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등을 만든다

어둠 속에서 찬란히 피어나는 불빛의 소중함을 경험하자

 

 

어렵게 밝힌 불빛 하나가 조용히 주위를 비춘다. 예로부터 불가에서는 등을 공양하는 풍습이 있었다. ‘가난한 사람이 밝힌 등불 하나’라는 뜻의 빈자일등(貧者 一燈)이 여기서 나왔다. 부자가 아무리 크게 보시(布施)한들 가난한 이가 보인 작은 성의를 넘어설 수 없다는 말이다.

새로운 생명이 태어났을 때, 성인식을 치를 때, 짝을 이뤄 결혼할 때, 생을 마감할 때…. 생각해보면 인류는 생의 통과의례를 치를 때마다 등을 밝혀왔다. 이는 등의 근간인 불(火)이 본디 신의 영역이었기 때문이리라.

“우리나라의 등은 불교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중국이 세시풍속, 일본이 지역축제, 스리랑카가 불교와 민속이 결합한 형태로 전승된 것과 차이가 있지요. 조선시대에만 해도 초파일 연등회가 대단한 구경거리였다고 해요. 제등행렬이 민간에서 놀이화되면서 꼭 초파일이 아니더라도 종종 축제처럼 열리기도 했습니다.”

전통등을 연구하는 ‘전영일공방’의 대표, 전영일 숙련기술전 수자의 설명이다. 연등회를 비롯한 제등 행렬에 쓰이는 등은 직접 만드는 것이 기본이었다. 그 말인즉슨, 조선 후기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사람이 등을 만들 줄 알았다는 것. 일제강점기에 이어 6·25전쟁을 겪으면서 아무리 전통의 명맥이 끊겼다지만, 전기의 보급으로 예전만큼 등이 필요치 않다지만, 등과 관련된 여타 다른 나라의 축제가 관광 상품이 될 만큼 흥하는 걸 보면 오늘날 등을 만들 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건 의아한 일이다.

“제 작업을 ‘전통등’이라 칭하는 데에 나름 이유가 있어요. 1996년 봉축위원회에서 왜색이 만연한 등 대신 우리 전통 등을 연등회에 부활시키자는 움직임이 있었고, 그때 저도 참여했었거든요. 불교에 관심이 많기도 했는데, 순수미술의 시각에서도 등이 참 흥미롭더라고요. 이거다, 싶었죠.”

전영일 전수자의 등은 우리 민족이 써왔던 ‘등’과 연등회에서 보여왔던 재기발랄하고 독창적인 등이 가진 ‘창조성’을 아우른다. ‘전통을 이어가되 박제되어서는 안 된다’는 일념으로 금속으로 프레임을 만들고 한지를 덧씌우는 방식을 주로 사용한다. 채색이 잘되고 빛이 한지를 투과할 때 느껴지는 따뜻한 느낌이 좋기 때문이다.

“한지만큼 오랜 시간 검증된 소재도 드뭅니다. 천년 가는 한지의 가치를 전 세계에서 인정하고 있지만, 정작 한지 장인들은 생활고로 몇 년을 더 할지 고민한다는 게 아이러니하지 않나요? 미력하게나마 전영일공방이 벌이는 일련의 활동으로 한지의 부가가치가 높아진다면, 그 또한 기쁜 일일 겁니다. 지금 ‘공예’를 둘러싸고 있는 다양한 생동감을 국가에서 정책적으로, 뚝심 있게 뒷받침해준다면 더욱 좋겠지만요.”

시대를 막론하고 ‘한길’을 판다는 건 외롭고 힘든 싸움의 연속이다. 한번 끊겼던 전통등의 명맥을 잇고, 파리·런던·뉴욕·호주 등에서 해외전시를 열고, 오는 6월 베이징에서 개인전을 여는 전영일 전수자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그는 역행을 순행으로 바꿔나갈 것이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전영일
홍익대학교에서 조소를 전공했다. 1998년에 ‘전통등 연구회’에 참여한 뒤 ‘등’의 멋에 취해 전통등의 대중화와 예술화에 힘쓰고 있다. 뜻있는 작가들이 모여 활동하는 ‘전영일공방’의 대표이자, 2003년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전통등 숙련기 술전수자로 선정하며 그 공로를 인정받았다.

 

1 <두 바퀴> 자전거, 와이어, 한지, 조명 2 뼈대와 와이어를 용접하는 과정 3 <부처의 미소> 와이어, 한지, 채색, 조명 4 <까치호랑이> 와이어, 한지, 채색, 조명
5 <연잎> 스테인리스 스틸, 한지, 채색, 조명 6 와이어를 조형하는 모습 7 <도시> 스테인리스 스틸, 한지, 조명

 

➊ 나에게 등이란?
(한참을 고민하다) 비장의 레시피.
➋ 장인이 생각하는 장인의 조건
자기 세계와 관련해서 충분히 ‘또라이’란 말을 들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누군가 내게 ‘또라이’라 한다면 기분이 나쁘진 않아요.
➌ 영감의 원천
음, 꿈꾸면서? 꿈을 ‘강제로’ 꾸죠(웃음). 자기 전이나, 아침에 일어난 직후, 낮잠을 잔다거나 몽환적인 상태에서 뭔가 정리되지 않고 넘어갈 때, 아이디어가 떠오르더라고요.
➍ 아침에 눈 뜨자마자 하는 행동
부끄럽지만…. 최근에는 스마트폰을 확인합니다. 그전에는 멍 때리기였어요. 꿈꿨던걸 메모해야 하니까요.
➎ 만약 장인이 되지 않았다면 지금쯤
시민운동가. 평화를 위해 이 한 몸불사르고(?) 있지 않을까.

 

 

이현화 사진 임익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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