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스토리텔링 여행 #4. 사회 초년생, 당신에게도 힐링이 필요해

고등학교 때는 대학만 가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학생이 된 후에는 결국 취업을 해야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취업이 끝이 아니란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새로운 환경과 낯선 업무. 행여 실수나 하지 않을까 노심초사. 이제 막 사회에 첫발을 디딘 당신에게도 힐링이 필요하다.

글·사진 박동식 여행작가

 

TRAVEL STORY

청동기부터의 오랜 역사와 천혜의 자연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보물 같은 여행지, 충북. SRT매거진과 한국관광공사 세종충북지사가 함께 충북의 숨겨진 매력을 하나씩 소개합니다.

걸어봐! 정신이 맑아질 거야! –생거진천자연휴양림
돌아보면 나의 이십 대 후반은 유독 암울했다. 초대받지 못하고 세상에서 버림받은 느낌이었다. 마음만 급했고 모든 것이 불안하고 답답했다. 주변에 사람은 많았지만 늘 혼자라는 느낌을 받았다. 내 맘 같지 않았고 진정으로 나를 도와주는 사람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나 혼자만 지나치게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행여 당신도 그런 마음이라면 휴양림에서 하룻밤을 보내보는 것은 어떨까? 숲속에서의 하룻밤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이른 아침 눈을 떴을 때 당신의 아침은 분명 여느 날과 다를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렇게 맞이한 아침,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숲을 걸어 보자.

생거진천자연휴양림은 진천 무제산 자락 동남쪽에 자리하고 있다. 구불구불 이어진 도로 옆으로 ‘숲속의 집’들이 들어서 있다. 언덕은 조금 가파르다. 마지막 ‘숲속의 집’을 지나면 곧 임도가 시작된다. 비로소 경사가 완만해진다. 비포장 임도는 긴 나무터널과 같다. 

신기한 일이다. 나무터널을 걷는 사이 생각에 잠기게 된다. 어쩌면 사색은 눈을 감고 앉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 걸으면서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포행(布行)은 참선의 연장이나 다름없다. 

나무터널을 빠져나가면 환한 공터가 나타나고 그 너머에 정자 하나가 서 있다. 송림정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지만 그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저 팔각정이다. 팔각정에서 멀찍이 내려다보이는 작은 호수는 팔각정의 이름과 같은 송림저수지다. 그리고 그 너머의 소박한 도시는 이월면이다. 

이곳부터 무제산 정상까지는 불과 1km 거리다. 정상을 밟아도 좋고 발길을 돌려 휴양림으로 돌아가도 괜찮다. 당신의 발걸음이 어디로 향하든 당신은 다시 사색에 잠기게 될 테니까. 그리고 휴양림에 되돌아올 때면 마치 먼 길에서 돌아온 수도승처럼 맑아진 자신을 발견하게 되겠지.

계곡이 있으니 더욱 좋잖아! -장령산자연휴양림
나의 첫 직장은 ‘신발공장’이었다. 그 이전 외항선을 탈 생각도 했었다. 당시 외항선은 바다의 ‘막장’과도 같은 것이었다. 아무도 몰래 선원소양교육을 받고 선원증을 만들었다. 하지만 바보처럼 배를 탈 용기조차 없었던 나는 빌린 20만 원을 들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서울을 떠났다. 

‘나도 이 정도는 고생했으니 당신도 참아’라는 말을 하려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삶은 여전히 고달프다. 나의 이야기는 잠시 접어두고 두 번째 휴양림을 추천하고 싶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휴양림은 산속에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꽤 많은 휴양림이 계곡을 품고 있다. 장령산자연휴양림도 그런 곳이다.
장령산자연휴양림 한복판을 흐르는 계곡은 금천계곡이다. 풍광이 아름답고 수량이 풍부해서 여름 피서지로도 인기가 많은 곳이다. 계곡을 중심으로 동쪽에는 숙박시설인 ‘숲속의 집’이, 서쪽에는 야영지인 데크가 자리하고 있다. 숲은 기본이고 멋진 계곡을 보너스로 받으니 행복하지 않을 수 없다.

불편함 속에서 얻는 편안함 -송호국민관광지
통일호를 타고 부산에 도착했다. 전봇대에 붙은 ‘하숙 7만원’이라는 종이를 보고 한방에 3명이 잠자는 하숙집을 구했다. 첫날 저녁 밥상을 마주한 주인아저씨는 내게 직장은 구했냐고 물었다. 그는 신발공장의 작업반장이었다. 그렇게 나는 운이 좋게도(?) 서울을 떠난 다음 날부터 신발공장에서 일하게 되었다.
신발공장에서 일하며 여러 차례 야영을 떠났다. 휴식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당시 ‘캠핑’이나 ‘힐링’이란 말은 세상에 없었다. 지금처럼 고급스럽고 경량화된 장비도 없었다. 당연히 전문 캠핑장도 없었다. 

송호국민관광지는 넓은 솔밭에 자리한 캠핑장이다. 그 흔한 데크도 없다. 모든 캠핑 사이트의 바닥은 풀밭이다. 가장 자연적인 캠핑장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굵직굵직한 소나무들이 즐비한 솔밭은 매우 아늑하다. 더욱이 솔밭 뒤에는 유유히 금강이 흐른다. 강을 건너온 바람은 소나무 사이를 지나면서도 소리가 없다. 캠핑의 매력은 불편함 속에서 얻는 편안함이다.

솔밭과 금강 사이에 자리한 여의정(如意亭) 옆에는 이름도 없는 돌부처가 서 있다. 가슴에 손을 모은 부처의 얼굴은 코 이외에는 알아볼 수가 없다. 불편함 속에서 느끼는 편안함처럼 투박함 속에서 느끼는 인자함이다.

체험이 있으니 즐거움이 두 배 -좌구산자연휴양림
만약 당신이 조금 더 역동적인 사람이라면 좌구산자연휴양림을 추천한다. 휴양림뿐만 아니라 천문대와 줄타기(짚라인) 체험까지 가능한 휴양림이기 때문이다. 천문대는 휴양림을 지나 좌구산 중턱까지 올라가야 한다. 국내에서 가장 큰 356mm 굴절망원경이 설치되어 있으며 인근에 큰 도시가 없어 천체를 관찰하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다. 또한 줄타기 길이는 무려 1.2km에 달한다. 다섯 번이나 환승을 하며 좌구산 자락을 하강한다. 

처음은 다 어렵다.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은 제 맘대로 흐른다. 주말과 월급날은 더디 와도 지나고 보면 1년은 금방이다. 신발공장에서 내가 했던 일은 프레스라는 기계에서 운동화 밑창을 찍어내는 일이었다. 엄청난 노동력이 필요했고 곳곳에 위험성이 산재해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손가락 마디마디가 아파서 출근길 버스의 손잡이를 손목으로 잡아야 했다. 그리고 다행히도 병원에서 손톱 하나만을 뽑는 경미한(?) 사고로 프레스의 위험성에 대한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나는 2년 후 서울로 돌아왔다. 

수십 년 손길로 완성된 정원 -베어트리파크
누군가 그럴지도 모른다. “휴양림 말고 없어?” 그래서 준비했다. 사회 초년생을 위한 마지막 힐링 장소. 바로, 베어트리파크다. 2009년에 오픈했지만 1991년부터 이미 수목을 식재하기 시작했으니 수십 년을 가꿔온 정원이다.

정원을 산책할 때는 꽃들의 이름을 불러보는 것은 어떨까? 하늘매발톱, 지리대사초, 해국, 노랑조팝, 꿩의비름….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는 김춘수의 시 「꽃」의 한 구절처럼, 아무것도 아닌 풀들이 이름을 불러주고서야 내게로 와서 진정 꽃이 된다.

베어트리파크에는 수목들 이외에 몇 종류의 동물들이 살고 있다. 그중에서도 반달가슴곰은 베어트리파크의 상징과도 같은 동물이다. 처음에 몇 쌍 기르던 것이 지금은 대를 이어서 수십 마리가 되었다. 수목들이 자리를 잡듯 동물들도 뿌리를 내린 것이다. 먹이를 달라고 손을 흔드는 모습과 던진 먹이를 입으로 완벽하게 받아내는 동작은 감탄을 자아낸다. 하지만 한편 안쓰러운 마음도 숨길 수는 없다.

힐링을 마쳤으면 이제 다시 사회로 돌아갈 시간이다. 자세히 알려주지도 않으면서 결과물만 재촉하고, 자기들 하기 싫은 일은 다 나에게 떠넘기는 것 같기도 하다. 더욱이 나는 사회 초년생인 주제에 모르는 게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강박에 시달린다. 그리고 결국 사수가 원수가 되는 날이 오고 만다. 

나의 첫 직장은 ‘공장’이었기에 상황이 조금 다를 수는 있다. 그럴지언정 내가 바라는 것은 한 가지다. 누구도 그때의 나처럼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 살아보니 결국 그 나이가 되어야 깨닫는 진리가 있다. 스물은, 서른은, 스물답고 서른다워야 한다. 그러니 당신은 너무 많이 힘들지 않아야 한다.

혹시 그런 날이 찾아오면 다시 숲으로 가길 권한다. 숲은 언제나 안식을 선물한다. 숲은 생명의 근원이다. 숲이 어머니의 품속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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