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최백호의 인생론

솔직할수록 강해지는데 세상이 두려운가?

 

최백호를 만나기 전 그가 17년간 육식을 금하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았다. 본격적인 질문에 앞서 채식주의자로서의 생활을 물었다. “얼마 전부터 육식을 시작했다, 하하하. 과거 한 의사가 내 몸에 육식이 맞지 않는다고 해서 고기를 먹지 않았다. 사실 말을 안 해 그렇지, 그동안 몸이 아팠다(웃음). 그러다 그 검사가 오진이었다는 얘기를 듣고 원 없이 고기를 먹는다.” 어라? 겉보기와 달리 은근 어수룩한 데가 있다. 그뿐만 아니다. 독자들에게 인생이 힘들면 만화책을 읽으라며 인기 웹툰인 <호랑이 형님>을 콕 집어 추천한다. “매주 200원을 결제하고 다음 화를 미리 보고 있다. 다음 화 기다리기 정말 힘들다.” 그는 올해로 68세다. 가수로 데뷔한 지는 무려 40년이 넘었다. 그런데 참 젊다, 최백호.

살기 위해, 마이크를 잡은 한 남자
1950년 부산에서 태어난 최백호는 그의 히트곡 ‘낭만에 대하여’와 정반대의 유년기를 보냈다. 그는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 밑에서 자랐지만, 그가 성인이 되던 해 어머니마저 여의면서 집안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3대 독자라 군대에 안 갈 수 있었지만, 의식주 어느 하나 해결할 수 없어 입대를 결심했다. 그러다 채 1년도 안 돼 결핵에 걸려 의병 제대를 했고 바닷가 근처에 방 한 칸을 얻고 요양을 했다.” 이후 그는 친구의 매형이 운영하는 라이브 클럽에서 보조로 일하며 음악을 접했다. “생활이 힘들어 음악을 시작했다. 그래서 내 노래엔 딱히 장르가 없다.”

최백호는 왜?
이날 기자는 그가 대표를 맡은 서울 마포구 아현동에 자리한 ‘뮤지스땅스’란 공간에서 인터뷰를 했다. 이곳은 독립 음악인들에게 공연장을 제공한다. 얼마 전부터 그는 자신이 그린 그림을 이곳에 전시하기 시작했다. “운영하는 데 3000만 원의 자금이 필요해서 작품을 팔며 기부를 받기로 했는데, 얼마 전 목표액을 달성했다.” 최백호는 인터뷰 내내 자신의 환경과 세상에 대해 조금의 속상함도 드러내지 않았다. 근데 이게 다 만화책 덕이라고 한다. 고개가 쉽게 끄덕여지진 않는다. 기자는 오랜만에 질문지를 덮었고, 수다를 나누기로 마음먹었다.

 

# 탐색전
 

Q 얼마 전 <불혹>이라는 앨범을 발매하고 전국 콘서트까지 열며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노래를 부른 지 40주년을 맞이했다(실제로는 41주년). 주변에서 콘서트도 열고 앨범도 발매하자고 해서 특별한 타이틀을 찾다가 ‘불혹’으로 결정했다. 가수로서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잘 견뎌왔다는 나 자신을 위한 선물이기도 하다.

Q 실제 당신의 불혹(실제 인생)과 비교해 보면 어떤 차이가 있는가?
그땐 별로 안 좋았다. 사는 게 힘들어 가족과 미국으로 떠나 2년간 그곳에서 DJ를 하며 버텼다. 30대 초반부터 40대 중반까지 경제적으로 굉장히 어려웠다. 우선 한국에서 가수로 살다가 잘풀리지 않아 타지에 갔으니 패배감과 좌절감에 무척 괴로웠다.

Q 그래도 영어 실력은 좋았나 보다.
한인방송이었다, 하하하. 언어적인 불편함은 전혀 없었다.

Q 미국을 다녀온 직후 공전의 히트곡 ‘낭만에 대하여’가 탄생하지 않았는가?
당시 45 세 때, 미국에서 돌아온 뒤 만들었다. 미국에서 내 음악을 듣는 팬들이 영원히 20, 30대에 머물지 않음을 깨달았다. 자전적 노래로 내 기억 속에 있는 색소폰, 다방, 첫사랑 등을 형상화해 가사에도 공을 들였지만 반응이 좋지 않았다. 앨범을 발표하고 1년 동안 불러주는 곳이 거의 없었다. 그러다 드라마 <목욕탕집 남자들>(1995년)에 이 노래가 삽입되며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알다시피 작품 대본을 쓴 김수현 작가 덕분에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었다. 그해 앨범이 35만 장 이상 팔렸다.

Q 김수현 작가에게 보답은 했는가?
김수현 작가와는 지금까지 딱 세 번 만났다. ‘낭만에 대하여’가 드라마에 나오면서 큰 사랑을 받아 녹화장에 들러 인사를 드렸고, 사적인 자리에서 두 번 정도 마주친 거 빼곤 끝이다. 처음 얘기하는 건데, 그때 따로 선물을 준비하지 않았다. 사실 주변에 마음의 표현을 무언가 물질적으로 못한다. 하다못해 결혼기념 일은 물론 가족들의 생일도 챙기지 않는다.

Q 가족의 생일을 챙기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
1950년에 내가 태어났으니, 그날이 내 진짜 생일 아닌가? 생일에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내 생일에 미역국도 없다. 아내도 차려주지 않을뿐더러 굳이 나도 선물을 하지 않는다. 그래도 유일하게 딸의 생일은 신경 쓴다. 용돈 같은 걸로(웃음).

 

# 태세 전환

Q 갑옷을 입고 살아왔다고 해석해도 되는가?
남과 다른 삶의 패턴이 일에도 반영되니 그럴지도 모른다(웃음). 나는 노래를 만들 때 마음의 준비를 하고 절차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건 노래를 만들어 파는 프로들이나 하는 거다. 스스로 편한 상태라고 느끼는 날 편하게 일을 시작한다. 긴 시간 이렇게 지내다 보니 어느 순간 나이를 의식하지 않게 됐다. 단점이 없는 건 아니지만 장점이 더 크다. 바로 두려움이 없어진다. ‘뮤지스땅스’를 이끌기 전, 주변에선 극구 말렸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정한 비영리 사단 법인이어서 국고로 운영 중인 만큼 1원 한 푼도 허투루 쓰면 안 된다. 그런데도 당당하게 해보겠다고 마음먹으니 무리 없이 이끌고 있다. 일이란 게 그렇다. 나쁜 마음을 먹으면 쉬운 일도 머리 아프게 돌아가기 마련이다.

Q 감당하기 어려운 유년기를 보내며 인생에 대한 불만이 많을 것 같다.
나라는 존재를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보는 습관이 있다. 쉽게 말해 객관적으로 나를 인정한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눈물이 나지 않았다. 괴로운 순간에서 도피하고 싶은 자아가 커서 그 아픔을 믿을 수 없었다. 계속 나에게 ‘이건 현실이 아니다’라고 주문을 걸었다. 그러나 어머니가 화장 절차를 밟는 순간 이것이 현실임을 깨닫고 사흘 내내 방에 틀어박혀 오열 했다. 믿지 못할 상황이 벌어져도 경거망동하지 않는 초연한 자세가 그때부터 생긴 것 같다. 내가 만나는 유명한 스타들. 예를 들면 아이유와 함께 노래를 부르고 사담을 나누는 게 현실 같지가 않다. 인생의 스폿라이트는 언젠간 다 꺼진다.

Q 삶을 대하는 태도가 너무 초연한 거 아닌가?
어릴 때부터 만화책을 많이 읽었다(최백호는 인터뷰 전에도 만화책을 읽고 왔다). 어떤 어려운 일이 닥쳐도 만화적인 시각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서 상대적으로 스트레스를 적게 받는 성격이다.

Q 주량이 궁금하다.
담배는 아예 태우지 않고 술은 조금 마신다.
 

# 새로운 국면

Q ‘낭만에 대하여’를 만든 40대 때의 인생과 현재 60대로서의 삶을 한마디로 표현해달라.
40대는 ‘방황’이다. 많은 40대가 이 말의 의미를 알 거다. 그 나이 땐 굉장한 변화를 겪는다. 내 경우 30 대에 가수로서 좌절감도 많이 겪었는데 그게 40대까지 죽 이어졌다. 물론 지금은 그게 없다. 60대는 ‘추억’인 것 같다. 젊을 땐 몰랐던 그 소중함을 떠올리며 늙어가는 시간에서 그 늙음을 인정하게 된다. 결국 젊음 자체가 낭만인 셈인데, 예나 지금이나 그 시절을 간직하며 사는 것 같다.

Q 덧붙이고 싶은 얘기는 없는가?
나이가 들수록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이 계속 머리에 맴돈다. 나 자신이 무엇인지, 인생에서 무엇을 갈구하는 사람인지 받아들이면 생각과 마음이 깨끗해지는걸 경험할 수 있다. 그러면 무슨 일을 해도 해낸다는 자신감이 붙는다.

Q 노래 얘기를 적게 나눴다. 5월 27·28일(대구)과 6월 10일(경기도 성남) 콘서트가 남았다. 공연장에서 꼭 들어줬으면 하는 노래가 있다면?
‘낭만에 대하여’의 가사 중 “이제 와 새삼 이 나이에 시련의 달콤함이야 있겠냐 마는”이란 구절을 정말 좋아한다. 내가 겪어온 삶을 모두 내려놓고 겸허히 살자는 뜻이 담겨 남다른 애착이 있다. 이번 앨범에 실린 ‘바다 끝’이란 곡은 사랑 얘기일 수도 있지만, 우리의 욕심과 꿈 그리고 사랑을 드넓은 바다 끝에 놓아주자는 뜻이 담겼다.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노래를 많이 들려드리며 많은 분과 좋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

Q 여기저기서 영화를 준비한다는 말을 들었는데, 사실인가?
영화를 준비하고 있는데 두 개의 시나리오가 준비된 상태다. 미사리(가제)라고, 미사리의 무명가수 이야기와 SF 장르의 작품인데 기대할 만하다, 하하하. 앞날은 누구도 모른다.

 

 

글 유재기 사진 문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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