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를 매혹한 남포벼루

3대째 이어져오는 보령의 자랑

 

 

 

벼루는 남포가 가장 으뜸이라
얼마나 열심히 글을 쓰면 벼루에 구멍이 날까. 열 개의 벼루를 구멍 내고, 일천 자루의 붓을 몽당붓으로 만든 추사 김정희. 당대 최고의 학자이던 그의 유품은 보물 제547호가 되어 국립중앙박물관에 남았다. 그중 세 점이 벼루인데 하나는 단계석(端溪石)으로 만든 중국 벼루요, 나머지 둘이 바로 남포벼루다. 벼루만 102개를 수집한 추사의 제자 조희룡. 그가 ‘한 번만 써봤으면’ 하고 호시탐탐 노렸던 스승의 벼루 역시 남포벼루가 아니었을까.
이처럼 충남 보령 남포지역에서 생산하는 남포벼루는 예로부터 명성이 자자했다. 먹을 갈 때 매끄러워 조금도 끈적이지 않고, 묵지(墨池·벼루 한쪽에 먹물을 모으는 오목한 곳)에 물을 넣어도 열흘 이상 마르지 않기 때문이다. 흑단같이 검어 먹이 제 색을 내도록 하고, 다이아몬드로 겨우 자를 만큼 단단하니 이보다 더 좋은 조건이 있으랴.
“‘남포 오석연’이라 기록한 문헌은 잘못된 것입니다. ‘백운상석(白雲上石)’이 맞습니다. 오석(烏石)은 검은 모래로 구성된 사암인데, 먹을 갈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비석으로나 쓰면 모를까, 벼루로는 도저히 쓸 수 없는 돌입니다.”
충남 무형문화재 제6호 서암(書岩) 김진한 장인의 설명이다. 좋은 벼루는 돌의 등급으로 결정되는데, 보령이 백운상석의 산지이기에 남포벼루가 최고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까만 바탕에 흰 무늬가 구름처럼 들어간 백운상석은 두드렸을 때 맑고 청아한 소리가 난다. 벼루에서 탁한 소리가 난다면 중석 또는 하석이다. 주로 소모품으로 쓰이며 백운상석 벼루와는 10~20배 정도 가격 차이가 있다.

3대째, 벼루는 내 운명
대천해수욕장이 지척인 충남 보령은 석공예의 고장이기도 하다. 아마도 지리적 요건 때문일 것이다. 좋은 돌이 많이 나니 자연스레 석공들이 모여들었고, 석공의 아들 또한 석공이 되었으리라. 김진한 장인 역시 예외는 아니다. 어릴 때부터 장난감 대신 돌을 가지고 놀았다.
“초가삼간이라고 하죠. 세 칸짜리 초가집에 골방이 하나 있었는데, 거기가 바로 아버지의 작업실이었어요. 어린 눈에도 벼루가 제법 멋있어 보였는지, 아버지 몰래 들어가서 망가뜨리고 혼나고…. 5남1녀 6남매 중에 유독 나만 그랬지요.”
김진한 장인의 벼루 가계는 조부 김형수 옹부터 시작됐다. 마을 서당에 학생들이 쓸 벼루를 납품하게 된 것이 계기였다. 가업을 이은 부친 김갑용 선생의 벼루는 얼마나 유명했는지, 일제강점기 일왕에게까지 건너갈 정도였다고 한다.
“부모님께서 벼루 만지는 걸 썩 반기시진 않았어요. 중학교 2학년 때인가, 하루는 아버지가 만드신 걸 내가 손을 대서 슬쩍 변화를 줬거든? 꼼짝없이 또 혼날 줄 알고 숨어 있었지. 그러다 부모님께서 ‘손재주가 있긴 있어. 잘 맹글었는디?’ 하시는 걸 들었어요.”
그때부터 용기가 샘솟았다는 김진한 장인. 공상을 좋아하던 소년은 상상 속 용과 봉황, 자연에서 관찰한 모든 것을 돌에 수놓기 시작했다. 세월이 흘러 붓 대신 펜이 등장했고, 서예 인구의 급감과 함께 벼루시장도 크게 쇠락했다. ‘그러다 굶어 죽는다’며 비웃는 사람도 많았다. 그러나 하고 싶은 것을 하겠다는 장인의 마음은 한결같았다.
“좋아하는 일을 일생 하는 것이 어디 쉽습니까. 그런 면에서 나는 참 행복한 사람입니다. 백운사 뒤편에서 백운상석을 보면서 ‘언젠간 저걸로 벼루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는데, 장비가 좋아진 덕분에 실컷 만들고 있지 않습니까.”

 

 

21세기 선비, 장인의 꿈
오천사백이십일. 김진한 장인의 벼루를 가져간 사람들의 숫자다. 새로 주문이 들어올 때마다 그 사람의 이름과 가져간 작품의 특징, 방명록을 꼼꼼히 기록한다. 똑같이 생긴 노트가 수백 개. 역대 대통령이 주문했던 벼루도 저 노트 어딘가에 기록되어 있을 것이다.
“붓으로 글씨를 쓰려면 몸과 마음을 다잡아야 합니다. 심신수양인 셈이죠. 요즘 학교에 서예시간이 없다는 것이 참 안타까워요. 그런 차원에서, 요즘 선비를 찾는다면 여기 방명록에 적힌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손편지도 안 쓰는 요즘 세상에 서예라니, 딴 세상 이야기 같지만 그의 벼루가 얼마나 좋은지 써 본 사람은 안다. 열 번 넘게 장인을 찾아와 기어이 전시용 벼루를 팔게 만든 고객이 있는가 하면, 산수화 벼루를 들이고 나서 서재에서 계곡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는 고객도 있다.
장인의 벼루는 30만 원(21×30cm)부터 시작해 작품에 따라 500만 원, 1000만 원을 호가한다. 서울과 부산, 제주처럼 먼 곳에 사는 고객에겐 택배로 보내주기도 한다. 워낙 고가여서 구입을 망설이는 사람에게는 선입금 1만 원만 받고 ‘실컷 써보고 맘에 들면 구입하라’고 할 때도 있다. 이렇게 해서 돈 떼먹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고.
올해 76세를 맞은 김진한 장인. 오늘도 어김없이 공방에 연탄을 갈아 넣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백운상석만 고집하며 최고의 작품을 만들어온 장인이건만 아직까지 100% 만족스러운 벼루는 없다.
“남들이 잘됐다 해도 나는 항상 아쉬워요. 만들고 싶은 것이 무궁무진한데 생각한 대로 100% 표현이 안 되거든. 언젠가는 되겄지, 하면서 성에 찰 때까지 만들어야지유. 내 꿈입니다. 허허.”
‘아직도 만들고 싶은 게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며 웃는 김진한 장인. 그 미소가 아버지 공방에 숨어들던 일곱 살 소년처럼 천진난만하게 빛난다.

 

 

백운상석(白雲上石) : 상석·중석·하석으로 나뉘는 남포벼루의 재질 중 최고로 꼽히는 돌. 검은 바탕에 흰 무늬가 구름 같다 하여 백운상석이란 이름이 붙었다. 성주산을 중심으로 채취한다.

 

글 이현화  사진 임익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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