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밥상 문화의 중심, 소반

오랜 역사를 지닌, 우리 음식문화의 근본

 

 

 

‘소반다듬이’란 말이 있다. 소반 위에 쌀이나 콩 같은 곡식을 차르륵 펼쳐놓고 못 먹는 ‘잡것’을 솎아내는 일, 혹은 그렇게 솎아낸 곡식을 가리킨다. 이처럼 소반은 ‘밥상’의 역할에 머무르지 않고 때로는 작업대, 이따금 책상, 더러는 장식장이 되기도 했다.
소반은 왜 소반(小盤)일까. 왜 계층을 막론하고 커다란 상보다 작은 소반이 더 널리, 더 오래 사랑받았을까. 그것은 소반의 주된 역할이 ‘이동 식탁’이기 때문이다. 단층집에서 좌식생활을 하고, 부엌과 멀리 떨어진 방에서 식사를 하고, 농번기에 부지런히 새참까지 나르려면 당연히 상의 크기가 작아야 했다.
“대가(大家)일수록 소반을 많이 갖춰야 했죠. 1인 1상, ‘한상문화’가 우리 전통이니 대소사가 있을 때마다 얼마나 많은 소반이 필요했겠어요.”
이종덕 중요무형문화재 제99호 소반장 전수교육조교는 오늘날 소반의 쓰임새가 크게 줄어든 이유로 ‘아파트’를 꼽았다. 생활상이 바뀌고 식탁문화가 들어오면서 소반도 제역할을 잃었다는 것. 그러나 소반은 중국과 일본에도 없는 우리만의 독특한 문화이고, 소반에 새겨진 다양한 문양에는 오랜 세월 축적된 우리의 정신이 담겨 있다. 소반을 잊는다는 건 우리의 얼도 함께 잊겠다는 것이다.
“공예품 가격이 올라가는 이유가 있어요. 찾는 사람이 없으니 옛날처럼 대량생산이 어렵고, 여럿이 나눠 하던 공정을 혼자서 소화해야 하니까. 당장 나도 소반 제작부터 옻칠, 판매까지 하잖아요(웃음). 웬만한 소반 하나 만드는 데 최소 한 달은 걸리거든.”
물론 이 ‘한 달’에는 나무를 건조시키는 과정(4~5년)과 여러 밑작업(다리와 운각 등 재단)이 생략되어 있다. 이종덕 장인은 단단한 은행나무와 나뭇결이 예쁜 느티나무를 즐겨 쓰는데, 길게는 10년까지 제대로 말려야 나중에 소반으로 만들었을 때 ‘사고를 치지 않는다’고 한다.
너털웃음을 짓는 장인 너머로 끌이며 대패가 가지런히 걸려 있다. 세월과 손때가 묻은 저 도구들은 할아버지 이원노 선생과 아버지 이인세 소반장에 이어 3대째 장인이 사용하는 것이다. 조부가 매형에게 소반일을 배운 것이 가업의 시작이었고, ‘공예와 그림은 사촌지간’이라 믿은 부친에 의해 예술적 감각이 더해졌다. 이종덕 장인 역시 부친의 가르침에 따라 한국화와 단청 공부에 몰두했다.
“할아버지 공방에 해주반 장인이 많았어요. 그래서 아버지도 나도 해주반이 특기가 되었지요. 나주반과 통영반이 네 개의 다리를 가진 반면, 해주반은 양옆에 판각(板刻)이 다리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판각이 다리보다 면적이 넓으니까 다양한 문양을 새기는 재미가 있는 거라. 그러니 아버지가 그림을 그리고, 나한테도 그림 공부를 시킨 것이지. 지금 생각하면 내가 아버지 작전에 말려들었던 것 같아요(웃음).”
세상에 태어나면 이름을 남기고, 이름을 못 남기면 자식 이라도 남겨야 한다는 이종덕 장인. 그에게 소반은 보듬어 잉태한 자식이다. 예술적 가치와 공예적 실용성 사이에서 치밀한 고민 끝에 태어난. 그렇기에 장인의 특권과 보람은 마땅히 존중받아야 한다.

 

이종덕
중요무형문화재 제99호 소반장 전수교육조교(1996년~현재).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이어 3대째 소반을 업으로 삼았다. ‘공예는 시대생활상을 반영한다’는 신념으로 현재 쓰는 사람의 필요를 예술로 승화시키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1 나에게 소반이란
평생 함께해온 아내 같고 친구 같은 존재. 동반자지, 뭐. 나 죽으면 소반장 죽었다 하지 이종덕 죽었다 할거여(웃음)?

2 장인이 생각하는 장인의 조건
이게 좀 애매한데…. 내가 ‘소반으로 출세해야지, 떼돈 벌어야지’ 생각했으면 이걸 할 수 있었겠느냐. 다른 장인들을 보면 그래. 잡생각이 없어요. 오로지 자기 분야를 잘해보겠다는 생각 외에는.

3 영감의 원천
미술서적, 자연, 동·식물, 일상. 옛날 도안도 참고하지만 21세기 생활상을 배제할 수 없다. 이를테면 기독교 문양을 넣은 소반이라든가, 로얄코펜하겐의 의뢰로 만든 시그너처 소반이라든가. 시대의 일원으로서 현실을 반영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4 가장 비싸게 팔린 작품은
노코멘트. 다만 전해지는 말로, 보통 소반 하나 값이 반가의 한달 봉급에 버금간다고 한다.

5 만약 장인이 되지 않았다면 지금쯤
동양화가.

 

1 황해도 해주에서 주로 생산된 해주반은 아자문·만자문·모란문 등 다양한 문양을 조각한 판각이 특징이다. 문양은 장인의 재산이기도 하다 2 말 그대로 손때가 묻은 손대패들 3 다리를 정교하게 조각하는 과정. 이런 과정에서 ‘손맛’이 묻어난다 4 켜켜이 쌓인 소반 너머로 걸려 있는 선대인 이인세 장인의 사진 5 일명 ‘종교 시리즈’. 기독교·불교 등을 현대적 감각으로 접목했다 6 문양 도안과 그것을 바탕으로 제작한 해주반

 

 

이현화 사진 최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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