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언제까지고 엄마다

 

생일상을 물린 어머니가 넌지시 안면도에 가보자는 말을 꺼냈다. 새벽에 내려온 형제들은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동생 들은 졸린 눈으로 하품을 하고 아이들은 휴대폰에 빠져 있었다. 그래도 어머니는 바다에 가서 굴을 쪼고 바지락을 긁어왔음 좋겠다 고집을 피웠다. 어머니가 잘하는 일 중 으뜸이 갯일이다. 바닷가 태생인 어머니가 농사짓는 집안에 시집 와서 쉴 수 없었던 것은 늦가을에서 이른 봄까지 하는 갯일 때문이다. 추수가 끝나면 어머니는 갯일을 하러 다녔다. 개펄을 뒤져 굴과 바지락, 피조개, 소라, 박하지 등을 대소쿠리와 양동이에 날랐다. 니들 가르칠 동안만 하고 그만둬야지.
그땐 집 안을 깨끗하게 치우고 도시 사람들처럼 살아봐야지. 어머니의 바람은 니들 장가들고 시집갈 때까지로 미뤄지 더니 이제는 자식들 먹을거리를 대기 위해 쉬지 못한다.
전화를 않는 내게도 가끔 전화를 걸어오는 어머니다. 씨암탉이 너무 컸어. 찔겨지기 전에 어서 와서 먹고 가야지. 하루 전에 전화하면 잡아놓을텐게 꼭 전화하고 내려와. 오늘 아침에 새로 담근 김치 부쳤으니 잊지 말고 냉장고에 넣어. 김치냉장고 없음 소 팔아서라도 사 줄 테니… 나는 김치냉장고 놓을 자리가 없다고 사양하지만 어머니는 집을 사준다는 말은 좀체 꺼내지 못한다.
몇 번인가 대리석 계단에서 미끄러져 다친 후로 부쩍 겁이 많아진 어머니였다. 그래서 현관으로 통하는 계단 옆에 난간손 잡이를 만들었다. 얼마 가지 않아 생나무손잡이가 매끈해졌다. 축사에서 소가 한두 마리씩 줄어드는 걸 지켜보면서 씁쓸해졌다. 이제 일할 힘이 부친다는 증거였다. 농사 일 년만 더 짓고 내놔야지. 일 년만 더 짓고. 일 년 일 년 연장하던 농사도 올해부터는 반만 남기고 남 줬다고 말할 때, 어머니는 함석지붕 위로 올라온 측백나무 벼슬을 보았다. 옥상에 올라가 달을 보고 있는데 어머니가 술상을 차려왔다.
달을 보니 좋지? 옴마는 달을 보면 니들 얼굴밖에 안 떠올라야. 시간이 더디 가는 줄 알았는데 금방 다 갔어야. 새벽에 일어나 왔다 갔다 하다 보면 아침 먹을 시간이지. 들에 나갔다 돌아와 점심 먹고 잠깐 눈 붙이고 일어나면 또 나가야지. 캄캄해서 돌아와 저녁밥 지어 먹고 나면 몸이 천근이지. TV 켜놓고 누워 잠깐 보다 보면 스르르 잠들지…. 어머니는 웃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넌 지금 어디쯤 와 있는 것 같으냐? 나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다 하려다 말았다.
어머니를 따라 바다에 갔던 때가 엊그제 같았다. 구멍 숭숭 뚫린 꺼칠한 스웨터에 낡은 잠바를 껴입은 젊은 어머니는 대소쿠리에 조새와 호미를 넣어들고 개펄로 들어갔다. 어머니는 물새처럼 작아져서 썰물 근처에서 갯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어머니가 피워준 해변의 모닥불에 고구마를 구워먹고 심심해져 집으로 돌아왔다. 한참을 놀아도 어머니는 돌아오지 않았다. 배고픈 나는 사철나무에 올라가 바다로 통하는 산길을 내다보았다. 양동이를 이고 대소쿠리를 든 어머니가 땅거미와 함께 돌아오면 아궁이 앞에서 해산물 즉석 파티가 열렸다. 우리는 어머니가 아니라 굴호이(굴회)와 굽은 피조개, 소라를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어머니와 나 여동생 셋이서 안면도로 출발했다. 우리가 도착한 드르니항은 여느 어촌이랑 다를 바 없었다. 조새와 소쿠리를 든 어머니가 굴을 쪼기 시작했다. 그리고 해풍에 날아 가는 어머니의 말이 이어졌다. 굴을 좃으면서 맛나게 먹어줄 너희 얼굴을 떠올리면 실실 웃음이 나왔다. 허리가 끊어질듯 아파도 손발이 얼어 터져도 볼때기가 면도칼에 오려지는것 같아도 너희 생각하면 물이 차오르는 줄도 모르고 굴을 좃게 됐지.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욕심을 부리다보면 꼴찌로 남게 됐지 뭐냐. 너희 먹일 생각으로 단걸음에 달려갈 수 있었다. 조새는 옴마 눈이었어. 불쌍한 내 새끼들 먹여 살릴 궁리만 하는 조그맣지만 언제나 흰 빛을 잃지 않는 눈이었다.
우리는 어느 짐승의 날카로운 뿔처럼 생긴 조새가 굴을 쪼아 소쿠리에 담는 것을 지켜보았다.

 

이윤학

 

이윤학은?

1965년 충남 홍성에서 태어나 동국대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9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하여 등단했고 시집 <먼지의 집> <붉은 열매를 가진 적이 있다> <나를 위해 울어주는 버드나무> <아픈 곳에 자꾸 손이 간다> <꽃 막대기와 꽃뱀과 소녀와> <그림자를 마신다> <너는 어디에도 없고 언제나 있다> <나를 울렸다> <짙은 백야>, 장편동화 <왕따> <샘 괴롭히기 프로젝트> <나 엄마 딸 맞아?>, 산문집 <불행보다 먼저 일어나는 아침>을 펴냈으며 김수영문학상·동국문학상·불교문예작품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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