바바에서 랄리벨라까지는 비행기로 1시간 거리지만 암굴교회를 보기 위해서는 끝없이 이어지는 해발 3000m의 척박하고 황량한 산길을 지나고 험준한 능선을 올라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년 수십만 명의 순례 자와 관광객이 이곳을 찾는다.

랄리벨라의 암굴교회는 12세기에 이슬람 세력으로부터 기독교를 지켜내기 위한 랄리벨라 왕의 기지로 탄생했다. 예루 살렘에 갈 수 없다면 차라리 제2의 예루살렘을 만들자는 계획으로 눈에 잘 띄지 않게 암반을 깎고 깎아 암굴교회를 만든 것이다. 전설에 따르면 천사가 도와 23년 만에 완공되었 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100년이 넘게 걸렸다. 끌과 망치로 바위를 쪼개가며 건축했으니 오죽하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규모와 형태, 공간마다 담은 의미, 예술성 등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았다. 가히 불가사의한 건축물이다. 11개의 교회는 예루살렘과 마찬가지로 요단강을 사이에 두고 북쪽 그룹과 남쪽 그룹으로 나뉜다. 가장 인기가 높은 곳은 에티오피아 고유 언어인 암하라어로 기오르기스 (Giyorgis)라 불리는 세인트 조지 교회. 가로, 세로, 높이 모두 12m의 건물로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았을 때 온전히 드러 나는 그리스 십자가 모양이 압권이다. ‘구세주의 집’을 의미 하는 메드하네 알렘(Medhane Alem) 교회는 세로 33m, 가로 22m, 높이 11m로 규모가 가장 크고, 암반을 통째로 깎았음에도 72개의 4각 기둥을 올렸을 정도로 공을 들였다.

이 외에도 좁고 어두운 통로를 지나 미로처럼 이어지는 가브 리엘-루파엘(Gabriel-Rufael), 아름다운 프레스코화가 그려진 마리암(Maryam), 장난감 블록처럼 조각된 아마누엘 (Amanuel) 등 교회마다 각기 다른 매력을 찾을 수 있다.

신앙심 깊은 신자들은 교회 안에서 생활한다. 어둡고 비좁 은, 벼룩도 튀어나오는 공간이지만 신을 향한 믿음을 버리지 않는 사람들. 평생 기도하며 생을 마감하는 것을 영광이라 여기는 그들의 모습을 보니 문득 궁금해졌다. 무엇을 위한 간절함일까, 과연 행복한 삶일까. 이해는 할 수 없어도 그들의 마음이 하늘에 있는 누군가에게 전달되길 바란다.

 

 

투박하지만 격조 있는 고성을 찾아, 곤다르

랄리벨라가 신을 위한 도시라면 곤다르는 왕을 위한 도시다. 에티오피아의 황금기이던 17~19세기, 부와 권력을 잡은 파실리다스 황제와 그 후계자들은 도시 곳곳에 그들만을 위한 건축물을 세웠다. 대표적인 곳이 197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으로 지정된 파실 게비(Fasil Ghebbi)다. 언덕 위 900m 길이의 성벽에 둘러싸인 파실 게비는 곤다르의 역대 왕들이 머물렀던 요새 형태의 공간으로 파실리다스 궁전을 비롯해 법원, 도서관, 연회장, 목욕탕 등이 남아 있다. 약 200년의 통치 기간에 다양한 문명과 교류하며 새 건물을 하나씩 추가했기 때문에 한 공간에 있음에도 건축 양식이 각기 다른 게특징이다.

파실 게비에서 약 2km 떨어진 곳에는 파실리다스의 목욕탕이 자리한다. 강과 연결되는 운하를 통해 거대한 직사각형 내부를 물로 가득 채우는데, 말이 목욕탕이지 실제로는 왕실 사람들이 물놀이를 즐기던 별장이나 다름없다. 파실리다스의 목욕탕이 북적거리는 시기는 일 년에 단 한 번, 에티오 피아 정교회에서 예수의 세례를 기념해 ‘팀캇(Timkat)’ 축제 를 벌이는 성탄절이다. 에티오피아에서 사용하는 율리우스력으로 성탄절은 매년 1월 19일로 시기를 잘 맞추면 황제의 목욕탕에서 수영을 하는 호사도 누릴 수 있다.

천하를 호령하는 왕이라도 신을 위한 공간에는 시간과 정성을 쏟았다. 17세기, 이야수 1세가 건축한 데브레 베르한 셀라시 교회(Debre Berhan Selassie Church)만 봐도 그렇다. 작고 아담한 규모, 평범해 보이는 외관이지만 교회 내부로 들어가면 눈이 휘둥그레진다. 천장은 각기 다른 표정을한 144개의 천사 얼굴이 내려다보고 있고, 4면의 벽은 예수와 성모 마리아, 백마를 타고 있는 세인트 조지 등을 그린 벽화로 가득 채웠다. 교회를 지키는 성직자 역시 자부심이 대단하다. 그림 하나하나를 세세하게 설명하며 신과 함께 있는 공간임을 강조하고 또 강조한다.

 

 

커피에 담아 전하는 우애, 평화, 축복

이르가체페, 시다모, 하레르, 짐마 등 다양한 품종을 생산하는 아프리카 최대의 커피 생산국. 아라비카 커피의 원산지인 에티오피아에서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면 2% 부족한 여행이 될 게 뻔하다. 평소 커피를 즐기진 않지만 다들 커피 찬양을 해대니 한 번쯤 마셔봐야겠다. 아디스아바바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는 1953년에 오픈한 토모카(Tomoca)다. 의자 없이 서서 마시는 구조지만 늘 사람들로 북적인다. 신문을 보면서 한 잔, 창밖을 바라보며 한 잔,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한 잔, 이곳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가볍게 커피를 즐긴다. 이탈리아식으로 뽑아낸 카페 마키아토 한 잔이 우리나라 돈으로 600원 정도. 작은 에스프레소 잔에 내려앉은 풍성한 우유 거품이 입술에 먼저 닿고 부드럽고 진한, 그럼에도 부담스럽지 않은 쓴맛이 혀끝에 남는다.

에티오피아에서 커피는 커피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귀한 손님이 방문했을 때 진행되는 전통 방식의 커피 세리머니, 분나 마프라트(Bunna Mafflate)를 경험하면 확실히 알 수 있다. 랄리벨라에서도 곤다르에서도 운 좋게 먼 나라에서 온 이방인을 반기는 분나 마프라트에 참석했다. 향을 피워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한 여인이 원두를 볶아 가루로 빻고 커피를 끓인 후 총 석 잔의 커피를 내놓는다. 첫 잔은 우애, 두 번째 잔은 평화, 마지막 잔은 축복을 담았다. 족히 한 시간 이상이 소요되는 세리머니는 성스러운 종교 의식과도 같아 커피를 한 잔씩 마실 때마다 그들의 마음을 받아들이는 기분이다. 우애의 잔은 쓰디쓰고, 평화의 잔은 쌉싸름하게 썼다.

축복의 잔이 되어서야 약간의 부드러움이 느껴진다. 그래도 성공이다. 부드러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게 어딘가.

아디스아바바를 시작으로 랄리벨라, 곤다르를 여행하고 돌아온 6일의 여정. 눈부신 3000년의 역사와 문화는 경이로웠 고, 신을 향한 그들의 믿음은 존경스러웠다. 낯선 이방인을 반기는 석 잔의 따뜻한 커피, 그 안에 담긴 마음을 받아 돌아간다. 언젠가 그들에게도 우애와 평화, 축복을 선물하는 날이 오길 바라며.

 

 

 

[ 에티오피아에서 찾은 9개 유네스코 세계유산 ]

 

  • 암굴 교회군, 랄리벨라 Rock-Hewn Churches, Lalibela

에티오피아 제1의 기독교 성지이자 새로운 예루살렘. 전 세계 순례자와 신자들이 방문하는 곳으로 11개의 중세 암굴교회가 보존되어 있다.

 

  • 시미엔 국립공원 Simien National Park

천혜의 경관을 자랑하는 국립공원. 멸종위기인 왈리 아이벡스 염소를 비롯해 다양한 희귀 동식물이 서식한다.

 

  • 파실 게비, 곤다르 Fasil Ghebbi, Gondar

에티오피아의 옛 수도 곤다르에 위치한 파실리다스 황제와 후계자들의 거주지. 높은 성벽 안에 궁전과 연회장, 법원, 수도원 등의 건축물이 자리한다.

 

 

  • 아와시강 하류 유역 Lower Valley of the Awash

320만 년 전 오스트랄로피테쿠스 화석이자 인류의 가장 오래된 조상으로 알려진 루시(Lucy)를 비롯해 역사상 중요한 화석과 유적이 발견되는 지역.

 

 

  • 악숨 Aksum

고대 에티오피아의 중심이자 강력한 국가였던 악숨 왕국의 수도였던 곳. 1세기부터 13세기 사이에 만들어진 거대한 석조 오벨리스크와 고대 건축물 등이 남아 있다.

 

 

  • 오모강 하류 유역 Lower Valley of the Omo

인류가 공동체를 이루며 살았던 흔적이 발견된 곳.

 

 

  • 티야, 소도 Tiya, Sodo

비석 160여 개와 고고 유적이 있는 소도 지역. 그중 36개의 비석이 발견된 티야가 가장 대표적이다. 아직까지 비석의 내용을 해석하지 못했다. 무르시, 수르마, 하마르 등 독특한 문화와 풍습을 지키는 소수 부족 마을도 있다.

 

 

  • 하레르 역사 요새 도시 Harar Jugol, the Fortified Historic Town

높이 약 3.6m, 길이 약 3300m의 성벽과 성문 안에 만들어진 이슬람 요새 도시. 성곽 안은 좁은 골목을 따라 알록달록한 건물이 가득하다.

 

 

  • 콘소 문화 경관 Konso Cultural Landscape

계단식 밭과 돌담으로 에워싼 마을 등 척박한 땅을 일구며 살아온 콘소족의 전통문화가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다.

 

 

HOW TO GO ? 에티오피아항공이 인천-아디스아바바를 운항한다.
한국에서 아프리카 대륙을 잇는 유일한 직항 노선으로 인천에서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까지 11시간 30분 정도 소요되고, 에티오피아항공의 56개 노선이 아프리카 대륙 곳곳을 연결한다. 에티오피아 항공 본사는 아디스아바바 국제공항 근처에 위치해 있고, 자체적인 파일럿, 승무원 및 항공 정비 교육 시스템도 운영 중이다. 

│02-733-0325│

 

MAKE A PLAN 지역별 관광지, 비자, 황열병 주사 등 에티오 피아 관련 정보를 미리 알고 싶다면 에티오피아 홀리데이를 추천한다. 여행 정보는 물론 에티오피아 북부 또는 남부 문화역사 탐방, 시미 엔산 트레킹, 하레르 등 오직 에티오피아를 위한 여행상품과 주변 아프리카 국가를 포함한 여행상품 등을 갖추고 있다. 

│02-724-7199│www.etholidays.co.kr│

 

 

글·사진 김정원 취재협조 에티오피아항공(www.ethiopianairlin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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