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경쟁자는 결국 당신이다, 안호상 국립중앙극장장

안호상 국립중앙극장장은 모두가 만류한 시즌제를 국내 문화계에 도입했다

 

안호상 국립중앙극장장은 올해로 예술 분야에 34년째 몸담고 있는 대표 문화인이다. 지난 1984년 서울 예술의전당(이하 예술의전당) 제1호 문화행정 요원으로 시작해 현재 국립극장에 오기까지 긴 시간 국내 예술문화의 질을 높였다. 세 번의 극장장 연임이 이걸 뒷받침해주는 방증이다. 안호상 극장장은 케이팝(K-Pop), 케이드라마(K-Drama)에서 한류문화 콘텐츠의 가치를 발견했다. 세련된 콘텐츠에 가려진 창극이나 판소리 같은 전통문화도 주류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한 것. 2012년 국립극장의 극장장으로 부임한 이후 전통예술의 발전과 기관의 부흥을 위해 한 해의 모든 레퍼토리(공연)의 스케줄을 짜고 운영하는 시즌제를 도입했다. 그는 발 빠르게 움직여 국내 예술가들을 모았고, 그해 스릴러 창극 <장화 홍련>을 탄생시켰다. 첫 공연임에도 매진 사태가 이뤄졌다. 이후 국립무용단의 <향연> 역시 2015년 초연 이래 3년 연속 매진을 기록하며 국내 문화 콘텐츠 개발에 초점을 둔 시즌제는 성공을 거뒀다.

 

신뢰만 있다면 실패해도 본전

1999년도에 예술의전당에서 베토벤처럼 널리 알려진 음악가의 공연을 2000년도에 맞춰 열자고 하더군요. 베토벤은 이미 유명하고 알려진 작품의 재탕은 문화 수요의 발전과 더 많은 공연의 기회가 줄어들 거란 생각이 들더군요.

그때 제가 구스타프 말러의 공연을 추진하자고 외쳤어요. 수익이 보장되는 모델이 아니니까 모두가 반대하더군요. 모두가 이 기획에 기대치가 없으니 실패해도 본전이다 싶었어요.

새 천년이 열리는 2000년이 다가오는 시기라 전에 없던 인물에 관한 콘텐츠가 대중에게 색다른 의미가 된다고 꾸준히 어필했죠.(웃음) 설득엔 타이밍도 중요하거든요. 결국, 이 공연은 엄청난 흥행을 일궈냈죠. 문화는 같은 것만 반복하면 안돼요. 변화도 필요해요. 어떤 일을 하든 그곳에 가능성이 보인다면 일단 뛰어들고 해내기 위해 움직이세요. 잘된다면 그 성과는 다른 일의 배가 됩니다. 간과해선 안 될 부분이 있는데, 어설픈 모습을 보여주면 안돼요. 상대방을 설득하기 전 어떤 업무도 할 수 있다는 신뢰를 가꾸세요.

 

 

모두를 내 편으로 만드는 경청의 힘

국립극장에는 여러 예술가가 속해 있어요. 그들은 예술, 즉자신을 드러내며 무언가를 표현하는 업을 가진 사람들이죠. 이렇게 자신만의 프라이드가 강한 사람들을 하나로 엮기는 쉬운 일이 아니에요. 100명이 넘는 예술가를 일일이 만나 대화를 나눴어요. 왜냐하면, 이전까지 예술가들이 표를 팔러 다니고, 열악한 환경에서 연습했기 때문에 불만의 줄기가 걷잡을 수 없게 퍼졌거든요. 그들을 만나 ‘우리를 해체하려고 왔냐’, ‘재단을 법인화시키려고 하느냐’는 얘기까지 듣고 나니 깊은 고민에 빠졌어요. 결국 그들이 승복할 수 있는 텍스트를 제시하기로 했고,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사내 문화로 감동을 선사하기로 마음먹었죠. 상처받은 직원들을 보살펴주는 것도 리더의 몫이잖아요? 그들의 기량을 높이기 위해 좋은 연습실, 세계적인 안무가를 국립극장으로 불렀어요. 그리고 분야마다 연습실을 사용하게끔 체계를 다시 잡았죠. 그러자 성과가 나오기 시작했어요. 관객이 많아진 까닭은 수준 높은 한국 문화 콘텐츠의 힘이고, 그 원천은 예술가들 개인에게서 나오기 때문이죠. 상대의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 의도에 맞게 행동 한다면 조직의 불화는 자연스레 줄어듭니다.
 

뒤처짐이 선사하는 배움의 기쁨

원래 예술의전당은 1986년에 부분 개방을 하고 1988년 서울올림픽에 맞춰 전면 공개할 예정이었어요. 제가 근무할 당시 설계 진행을 위해 미국에 사는 한 건축가를 꾸준히 접촉하며 담당했어요. 그런데 제가 예술은 물론 행정 분야도 자세히 모르니 그와 심도 있는 대화가 이뤄지지 않았어요. 마치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듯 말이죠. 그래서 공부를 해보기로 했어요.

우선 예술기관으론 국내보다 앞선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런던의 바비칸 센터에 그들의 연간 예산서 및 연간 프로그램을 보내달라고 편지를 썼어요. 당시엔 메일이 없으니 편지로 그들의 자료를 받으면 제 것으로 만들기 위해 쉬지 않고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나만 아는 공부를 하며 얻는 쾌감은 색다른 충격이었어요. 누가 가르쳐주지 않는 분야를 공부하면 그들의 생각을 알게 돼요. 이제는 극장의 프로그램 표만 봐도 해당 극장의 한 해 예산과 직원의 숫자, 프로그램이 어떤 식으로 운영될지 보여요.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낄 때 시작하는 공부는 남이 흉내 낼 수 없는 추진력과 힘을 얻을 수 있어요.
 

가치를 느꼈다면, 흔들리지 말고 직진

요즘은 제가 젊었을 때와 달리 직업을 찾기도, 갖기도 어려운 시기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모두에게 기회가 한 번쯤은 찾아와요. 그때 그 일에서 빨리 가치를 찾는 게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이리저리 재기보단 해당 분야를 통해 내 커리어와 사회적 위치를 높인다는 마음으로 임하는 게 중요해요. 이렇게 가치를 믿고 추진하면 언젠가는 귀인을 만나게 됩니다. 어딜 가도 자신을 괴롭히는 직원이나 상사가 있게 마련이죠. 그럴 땐, 괴롭다고 그 상황에서 튕겨나가지 마세요. 나와 상대방만이 할 수 있는 제3의 비전을 만들어보는 거예요. 두 사람이 감수하고 성장할 수 있는 가치를 제시하는 순간 같은 곳을 바라보며 눈에 띄게 발전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어요.

저 역시 시즌제를 도입할 때, 주변에서 크게 만류했어요. 그러나 창극, 판소리, 무용, 국악처럼 우리 민족 고유의 콘텐츠도 충분히 힘을 가졌다고 믿었고요. 흔들리지 마세요. 지금 여러분이 있는 자리는 해낼 수 있다는 자부심을 기반으로 일궈낸 여러분의 땅이에요.

 

 

유재기 사진 문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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