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냄새 진하게 나는 영화 다섯 편

사랑은 비를 타고

막 사랑을 깨달은 남자가 쏟아지는 빗속에서 춤을 춘다. 경쾌한 탭댄스와 어우러지는 빗소리의 박자, 그리고 비에 착 달라붙은 블랙슈트와 검은 장우산. “I’m singing in the rain”으로 시작하는 불멸의 멜로디는 먹구름을 보면서도 태양을 꿈꾸는 마력이 있다. 새로운 연애를 시작할 때의 가슴 터질 듯한 충만함이 발끝부터 간질간질 올라오는 영화. 1920년대 미국 할리우드,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방황하는 톱스타 돈록우드와 무명 여배우 캐시 셀든의 티격태격 사랑이야기를 담았다.
한줄평 진 켈리(Gene Kelly) 씨, 여심 좀 훔치셨겠어.

 

화양연화

홍콩 신문사 편집장 초 모완과 무역회사 비서 수 리첸은 같은 아파트에 사는 사이. 그리고 그들의 아내와 남편이 바람피우는 사이다. 불륜으로 고통받던 두 사람의 동지애는 조금씩 은밀한 사랑으로 변해간다. 그러나 동시에 ‘나도 똑같은 짓을 할수 없다’는 죄책감도 커져간다. 끈적끈적한 비가 내리는 여름 밤, 두 사람의 이별연습은 이 영화의 최고 명장면.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바이블이랄까.
한줄평 장만옥처럼 치파오 입고 국수 사러 가고 싶다

 

러브 미 이프 유 데어

“내기 할래?” 싹수부터 제대로 미친 줄리앙과 소피의 동반 자살(?) 멜로물. ‘사탕상자’를 걸고 기상천외한 내기를 벌여온 두 소꿉친구가 크고도 한참 지나서야 사랑을 깨닫는다. 시원하게 내리는 장대비 속에서 나란히 시멘트에 파묻히는 마지막 장면이 달콤하면서도 살벌하다. 바로 이 장면 때문에 호불호가 나뉘고 해석이 분분하기도(죽었다vs안 죽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계기판은 210까지 있지만 60으로밖에 달릴 수 없는 것”이란 줄리앙의 말처럼, 어쩌면 서로 어른일 필요가 없는 사이가 진짜 사랑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된다.
한줄평 츤데레끼린 만나지 말자.

 

노트북

제목을 듣자마자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을 것이다. 노아가 파란 원피스를 입은 앨리를 둘러 안고 열렬히 키스하는 장면. “영혼을 바쳐 평생 한 여자를 사랑했으니 내 인생은 성공한 인생”이라는 노아의 말처럼, 두 시간 내내 라이언 고슬링의 지고지순함이 돋보인다. 혹자는 ‘뻔한 러브스토리’라며 이 영화의 플롯을 비난하지만, 세상에 노아 같은 남자가 드물다. 그래서 우리는 그 ‘뻔함’에 기대하고, 감동받는 것 아닐까? 앨리가 넘나 부러워서 눈에서 땀이 다 날 지경이다. 참고로 이 영화는 실화다.
한줄평 앨리, 이 복받은 계집애.

 

언어의 정원

<너의 이름은>의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비 오는 날의 감성을 아름답게 담아낸 수작. 구두 디자이너를 꿈꾸는 남고생 다카오와 묘령의 여인 유키노 사이의 섬세한 감정선이 비를 통해 드러난다. “천둥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오고 구름이 끼고, 비라도 와준다면 그대가 돌아가지 않도록 붙잡으련만.” 일본 시가 집인 <만엽집>이 자주 인용되며 물기 머금은 신주쿠 공원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이 비가 그치고 나면 과연 어떤 꽃이 필까?
한줄평 역시 연상연하가 대세인가.

 

 

이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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