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내 휴가 내가 쓰겠다고!”


전 세계 직장인 평균 유급 휴가 20일. 한국은?

지난해 글로벌 온라인 여행사 익스피디아(Expedia)가 전세계 28개국의 유급휴가 실태를 조사했다. 전 세계 직장인의 평균 휴가 사용 일수는 20일이었지만 한국은 8일로 꼴찌를 기록했다. 지방의 한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연구원 S씨는 “지난해 주말을 껴서 간신히 4일을 쉬었다. 대기업의 수주를 받아 일하기 때문에 며칠씩 쉬는 게 눈치 보인다”고 말했다. 덧붙여 그는 “사용하지 못한 연차를 돈으로 주지 않는 것도 얄밉다. 이런 꼼수를 막기 위한 정부의 규제가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는 근로기준법 제61조에 의거한 ‘연차유급휴가사용 촉진제도’의 이면이다. 이 법은 회사가 근로자에게 남은 연차를 공지해 그들의 쉴 권리를 챙기는 데 초점을 뒀다. 회사가 근로자에게 남은 연차를 통보하고도 사용하지 않는다면 회사는 이에 대해 보상할 의무가 없어진다. 법적으로는 회사가 사용 시기를 통보까지 해야 한다. 그러나 자신의 연차가 며칠 남았는지 모르는 직장인은 드물다.

 

내가 누울 자리는 알아서 찾자

전자제품 대기업에 다니는 김준우 과장(가명)은 작년에 이어 올해도 가족과 함께 6일간 동유럽으로 휴가를 다녀올 예정이다. “당연히 휴가를 쓸 때 상사의 눈치를 보지만 민망한 건 그때뿐이다. 많은 직장인이 연차 사용에 과감해질 필요가 있다. 회사 생활은 길다. 노동자의 기본적인 권리는 챙겨야 한다.” 그의 말처럼 우리는 수많은 이유로 휴가를 활용하지 못한다. 얼마 전 취업 포털 사이트 사람인이 직장인 1171명을 대상으로 여름 휴가를 계획할 때 눈치를 보느냐에 대한 설문을 했다. 이 중 약 38%인 444명이 눈치를 본다고 답했다. 이유로는 ‘업무에 대한 공백’(43.6%, 복수응 답), ‘상사 휴가에 맞춰야 하는 부담’(30.6%), ‘과도한 업무량’(25.6%), ‘가지 말라는 눈치’(21.3%) 순으로 예상했던 의견들이 쏟아졌다. 개인의 외침으론 바꿀 수 없는 상황임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최선의 방법은 무엇일까? 만약 그걸 찾을 수 없다면 자신의 권리를 찾는 능동적인 자세야말로 차선책에 버금가는 대안일지 모른다.

 

국내 여행 54만 원, 해외여행 193만 원. 당신의 선택은?


지난 7월 7일 취업 포털 사이트 잡코리아가 직장인 1002명을 대상 으로 ‘2017년 여름휴가 계획’ 설문 조사를 했다. 국내와 해외 여행의 예상 지출액은 각각 54만 원과 193 만 원. 응답자의 78.4%는 휴가계획이 있다. 역시 휴가를 즐기려는 사람이 8월에 집중적으로 몰렸다. 아예 성수기를 피해 9월에 휴가를 떠나려는 직장인 비율도 눈에 띈다. 여행지는 국내의 경우 바다가 인접한 도시가 인기고 해외는 가까운 국가의 선호도가 높다. 지난해 12월 글로벌 리서치 기업인 유니버섬이 세계 57개국 직장인 20만 명을 대상으로 ‘직장인 행복지수’를 조사했다. 한국은 전체 순위에서 49위를 차지하며 아시아에서 가장 낮은 순위를 기록했다. 행복은 업무 중 발현되지 않는다. 최소한의 휴식과 성찰을 겪어야 만날 수 있다. 현재 한국의 직장인에게 필요한 건 바로 ‘휴식이다.

 

 

Q1 눈치 안 보고 휴가를 사용하는 나만의 비법
Q2 내게 1주일간의 휴가가 주어진다면?

 

“상사에게 휴가 독려, 나를 위한 물밑 작업”

S씨, 은행원(기혼) 여름휴가 계획 인도네시아 길리(4박 6일)

1 매년 여름이 찾아오면 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일단 자녀가 있는 상사들에게 “팀장님, 아드님 학교(혹은 유치원) 방학이 언제예요? 주말에 놀러 가세요?”라며 그들을 가정적인 사람으로 포장해준다. 그 뒤 일주일에 한 번씩 주말에 자녀와 무엇을 했는지 쉴 때마다 묻는다. 그렇게 하다 보면 자녀와의 에피소드가 끊기며 자연스레 휴가에 관한 얘기가 나온다. 그때를 놓치지 말고 “피곤해 보이는데 며칠 쉬는 게 어떻겠느냐”며 걱정이 담긴 멘트를 날린다. 어린 자녀가 있는 상사라면 대부분 7월 넷째 주나 8월 첫째 주에 휴가를 떠난다. 비성수기(봄)에 넉넉하게 8월 둘째 주 정도 시점으로 여행지와 항공권을 예약하고 기다리면 된다. 꼭 여름휴가가 목적이 아니라도 이런 자세는 어떤 상황이 닥쳐도 자신을 보호해주는 방패가 된다.
2 사람을 상대하는 직업이다 보니 조용한 나라에 가서 쉬고 싶은 로망이 있다. 몇 년 전 예능 프로그램 <꽃보다 청춘> 에서도 소개됐던 짐바브웨가 바로 그곳. TV로 본 게 전부지만 그곳의 잠베지강엔 무려 높이 111m의 빅토리아 폭포 번지점프대가 있다. 언젠가 그곳에서 번지점프를 하는 내 모습을 상상하면서 하루를 버티고 있다.

 

“변화를 기대하지 말고 나부터 변하자”

J씨, 초등학교 교사(미혼) 여름휴가 계획 일본 도쿄(3박 4일)

1 직업 특성상 사기업과 달리 휴가를 사용할 때 직접 무안을 주는 경우는 적다. 공무원 세계도 휴가를 쓸 때면 상사와 부하직원 간 묘한 신경전이 벌어진다. 그래서 초반엔 정작 필요할 때 휴가를 못 쓰는 경우도 많았지만, 윗선의 변화를 기다려보기로 했다. 결론은 차라리 내가 변하는 게빠를 것 같았다, 하하하. 그 뒤로 개인적인 일이 있을 땐 그 권리를 피력했다. 물론 초반엔 언짢은 말이나 표정을 보였지만 몇 번 부딪치고 나니 적응력이 생겼다. 회사에서 갖은 눈치를 보며 사는 삶을 생각해보라. 아마 내 건강은 물론 주변 사람도 못 챙기는 아쉬움만 커져 괴로워할 거다. 이 글을 보는 누군가도 용기를 냈으면 좋겠다. 사람은 일하기 위해 사는 게 아니다. 살기 위해 일하는 것임을 잊지 말자.
2 몇 년 전 성수기 때 제주도를 갔는데 관광지만 다녀와서 아쉬움이 남는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봄이나 가을처럼 한산할 때에 다시 가보고 싶다. 조용한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해 낮에는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카페 투어를 해보고 싶다. 스케줄로 꽉 찬 여행 말고 내 시선이 닿는 곳이라면 몇 시간이든 걸어가 밟아보는 힐링 여행. 그게 내 꿈이다

 

“휴가를 쓰는 것도 ‘능력’이다”

박건, 레스큐오픽 대표(기혼) 여름휴가 계획 국내 호텔 패키지(1박 2일)

1 기자 일을 그만두고 작년에 작지만 나만의 회사를 차렸다. 얼마 전부터 직원들이 “대표님은 휴가 안 가세요?”라고 묻는데 그럴 때마다 얼마간의 휴가를 줄지 고민을 하게 된다. 직장인일 때와 상황이 바뀐 셈이다. 나도 회사생활을 해봐서 그들이 힘든 걸 안다. 최대한 쉬고 오라고 말은 하지만 정작 내가 쉬지 않으니 떠날 생각을 안 한다. 마치 중국집 회식 자리에서 맘껏 시키라고 말을 뱉고 나는 자장면만 시킨 격이다. 주변을 살피면 휴가를 적극적으로 챙겨주는 회사는 적다. 물론 자발적으로 본인의 휴가 계획을 조목조목 밝히며 쉬겠다는 직원도 있다. 오너 입장에서 타당한 계획을 들으면 붙잡을 이유가 없다. 되레 사내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는 당당한 자세가 멋스럽기까지 하다. 물론 기회를 엿보다 슬며시 밀어넣는 현실적인 직원이 대다수다. 그럼에도 똑 부러지게 알찬 휴가를 쓰는 직원이 믿음직스럽다.
2 최고급 호텔과 섬으로 떠나고 싶다. 호텔은 모두가 원하는 시설을 완벽히 갖췄다. 점심까지 늦잠을 자고 수영장에서 놀고 배가 고프면 고급 뷔페에서 식사한다. 그다음 푹신한 침대가 있는 방으로 돌아와 낮잠을 자면 그야말로 꿀 같은 휴가다. 몇해전 동남아의 한 섬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아직 홈쇼핑의 손길이 닿지 않는 보석 같은 곳이었다, 하하하. 디지털 세계와 차단됐다는 포근함은 여전히 잊을 수 없다.

 

“과감히 휴대폰을 두고 떠날 용기”

Y씨, 제약회사 직원(기혼) 여름휴가 계획 괌 3박 4일(가을에 다녀올 예정)

1 내가 다니는 회사는 연차휴가를 사용할 때 정확한 사유를 기재해야 한다 (이유는 모르겠다). 솔직히 ‘그냥 쉬고 싶다’라고 사유를 작성할 만큼의 용기는 없었다. 4년 전 결혼을 하고 나서야 휴가를 내서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완벽한 휴식은 없었다. 경영관리 업무를 맡고 있기에 휴가지에서도 메일을 확인해야 했다. 이 때문에 종종 아내와 부부싸움도 했다. 그러던 중 아예 스마트폰을 집에 두고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나는 회사에 정당하게 휴가 신청서를 냈고 이 기간엔 업무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게 맞기 때문이다. 당시 여행을 떠나고 첫날은 불안했지만 다음 날부턴 개운하게 여가를 즐겼다. 그다음 해 휴가 때도 스마트폰을 두고 떠났다. 전년보다 전화가 걸려온 횟수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쉴 땐 쉬고 일할 때 일하는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게 중요하다.
2 우선 아내가 보내줘야 가능한 일이지만 제주도를 가보고 싶다. 몇 번 가봤지만 배낭만 메고 자전거를 타면서 일주를 하고 싶다. 고등학교 때 수학여행에서 처음 가본 제주도에서 한 할머니가 자전거 여행을 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그때 본 어르신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나이가 드니 과거를 짚어보는 시간을 갖고 싶다.

 

“모험을 즐기는 또 다른 나를 키워보자”

H씨, 대기업 직원(기혼) 여름휴가 계획 제주도(2박 3일)

1 여름만 오면 팀 내 분위기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해마다 반복 된다. 각자 휴가 계획을 내라고 해서 팀장에게 일정을 말하면 마감 업무가 있다고 해서 미루게 한다. 며칠 뒤 또 다른 날짜를 말하면 그때 대책회의가 있다며 돌려보낸다. 그러다 갑자기 “H 과장! 지금 인사과에서 휴가 계획 오늘까지 제출하래. 너 안 가면 팀장인 내가 인사고과 깎이는 거야!”라는 외침이 들린다. 정말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다. 기본적으로 회사는 직원이 자리를 비우게 되면 대체할 인력이 없으므로 쉬는 걸 안 좋아한다. 경제 성장 둔화로 악화하는 손익을 만회하기 위해 아끼는 비용이 바로 인건비다. 이렇게 대부분 회사가 눈앞의 이익만을 좇으니 공들여 키운 직원의 이탈과 이직이 느는 거다. 최근 회사의 ‘갑’이라 불리는 상사 못지않게 더 기민하고 민첩한 ‘을’들이 늘고 있다. 그들은 상사가 지시하기 전에 야근을 자처하고 “이번 달에는 실적이 좋지 않아 여름휴가를 반납하고 일하겠다”는 강수도 가끔 부린다. 부진한 실적에 대한 죄책감을 상쇄하고자 하는 행동인지 사내 정치인지 가늠할 수 없다. 갈수록 경기가 어려워 휴가를 쓰는 데 눈치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이런 ‘을’들의 존재가 늘고 있다. 10년이라는 짧지 않은 회사생활을 했다. 여태까진 처음 입사했을 때의 로열티로 버텼지만 한계에 다다랐다. 그래서 난 올여름을 끝으로 퇴사한다. 그동안 고생해온 나 자신에게 주는 최고의 휴가가 곧 시작된다.
2 무계획이 답이다! 작년에 영화 <곡성>을 보고 감명받아 무작정 전라남도 곡성에 내려갔다. 실제 곡성 파출소에 가서 순경들과 대화도 나눴다. 그렇게 곡성 시내를 누비다 우연히 찾은 민박집에서 나와 같은 관광객을 만났다.
다음 날 그들과 함께 그곳을 관광하며 새로운 추억을 만들었다. 무계획 속에 시작된 여행의 재미, 당신도 느껴보길 바란다.

 

EPILOGUE

보여주는 휴식에 사로잡히지 말자
지난 6월 열린 ‘칸 라이언즈’ (옛 칸 국제광고제)에 나영석 PD가 강연을 맡아 화제가 됐다. 그는 ‘만약 나에게 10일간 휴가가 주어진다면 뭘 할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됐는데 ‘무위도식’이란 마음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미디어가 만드는 인위적인 모습을 보며 모두가 원하고 경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겠다고 결심했다. 많은 이가 성공을 위해 경쟁하고 일등이 되는 게 행복이란 생각에 사로잡혔다”고 했다. 이후 그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농촌과 어촌을 넘나들며 제작한<삼시 세끼>를 연출했다. 공감할 수 있는 일상을 담은 나영석 PD의 프로그램에 대중은 크게 열광했다. 그렇다면 한번 떠올려보자. 번지르르한 예능과 소박한 예능. 우리는 어떤 것에 공감했고 미소 지었는가? 화려한 요트 위에서 즐기는 휴가와 별일 없이 하루 종일 누워서 쉬는 하루. 둘 중 어떤 행위가 지친 당신의 심신에 안식을 안겨줬는가? 결정은 당신의 몫이다.Bravo your life!
앞서 만난 인터뷰이들은 몇 년째 정부가 지정한 유급휴가 제도를 나름대로 활용해 활기찬 여름을 보내고 있다. 재기발랄한 방법도 있지만 회사에서 주장할 자신의 권리를 실행에 옮기는 자립심이 선행됐다. 회사에 휴가를 내는 건 투표와도 닮았다. 둘 다 자신이 속한 사회가 부여한 권리를 주장하기 때문이다. 상사가 주는 찰나의 눈치가 민망해 어필하지 못한다면 마치 선거 당일 늦잠을 자 투표하지 못한 것과 다를 바 없다. 권리는 개인의 존엄과 가치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여름휴가 계획을 짜보자. 쫄지 말자, 우리는 일하기 위해 사는 게 아니라 살기 위해 일하는 게 맞다. 우리 모두 이번만큼은 쉬어보자.

 

 

 

유재기

 

SRT매거진 페이스북으로 이동

SRT매거진 인스타그램으로 이동

SHARE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