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역 자갈치시장

일제강점기 시절, 고운 자갈이 많은 어촌에 자연스레 항구가 생기며 시장이 형성됐고 그렇게 사람이 모여들면서 지금은 부산의 그 유명한 ‘자갈치시장’으로 명맥이 이어졌다. 좌판에 널린 생선도 많고 모여드는 사람도 많고, 그만큼 넘치는 인정도 후한 곳이다.

 

 

 

부산 영도(影島)는 통통한 우럭처럼 생겼다. 영도다리와 부산대교가 연결하는 영도는 낚시에 걸려 뭍으로 끌려 올라오는 한 마리 물고기 같다. 그 물고기의 긴 등선과 송도의 해안선 사이로 골프 홀컵처럼 쑥 들어간 곳에 자갈치시장이 있다. 시장에서 북으로 길을 하나 건너면 국제시장이고, 하나 더 건너면 부평깡통시장이다. 부산역에서 전철로 가면 중앙역, 남포역 다음이 자갈치역이다. 자갈치시장은 그냥 시장이 아니다. 우리나라 최대의 어업 전진기지이고, 동아시아 최대의 어시장이라는 수식으로도 부족하다. 우리 민족의 생존과 애환과 가난과 남루한 역사가 아로새겨진 곳이다. 이를 악물고 살지 않고는 하루도 삶을 지탱할 수 없었던 시절, 식민과 해방, 6·25전쟁과 피란과 분단이라는 근현대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한 사람 한 가족 눈물겨운, 생존투쟁의 현장이 자갈치시장이었다. 이곳의 원래 이름은 남쪽 물가라는 뜻의 ‘남빈(南濱)’이다. 주먹만 한 자갈이 많은 아름다운 어촌이었다. 1928년 남빈은 매립되면서 항구가 생겨나 ‘남항(南 港)’이 되었고, 나중에 ‘남포동(南浦洞)’이 된다. 거기에 고깃배가 드나들며 자연스레 어시장이 형성되었다. 그것이 일제강점기의 남빈시장이다. 이 시장은 대량의 수산물과 청과물이 거래되는 공설시장으로 성장했고, 이름도 중앙도매시장으로 바뀌었다. 큰 배가 먼 바다에 나가서 많은 물고기를 잡아온 것은 경매와 공판을 통해 대형시장에서 거래되는데, 영세한 작은 배들이 잡아온 소량의 물고기들은 어찌할까? 그래서 중앙도매시장 옆에 노점 좌판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아지매들이 나무 상자에 생선을 가득 받아다가 길거리에 앉아 팔기 시작한 것이 자갈치시장의 뿌리다.

“자갈치시장은 ‘자갈치아지매’가 주인이라. 점포가 있나 뭐가 있나, 길바닥에 나무 판때기 하나 놓고 곰장어도 구워 팔고 해삼, 멍게도 팔고, 미역, 톳나물, 고래 고기 삶은 것, 그런 것들을 팔았지. ‘판때기 장수’라고 안 들어봤나?” ‘자갈치 아지매’로 시작하여 44년째 장사를 하고 있는 남해금수횟집 주인 진순옥 씨(65)의 말이다. 전쟁 끝나고 수성동 판자촌에서 가난하게 살다가 진씨의 어머니 진외정 씨가 자갈치에서 처음 장사를 시작한 이래 딸이 이어받고, 다시 손자가 이어 받아 60년 넘도록 3대 가업을 꾸려오고 있는 셈이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니 성을 따라 모녀의 성이 같다. 진씨의 남편은 생선을 굽고, 아들은 회를 뜨고, 며느리는 주방을 보고, 본인은 상을 차리는 온 가족 분업 시스템이다. 남해 금수횟집은 회도 좋지만, 생선구이가 더 유명하다. 밑반찬도 다양하고 거기에 가자미, 볼락, 갈치, 고등어, 대구목살 같은 푸짐한 구이 덕분에 손님들의 발길이 줄을 잇고 있다. 1인 분에 1만 원이다. “다들 생선을 그냥 구워서 팔았는데 어머니가 처음으로 생선에 밀가루를 발라 팔았지. 먹을 것이 귀할 때라 양도 많고 배도 부르고… 그래서 우리 집이 생선구이 원조라요.”
해방 당시 40만을 헤아리던 부산 인구는 귀국한 동포와 전쟁 피란민이 대거 유입되면서 두 배로 폭증했다. 사람들은 곳곳에 판잣집을 짓고, 일을 찾으러 다녔지만, 마땅한 일거리가 있을 리 만무했다. 그들은 역과 시장으로 몰려들었다.
역전에서 지게꾼으로, 시장에서 노점상으로, 그 북새통 속에서 굶지 않고 하루하루 연명할 수 있었던 공간이 역과 시장이다. 시장으로 온 사람들은 길거리에 다닥다닥 붙어 판때기를 놓고 장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그 이름 없는 길거리 시장이 관청의 눈에는 불법이다. 노점은 늘 불법정비의 타깃이 되었다. 전쟁 직후 부산시는 대대적인 철거에 나섰고, 1961년 쿠데타로 들어선 군사정권도 정비라는 명목으로 판잣집들을 강제 철거했다. 관의 ‘사업’이 시작될 때마다 좌판은 ‘정비’되고 쫓겨나기도 했지만, 그래도 끈질기게 살아남은 것이 노점이다. 결국 부산시는 1969년 3층짜리 건물을 짓고 인근 노점상들을 수용해 시장을 만들었다. 자갈이 많다 해서 따온 ‘자갈’과 물고기를 뜻하는 ‘치’를 붙여 어엿한 이름을 갖게 된 것이 자갈치시장이다.
자갈치시장은 2003년 현대화사업을 추진하면서 ‘오이소! 보이소! 사이소!’라고 큼직하게 쓰인 아치가 손님을 맞이하는 전국적인 관광명소로 탈바꿈했다. 건물 지붕은 날아가는 갈매기를 형상화했는데, 도약과 비상, 활공을 의미한다고 한다. 전망대까지 갖춘 7층 건물에 1층 수산물시장, 2층 회센터, 그리고 뷔페와 컨벤션센터, 주차장이 완비된 깔끔하고 세련된 시장이다. 자갈치시장은 영도다리 바로 옆 건어물시 장에서 충무동공동어시장까지 그 안에 10여 개의 크고 작은 시장들, 길게 늘어선 노점거리까지 통칭하여 부르는 우리나라 최대 시장의 대명사가 되었다. 지금은 봄철이라 도다리 회가 특히 맛있다. 값도 비싸지 않고 양도 많다. 가족과 함께 1층에서 광어나 도미, 우럭 등 활어를 골라 2층에서 신선한 회를 먹을 수도 있고, 시장길 따라 걸으면서 노점에서 곰장어를 한 접시 먹어도 좋고, 말린 생선들을 사서 가져가기도 좋은 계절이다. 충무동 쪽으로 가면 선원들의 숙소로 이용됐던 ‘충무동 여인숙 골목’이 아직 남아 있고, 선원을 대상으로 의류, 모자, 바다에서 필요한 물건들을 팔았던 해안시장, 파전과 생선, 잡화를 파는 골목시장도 다녀볼 만하다. 또 가까이 창선동 먹자골목이 있는데, 충무김밥과 순대, 어묵, 떡볶이, 유부주머니 등 색다른 먹을 거리가 즐비하다.
척박한 땅에 하나의 씨앗이 떨어져 뿌리를 내리고, 비바람 속에서도 살아남아 나무로 성장하고, 열매를 맺어 다시 씨를 뿌리고, 나중에 광대한 숲을 이루는, 한 생명의 지난하고도 끈질긴 힘을 자갈치시장은 잘 보여주고 있다.

 

 

 

이광이(동화작가) 사진 최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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