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역 영산포시장

잠잠하던 시장에 다시 사람이 몰리고 시장 으뜸 상품인 삭힌 홍어도 수월찮이 팔려 나간다. 오일장인 전남 나주 영산포 시장에서 탁주 한 사발에 톡 쏘는 맛이 일품인 홍어 한 접시로 배와 마음을 채웠다.

 

엊그제 눈 오더니, 어느덧 금년 봄도 끝에 섰다. 세월은 물처럼 흘러 사람을 기다려주는 법이 없다. 절기는 곡우에서 입하로 넘어간다. 씻나락(볍씨)이 잠을 깨고, 나물이 뻣뻣해지는 때, 지금 차를 딴다. 곡우 전후에 땄다 해서 ‘우전차’다. 부들부들한 두릅의 첫 순을 따 먹듯이, 차나무의 첫 싹을 따서 마시면 은근하게 우러나오는 맛이 싱그럽다. 나물이 피고 차를 따고 모종을 틔운다는 것은 곧 여름이라는 뜻이다. 5월은 아직 버들가지의 초록이 흩날리는 봄이고, 어린이날 연휴도 있으니, 남도 한 바퀴 둘러보기에 딱 좋은 시간이다. SRT를 타고 나주역에서 내려 곰탕에 수육 한 접시, 홍어에 탁주 한잔 걸치고 시작한다.

 

영산포시장 홍어 맛은 제대로다

캔을 따는 순간, 식당 안 모든 사람이 얼굴을 찌푸리고 코를 싸매는 세계에서 가장 악명 높은 발효음식이 ‘하링(haring)’ 이다. 네덜란드 청어 절임, 짭짤하고 시큼한 하링은 ‘지옥의 냄새 천국의 맛’으로 유명하다. 북해에서 잡혀 올라오는 엄청난 양의 청어, 그 처치 곤란한 청어의 저장방법을 개발한 덕분에 네덜란드는 17세기 유럽의 해상권을 장악했고, 암스테르담은 청어의 뼈 위에서 번성했다. 우리 홍어가 하링과 다르지 않다. 모든 유기물은 시간이 흐르면서 발효되거나 부패한다. 우유를 놔두면 썩지만 발효시키면 요구르트가 되고, 배추를 놔두면 썩지만 소금에 절여 담그면 김치가 되듯이 유기물은 조건을 잘 맞춰주면 유익하게 변화한다. 홍어를 가득 싣고 흑산도를 출발한 배가 순풍에 돛을 달고 영산강 하구까지 와서, 강을 거슬러 내륙으로 들어오는데 열흘 남짓 걸렸다고 한다. 오늘날 홍어를 보통 것은 저온에서 20일 정도 삭히니까, 뱃길에 그 정도 지났으면 홍어에 삭은 맛이 드는 자연발효의 시간이 흐른 셈이다. 네덜란드의 선조들이 하링을 발견했듯이, 우리의 조상들도 그렇게 삭힌 홍어를 찾아냈다.

영산포의 홍어 역사는 고려 말부터 600년이 넘는다. 사람들은 대대로 홍어를 팔고 어업을 하며 생계를 꾸려왔다. 그러나 숱한 세월 퇴적이 이뤄지고, 영산강 하구가 막히면서 영산포는 포구의 기능을 잃어버렸고, 국내 유일한 내륙 등대인 영산포 등대의 불빛도 꺼졌다. 설상가상으로 흑산도 홍어의 씨가 마르면서 장은 파장이 됐고, 사람들은 떠나기 시작했다. 이곳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한 것은 아이로니컬하게도 칠레, 아르헨티나 등지에서 들여온 홍어 덕분이다. 값은 국내산 절반에도 못 미친다. 여기에 냄새가 거의 없는 포장기술과 전국 어디로든 배달되는 택배가 더해지면서 홍어는 다시 날개를 달았고, 파장되었던 시장은 다시 들썩거리고 있다. 오직 홍어 하나로, 영산포는 어느 파시의 전성기 못지않게 은성했던 옛 영화를 다시 누리고 있다.

 

영산포 시장과 황포돛배 선창 사이에 홍어 요리집 40여 곳이 성업 중인 이곳이 ‘홍어의 거리’다. 여기 터줏대감, 자칭타칭 원조집은 ‘김지순 홍어집’이다. 김지순씨(66)는 6·25전쟁 이전부터 이 바닥에서 홍탁 장사를 하던 어머니 최순덕 씨의 가업을 이어받았다. 지금은 김 씨 부부, 그리고 두 아들 내외가 함께 일한다. 해동-해체숙성 과정을 거친 홍어가 매일 전국으로 배달되는 도매 전문집이다. “홍어는 삭히는 게 기술이요. 적당한 온도에 적당한 습도에…그것이 비밀이라. 기본으로 20일은 넘겨야 하는데 그다음부터는 시간이 알아서 하제.” 이 홍어집은 TV에 나온 ‘서민갑부’다. 국내 마트에도 납품하 고, 두바이, LA, 파리 등 해외 주문도 많다. 명절에도 쉬지 않는다. “좀 쉬면서 하시지 그러냐?”고 물었더니, 김 씨의 정직한 대답이 돌아온다. “평생 홍어 팔고 살면서 자식 키우고 돈도 많이 벌었는데, 돈 벌었다고 건방지면 안 돼요. 명절때 타향살이하던 사람들이 돌아오잖아요. 그 사람들 홍어 먹으러 꼭 들르거든. 그런데 문 닫으면 손가락질하지 않것어?”   

나주역에서 내려 영산포 시장 쪽으로 가기 전에 먼저 들러야 할 곳이 있다. 바로 가까이 있는 옛 나주역. 1929년 학생독립 운동의 진원지로서 유서 깊은 곳이다. 그해 10월 30일 나주 ~광주를 오가던 통학 열차 안에서 일본 학생들이 조선 여학생을 희롱하자 광주고보 2학년 박준채가 격분하여 일본 학생을 준열히 꾸짖으면서 한일 학생 간 싸움이 시작됐다. 이어 광주역의 충돌과 1차, 2차 봉기를 거쳐 일제강점기 3대 저항운동으로 손꼽히는 11·3 광주학생독립운동이 여기서 촉발됐다. 옛 나주역 옆에 나주학생독립운동 기념관이 건립돼 있어서 아이들과 손잡고 꼭 한번 찾아보기를 권한다. 영산포 시장은 매 5일, 10일 열리는 오일장이다. 옛날에는 우시장이 열리는 나주 일대에서 제일 큰 장이었다. 이곳 우시장 덕분에 나주 곰탕이 유명해졌다. 지금은 과일과 채소, 해산물, 잡화 등을 파는 여느 시장과 크게 다를 것은 없으나 장날에 가면 깊은 시골에서 채취한 산나물과 약초 같은 귀한 것들을 만날 수 있다. 황포돛배를 타보는 것도 좋다. 영산포 시장 근처에 선창이 있다. 영산강 수로를 이용해 생필품을 실어 나르던 돛배가 사라진 지 30여 년 만에 부활해 관광객을 태우고 강을 오르내리고 있다.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의 해설이 일품이다. 그 선창에서 정미소까지 약 700m에 일본식 가옥 상가 등 100여 채가 늘어서 있는데 그것도 소중한 볼거리다. 나주 일대는 호남의 곡창으로 일제강점기 수탈의 현장이었다. 그래서 동양척식회사 문서고, 일본인들의 숙소, 미곡 창고 등 근대문화 유산들이 남아 있다. 앞서 ‘김지순 홍어집’은 식당을 겸하지 않는다. 홍탁 즐기기 좋은 곳으로 추천하는 식당은 금일홍어, 영산홍가 등 몇몇 집이다. 영산홍가에 가면 홍어를 회, 찜, 탕, 애, 포, 보리애국 등 여러 가지 요리로 한꺼번에 맛볼 수 있고, 주인 강건희 씨에게서 홍어가 해음어이며, 장가간 홍어와 안 간 홍어의 차이, 홍어의 ‘거시기’ 사연 등도 들을 수 있다.
 

이광이(동화작가) 사진 최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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