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 정신이 담긴 부채 이야기

질 좋은 한지와 단단한 대나무가 만나 장인의 손에서 시원한 바람을 일으킨다. 조선시대 마지막 선자청(扇子廳)이 있던 곳, ‘바람의 땅’ 전주에서 엄재수 선자장을 만났다.

 

선비는 부채로 말한다. SBS 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 에서 곤경에 빠진 사임당(이영애 분)을 구하기 위해 이겸 (송승헌 분)은 검이 아닌 자신의 부채를 펼쳐 보였다. 그러자 괴한이 순순히 물러난다. 부채색과 부챗살을 보고 이겸이 ‘심상찮은 신분’임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합죽선은 양반만 쓸 수 있었고, 신분에 따라 부챗살 수가 달랐어요.
양반은 겉대까지 포함해 40살, 왕·왕비·왕대비 등 친왕 족은 50살이 관례였습니다. 양반이라도 과거에 급제하지 못하면 선추(부채자루에 다는 장식)를 달 수 없었지요.”
전북도 무형문화재 제10호 선자장 엄재수 선생은 부채를 ‘선비의 정신’이라 정의한다. 부채의 종류와 치장, 부채 얼굴(종이)에 따라 주인의 신분과 성향, 관념까지 유추할수 있기 때문. 특히 부채얼굴은 오롯이 선비의 공간이었다. 자신이 아끼는 문장을 적어 넣기도 하고, 사군자를 비롯해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이렇게 완성한 부채는 더울 때, 햇빛을 가릴 때, 방향을 가리킬 때, 얼굴을 가릴 때 등 일상생활에서 매우 요긴하게 쓰였다. 사시사철 손에서 놓지 않다가 무덤까지 함께 갔던 부채. “우리 속담에 ‘단오 선물은 부채요, 동지 선물은 책력(冊曆)이라’는 말이 있어요. 부채는 새것을, 그리고 백지 상태로 보내는 것이 예의였습니다.”
부채는 크게 단선과 접선으로 나뉜다. 단선은 원선 혹은 방구부채라고도 부르며 ‘태극선’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반면 접선은 말 그대로 ‘접었다 폈다’ 하는 부채로, 손에 쥐고 다녀 ‘쥘부채’로도 부른다.
문제는 이 접선의 유래를 두고 우리나라와 일본이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것. 엄재수 장인은 중국 북송의 곽약허가 쓴 <도화견문지>와 서긍의 <선화봉사고려도경>에 고려의 접선에 경탄하는 내용, 그리고 우리 대나무와 한지의 우수성 등을 보아 “정황상 우리가 먼저인 것 같지만 결정적인 증거가 없다”며 거듭 아쉬워했다. 부채가 부장품인 까닭에 유물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16세기 중국을 통해 건너가 유럽을 강타하여 ‘부채의 언어’까지 만들어낸 접선, 그 유래가 바로 우리 선조였음을 하루빨리 밝혀야 할 것이다.
“180도 반원형으로 펼쳐지는 접선은 우리나라밖에 없어요. 부채목에 곡선을 넣은 것도 우리가 유일하죠. 당시 이 곡선은 거의 핵폭탄급 기술이에요. 합죽선도 마찬가지죠.
대나무 껍질을 0.38㎜까지 손으로 깎아 두 겹으로 붙였으니, 중국 사신이 얼마나 탐냈겠어요. 일본에서도 그렇게 애를 썼지만 합죽선 기술만큼은 배워가질 못했어요.”
2012년, 40대 후반에 아버지 고 엄주원 선자장의 뒤를 이어 무형문화재에 지정된 엄재수 선자장. ‘젊은 장인’답게 새로운 시도와 역발상을 즐긴다. 아마도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한때 연구원으로 일했던 ‘발명가 기질’ 덕분이리라. 부채를 업으로 삼고 나서도 여전했던 그 기질은 급기야 일제강점기 이후로 사라졌던 ‘칠접선’을 복원하는 성과를 올렸다.
“시작은 ‘합죽선에 옻칠을 해볼까?’였어요. 근데 옻칠과 대나무껍질, 아교의 성질이 상극이라 잘 안되더라고요.
옻칠장인께 사사하며 간신히 성공하긴 했는데 뭔가 이상했죠. 그래서 옻칠한 유물들을 자세히 살피니 합죽이 아닌 대나무 속살 이라는 것을 발견했어요.”
칠접선은 합죽선보다 더 오래, 더 널리 쓰인 우리의 대표 접선이다. 일제 강점기에 값싼 일본 접선과 일본식 옻칠(정제칠)이 유행하며 자취를 감췄다. 선면의 펼침이 50~180도까지 자유로웠고, 살 수와 크기 또한 정해진 규격이 없었다. 합죽선이 마디대의 치장으로 국한된 반면, 칠접선은 대모(매부리바다거북) 껍질과 우각, 어피, 금반죽 등 치장도 다양해 실용성과 장식미가 강했다. 어피칠접선을 처음 복원한 것도 엄재수 선자장이다. 요즘은 사북(부채고리) 을 직접 만들고자 금속공예를 배우고 있다.
“부채는 100% 맞춤이에요. 그래서 직접방문이 원칙이죠. 손을 보고 크기를 결정하고, 무인 기질인지 문인 기질인지에 따라 추천이 달라집니다. 부채를 몇 개 쥐어보면, 내 손에 딱 감기는 게 있어요. 여의치 않을 땐 손을 1:1로 복사해서 보내달라 합니다.”
작품 중에 입문용 부채를 추천해달라 하니 “10만 원짜리 하나 부숴먹고 나서 비싼 걸 사라”고 일축하는 엄재수 선자장. 부채를 손에 익히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란다. 곱게 손때 묻은 그의 부채를 보니, 멋지게 태닝된 명품백이 부럽지 않았다.

 

햇살 엄재수
전북도 무형문화재 제10호 선자장. 아버지 엄주원 선자장의 뒤를 이어 2대째 부채를 만든다. 반기문전 유엔사무총장과 우주인 이소연, 이탈리아 피렌체 시장, 2002월드컵 타임캡슐용 합죽선을 제작했다. 사재를 털어 전 세계 부채 유물을 모아 ‘부채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다.

 

1. 나에게 부채란
생활. 부채하러 눈떠서 부채하고 자니까.

2. 장인이 생각하는 장인의 조건
자질. 장인은 노력만으로 될 수없다. 죽을 만큼 노력하면 80까지 갈진 모르지만 100까지는 못 간다. 반면 자질을 타고나면 죽을 만큼 노력 안해도 90~100까지 간다. 억울해도 별수 없다(웃음).

3. 영감의 원천
의외로 책을 많이 보는 편. 미술 서적보다는 일반 역사 관련 서적을 많이 읽는다.

4. 가장 비싸게 팔린 작품은
2012년 딱 두 점만 제작했던 ‘대모합죽칠선’. 가격은 500만 원 정도. 멋모르고 합죽선에 옻칠하던 시절에 만든건데, 칠만 아홉 번 올리고 겉대에 대모를 통으로 치장했다. 하나는 사전예약으로 팔렸고, 하나는 전시가 끝남과 동시에 팔리는 바람에 나도 제대로 못 만져봤다(웃음). 이번에 운 좋게 질 좋은 대모와 상아가 들어와서 인생 최고의 역작을 만들 것 같다. 여섯 점 정도 예상한다. 일반적인 부채는 70만~120만 원 사이가 가성비가 좋다.

5. 만약 장인이 되지 않았다면 지금쯤
‘전자쟁이’의 피가 어디 가겠나. 아마도 차세대 컴퓨터를 개발 하고 있지 않을까? 로봇도 재미있을 것 같다.

 

<부채소통展> 중학생부터 40대까지, 젊은 ‘부채마니아’의 상상을 반영한 기상천외한 부채 40점을 선보인다. 칠접선 17점, 합죽선 23점.
6.1(목)~6.15(목)|전주부채문화관 063-231-1774

 

1 홍지(紅紙)와 주칠, 흑지(黑紙)와 흑칠을 매치해 마치 한 쌍 같은 칠접선
2 부채 목살의 곡선과 낙죽 치장이 아름다운 합죽선
3 엄재수 선자장의 부채는 2013년에 만든 합죽 어피선이다. 바람이 제법 묵직하다
4 반죽·대모·어피·낙죽 등 화려한 치장이 돋보이는 접선의 측면. 선비의 선추에는 ‘동심결(同心結)’이란 매듭이 반드시 들어갔다.
5 엄재수 선자장의 공방. 1980년대까지만 해도 육방(초조방·정련방·낙죽방·광방·도배방·사북방)으로 분업이 이루어졌다
6 부챗살에 민어 부레로 만든 풀을 발라 한지를 붙이는 ‘도배방’ 과정. 엄재수 선자장은 풀도 직접 만들어 쓰는데, 이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기술이다

 

 

이현화 사진 문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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