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 그리다, 이성자

고향을 떠올리며 한 번, 어머니를 생각하며 또 한 번, 엄마를 찾을 아이들이 눈에 밟혀 또 한 번. 그는 그렇게 사무친 그리움을 캔버스 위에 꾹꾹 눌러 담았다. 

 

 

1918년 전남 광양에서 태어난 이성자는 일본 도쿄 지센여자대학 가정학과를 졸업하고 평범한 결혼생활을 이어가다 6·25전쟁 이후 파경을 맞고 프랑스로 건너갔다. 1953년 파리 그랑드 쇼미에르 아카데미에 입학해 회화와 조각을 공부하고, 1956년 파리 시립근대미술관에서 열린 <보자르> 전에 출품한 작품 <눈 덮인 보지라르 거리>가 문예주간지 <레 레트르 프랑세즈>에 개성 있는 작품으로 소개되면서 본격적으로 화가의 길을 걸었다. 회화와 목판화 등을 병행하며 작품 활동을 펼친 그는 프랑스와 한국을 오가며 80여 회의 개인전과 300회 이상의 그룹전을 열고, 1991년 프랑스 문화 예술공로훈장 ‘슈발리에’를 수상 했으며, 2009년 프랑스 남부 투레트에서 작고했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는 현재 서양화가 이성자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이성자: 지구 반대편으로 가는 길> 전시회를 열고 있다. 이번 전시는 작가의 시기별 대표작을 4개 주제로 나누어 초기 1950년대 ‘조형탐색기’, 1960년대 ‘여성과 대지’, 1970년대 ‘음과 양’, 1980년대부터 작고할 때까지 ‘지구 반대편으로 가는 길’로 구성했고, 회화 및 판화 127점과 포스터, 드로잉, 목판 등의 아카이브를 소개한다.
~2018년 7월 29일 (월요일 휴관)|2000원|경기 과천시 광명로 313|02-2188-6000

 

프랑스 미술계에서 활동한 대한민국 1세대 추상화가 이성자. 처참했던 6·25전쟁, 돌이킬 수 없었던 결혼생활, 세 아이와의 생이별까지 견딜수 없는 슬픔을 뒤로한 채 혈혈단신 도망치듯 향한 곳이 프랑스였다. 말은 잘 통하지 않지만 하루하루 의상디자인을 공부하며 꿈을 키워가던중 그의 잠재된 재능을 꿰뚫어 본 선생님의 권유로 회화 수업을 받게 되었는데, 이는 곧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는다. 화가 이브 브레예와 앙리 고에츠에게 회화를, 조각가 오시 자킨에게 조각을 배웠을 뿐만 아니라 앙리 고에츠의 조교로 발탁되어 차근차근 화가로서의 기초를 다진 것이다. 한국에서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은 까닭에 오히려 깨끗한 도화지나 다름없었던 그의 예술적 기법에 당대 최고의 프랑스 예술가들의 가르침이 녹아들고, 낯선 땅에서 느끼는 이방인의 애환과 아무리 멀리 있어도 숨길 수 없는 한국인의 본능이 어우러지며 ‘이성자’라는 이름 석 자, 딱히 다른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만의 독특한 작품이 탄생했다. 1950년대 구상과 추상 미술에 매료되었던 그는 1960년대에 들어서 <내가 아는 어머니>, <오작교> 등 어머니와 모성, 그리움을 주제로 한 작품을 발표했고, 15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와 그토록 간절히 바라던 가족과 상봉한 후부터 도시와 중복, 음양 등을 소재로 더욱 자유로운 작품 세계를 펼친다. 프랑스 누보로망의 거장인 시인이자 소설가 미셸 뷔토르와 공동작업한 시판화집도 그중 하나다. 고희를 넘어 팔순이 넘는 나이에도 붓을 놓지 않았던 그는 1970년대 후반부터 작고할 때까지 프랑스와 한국을 오가며 비행기 안에서 내려다본 풍경과 하늘, 은하수, 우주를 그만의 시선으로 풀어낸다. 60년 넘는 타국 생활, 하지만 작품에서만큼은 이방인이 아닌 예술가, 그 자체였다.

 

10월의 도시 1, 72 1972년 Acrylic on Canvas, 130x162cm, 개인 소장
투레트의 밤 8월 2, 79 1979년, Acrylic on Canvas, 150x150cm, 개인 소장

 

 

 

김정원 사진 손준석 작품 사진 및 자료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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