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일 세계일주 보고서

단돈 79만 원과 불알 두 쪽(?)만 들고 떠났던 청년 권용인

 

캐나다에서 오로라 보고 신나서, 참고로 영하 30도

 

제법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이었다. 큰 방황 없이, 없는 가정 형편에도 착실히 살아오던 젊은이였다. 주어질 미래라고는 ‘취준생’이 분명했던 어느 날, 갑자기 회의감이 들었다. 원빈이나 강동원처럼 잘생기진 않았어도 주인공이 되고 싶었다. 적어도 내 인생에서만큼은.
그러나 돌이켜보면 단 한 번도 ‘인생에서 주인공 되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다. 미적분은 할 줄 알았으되 내 인생 사는 법은 몰랐다. 막막한 맘에 조언을 구했지만 가족, 친구들, 선배들 사는 게 어쩜 그리도 다 똑같은지.
그래서 밖으로 한번 나가보기로 했다. 새로운 세상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경험을 하면, 그러면 조금 알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이 내 인생의 첫 ‘일탈’이었다. 시작은 호주 워킹 홀리데이였다. 영어라고는 예스, 노, 땡큐, 빠큐밖에 몰랐던 지라 이틀 만에 질질 짜며 울었다. 막막하고 무서웠다. 근데, 서럽게 한 번 비우고 나니 오기가 채워지더라. 그때부터 자존심이고 뭐고 다 내려놓고 망고농장, 창고일, 접시닦이, 이삿짐센터, 서빙, 웨이터, 하우스키핑, 촬영, 공사판 막일 등등 현지에서 가리지 않고 일했다. 현지에서 경비조달, 자급 자족 여행의 시작이었다.

 

볼리비아 우유니 소금사막

 

렌터카로 호주 대륙을 종단하고, 첫사랑 찾아 뉴칼레도니아를 헤매고, 중국 남부 윈난성부터 베이징까지 히치하이킹, 에베레스트도 올랐다. 일확천금의 늪에 빠져 카지노에서 큰돈을 잃었을 때는 정말이지 나란 놈 쓰레기…. 먼지가 되어 사라질 때까지 할복하고 싶었다. 그렇게 돈 잃고 인도로 넘어가 한참 방황하다 미국으로 건너갔다. 뉴요커가 되고자 했으나 현실은 불법 외국인 노동자. 알래스카에서 핫도그 팔려다 실패, 밴쿠버에서 삼각김밥 팔려다 대실패. 실패의 나날이었다.
그런데, 참 이상했다. 거듭 실패해도 포기하지 않았더니, 하나둘 알아보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SNS 팔로어 수가 늘고, KBS 뉴스도 타고, 캐나다 유명 대학에서 강연도 하고…. 병신짓도 꾸준히 하니까 예술이 되나 보다. 그렇게 나는, 쿠바에서 체 게바라에 취해 멕시코에 도착하자마자 덜컥 오토바이를 사는 또 하나의 ‘병신짓’을 하게 된다. 지금 생각해도 팔다리 멀쩡히 붙어 있는 게 기적이다. 여러분, 오토바이에 미숙하면 트럭에 치일 뻔한 위기는 기본이요, 벌에 쏘이고 심지어 개한테 쫓기기도 합니다.
콜롬비아 보고타(Bogota)에 머물 때다. 도미토리에서 새로 사귄 친구들과 시내에 나갔는데, 나만 아무것도 쇼핑하지 않았다. 가난해서 만날 얻어 입다 보니, 여행 중에도 당연히 얻어 입고 다녔던 것이다. 나이 서른 넘도록 내 돈 5만 원 이상 주고 사 입은 옷이 없다는 걸 깨닫고, 너무 서럽고 분해서 그날 밤 한숨도 못 잤다. 그래서 날이 밝자마자 옷을 사러 갔다. 그 유명한 휴고보스.

 

휴고보스 입고 남미를 달리는 나는야 우주 최고 미남

 

처음엔 구멍난 반바지에 슬리퍼 신고 갔다고 점원들이 쳐다 보지도 않았다. 현찰을 테이블에 깔면서 “이 가게에서 제일 비싼 옷 가져와” 큰소리치니 그제야 머리를 조아리며 어떤 차를 드시고 싶냐 묻더라. 아이스티를 다섯 잔이나 리필해서 마셨다. 아무튼 그때부터 휴고보스를 입고 남미를 달렸다.
세상에서 제일 잘생긴 남자가 된 것 같았다. 남이 알아주든 몰라주든 기분이 너무 좋았다. 모두가 특별한 사람일 순 없지만, 평범한 사람도 특별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내가 정말 내 삶의 주인공이구나. 그런 느낌을 받으니 너무너무 행복했다.

 

에콰도르 갈라파고스에서 아기 물개랑 사진 찍고자 누드를 감행했다. 해치지 않아.

 

1948일 뒤, 나는 거제도로 돌아왔다. 여행 중 가장 뼈저리게 느낀 세 가지? 하나, 사람들이 바보라고 놀려도 내 갈 길 묵묵히 걸어가면 어느 순간 그들이 응원해주기 시작한다는 것. 둘, 절망 속에서도 내가 포기하지만 않으면 결국 어찌어찌 다 되더라는 것. 셋, 혹여나 실패해서 넘어져도, 그리 아프진 않다는 것. 그러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한번 해봤으면 좋겠다. 그게 나처럼 꼭 여행이 아니더라도, 한번 해봤으면 좋겠다. 인생 뭐 있나? 한번 가보는 거지.

 

 

글·사진 권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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