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탄역 오산오색시장

사는 것이 따분할 때, 지겨울 때, 외로울 때, 사람이 그리울 때….
해외여행도 좋고, 명산대찰도 좋고, 혹은 동탄역에서 내려 오산오색시장을 찾아가 이제 갓 빚은 시원한 맥주 한잔을 들이켜는 것도 좋다. 

 

보리를 물에 담갔다가 사나흘 두면 싹이 튼다. 그것을 적당히 말리면 ‘맥아(麥芽)’, 즉 엿기름이 된다. 맥아를 곱게 빻아서 가루로 만든 뒤에 더운물에 섞는다. 그러면 녹말이 당화(糖化)된다. 당화는 곡식을 오래 씹으면 입에 단맛이 도는 것처럼 달달해진다는 뜻이다. 당화한 액체가 맥아즙이다. 그것을 체에 걸러 끓일 때 홉(hop)을 첨가한다. 홉은 덩굴식물로 작은 솔방울 같은 열매를 맺는데 맛이 쌉쌀하다. 이 맥아즙에 효모를 넣어 발효과정을 거친다. 효모는 곰팡이다. 일주일 정도 후에 뚜껑을 열어보면 표면이 부글거리는 거품으로 가득 차 있다. 신기하게도 효모는 맥아즙의 당분을 알코올과 탄산가스로 분해한다. 맥아즙을 낮은 온도에 가만히 두면 부유물이 차차 가라앉는다. 거기에 고인 누런빛의 물을 잘 거르면, 그것이 맥주다. 알코올이 되려면 녹말-당화의 과정을 거치니, 술의 어머니는 곡식의 단맛인 셈이다. 맥주를 ‘액체 빵’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그렇다. 보리가 맥주가 되기까지 50여 일 걸린다.

 

34.4세, 전국에서 제일 젊은 시장

맥주에 대해 대략 이 정도 알고 ‘오산오색시장’으로 들어간다. 동탄역에 내리거든 꼭 오산오색시장에 들러보는 것이 좋다. 택시로 10여 분 거리인데, 일부러라도 찾아갈 만큼 이것저것 구경거리와 즐길 것이 많다. 막걸리와 수제맥주, 순댓국과 케밥, 전통시장과 젊은이들의 축제… 이처럼 동떨어져 보이는 조합들이 어떻게 접점을 찾아가며 상생하고 있는지, 그런 것을 눈여겨보는 재미도 있다. 오산오색시장도 여느 시장처럼 성쇠(盛衰)의 길을 걸어오다가 몇 년 전부터 심각한 위기를 맞게 된다. 시장 주위에 롯데 마트, 이마트, 홈플러스가 잇따라 들어선 것이다. 손님은 하루하루 줄고, 매출은 떨어지고, 폐업을 걱정해야 할 지경에 이른다. 그러나 위기는 기회다. 대대적인 발상의 전환이 이뤄지는데, 그 핵심 키워드가 ‘젊음’이다. 오산의 평균 나이는 34.4세로 전국에서 가장 젊다. 누대로 비슷한 방식으로 살아왔던 100여 년 전통의 옛 시장이 시대와 환경에 맞게 변화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간이 온 것이다. 어떻게 젊음을 끌어들일까? 청년 앞에 놓여 있는 것이 무엇일까? 

 

눈치 볼 것도 없이 시원하게, 수제맥주 한잔 

“그것이 맥주죠.” 상인회 사무실에서 일하는 조정운 씨의 말이다. 나이는 스물여덟, 젊은 고객을 위해 상인회는 이제 대학을 갓 졸업한 조씨를 직원으로 뽑았다. “시장이 젊어지고 있어요. 상인들도 2세로 바뀌고 있고요, 청년창업이 많이 이뤄졌습니다. 300여 점포 가운데 30대가 주인인 곳이 100여 곳, 30% 이상을 차지할 겁니다. 그래서 야시장이 생겨나게 되었고, 야맥축제로 이어지게 됐습니다. 이를 성공으로 이끈 것이 바로 맥주입니다.” 오산오색시장에는 ‘수제맥주교실’이 있다. 약 3개월 코스로 맥주 제조의 전 과정을 배우게 된다. 이곳을 졸업한 사람들 이 시장 안에 맥주하우스를 공동창업하기도 했고, 맥주공방도 운영하고 있다. 맥주하우스는 쉼터처럼 열린 공간이다. 시장을 돌아다니며 장을 보고, 당장 먹을 음식이나 안줏거리 등을 사들고 ‘맥주쉼터’에 오면, 수제맥주 한잔 시켜놓고 누구 눈치 볼 것도 없이 마음껏 먹고 마실 수 있는 시스템이다. 야시장은 매주 금·토요일 오후 6시부터 열리는데, 작은 포차들이 줄지어 늘어서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뤄 그야말로 잔치이고, 축제다. 중국식 햄버거 로우지아 모어, 오리지널 케밥, 통새우 군만두, 찹쌀파이, 연길 양꼬치, 치즈곱창 볶음, 황금참치초밥, 장어구이, 수제 핫도그, 똠얌꿍 등 메뉴도 많고 국적도 다양하다. 대부분 하나에 5000원으로 값도 싸다. 젊은 연인들, 아이를 안고 있는 부부, 그리고 동남아 외국인 노동자들이 눈에 많이 띈다. 그들은 손에 안주를 사 들고 한쪽 방향으로 흘러간다. 맥주하우스 ‘CROW:D’를 향해. 

 

‘오로라’부터 ‘야맥축제’까지

이곳 시장에 수제맥주가 성공적으로 뿌리내릴 수 있었던 것은 박왕근 씨(38)의 공이 크다. 박 씨는 맥주교실을 이끌고 있는 술 선생님이다. 프랑스에서 와인을 공부하고, 체코 맥주 양조장에서 3년 동안 ‘브루마스터(Brew Master·양조기술자)’로 일한 전문가다. 2013년 여기에 맥주교실을 열었고, 제자들이 ‘CROW:D’를 오픈했다. 그런 밑바탕 덕분에 오산오색시장이 ‘수제맥주’를 테마로 한 문화관광형시장으로서 발돋움하게 된 것이다. “맥주는 크게 ‘에일’과 ‘라거’로 나뉩니다. 그것은 효모의 차이인데요, 에일은 따뜻한 온도에서 빠르게 발효시켜 향과 풍미가 강하고, 라거는 차가운 온도에서 느리게 발효시켜 청량하고 깔끔합니다. 흑맥주는 커피처럼 맥아를 어느 온도에서 로스팅했느냐의 차이에서 오는 거고요. 사람마다 선호가 달라요. 여러 실험 끝에 우리 입맛에 맞는 새로운 맥주를 개발했어요.” 그것이 ‘오로라’다. 오산오색시장에서는 자체 상표로 에일, 라거, 흑맥주 등 5~6종의 수제맥주를 개발했는데, 오로라가 압도적 인기를 끌고 있다. 수제맥주라는 하나의 작은 바람은 야시장 개설로 이어졌고, 2015년부터 1년에 두 번 전국 80여 종의 수제맥주 양조장들이 참여하는 ‘야맥축제’로 확대됐다. 오산오색시장은 맥주 덕분에 단순한 시장이 아니라 친구와 연인과 가족이 찾아 즐기는 공간이 되었으며, 하루 평균 방문객이 500여 명에서 2000여 명으로 늘어난, 더 젊고 더 많은 사람이 찾는 명소로 탈바꿈하고 있다.

 

 

 

이광이(동화작가) 사진 최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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