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블 버킷리스트 천사섬 신안, 자은도

네 인생의 페이지를 환히 물들여
신안. 자은도. 1004뮤지엄파크

조바심 낼 필요 없어. 때가 되면 비는 그치고 안개가 걷힐 거야.
그 모든 것이 전부인 것 같은 순간,네 인생의 페이지가 환한 빛으로 물드는 거야.
구름 너머 햇살이 있는 것처럼.


글 정상미 사진 이효태

신안 자은도 @백길해수욕장

“보아뱀을 삼킨 코끼리가 바다에 떠 있어.
고운 바닷물 미풍에 담겨 허리를 감싸고
소행성을 떠난 어린왕자의 시공간을 초월한 황홀함.
책 속을 걷고 있는가, 꿈이 아니라 눈물이 나 ”

 

신안 자은도 @옥도

“자꾸 울면 호랑이가 잡아간다.”
“엄마가 불러온 호랑이에 아기는 울음 뚝.
마을 사람이 잘못을 하면 섬 속의 섬, 옥도에서 죄를 뉘우치게 했던 그때 이야기”

 

이 모습이 나야. 천사섬 신안의 자은도

연인 사이에서는 으레 줄타기를 하기 마련이다. 내가 좋아하는 만큼 그 사람이 날 생각하는 것 같지 않아서 성큼 다가선 마음을 감추기도 한다. 그러면서 기다리는 마음이란! 좋아하는 상대에게는 늘 지고 만다. 어차피 마음은 이기고 지는 싸움이 아니니, 매번 진다고 억울해할 것도 없다. 시간이 갈수록 상대를 온전히 보아주고 담는 당신은 참 좋은 사람이다. 짙은 안개에 갇힌 천사대교를 조심히 건너 암태도와 자은도를 잇는 은암대교를 건넜다. 여름은 장마의 계절. 한동안 궂은비가 내린 신안 자은도는 산허리가 구름에 싸여 민낯을 보여주지 않았다. 조바심이 났다. 여인송이 있는 분계해수욕장, 드넓은 양산해변, 독살(돌살)을 볼 수 있는 둔장해변과 무한의 다리, 자은도에서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백길해수욕장을 갔지만 모두 안개에 갇혔다.

자은도를 한 바퀴 유영하듯 떠돌다 알싸한 양파 냄새에 멈춰 섰다. 자은도의 양파 밭에, 땅콩 밭에, 대파 밭에 어른들의 호미질은 쉼이 없다. ‘얘야, 근심을 거둬라. 그것은 사치란다.’ 애초에 안개가 거기 있는 것이 무슨 상관인가. 양파가 가득한 초록의 밭 너머 산꼭대기에 물안개가 잔잔하다. 이것이 신안 자은도의 모습이다. 조바심을 낸다고 변할 그가 아닌 것처럼 자은도의 안개는 당연한 것이다. 비가 내린 뒤에는 물안개가 너와 날 감싸는 고장. 모래가 유명하고 땅콩이 유명하고 해변이 아름답기로 소문난 섬. 8월에는 1004뮤지엄파크가 정식 개관을 하니, 앞으로는 조개와 수석이 더 유명해질지도 모른다. 아무렴. 그 모든 것을, 그중 하나를 새기고 간다 한들 신안 자은도를 추억하는 데 그보다 완벽한 것은 없어라.

 

자은도의 보물이 되리. 1004뮤지엄파크

양산해변의 백사장부터 해안가에 나무로 만든 모래포집기가 그림처럼 어우러져 있다. 바다를 지켜주는 울타리 같기도 하고, 해안으로 통하는 싸리문 같기도 하다. 모래의 이동이 잦은 지역에 설치하는 이 모래포집기는 자은도에 모래가 얼마나 많고 또한 귀한지 알려주는 척도다. 양산해변 너머에는 1004뮤지엄파크가 있다. 아니, 양산해변을 앞마당처럼 드리우고 있다고 해야 옳겠다. 수많은 사람의 꿈과 구슬땀이 얽혀 있는 1004뮤지엄파크는 50만㎡ 부지의 복합문화예술단지로 크게 자연휴양림, 1004섬수석미술관, 세계조개박물관, 자생식물원 등으로 이뤄져 있다. 가벼운 마음으로 ‘한 바퀴 돌아보자’했던 자연휴양림은 하나의 초록 섬이라고 할 정도로 규모가 엄청나다. 파도가 철썩이는 소리를 들으며, 나비가 날아다니는 정원을 산책할 수 있다니 근사하고 가꾼 손길을 생각하면 놀랍기만 하다. 양산해변과 가까울수록 휴양림의 나무들은 모래포집기처럼 간격이 촘촘하다. 모래가 섞인 대지에 서로의 뿌리가 서로를 지켜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나무의 생이 꼭 사람 같다.

휴양림만큼이나 놀랍고 특별한 곳은 또 있다. 먼저 세계조개박물관이다. 신안은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이자 갯벌습지보호지역으로 자연환경이 우수하다. 특히 바다와 갯벌, 모래 등에서 서식하는 조개와 고둥은 환경변화의 지표가 되는 생물이다. 패류(연체동물문에 속하는 동물 중 패각이 있는 종류의 총칭) 표본을 기반으로 설립한 세계조개박물관은 갯벌의 환경지표인 조개와 고둥류를 연구하는 전문박물관으로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적으로 희귀한 조개와 고둥을 소개하고 있다. 그간 기자에게 조개란, 탕이나 구이로 먹는 것이 전부였고 여행을 할 때면 해변에서 빈 조개껍데기를 한두 개 주워오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런데 이런 조개가 꽃이 된다니?! 세계조개박물관에서는 저마다의 무늬와 빛깔을 자랑하는 수많은 패각(연체동물의 외투막에서 분비된 석회질이 단단하게 굳어서 된 겉껍데기)을 소개하고 있다. 이를 활용한 작품들의 가치도 뛰어나고 아름다워 혀를 내두른다.

“너는 꽃이 되려고 내게 왔나봐. 내 인생을 환히 물들이려고
서로가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무엇이 되려고 이렇게 만났나봐 ”

세계조개박물관의 이주형 작가는 30여 년 전 우연히 조개를 수집하게 됐다. 병에 담아두고 조개를 바라보다 불현듯 꽃으로 만들 생각이 들었단다. 테이블 위에 놓인 작은 접시조개는 모두 자연산으로, 붉은색도 입힌 것이 아니라 고유한 색이다. 보는 사람은 긴장을 하는데 이주형 작가는 미소를 지은 채 입김만 불어도 날아가 깨질 것 같은 접시조개들을 하나하나 이어 붙인다. 세상에 하나뿐인 붉은 조개꽃이 이다지도 환하다.

 

돌 속에 나비가 숨을 쉬네

1004섬수석미술관의 원수칠 관장은 50년 가까이 수집한 수석 중 1004점을 신안군에 기증했다. 그중 260점이 미술관과 야외 수석공원에서 만날 수 있으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수석인들의 뛰어난 작품들도 더불어 만날 수 있다. “어떤 수석인을 만나느냐에 따라 수석은 단순한 돌이 되기도 하고, 전혀 다른 해석이 가능한 작품으로 다시 태어나기도 합니다. 남들은 쉽게 발견하지 못하는 것이 수석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보이지요. 돌 안에 달도 있고, 계곡도 있고, 산도 있거든요. 여기 ‘애석인의 작업실’을 통해 다양한 좌대를 볼 수 있습니다. 좌대에 따라 수석은 복 두꺼비가 되고, 노신사가 되고, 산수화로 다시 태어납니다. 좌대를 만드는 기술자는 무거운 수석을 몇 번이나 들었다 놨다 반복하며 좌대를 자르고, 위치를 잡고, 색을 칠합니다. 단순한 돌 받침대가 아니기에 신중하고 작업 시간도 오래 걸리지요.”

원수칠 관장의 설명이 더해지니 앞에 보던 것보다 수석이 더욱 또렷이 보인다. 그가 복 두꺼비라고 명명한 귀한 돌을 기자가 만났다 한들 애정하는 마음 없이 가치를 알아보지 못했으리라. 원수칠 관장이 남한강에서 발견한 문양석 중 ‘흑나비’가 있다. 정말이지 검은색 나비가 돌에 박제된 것처럼 새겨져 있다. 문양석은 돌을 구성하는 원소의 성질에 따라 돌갗(돌의 피부)에 다양한 문양이 자연적으로 표출된 것으로 종류에 따라 산수, 형상, 물형, 추상 문양으로 구분한다. 그 아래 안내 문구가 시키는 대로 ‘벽면에 그려진 손바닥을 터치하자 우아한 선율과 함께 나비가 후두둑 날아가는 홀로그램이 펼쳐진다. 문양석의 나비가 깨어나 훨훨 날아가는 것만 같아 한동안 그 앞에만 서서 손바닥을 터치해봤다. 평생에 걸쳐 길을 가다 발에 차이는 돌 하나 허투루 보지 않았을 사람들의 열정과 인내가 1004섬수석미술관에 모였다.

 

인생의 페이지에 담아두고

둔장해수욕장의 무한의 다리를 건너면 할미섬 앞에 자리한 ‘독살’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물이 차면 못 보는 풍경이기도 하고, 독살에 대해 미리 알지 못하면 무한의 다리를 수없이 건넌다 해도 알아보지 못했을 것을, 신안이 고향인 전영자 문화해설사 덕에 독살에 대한 명징한 설명을 들었다.
“조금만 늦었으면 독살을 못 볼 뻔했어요. 자, 봐요. 저기 바다 안에 길게 띠를 두른 독살이 보이지요? 저 뒤에도 있고, 저기도.”
“독살이요?!”
“독살이라고 하니까 어마무시하게 들리지요? 돌살이라고도 해요. 여기 둔장해변에는 둔장어촌체험마을이 있는데 현재도 독살을 활용한 체험을 그대로 해볼 수 있어요. 혹시 ‘너는 조시도 모르냐?’라는 말 알아요?”
“어감상 왠지 기본도 모른다는 소리 같은데요.”
“맞아요. 바닷가 마을에서 어업을 하는 건 숙명인데, 조시(潮時), 즉 밀물과 썰물이 생기는 정해진 때를 모른다는 건 먹고살지 않겠다는 거잖아요. 바다에 물이 빠져나갔을 때 돌무더기를 하나하나 옮겨놓아 돌살을 만들고, 썰물 때 돌살에 막혀 미처 바다로 빠져나가지 못한 고기를 손쉽게 잡는 거죠. 원시어업의 형태가 아직까지 보존되어 있으니 참 놀랍지 않아요?”

무한의 다리를 오고 가는 사람들과 점점 물에 잠기는 독살, 대나무가 우거진 숲길, 완만한 해안가의 둔장해변이 엄마 품처럼 깊고 아늑하다. 숙소가 있는 1004뮤지엄파크로 돌아가는 길, 맑았던 섬이 별안간 물안개로 자욱해지기 시작한다. 이제야 웃음이 난다. 이 표정도, 저 표정도 너인걸. 자은도의 모습인걸. 1004뮤지엄파크의 역사는 이제 시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부터 일년 후에는 휴양림의 나무들이 더욱 단단히 뿌리를 내리겠지. 새로운 꽃은 피어나고 나비들은 또 다른 친구를 불러오리. 그때는 오늘 눈으로만 탐한 야영장에 해먹을 걸고 한량처럼 캠핑을 해보리라. 머물렀던 게스트하우스의 테라스에서 드넓은 양산해변을 다시 마주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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