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과 독백, 그땐 왜 몰랐을까

우리와 그들의 술 대하는 자세
우리는 술의 레이블을 보지 않는다. 어떤 재료로 어떻게 만든 술인지 관심을 두는 사람이 많지 않다. 성년이 되고 대학에서 선배들과 처음 술을 마셨다.
“선배가 주는 술이니 받아.” “이건 무조건 다 마셔야 하는 술이야.” 대부분 초록색 병 소주나 한국 맥주, 대중 막걸리였다. 대한민국의 성인이라면 누구나 다 마시는 술인 줄 알았고, 술맛은 그저 쓰고 맛없다고 생각했다. 주정이니 아스파탐 같은 성분에 대해선 알지도 못했고, 관심도 없었다. 그저 ‘왜 이런 술을 맛있다고 마실까?’라고 생각했다. 하루 이틀 마시다 보니 어느덧 술은 ‘취하기 위한 도구’가 되어 있었다.
외국과 한국의 마리아주는 접근 방법이 다르다. 외국에서는 보통 음식을 먼저 입에 넣고 씹다가 어울리는 술을 곁들인다. 와인의 경우 음식의 종류, 생선·육류 등 식재료, 소스, 조리법에 따라 어울리는 품종을 세분화해서 분류하고 있다. 마리아주의 개념이 식문화 전반에 자연스레 녹아 있는 것이다. 우리는 반대다. 우선 건배를 하고 술을 들이켠다. 알코올 향이 강하게 느껴지는 소주를 입에 털어 넣으니 자연스레 시원한 국물이나 안주를 찾게 된다. 입안의 알코올 기운을 빨리 가시게 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늘 마시는 술의 제조장을 아무도 찾지 않는다. 해외여행을 가면 필히 양조장을 방문한다. 와인, 위스키, 맥주 등 현지에서 갓 만든 술을 맛보는 것만으로도 설렌다. 얼마 전엔 일본 여행을 갔다가 깜짝 놀랐다. 아사히맥주 공장 투어였는데, 사람이 많아 예약이 힘들 정도였다. 이날 맛본 아사히 맥주는 기가 막혔다. 갓 제조해 신선한 맥주를 얼음통에 넣어둔 잔에 담아주니 캬, 무슨 말이 더 필요하랴.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아무도 희석식 소주 공장, 대기업에서 생산하는 맥주 공장에 가지 않는다. 나조차도 카스맥주 공장, 서울장수막걸리 양조장에 가봐야겠단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헌 술 줄게, 새 술 다오
외국인들을 만나 함께 시음할 때면 깜짝 놀라곤 한다. 그들이 술을 맛보는 자세, 문화는 우리와 완전히 다르다. 색을 보고 향을 맡아보고, 레이블을 보며 어떤 재료로 어떻게 만들었는지를 묻는다. 입에 술을 머금고는 입안에서 이리저리 굴려보고 느낀 바를 설명한다. 다양한 표현을 쏟아내고, 서로 술맛에 대해서 의견을 교환한다. 한번은 희석식 소주를 들이밀었다 깜짝 놀랐다. ‘손 소독제 냄새가 난다’는 표현을 들었다. 한국에 어느 정도 살았다는 외국인 중 상당수가 초록색 병 소주를 절대 마시지 말아야 할 술로 꼽는다. JTBC <냉장고를 부탁해> 에 출연 중인 미카엘 셰프는 “소주만 마시고 나면 다음 날 눈이 침침해져요. 절대로 안 마셔요”라고 말해 내게 충격을 안겼다.
이런 상황에서 내게 전통주는 가뭄에 단비와도 같았다. “우리나라에 이런 술이 있었어?” 할 정도로 보석 같은 술이 지역별로 다양하게 존재한다. 우리 땅의 특성을 그대로 담고 있고, 우리 농산물과 물을 그대로 담아냈다. 주식인 쌀을 필두로 보리, 밀, 고구마 등 각종 농작물을 바탕으로 생산하는 탁·약주, 증류주. 여기에 부재료로 각종 한약재, 식물의 잎과 꽃, 과일 등을 더해 개성을 드러낸다. 주정에 물을 탄 술과는 속성 자체가 다르다. 곡식에 물과 누룩만을 더해 자연 발효하고 증류하기 때문에 그 술만의 고유 향이 존재한다. 와인처럼 서양 술들이 강조하는 그들만의 ‘아로마’를 우리도 당당히 소개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과실주의 세계도 아주 매력적이다. 와인은 포도로만 만든다? 한국 와인을 만나면서 이 편견도 깔끔하게 깨졌다. 포도는 기본이고 사과, 오미자, 다래, 복숭아, 블루베리, 무화과, 비파 등 각 지역의 특산물이 다양한 와인으로 생산되고 있다. 맛과 향? 당연히 저마다 개성이 있다. 지금 소개한 이 술들은 샷으로 들이켜는 술이 아니다. 어울리는 음식과 함께 한 잔 한 잔 천천히 음미해야 할 술이다. 더더욱 중요한 건 이 술들을 생산하고 있는 술도가를 직접 방문해볼 수 있다는 것! 1박2일 정도 여행하며 양조장을 여러 군데 둘러 보는 재미도 정말 쏠쏠하다.
‘주량 총량의 법칙’이라고 들어봤는지? 사람마다 평생 마실 수 있는 양이 정해져 있다는 거다. 초반에 과하게 달리면(?) 말년엔 그 좋아하는 술을 맛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슬픈 법칙이다. 전통주를 만나고 나니 주당인생 근 20년 동안 허무하게 날려버린 내 주량이 너무 아깝다. 외국술 알리느라 10년 넘게 쏟아온 공력을 이제는 우리나라의 좋은술 마시고 알리는 데 써야겠다.

 

 

이지민
‘PR5번가’ 대표. 우리나라 술을 널리 알리고자 전통주 소개 사이트 ‘대동여주(酒)도’와 주류 전문 영상 사이트 ‘니술냉 가이드(언니의 술 냉장고 가이드)’를 운영하고 있다.
대동여주도 www.facebook.com/drinksool 니술냉 가이드 www.facebook.com/nsool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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