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력의 한 끗 차, 강원국을 만나다

“지금까지 한국은 읽기와 듣기만 잘해서 성공했다. 그건 내 대까지의 얘기고 앞으론 말하기, 쓰기를 잘해야 성공하는 시대다. 30·40 세대야말로 큰 패러다임의 변화과정에 있는 첫 세대라고 본다. 이 점을 30·40세대는 잘 모른다. 빨리 자각 해야 한다. 인공지능과 경쟁해야 하는 세상에서 위기의식을 갖고 열심히 말하고 쓰면서 살아주길 바란다. 눈부신 생명공학의 발달로 이 세대는 아마 100세를 훌쩍 넘는 수명을 갖게 될텐데, 정년 이후 또 다른 인생을 설계하기 위해선 자기 자신이 무엇을 잘하는지 알아야 한다. 많이 말하고 글을 써라. 그게 모두를 위한 길이다.”

 

Q 글쓰기 열풍이 강하다. 갈수록 노트와 SNS를 통해 글을 쓰는 인구가 늘고 있다.
알다시피 우리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남의 말을 듣는 것에만 익숙했다. 상대적으로 자기 생각을 말하고 쓰는 건 서툴렀다. 세계에서 한국처럼 받아쓰기는 잘하는데 자기표현이 서툰 나라를 찾기 어렵다. 그래서 답답증 같은 현상이 발생했고, 다행히 그게 터지는 과정에 들어선 것 같다. 미국은 물론 유럽 같은 선진국의 경우 쓰기가 정말 중요하다. 대부분 대학교와 직장들이 에세이를 통해 인재를 뽑지 않는가? 이에 반해 한국은 입력은 많고 출력은 없었다. 그럼에도 이렇게 글을 쓴다는 건 잊힌 자신을 찾아가는 좋은 징조라고 볼 수 있다.

Q 글이란 건 선천적인 재능이 아니면 범접하기 어려운 분야라고 여기는 사람도 많다.
헤밍웨이 역시 글쓰기는 재능이라고 했으니 틀린 말은 아니다. 물론 문학의 경우 재능이 필요하다고 볼 수 있지만, 이런 재능을 타고난 사람은 극소수다. 대부분은 재능과 관계없이 글을 얼마나 많이 쓰고 어떻게 준비를 하느냐에 따라 실력이 좌우된다. 재능이 없다고 보고서를 잘 못 써서 삶에 지장을 받는 경우는 드물다. 글쓰기 재능은 살면서 만들어지는 경우가 더 많다. 계속 무언가 적다 보면 자신만의 ‘글길’을 만난다. 문장력도 자연스레 늘면서 뇌에 글을 쓰는 패턴이 잡힌다. 좋은 글을 읽고 쓰는 연습만 한다면 글을 잘 쓸 수 있다.

Q 그게 난제다. 좋은 문장을 찾고 쓰는 연습에 대한 답변에서 핵심을 찾기 어려워한다.
읽기와 듣기 위주 교육의 단점이 빚어낸 결과다. 그래서 어떤 문장을 잘 찾고 분석하는 데 서툴다. 어떤 글이든 잘 읽는 게 먼저지만, 중요한 건 글을 쓸 때 자신의 감정과 느낌을 담아야 한다. 쉽게 말하자면 독서, 토론, 학습, 관찰, 메모 등 이 다섯 가지를 꾸준히 하면 좋은 문장과 자신만의 글을 쓰는 데 효과적이다. 읽으면서 생각이 만들어지고 대화하면서 의견이 오가고 학습하면서 견해가 만들어진다. 다음으로 관찰하면서 다시 한 번 내 생각을 엿볼 수 있고 메모하면서 완벽하게 정리가 된다.

Q 토론은 앞서 말한 출력의 자세에 가깝다. 나머지 네 가지는 학습으로 가능하지만, 대화는 어려운 과제다.
우리는 네가지 이유에서 대화를 꺼린다. 정답이 아닐까봐 두렵고 남과 (상사와 지인) 생각이 달라서 찍힐까봐 무섭고 세 번째는 잘난 척하는 건 아닌가 싶어서다. 마지막으론 내가 말한 답변의 수준이 주변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할 거라는 추측에서 나오는 두려움이다. 이런 일이 발생한 데에는 회사의 책임이 크다. 대화 중 일방적으로 분위기를 이끄는 건 상사인데, 이를 숨죽여 듣기만 하는 조직 문화가 태반이다. 토론이 일어나지 않으니 주장하는 법을 모른다. 저녁 술자리를 자주 가지면 경계가 허물어지기도 한다. 비판의 자유가 토론의 힘을 길러 준다. 조직 문화가 변해야 글도 잘 써진다.

Q 나를 위한 글과 남을 위한 글의 차이는 무엇인가? 대부분 글을 쓸 때 일기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글은 읽히기 때문에 쓰는 거로 생각한다. 글이 가진 목적은 소통이다. 글의 완성은 쓰는 데 있지 않고 누군가 그 글을 읽고 반응할 때 이뤄 진다. 자신의 글로 인해 상대가 무언가 긍정적인 도움을 받을 때 비로소 글의 위력이 드러난다. 일기를 쓰면서 글을 쓴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건 기록이다. 글은 목적의식이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누군가 모르는 정보를 갖거나 남을 즐겁게 해주는 재미를 지니는 힘을 갖춰야 한다.

Q 어느 순간 글을 쓰는 포맷이 노트에서 SNS로 이동했다.
이에 대한 견해가 남다를 것 같다. 일단 SNS에 쓰는 글은 정통 글쓰기가 아니다. 단발적으로 자신을 표출하고 끝나는게 전부다. 무엇을 주장만 할 뿐 이에 대한 이유와 근거가 없다. 노잼, 꿀잼, 대박이라는 단순히 느낌만 표현하는 단어만 열거하니 진정성이 없고 아무리 많이 써도 글 실력은 늘지 않는다. 글을 읽는 시대가 아니라 보는 시대가 됐다. 적어도 과거엔 한 줄씩 글을 읽었는데, 요즘엔 덩어리로 보고 만다. 간혹 ‘매일 일기를 쓰는데 글이 늘지 않아요’라며 묻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런 거다. 100m를 15초에 뛸 수 있는데, 이게 좋으니 매일 15초에만 뛰는 거다. 13초나 10초씩 목표를 높이지 않고 그 자리에 안주하는 거다. 글도 노력이다.

Q 그렇지만 노트를 벗어난 사회임은 분명하다. 개인적으로 권하는 글쓰기 플랫폼이 있다면?
SNS처럼 주장만 하는 게 아니라 원인과 결과가 드러난 글을 쓸 수 있는 블로그를 권한다. 무엇보다 나 역시 매일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있다(웃음). 여기서 차별화된 자신만의 글쓰기를 하면 더욱 좋다. 이건 내용의 측면과 문체의 측면 으로 나눠 훈련할 수 있다. 전자의 경우는 누구나 평소 잘 쓰는 글 스타일이 있다. 웃기는 글 혹은 설명하는 글처럼 말이다. 남에게 보여주며 내가 잘 쓰는 글을 단련해보자. 문체도 마찬가지다. 짧은 글과 긴 글 중 본인이 쉽게, 그러나 정신을 담아 글을 써보도록 해라.

Q 카페에서 글을 쓴다고 했는데, 장소가 글에 끼치는 영향도 큰 것 같다.
내 경우는 카페의 백색 소음에 집중이 잘된다. 이건 개인마다 다를텐데, 누구는 산책하며 생각이 떠올라 글을 쓰기도 하고 낮잠을 자고 일어난 직후 글이 써지는 사람도 있다. 글을 쓸 때 잘 써지는 환경을 찾는 건 정성이 필요한 부분이다. 무리하게 앉아 있지 말고 주변 카페에 가서 써보면서 자신에게 맞는 장소를 찾아봐라.

 

이야기 하나 4차 산업혁명, 한국의 무기는 글이다
강원국 교수는 ‘침묵이 금인 사회’야말로 정치와 경제, 사회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라고 일갈했다. 그의 논리는 창의란 단어가 가진 본질에서 기인한다. “외국에선 창의란 개념을 각자 가진 생각을 표현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남들이 생각지 못한 기발한 것을 내는게 창의가 아니다. 그렇게 따지면 우리 모두 창의를 할 수 있고 나아가 창조까지 가능한데 그 기본인 말하기 문화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라고 안타까워했다. 개인의 창조는 국력의 원천이 된다. 이 힘은 다가올 4차 산업혁명에 무기가 된다. 이에 그는 “지금 같은 사회 분위기론 삼성이 애플을 이길 수 없고, 제2의 최순실 사태마저 일어날 수 있다. 서로본 걸 못 본 척하고 외면하는 데 익숙한데 당연한 현상 아닌가? 그동안 읽기와 듣기 능력으로 인한 모방 실력으로 성장했지만, 4차 산업혁명엔 쓸모없는 능력이다. 개인의 말하기와 글쓰기 능력이야말로 다가올 미래를 이끌 원동력이다”라고 강조했다.

이야기 둘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그리고 유시민
주변에서 말과 글을 모두 잘하는 사람을 꼽아달라고 하자 강원국 교수는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과 유시민 작가를 꼽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말을 많이 해야 생각이 난다면서 평소 말이 매우 많았다. 놀라운 건 말이 끝나면 그 생각을 완벽하게 글로 정리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인정 욕구가 강했다. 그게 그의 글과 말의 에너지가 되어 끝없이 말하고 공부하는 타입이었다. 유시민 작가는 방송 보면 알지 않는가(웃음)? 잘난 척이 많은 사람이다”라고 했다. 그는 우리가 모두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인정 욕구에서 기인한 글쓰기 능력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유시민 작가를 방송에서 보면 종종 잘난 척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독서에 중독되니 그 지식을 드러내지 않으면 못 배기는 거다.” 독서로 쌓은 지식을 드러내는 습관은 자기 계발의 촉진인자인 셈이다.

 

 

유재기 사진 문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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