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 이준익 “실패는 곱씹을수록 단물이 된다”

이준익 감독은 명실상부 ‘믿고 보는 감독’이다. 2003년 <황산벌>로 300만 관객을 극장가로 불렀고, 이후 2005년 <왕의 남자>로 1000만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꾸준히 작품을 했고, 매번 화제를 낳았다. 다양한 작품에 특별출연까지 하며 관객들과 가까워졌다. 하지만 이준익 감독은 자신의 필모 그래피 중 실패했던 작품을 꺼내 들었다. “<키드캅>으로 데뷔를 했다. 그건 할리우드 상업영화를 흉내 낸 작품이었다. 그게 망했다. 창피하더라. 감독을 하겠다고 나섰는데 미국 영화나 흉내를 내니 부끄러웠다. 그래서 스스로 은퇴를 했었다”고 고백했다. 이후 그는 스스로를 감독에 대한 자질이 부족하다 여기고 약 10년 동안 연출에 손을 대지 않았다. 물론 <황산벌>로 재기 했다고 하면서도 곧바로 벼랑 끝으로 떨어지는 기분을 맛봤다고 말했다. 연출작들의 흥행 여부에 대해서는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고 비유했다.
그는 웃어도 되는 순간에도 끝없이 항상 자신을 낮추고, 주변을 돌아보는 습관을 답습했다. 이는 이준익 감독이 더 높이 멀리 비행하는 데 무한정으로 사용할 수 있는 연료가 됐다.

 

이토록 뜨거운 순간

현재 극장가에서 상영 중인 이준익 감독의 열두 번째 영화 <박열>은 손익분기점을 넘어 2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저예산 영화로는 이례적인 일이다. 극의 주인공이자 실존인물인 박열은 이준익 감독이 2000년 개봉한 영화 <아나키스트>의 제작자로 나섰던 때 자료 조사를 통해 알게 된 인물이다. 1923년 도쿄, 6000명의 조선인 학살을 은폐하려는 일제에 정면으로 맞선 조선 최고 불량 청년이다. 극은 박열과 그의 동지이자 연인 후미 코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이준익 감독은 이들의 이야기를 왜곡 없이 재현해야 한다고 믿었다. 화려한 볼거리를 포기하고 의도적으로 적은 제작비를 사용한 이유다. 이준익 감독은 그렇게 해서라도 이름 없는 독립운동가 박열과 후미코의 삶을 조명하고 싶었다. 그리고 90년 전 그들의 삶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들처럼 뜨겁게 사느냐고.

또 다른 도전, 영화 ‘박열’이 깨뜨린 또 다른 나

Q 박열이라는 인물을 알게 된 후 약 20년 만에 극이 완성됐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하지만 ‘이렇게 웃겨도 되나’ 싶을 정도로 웃음이 터진다.
우선 식민지 시대를 바라보는 관점의 틀을 깨는 것이 목표였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라면 반일감정이나 잔인한 고문, 억울한 사연 등이 떠오르지 않나. 과거 박열과 후미코는 예측의 프레임을 깬 사람이다. 그것을 극으로도 표현하고자 했다.

Q 박열을 이제훈이 연기했다. 파격 변신이라는 반응이었다.
이제훈은 앞서 영화 <파수꾼> <고지전> 등에서 보여준 강렬한 모습들이 있다. 이후 다른 역할을 맡고 이미지가 변했고, 그 과정에서 강렬함은 가슴속에 더 단단하게 내재됐을 거다. 여기선 그 욕망이 세련되게 드러났다. 지나치게 감정을 배설하는 인물이 아님에도 이제훈은 그 간극을 훌륭하게 채워냈다. 주연배우는 자기 연기만 해선 안 된다. 영화 전체를 책임져야 할 무게를 가졌기에 자신의 장면 외의 것도 내다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제훈은 훌륭했다.

Q 여주인공으로 등장한 배우 최희서는 대중에게 다소 생소하다.
최희서와 시나리오 단계부터 함께했다. 그는 자신이 감히 후미코 역을 하게 될 거라고 생각을 못 했다고 하지만, 난 확신이 있었다. 내가 모르는 배우였다면 고민했을 거다. 하지만 <동주>를 통해 그의 연기적 검증은 이미 끝난 상태 였다. 얼마나 잘하는지 지켜봐달라.

Q 많은 감독이 모니터 앞에서 ‘컷’과 ‘오케이’를 외치는 것과 달리 촬영현장 구석구석을 돌아다닌다고 들었다.
나 자신을 못 믿는다. 영화감독이 10편 넘게 작품을 했는데 안 해본 걸 찾는 게 더 빠를 거다. <박열>이 열두 번째 영화다. 아이디어가 바닥이 난 거다(웃음). 바닥난 감독은 스태프와 배우들의 넘치는 의욕을 밑천으로 영화를 만든다. 이번 영화에선 민진웅에게 ‘불령사는 네가 책임져라’ 라고 했다. 그가 불령사 역의 친구들을 데리고 술을 먹으며 으샤으샤했다. 일본 내각은 김인우에게 맡겼다. 책임 전가형 감독이랄까? 하하하. 어쨌든 그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Q 작품을 위해 의도적으로 적은 제작비를 사용했다. 6주라는 짧은 시간에 촬영했는데. 열악한 환경은 어떻던가.
다분히 자학적인 성향이 있는 것 같다. 척박한 환경에서 뭔가를 해냈을 때 오는 쾌감이 좋다. 천천히 찍으면 늘어진다고 생각해 100m 달리기로 뛴다. 물론 나 때문에 많은 스태프와 배우들은 혹사당한다는 느낌을 받았을 수도 있다.

 

규제보단 자율, 이준익표 스타일

Q 한 장면을 여러 번 촬영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특히 ‘원 테이크 오케이’를 좋아한다고.
반복적으로 같은 장면을 촬영하면 배우들의 감정이 닳는다고 생각한다. 다시 촬영하면 직전의 연기보다 정교해지긴 하지만 그런 장면을 다 붙여놓고 나면 영 이상하다. 패턴을 읽히는 느낌이랄까. 나는 ‘원 테이크 오케이’가 좋지만 기술적인 문제가 생길 수도 있고 배우들이 원하기도 하니 ‘오케이 받고 한 번 더’라고 말한다. 오케이를 받았으니 스태프나 배우나 더 과감하게 임할 수 있다.

Q 전작 <동주>에선 송몽규, 이번엔 대중이 잘 몰랐던 박열과 후미코에게 주목 했다. 사명의식이 있는 걸까.
따로 그런 건 없다. 난 변방의 인간이었고 빈민의 자식이었다. 그래서인지 소외당하거나 실패한 인물들의 얘기에 애정이 간다. <황산벌>에선 이름도 없는 거시기의 가치를 소중하게 보려고 했다. 광대의 신념과 신명이 빛나는 순간을 내 눈으로 보고 싶은 욕망이 <왕의 남자>를 찍는 힘이 됐다. <라디오스타>를 통해서도 사회가 실패로 규정지은 인물들의 삶이 사실은 그렇게 후지지 않다는 것도 내가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서 계속 영화가 구질구질하다(웃음).

Q 최근엔 ‘시대극’으로 뭉치긴 했지만, 필모그래피를 보면 통일성을 찾기 어렵다.
어떠한 패턴이 세련되고, 지속되면 그걸 스타일이라고 표현한다. 난 스타일화되고 싶지 않다. 솔직히 말하면 세련되고 멋있는 건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 굳이 붙이자면 ‘스타일 없음’이 내 스타일이라고 말하고 싶다, 하하하.

Q 배우들은 입을 모아 <박열>은 인생작이라고 평한다.
작품에 대한 의미는 감독인 나도 쉽게 부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화가가 화실에서 그림을 그릴 땐 ‘내 그림’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것이 갤러리에 걸리고 컬렉터가 사면 그건 컬렉터의 것이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돈을 내고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의미를 부여할 거다. 그게 진짜 영화의 의미다. 나 역시 어릴 적 감명 깊게 봤던 수많은 ‘내 영화’가 있는 것처럼.

 

 

기획 유재기 현지민(텐아시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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