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부의 여름별미, 물회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계절, 만사가 귀찮은 날에는 에어컨 빵빵하게 나오는 식당에 앉아 음식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것이 최고다. 더울수록 더 생각나는 여름 별미에는 냉면도 있고, 콩국수도 있지만 엄마는 늘 물회를 고집하신다. 이유는 간단하다. 당신이 직접 만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음식 솜씨 좋은 양반이어도 물회만큼은 그 맛을 따라 하지 못하겠단다. 사실 따지고 보면 물회는 그리 어려운 음식이 아니다. 지금이야 큼지막한 그릇에 고명까지 예쁘게 올려 내놓지만 원래는 어부들이 가볍게 만들어 먹던 한 끼 식사였다. 고된 뱃일을 마치고 잡은 생선과 채소를 대충 썰어 넣고 초고추장에 쓱쓱 비벼 밥과 물에 말아 후루룩 먹던 게 여름 별미가 된 것. 특별할 게 없는 재료로 물회라는 맛난 음식을 만든 어부야 말로 진정한 셰프다.
뱃사람들이 즐기던 음식이라 물회가 발달한 곳은 모두 바닷가 근처다. 광어를 넣으면 광어 물회요, 오징어를 넣으면 오징어물회, 전복을 넣으면 전복물회다. 바다에서 나오는 싱싱한 해산물이라면 뭐든지 물회로 만들 수 있는데, 지역마다 재료와 먹는 방법이 다르다. 1960년대부터 물회를 식당 메뉴에 올려 팔아온 경북 포항은 이제 물회가 대표 메뉴가 되었다. 포항 토박이들은 도다리·광어 등의 생선과 채소를 수제 고추장에 비벼 먹다가 나중에 생수를 적당량 부어가며 먹는다. 반면 강원도는 고추장과 식초, 마늘 등으로 만든 육수를 회에 부어 먹고, 가자미와 오징어, 한치를 재료로 사용한다. 남해안과 제주에서는 고추장 대신에 된장을 풀어 맛을 내는데, 전남 장흥은 된장과 잘 익은 열무김치가 기본이 되고, 제주는 된장과 식초, 초피나무 잎으로 제주물회만의 독특한 양념을 만든다. 아쉬운 것은 대중의 입맛에 맞추려다 보니 각 지방 전통의 맛이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먹고사는 문제라 감놓아라 배 놓아라 할 수는 없는 노릇. 며느리에게도 안 가르쳐준다는 비법 사라지기 전에 얼른 먹으러 가야겠다.

 

장흥 삭금 남촌횟집

장흥 하면 된장물회, 된장물회 하면 장흥이다. 장흥 회진면에는 된장물회의 원조식당으로 불리는 우리횟집이 있고, 근처 삭금마을을 중심으로 소문난 식당들이 옹기종기 자리 잡았다. 삭금 남촌횟집은 현지인이 추천하는 맛집으로 새벽마다 주인장이 직접 바다에서 잡은 싱싱한 생선이 기본 재료다. 큼지막한 양푼 그릇에 생선과 함께 잘 익은 열무김치, 양파, 풋고추 등을 송송 썰어 넣고 된장을 가득 푼 후 매콤한 고춧가루와 깨도 듬뿍 울린다. 꽁꽁 얼린 얼음까지 동동 띄우면 2~4명은 족히 먹을 수 있는 양의 된장물회가 완성되는데, 쫄깃한 회, 아삭한 열무김치, 그리고 된장의 구수함이 더해져 뒷맛이 아주 깔끔하다. 일반 물회가 새콤달콤하다면 된장물회는 좀 더 담백하면서도 칼칼하고, 물회를 비리다고 여기는 사람도 된장 특유의 향덕분에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다. 밥을 말아도 궁합이 아주 좋다. 반찬이 조금 부족하다 싶으면 상추·깻잎·방울토마토 등 식당 바로 앞에 있는 작은 텃밭에서 키운 채소가 바로바로 공급되는 재미도 있다. 작은 시골마을의 특성상, 식당 운영시간이 들쑥날쑥이니 미리 전화를 하고 방문할 것을 권한다.
10:00~21:00 첫째·셋째 화요일 휴무|물회 2인분 4만 원, 3인분 4만5000원|전남 장흥군 회진면 가학회진로 903|061-867-5091

 

속초 완도회식당

완도회식당은 현지인들이 즐겨 찾는 ‘동네 맛집’이다. 이곳의 대표 메뉴는 오징어물회와 가자미물회. 동네 맛집답게 들어간 재료도 단출하다. 채 썬 상추와 당근, 오이, 무, 고추, 그리고 통깨가 전부다. 대신 주재료인 오징어와 가자미가 한 움큼 넉넉히 쌓여 있다. 한마디로 기본에 충실하다. 물회를 잘 섞어 육수와 함께 한 숟가락 먹어보면, 첫맛이 약간 수수하게 느껴진다. 다른 물회에 비해 덜 맵고 덜 달다. 하지만 그 덕에 다른 맛이 살아난다. 초고추장 맛에 가려지기 쉬운 육수의 감칠맛과 목구멍 안쪽을 자극하는 짭짤한 맛, 오징어의 단맛과 가자미의 고소한 맛이 한데 어우러진다. 이 집의 가자미 물회에는 특별한 점이 있다. 가자미의 억센 뼈를 모두 발라냈다는 것. 이가 약한 손님을 위한 주인장의 배려다. 가자미 특유의 씹는 맛을 기대하는 사람에게는 아쉬움을 줄 수 있지만, 오징어물회의 탱탱한 식감이 실망을 환희로 바꿔줄 것이다.
09:00~18:00(재료 소진 시 조기 마감)|물회 1만 원, 회덮밥 1만 원, 회무침 3만 원|강원 속초 먹거리4길 21|033-631-1418

 
서울 죽변항

경북 울진에 있어야 할 죽변항이 서울 뚝섬역에도 있다. 갓 잡은 광어를 꽤 두툼하게 썰어 식감 좋은 물회를 내놓는데, 여기에 향 좋은 멍게와 오독하게 씹히는 해삼까지 추가해 이곳 만의 특물회를 완성한다. 살얼음이 천천히 녹아드는 붉은 빛깔 육수도 독특하다. 멸치·다시마·대파 등을 넣고 푹 끓인 육수에 파인애플을 갈아 넣은 다음 새콤달콤 양념을 더하면 입안 가득 상큼함이 터진다. 강원 삼척 지방에서 뱃사람들이 즐겨 먹던 곰치국도 인기 메뉴다. 묵은 김치와 곰치를 넣어 얼큰하게 끓이는데, 대게 살처럼 부드러운 속살과 순두부처럼 물컹거리는 껍질의 조화가 기가 막히다. 해장국으로 유명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소주를 더 마시게 만드는 시원칼칼한 맛이 국물에 가득하다.
11:00~23:00, 일요일· 명절 휴무|물회 1만2000원, 특물회 1만 5000원, 곰치국 1만5000원|서울 성동구 상원길 40|02-465-7487

 

 

김정원 사진 손준석, 임익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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