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발리와 한국을 출퇴근한다

‘엉덩이로 일한다’는 고정관념만 버리면 사무실이 범지구적으로 확장된다. 심지어 인도네시아 발리마저도.

 

원격근무란?
원격근무(Telecommuting)란 정보기술(IT)을 활용해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업무를 수행하는 근무방식이다. 인터넷만 가능하다면 시간과 공간은 무의미! 원격근무자를 ‘홈 워커(Home worker)’라고도 칭하지만, 재택근무보다 훨씬 넓은 개념. 그냥 사무실만 바뀔 뿐이다. 집이든 카페든, 심지어 호텔 수영장이든.

 

How to work

원격근무, 나도 할 수 있겠는데?
익숙한 공간에서 일이 더 잘되는 사람이 있고, 한 공간에 오래 있으면 좀이 쑤시는 사람이 있죠. 전 후자예요. 원격근무를 하게 된 계기는 ‘위염’이었어요. 그리고 그 원인이 회사 사무실에 있었지요, 하하. 처음에는 보름 정도 집과 카페를 오가며 원격근무를 했어요. 집에서 회사까지 걸어서 20분 거리임에도! 지금은 그때처럼 스트레스 받는 상황은 거의 없지만, 여전히 사무실에 가면 안절부절못해요. 회사에 원격근무 제도가 없었다면 아마 그때 그만뒀을지도 모르겠어요.
해외 원격근무를 결심했던 건 직장동료 덕분이죠. 유럽에서 여행과 원격근무를 병행하는 것을 보니 ‘나도 할 수 있겠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더불어 팀원들이 원격근무를 매우 선호합니다. 4명 중 3명이 일주일에 한두 번 사무실로 출근할 정도로요. 다들 장기 원격근무에 욕심이 있어서 어떻게 일할지 다양하게 고민하고 있어요. 매일 오전 ‘슬랙(Slack·업무용 메신저)’을 이용해 음성으로 업무를 공유하고, 주당 한 번은 사무실에 모이거나 화상회의를 합니다.

‘인터넷’과의 전쟁
원격근무라도 회사 업무시간은 맞춰야겠죠?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 발리는 1시간 느리기 때문에 9시 로그인, 6시 로그아웃으로 일했어요. 해외에서 일한다는 건 ‘인터넷과의 전쟁’이더라고요. 오전에는 호텔에서 휴대폰 테더링(Tethering)을 활용했어요. 점심식사 이후에는 주로 코워킹스페이스(Co-working space)에 있었고요. 일주일에 한 번 2~3시간씩 음성 혹은 화상회의를 해야 하므로 ‘인터넷’이 잘되는 곳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했습니다.
덤으로 슬랙 알림을 전부 켜놓고 수시로 확인했습니다. “해외 원격근무 중이라 서로 업무 파악하기가 너무 어렵네요”라든지 “왜 연락이 안 되나요?” 같은 말은 정말 듣고 싶지 않았거든요. 일종의 노이로제였던 거죠.

오늘도 낯선 곳으로 ‘출근’
그럼에도 원격근무는 매력적입니다. 매일 보는 풍경, 날씨(1월 한파가 몰아칠 때 전 여름에 있었어요. 캬!)에서 벗어나 완전히 다른 환경을 ‘개척’하는 것이 부담스럽지만, 동시에 설레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고 뭐든 더 잘할 수 있는 기분이랄까? 출근길 자체가 즐거웠어요. 이런 일탈을 한 번쯤 즐기고 나면 내가 좀 더 중요한 사람처럼 느껴지고, 어떻게 하면 더 즐겁고 신나게 살지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여러 방면으로 좋은 자극이 되었어요.

그녀의 업무일지

1.4 Wed.
인천 11:40 타이베이 13:30
대만에 도착. 하룻밤 자고 다음 날 발리로 떠남. 버스로 시먼과 공항을 오감.
1.5 Thur.
타이베이 10:00 발리 15:20
1.29 Sun.
발리 11:5 방콕 15:15
3~4일 쿠타(Kuta)에서, 그 이후에는 우붓(Ubud)에 머뭄. 쿠타에서 우붓까지 버스로 움직였고, 우붓에서는 걷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아는 사람들 오토바이 뒤에 매달려 다님. 충동적으로 결정한 태국행. 시먼에 머물렀고, MRT를 주로 이용함. 툭툭과 우버도 가끔 탔음.
2.5 Sun.
방콕 06:05 발리 11:15
미리 발권해둔 비행기 티켓 때문에 다시 발리행…. 쿠타에서 하룻밤만 보내고 바로 대만으로!
2.7 Tue.
발리 16:20 타이베이 21:35
타이베이에서 4박5일. 2만 원 정도 추가해 스톱오버했다. 갑자기 훅 들어온 일거리가 있어 생각보다 많이 여행하지 못함.
2.10 Fri.
타이베이 20:25 인천 23:55
다음은 또 어디서 일해볼까나.

 

What to travel

별이 쏟아지던 방갈로
우붓에서 1주일 정도 묵었던 숙소가 가장 그리워요. 우붓에서도 외곽, 산 바로 아래 있어 외진 곳이었어요.
1990년대에 지은 것 같은 방갈로인데, 가격 대비 넓은 침실과 욕실, 테라스가 갖춰져 있었죠. 커다란 풀장과 조식도 훌륭했지만, 테라스에서 올려다보던 밤하늘과는 비교할 수 없었어요. 그리고 숙소 바로 앞에 학교가 있어서 저녁마다 아이들이 발리 전통음악을 연주하는 거예요. 발리가 괜히 로맨틱한 곳이 아니더라니까요? 쏟아지는 별과 느른한 달, 화려한 색감의 꽃과 이국적인 멜로디…. 그 작은 섬에 어쩜 그리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는지. 다시 발리를 간다면 그곳에 또 머무르고 싶네요.

새벽 2시의 바투르화산
발리에 가면 바투르화산 일출을 꼭 보세요. 일단 새벽 2시에 픽업을 옵니다. 한 시간 남짓 차를 타고 가면서, 그때까지도 저랑 제 친구 둘이서만 산을 오르는 줄 알았어요. 근데 산 밑에 도착하니 세계 각지에서 온 여행자가 100명도 넘게 모여 있는 거 있죠? 자기들끼리 “우리만 가는 거 아니었어?” 하고 쑥덕거리면서요. 이렇게 모인 사람들한테 도시락 하나, 물 한 병, 손전등을 줘요. 전 혹시나 싶어 헤드랜턴을 챙겼는데, 이게 어찌나 요긴하던지. 그 많은 사람이 가느다란 손전등 불빛에 의지하며 산을 오르는데, 그 모습이 마치 성지 순례하는 순례자 같았어요. 막상 일출 자체는 그렇게 인상적이진 않았어요. 오밤 중에 전 세계 사람들과 나란히 불을 밝히며 밤길을 걸었다는 것이 더 강렬했나 봐요.
여기서 하이라이트는 숙소로 돌아오니 아침 10시! 바로 인터넷 접속해서 일했다는 겁니다. 중간에 졸기도 했지만(살짝), 밤에 여행하고 낮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일한 발리 원격근무의 묘미였습니다.

로컬처럼 살아보기, 그리고
‘현지인처럼 해봐야지’ 했던 건 아니에요. 다만 일을 하니 자연스레 로컬처럼 생활하게 된 것 같아요. 매일 가는 단골 카페가 생긴다거나, 퇴근 후에 장봐서 아침 정도는 만들어 먹는다거나…. 회사 일이 아니라 개인 프로젝트를 가져가면 좀 더 로컬처럼 살 수있지 않을까요? 가장 중요한 건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열린 마음’인 것 같아요. 외국은 음식, 숙소, 교통수단, 기타 등등 많은 것이 한국과 다르잖아요? 이런 사소한 것을 즐길 수 있다면 여행 혹은 원격근무가 더욱 재밌을 거예요!

 

원격근무의 치명적 매력 feat. 사장님, 보고 계세요?
❶ 출근 준비가 필요없다(아침에 눈떠서 책상에 앉으면 끝. 이 맛에 원격하죠)
❷ 혼자 있을 수 있다
❸ 점심을 집에서 해먹을 수 있다
❹ 집에서 일이 안되면 카페로, 혹은 공원으로!
❺ 유연한 시간 활용해외원격근무, 이것이 좋다 feat. 편집장님, 보고 계시죠?
❶ 매끼 다양하게 즐기는 현지 음식!
❷ 주말에 떠나는 단기 여행(발리에서는 길리, 울루와투 좀 더 멀리는 방콕)
❸ 다양한 나라, 나이, 직업을 가진 친구들
❹ 낯선 도시를 탐험하며 자연스레 늘어나는 운동량
❺ 그냥 좋다

 


조은지 편집디자이너. 원격근무 찬양론자. 현재 슬로워크의 스티비팀에서 ‘Design Leader’로 일하고 있다. 평소엔 서울 서촌과 광화문 근처에서, 가끔 해외로 나가 원격근무를 즐긴다. 곧 (발리에서 만난) 남자친구가 있는 모리셔스로 떠날 예정! 해외 원격근무로 항공권 검색 스킬과 미니멀 라이프스타일, 나와 나의 삶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얻었다.

 

 

이현화 협조 조은지(슬로워크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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