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과거와 현재,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곳”

“바다에 빠지지 않기 위하여 부산진에서부터 몸을 뻗대며 조심조심 들어오던 기차.” 목이 쉬도록 울며 서울역에서 부산역까지 27시간 35분이 걸려 기어왔던 김동리 소설 속의 열차는 이제 세 시간이 채 못 되어 부산역에 당도한다. 

 

 

 

 

풋사랑 담은 나그네는 떠나고 경상도 아가씨만 홀로 남았네
1953년 부산역전 대화재로 역사가 전소되는 시련을 겪은 부산역은 옹이 품은 웅숭깊은 나무처럼 말없이 기차에서 몸을 내린 여행객들을 광장에 부리고 있다. 단 며칠의 풋사랑을 담고 떠나는 그들은 정작 부산의 속살은 느껴보지 못한 채 떠나는 ‘이별의 부산정거장’ 속 나그네와 같다.
6·25전쟁 시절 부산에 피란 왔던 나그네가 서울이 수복되어 돌아가면서 사랑했던 경상도 아가씨와 이별하는 모습을 그린 ‘이별의 부산정거장’은 빛처럼 환한 현재의 부산역이 품은 어두운 과거의 그림자를 대변하고 있다. 화려하고 역동적인 부산의 외피 속에 숨은 곳곳의 경상도 아가씨를 만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겨본다.
‘경상도 아가씨’의 흔적이 남아 있는 40계단을 가기 위해 부산역 광장으로 나오면 멀리 산 위 마을이 눈앞에 펼쳐진다.
전쟁의 화염을 피해 부산으로 몰려든 피란민들이 산 중턱에 무허가 판잣집을 짓고 살았는데, 이른바 산복도로 마을이다. 마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수많은 계단과 가파른 길은 고단한 그날의 삶들을 조곤조곤 들려주는 듯하다. 이곳에 터전을 마련한 이들이 자갈치시장, 부산항 부두, 국제시장에 위치한 일터를 찾아가기 위해 또는 부산역으로 가기 위해 매일 오르내렸던 곳이 40계단이다. 부산항 부두에서 들어오는 구호물자가 거래되기도 했고 암달러상이 활개를 치던 이곳에 지금은 기차 레일을 깔고 조성한 ‘기찻길 거리’와 ‘바닷길 거리’ 가 있다.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꾸며놓은 기차 레일을 타고 함께 간다.
“바다에 빠지지 않기 위하여 부산진에서부터 몸을 뻗대며 조심조심 들어오던 기차.” 목이 쉬도록 울며 서울역에서 부산역까지 27시간 35분이 걸려 기어왔던 김동리 소설 속의 열차는 이제 세 시간이 채 못 되어 부산역에 당도한다.

삶과 죽음을 보듬고 사는 마을 돌산마을과 비석마을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공존하는 곳을 둘러봤다면 삶과 죽음을 보듬고 사는 마을로 발길을 돌려보자. 일명 안동네라고도 불리는 돌산마을은 부산 진구 전포동과 남구 문현동을 잇는 산꼭대기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6·25전쟁의 피란민과 1960~1970년대 공업화로 피폐해진 농촌을 떠나 부산으로 이주한 사람들이 무덤이 있는 산 위에 한 채 두 채 짓기 시작한 무허가 판잣집이다. 이들 무덤은 어느 집 부엌문 옆에 혹은 마당가에 또는 어느 집 창문 아래 풀을 덮은 채 누워 있다. 그야말로 생과 사가 공존하는 공간이다.
또 하나의 무덤 마을은 서구 아미동에 위치해 있다. 일본인 공동묘지가 있던 비석마을이다. 약 3평쯤 되는 일본식 특유의 평평한 돌무덤 위에 비석을 기둥 삼아 비닐이나 가마니 등을 이용해 집을 짓고 살았으니 아래층은 죽은 자의 영혼이 잠들어 있고 그 위층은 산 자의 휴식처가 되는 기묘한 이층집이 만들어진 것이다. 죽은 자의 집을 빼앗은 미안함에서 비롯된 탓인지 이곳 비석마을에는 유난히 귀신이야기가 많이 떠돈다. 한밤중에 일본 신발인 게다를 신고 딱딱거리며 걷는 소리를 들었다거나 날아다니는 도깨비불을 보았다는것 등이다.
이 밖에도 산속 좁은 분지 제일 안쪽에 자리 잡은 곳이라 하여 붙인 것이라 추정되는 안창마을, 소 막사를 이용해 귀환 동포와 피민들이 살았던 소막마을 등은 전쟁의 아픔과 삶의 끝에 선 외지인들을 품 넓은 어머니처럼 끌어안은 부산에 남겨진 옹이들이다. 기차를 타고 부산역에 내리거든 이들 옹이를 어루만지러 가보시라.

 

 

 

나여경

기차여행을 사랑하는 소설가. 2001년 경인일보 신춘문예 소설로 등단한 후 첫 창작집 <불온한 식탁>을 2010년 발간했다. 그 후 간이역과 주변 풍경을 스케치한 여행 산문집 <기차가 걸린 풍경>, 두 번째 창작집 <포옹>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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