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성석제- 용이 잠들어 있는 곳, 웃음이 꿀처럼 흘러내리는 산하

AS TIME GOES BY | 작가의 고향을 찾아#7 소설가 성석제의 고향 경북 상주

용의 전설과 같은 오랜 것들, 앞 세대와 그 이전의 일상과 자연이 있는 곳. 그리하여 한 이야기꾼을 길러낸 고장, 경상북도 상주.

성석제 사진 임익순

 

작가 성석제 1960년 경상북도 상주에서 태어났다. 1994년 짧은 소설을 모은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를 간행하면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소설집으로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어머님이 들려주시던 노래> <재미나는 인생>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 등이, 중장편 소설로 <아름다운 날들> <인간의 힘> <투명인간> 등이 있다. 산문집으로는 <소풍> <칼과 황홀> <꾸들꾸들 물고기 씨, 어딜 가시나> 등을 냈다. 최근 산문집 <근데 사실 조금은 굉장하고 영원할 이야기>, 단편모음집 <내 생애 가장 큰 축복>을 출간했다.

1975년 3월 말, 나는 고향 경북 상주를 떠나 서울 부근에 살게 되었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최소한 한 해에 두 번 이상, 일수로는 보름 이상 상주에 들락거렸다. 그러면서 유난히 자주 듣게 된 질문이 생겼다. 아래는 그런 질의·응답의 예라고 할 수 있다.

“당신은 상주에 뭐가 있다고 그리도 자주 가는 거야? 풀방구리에 쥐 드나들듯.”
“어, 나 쥐띠거든. 상주가 풀방구리는 아니지만. 상주의 크기가 전국 기초자치단체 중 이만한 풀방구리 라면 전 세계 챔피언급 아닌가? 6위에 해당한다는 데. 서울의 두 배가 넘어.”

“됐거든. 땅만 크면 뭐 하냐고.”

“지명에 ‘주’ 자가 들어가면 무조건 큰 고을인 거야.

신라 지증왕 때 주군현제를 실시했는데 주가 제일 위고 그 밑에 군, 군 밑에 현이 있었어. 고려 때 5도제를 만들면서 경주, 상주의 앞글자를 따서 경상도가된 거고. 조선 초기 상주는 경상감사가 상주하는 중요한 도시였다 이 말이지. 근래에 영남제일문, 경상 감영을 멋지게 복원해 놨어.”

“고리타분하게 옛날이야기는 들춰서 뭐 해.”

“먼저 풀방구리하고 쥐 이야기한 사람이 누군데? 암튼 이렇게 큰 고을이니까 산부터 숲, 평야, 하천, 호수, 강이 고루고루 있어서 농수축임산물이 풍부하게 나면서 부자가 많이 있다 이 말이지. 상주에 한해 1억 원 이상 고소득 농가가 1500여 가구 이상인데 2위하고 월등하게 차이가 나는 전국 1위야. 곳간 에서 인심 난다고 사람들이 농담도 잘하고 대단히 낙천적이지. 웃음소리가 아주 커. 그것도 전국 1위려 나? 겨눠보지는 않았지만. 상주의 또 다른 전국 1위 생산물로는 오이, 육계, 꿀이 있지.”

“육계가 뭔데? 약초 이름?”

“약초는 육두구 같은 거고 육계는 닭이야. 꿀이 많이 난다는 건 그만큼 나무와 곡식, 숲이 풍요롭다는 거지.그래서 상주를 ‘대한민국 농업수도’라고 하더라고.”

“하긴 그런 말을 기차역 어디에서 본 것 같다.”

“얼마 전에 상주가 좀비가 나오는 사극의 주요 무대가 되어서 유명해졌거든. 사실 상주는 임란 때 왜병과 조선의 중앙군이 최초로 대규모 교전을 벌인 곳이기도 하지. 암튼 그 사극에 등장한 우리의 전통 갓 이 아름답고 예술적이라고 전 세계적인 상찬을 받았 지. 상주의 전국 1위가 또 뭐가 있느냐 하면….”

“아, 지겨워. 전국 1위.”

“아직 많아. 먼저 자전거보급률이 압도적인 전국 1위 예요. 국토종주자전거길이 지나가기도 하고. 사실 상주의 길은 차도, 골목길, 마을길, 둑길 할 거 없이 전부 전천후 자전거길이지 뭐, ‘한국 자전거 문화의 메카’라는 말은 내가 붙였어, 솔직히. 어릴 적 아침저 녁으로 수백 수천 명의 학생들이 자전거로 통학하는걸 보면 정말 장관이었지. 자동차 탄 사람들이 알아서 천천히 가고 양보해주기 때문에 사고도 안 나요. 결국 자기들도 자전거로 다녔고 모두들 집에 자전거 두어 대씩은 다 있기 때문에. 그러니까 시내 공기가 좋지. 결정적으로 중요한 전국 1위가 있는데….”

“1등 자랑 좀 그만하면 안 돼?”

“안 돼. 아직 결정적인 건 나오지도 않았다고. 곶감이 1위이다 못해 전국 시장의 60퍼센트 이상을 차지 하고 있고 한우가 전국 1위….”

“어? 생각보다 한우가 많네. 강원도 어딘 줄 알았더니.”

“땅이 워낙 넓고 축산업이 발달해서 그래. 한우 맛있는 식당도 여럿 있고 ‘상감한우’라는 브랜드가 나온 지 오래됐어. 우리야 식육점 가서 ‘고기 끊어다’ 국만 끓여먹어도 좋지만 소고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성지순례하러 상주에 한번 다녀갈 만하지.”

“그런데 왜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 음식 같은 게 없지? 부자가 많으면 맛있는 거도 많이 먹을 텐데.”

“사실 유명하다는 지역 음식들은 잘 살펴보면 거의다 단품요리야. 비빔밥, 냉면, 짬뽕, 떡갈비 이런 식으로. ‘맛있는 음식의 고향(味鄕)’이라고 하는 데 가서 삼시 세끼 맛있는 단품요리로만 골라서 먹어봐. 사흘도 못 돼서 보리밥에 열무김치, 고추장 넣어서 쓱쓱 비벼먹고 싶어질걸. 상주 음식이 그래. 얼마 전에 유튜브에 나와서 난리가 난 시골 식당이 내 단골 이었는데 거긴 상주 사람들도 잘 몰랐던 데야. 상주에 흔한 두부, 묵, 칼국수 같은 걸 파는 데였거든. 뭐집에서도 일상적으로 해먹고 시내 식당, 분식집 가도 웬만한 데서는 먹을 수 있는 거야. 약간 다른 게있다면 장맛이야. 간장, 된장, 고추장 같은. 그게 오래도록 공동체를 이루면서 살아온 사람들이 만들고 먹어온 깊은 맛이지. 잡미 없이 맑은.

상주서는 삼시 세끼 백년 3만6000일을 백반만 먹어도 절대 안 물려요. 그곳에서 음식점 하는 분들, 거의 100퍼센트가 직접 장을 담가서 써. 그게 그분들의 자존심이기도 하니까. 요새 내가 자주 가는 데가 시장에 있는 백반 잘하는 집인데, 그 집은 정말 된장찌개 맛이 어릴때 먹던 거하고 똑같애. 은척면 어딘가에 전설적인 고수가 계신데 거기서는 그날 있는 재료 가지고 그때 그때 다르게 조리해서 손님 받고 재료 떨어지면 문 닫아걸고 한대. 난 아직 한 번도 못 가봤어. 아직 갈 데가 많아 좋네.”

“은척이라면 당신 소설에도 여러 번 나오지.”

“응. 그건 내가 어린 시절 생각한 상주의 축소판 같은 거야. 난 사실 상주읍의 변두리 농촌마을에 살아서 대한민국 역사의 주요 장면이 벌어지고 여론이 형성 되는 장터 풍경을 잘 몰라요. 1994년에 작가로 막 출발해서 첫 장편소설을 쓸 때 상주에서도 깊숙한 곳에 있는 공검면 오태못이라는 곳에 갔었거든. 마을의 빈집을 빌려서 여름 한철을 났지. 그곳에서 생전 처음으로 지역의 전설과 이야기, 가문의 대소사, 역사, 지리의 중요성에 관해 알게 된 거야. 그게 문학의 본원이자 세계성이라는 걸 깨닫게 된 거지. 그곳에 뿌리내리고 살아온 사람들에게서 숱한 이야기를 얻어듣고 읽고 걸어다니며 경험을 했지. 그게 훗날 엄청난 자산이 됐어.

상주의 풍광과 사람들, 농촌의 풍속과 풍정이 <인간의 힘>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를 비롯해서 십수 편의 소설을 낳은 거야. ‘황만근’에 나오는 토끼고개가 은척으로 넘어가는 고개였어. 그때 소설을 쓰다 갑갑하면 고개 너머 은척면에 갔는데 오일장이 열리는 자그마한 장터, 손님 없는 시골다방의 나지막한 음악… 그런 게 참 좋았어. 은척의 양조 장에서 나오는 막걸리가 내가 어릴 때 마시던 막걸리 맛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됐지. 나로서는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공간, 시간이지.”

“어릴 적부터 막걸리를 드셨어요? 맛을 감별해낼 정도로?”

“아, 집에서 모내기철이나 추수철에 들에 새참 내갈때 막걸리를 좀 밀조했거든. 사먹는 게 비싸니까. 그막걸리 심부름을 내가 도맡다 보니까 중간에 힘도 들고 해서 홀짝거리다가 양지 바른 데 발랑 누워 잠이 든 적도 있고….”

“밀조 막걸리라면 주세를 포탈한 거네. 조세포탈범. 어릴 때부터. 아주 훌륭하십니다.”

“제가 법학과 출신인데 이런 경우 저는 종범이 되는 거고요. 주범은 할머니가… 아니 할아버지가 장날 누룩을 사오셨던가… 뭐 두 분 다 돌아가셨고 공소 시효는 애저녁에 완성됐으니 상관없지. 확실한 건그 일로 내게 처벌이 가해질 수 없다는 거.”

“그러니까 지금도 그 막걸리 맛 때문에 고향에 죽어라하고 댕기는구나?”

“막걸리 말고도 좋은 게 많아요. 전국 1위 아니라 세계 1위, 아니 서열을 매길 수도, 그럴 필요도 없는 거. 한밤중에 시내 밖으로 차를 몰아서 10분만 나가면 하늘에 촘촘하게 별자리가 보여. 그것보다 더 기가 막힌 건 별과 나 사이에 있는 어둠이야. 조청처럼 끈끈하고 땅속의 원유처럼 어둡게 느껴지는 것. 돌아올 때 보는 구불구불한 길 옆의 가로등, 띄엄띄엄불 켜진 작은 창… 눈앞에 두고 있으면서 그립고 아련하고 허공을 어루만지게 하는 것들. 일상인데 범상치 않고 인공도 자연도 아니면서 거기 아니면 경험할 수 없는 것. 그래, 경험. 땅 아무 데나 파면 석유가 나온다는 나라도 있지만 상주는 어디를 가도 시간이 느리게 가는 깊은 우물 같은 게 있는 거야. ” “그건 주관적인 거고 객관적으로 이렇다 할 만한 건없어?”

“많은데 그걸 객관화하기가 어렵네. 오래된 집, 건물, 서원, 사찰, 성당… 오래된 골목길, 또 옛날 우리 조상 누군가 걸었을 과거길, 수레가 교행했을 영남 대로, 자전거길, 눈두렁, 들길, 그 수많은 길들. 누군 가에게서 상주에 4대 산악자전거길이 있다는 말을 듣자마자 한여름에 이틀 만에 주파한 적도 있어. 상주를 지나가는 백두대간의 길은 큰재에서 화령, 화령에서 속리산, 청화산길인데 큰재~화령 구간은 백두대간 구간 중 가장 낮고 평탄해서 내내 평등과 민주주의를 생각하며 걸을 수 있지. 상주 화령에 있는 반송은 지금까지 내가 본 반송 가운데 가장 크고 위엄이 있어. 큰 건 객관화가 되는데 위엄을 어떻게 객관화할까… 상주에 대해 소개를 해보라고 하면 상주 사람들이 흔히 예로 드는 게 경천대라는 곳이야. 낙동강 변에 있는 높은 언덕, 전망대로 낙동강 700 리길에서 최고의 경승을 자랑하는 곳인데. 몰라?”

“내가 꼭 알아야 하나?”

“얼마 전에 유두일이 지나갔는데. 그것도 모르겠지? 내가 어릴 때 해마다 유두일에, 할머니가 새벽 네 시쯤 곤히 잠들어 있는 나를 깨웠어. 내가 삽작(사립) 을 나오면 동네 할머니 서너 분이 먼저 기다리고 계셔. 그때부터 40리나 되는 길을, 음식재료와 취사도 구가 든 광주리를 머리에 인 여자들과 주전자를 든한 아이가 해가 대지를 달구기 전에 낙동강 강변까지 걸어가는 거야. 경천대에 도착하면 곧바로 주변에서 땔감을 주워오고 쌀 안치고 국 끓이고 반찬을 만들 지. 밥을 먹고 나서 할머니들은 강물에 치렁치렁 긴머리를 감고는(‘유두(流頭)’라는 건 머리를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감는 걸 말하는 거니까) 정자에 올라 가서 부족한 잠을 보충하거나 두런두런 옛날이야기를 하시곤 했지. 점심을 넘어서면서 본격적인 연회 -유두연이 시작되었어.

심심한 내가 시퍼런 물결이 굽이치는 낙동강 아래를 내려다볼라치면 할머니가 ‘야 야, 그 밑에 깊은 쏘 속에 용이 산데이. 겁없는 아아들 고연시리 아래를 닐따 보다 용한테 잡히가서 아직도 못 왔다 카더라’며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시곤 했어. 한 잔 술에 살풋 취한 할머니들께서는 다른 곳에 서는 하지 못하는 노래도 돌아가며 부르시고 손뼉을 치며 웃음을 터뜨리기도 하셨지. 그런데 그 노래가 내게는 그렇게 구슬플 수가 없었어. 분명히 즐거운 노래인데 가만히 듣다 보면 눈물이 고이고 목이 메이는 그런 노래. 왜 그런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어. 어쩌면 영원히 모를지도 모르겠네. 이윽고 해가 기울면 할머니들은 남은 막걸리 잔을 비우면서 서로에게 지나온 삶에 대한 경의를 표하고 앞으로 살아갈 날이 무사하고 안녕하기를 축수했지. 집으로 돌아오면 마루 기둥에는 남폿불이 밝혀져 있고 마당에는 모깃 불이 피워져 있었어. 아, 그때 느껴지는 왠지 모를 그안도감, 그것 때문에 상주에 가는지도 몰라.”

“고향이 참 좋은 거네.”

“그래도 명소나 걷기 좋은 길 같은 거, 맛집 이런 거 궁금하면 유튜브나 지자체 홈페이지 가보셔. 속리산 문장대가 상주 땅이야. ‘MRF 이야기길’이라고 1 코스에서 15코스까지 있으니 골라서 걸어볼 수도. 봄에는 강변과 산야에 꽃과 초록의 불이 붙고 여름엔 곳곳의 저수지와 호수는 연꽃을 피워올려. 가을 에는 샛노랗게 익어가는 벼와 붉은 감, 수정 같은 하늘, 푸른 띠처럼 늘어진 강과 하천이 천연의 팔레트 처럼 장관을 이루지. 상주박물관에 가면 보물 661 호인 ‘상주 석조천인상’을 볼 수 있는데 나는 그 천인 상에게서 알듯 모를 듯하게 드러나는 단아한 미소가 ‘상주의 표정’이라고 생각해. 그건 정말 어디서도볼 수 없는 미학의 결정체지.”

“아무리 좋은 데라도 수학여행 가듯 한 번에 몰아보면 정신없고 좀 그렇더라고. 사람 냄새는 안 나고 무슨 AI가 만든 인공조형물 같은 데도 있더라니까.”

“아니, 아직 상주에는 사람 냄새 나는 데가 많아. 요즘 유행하는 ‘레트로의 메카’라고도 할 수 있겠네. 내 고향에는 아직 오랜 것들, 우리 앞 세대와 그 이전의 일상과 자연이, 친구들이 있어. 친구들 때문에, 그 친구 같은 환경과 존재 때문에 나는 고향에 가. 아니 상주에 가지.

가서 뭔가를 잔뜩 충전받고 돌아 와. 그러면 한동안 힘내서 살아갈 수 있어. 가고 또돌아오고 또 가고 오는 것이 되풀이되는 거야. 언젠 가는 거기에 머물게 되겠지. 거기가 내 고향이니까.

내 조상이 누워계신 그곳. 어린 내가 잠에 취해 양지 쪽에 잠들어 있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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