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리, 90%를 위한 투자전문가

VVIP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 행복한 노후를 보내는 것, 투자전문가 존 리가 꿈꾸는 세상이다. 김은아 사진 손준석

 

‘동학개미운동’. 코로나19 사태로 주가가 폭락하자 주식투자에 뛰어드는 개인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현상을 이르는 말이다. 불안한 정세에도 꿋꿋이 조국의 경제를 지탱하는 (?) 애국 개미들의 활약은 한 번쯤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 다. 그렇다면 ‘존봉준’이라는 이름은? 동학농민혁명을 이끈 전봉준처럼, 개인의 주식투자를 장려하며 개미들을 이끌었다는 공을 인정받은 이에게 붙인 별명이다. 그 주인공은 바로 메리츠자산운용 대표 존 리.

그는 미국 자산운용사 스커더 스티븐스&클라크에서 투자 전문가로 활약하다 2014년 한국에 메리츠자산운용 대표로 부임했다. 그때부터 쉬지 않고 한국 사회에 “금융문맹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파하며 주식투자를 시작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왔다. 그리고 2020년, 누구도 예상치 못한 코로나19 사태로 그의 ‘캠페인’이 인정받기 시작했다.

인터뷰를 위해 찾은 서울 송파구 메리츠 펀드스토어에서는 그의 인기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쉴 새 없이 그에게 다가와 사인과 사진촬영을 요청했다. ‘전 국민 주식투자 시대의 아이돌’다웠다. 존 리는 그들이 수줍게 내민 자신의 책에 ‘꼭 부자되세요’라는 메시지를 적어주었다.

줄이 잦아들자, 이제 막 노후준비를 시작하려 한다는 한부부의 고민을 진지하게 경청하고 조언을 건넸다. 펀드스토어의 직원은 그가 일주일에도 몇 번이나 이곳을 찾아 상담과 강연을 한다고 귀띔 한다. 그럴 때면 고객들은 따로 예약 하지 않고도 그에게 금융 상담을 받을 수 있다는 것도.

동네 은행의 지점장도 만나기 어려 운데, 금융사 대표의 상담을 받을수 있다고? ‘일반 고객’으로서 조금 놀란 마음을 달래는데, 예전에 본뉴스가 머릿속을 스친다. 존 리가 메리츠자산운용 대표로 부임하자마자 화려한 집무실, 의전 차량, 운전 기사를 없앴다는 소식. 권위를 타파하고 ‘글로벌 스탠더드’에 발맞추기 위한 행보였다. 그러고 보니 그의 아이디어라는 펀드스토어의 인테리어도 여느 금융사들과는 다르다. 편안한 소파, 높은 파티션 같은 번듯한 시설은 없다. 고객의 의자는 플라스틱 우유박스고, 고객 상담 창구도 여러 명이 둘러앉을 수 있는 넓은 테이블이 대신한다. 금융사라기보다는 차라리 애플숍에 가까운 모습이다.

“화려한 인테리어의 금융사 지점들은 들어가기 전부터 주눅이 들게 만듭니다. ‘난 재산이 별로 없는데 가도 되나’ 싶은 거죠. 저는 펀드스토어가 편의점처럼 ‘펀드 사러 왔다’고 가볍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였으면 했습니다. 단 10만 원만 으로 시작해도 충분하니까요.”

당장 투자하지 않아도 좋으니, 잠시 들러 커피라도 마실 수있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 시간 동안 투자하는 이들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소수의 VVIP 고객을 확보하는 데 총력을 다하는 일반 금융 회사들과는 상반된 접근법이다.

“한국에서는 돈 많은 사람들만 투자하려고 해요. 그러면 90%는 소외되기 마련이죠. 저는 정반대입니다. 이미 부자인 사람은 제가 없어도 부자가 될 테니까, 저에게는 정말 부자가 되고 싶은 사람이 찾아오면 좋겠습니다.”

커피 혹은 미래, 자신에게 무엇을 선물하겠습니까
존 리가 사람들 귀를 사로잡은 비결 중 하나는 특유의 직설적인 화법이다. 얼마 전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자녀의 학원을 끊고 그 돈으로 주식을 사주라”고 했던 파격(?) 발언 처럼. 그만의 소탈한 어법은 두 번째로 펴낸 책 <엄마, 주식 사주세요>(2016)의 제목이 잘 보여준다. 솔직담백한 제목이 인상적이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의 아이디어라고.
“첫 번째 책 <왜 주식인가>(2012)가 좀 어렵다는 의견이 있었어요. 독자들의 눈높 이에 맞춰서 주식투자를 왜 시작해야 하는지를 풀어 쓴 책이 <엄마, 주식 사주세 요>였습니다. 그러니 제목도 실용적이고 피부에 와닿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그렇다고 ‘6개월에 1억 만들기’는 너무 자극 적이고, ‘우리 아이 주식 길라잡이’ 같은건 너무 평범하고요. 사실 처음에는 출판사 반대에 부딪히긴 했지만 밀고 나갔죠.”

세 권의 책과 1000여 번의 강의, 그리고 유튜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채널을 통해 그가 전하는 메시지는 뚜렷하다. 고령화 시대를 대비해 라이프스타일을 바꿔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이를 위해 두 가지를 실천 하라고 강조한다. 사교육에 돈을 쓰지 말것, 그리고 쓸데없는 소비를 하지 말 것. 한국 가계 지출에서 막대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사교육이다. 부모는 자녀의 성공을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지만 이는 오산이고, 오히려 여유자금을 모두 투자하다 보니 가난한 노후를 보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학원에서 자정까지 국·영·수를 배우는 학생은 절대 부자가 될 수 없어요. 엉뚱한 생각을 하고 창의적으로 행동할때 성공할 수 있습니다. 펀드매니저를 예로 들어볼까요? 모두가 나쁘다고 할 때 주식의 진가를 알아보고 살 줄 알아야 펀드매니저로 성공할 수 있는 겁니다. 항상 남과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죠.” 그는 슬쩍 자신의 학창시절 이야기를 들려줬다. 공부는 잘했지만 선생님 말을 잘 듣는 학생은 아니었다고. 행동을 획일화하고 학생을 부품으로 만드는 교복이 너무 싫어서 교복 단추를 하나씩 떨어뜨렸단다. 인천에서 태어났지만 일찌감치 서울 유학길에 올라 중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명문학 교에만 진학한 그의 모범적인 이력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탈(?)이다.

존 리는 일상의 작은 습관을 바꾸는 것이야말로 노후준비의 첫걸음이라고 말한다. 부자로 보이기 위한 명품 소비를 지양하고, 차 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하루에 한 잔 커피를 구입하는 사소한 소비를 줄이라는 것이다.

“한 청년이 묻더군요. 커피 한 잔은 열심히 일한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인데 그것도 하면 안 되느냐고. 제가 그랬습니 다. 스스로에게 커피가 아니라 미래를 선물하라고요. 청년 들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생각했으면 합니다. ‘소확행’, ‘욜로’ 같은 생각은 버려야 해요.”

수익보다 사람을 키우는 펀드매니저
존 리가 펀드매니저의 길을 걷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뉴욕대 회계학과를 졸업한 뒤 회계법인 KPMG 뉴욕 본사에서 회계사로 7년간 근무했다. 그러나 일은 “재미가 없었다”.
‘꼼꼼한 마무리 작업’에 가까운 회계는 ‘과감히 결정을 내리는’ 존 리 스타일과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당시 회사와 같은 건물에 입주해 있던 투자회사 스커더 스티븐스&클라크의 간판이었다. 이곳은 세계 최초로 한국 투자 펀드인 ‘코리아펀드’를 운용하고 있었다.

“어느 날 점심시간에 무작정 찾아갔어요. 코리아펀드를 운용하고 있으니 한국 사람이 필요하지 않으냐고 물었습니 다. 저의 과감함을 좋게 보았는지, 그 자리에서 면접 일정을 잡았고 곧 펀드매니저로 일하게 되었죠. 일은 정말 ‘익사 이팅’했어요. 그렇지만 큰 책임이 따르기에 그만큼 스트레 스가 컸죠. 그런데 그것 또한 제 성격에 맞았던 것 같아요.”

그의 목표는 투자를 통해 최고의 수익을 내는 것, 그 너머에 있다. 더 많은 사람이 일찌감치 노후준비를 시작해 행복한 노년을 보내는 것. 이쯤 되면 투자전문가보다 ‘전 국민 노후대비 운동가’가 그를 더 잘 설명하는 말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그게 제 삶의 철학이니까요. 한국에서 태어난 제가 조국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없다면 그게 문제 아닐까요?
그런데 ‘헬조선’ 같은 단어를 들으면 너무 안타깝고 답답합 니다. 한국은 어느 나라보다 무궁한 기회를 가진 나라인데 정작 한국인들은 그걸 몰라요. 손에 다이아몬드를 쥐고 있으면서도 그게 돌멩이인 줄 알죠. 수많은 침략에도 고유의 언어와 문화를 지켜온 대단한 민족으로서의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코로나19가 준 뜻밖의 선물
코로나19 이후 증권앱을 새로 설치한 건수는 300만 건으 로, 작년보다 26배에 달한다. 이 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 하는 연령대가 40대 여성(14.5%)이다. 미성년자의 주식계좌 개설 수 또한 전년 동기 대비 평균 6배나 증가했다. 특히 중년 여성의 투자와 경제 조기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해온존 리로서는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너무 좋죠. 드디어 제 말을 들어주는구나 싶어요. 하하. 특히 학생과 청년들이 시작했다는 소식이 긍정적입니다. 이들이 금세 사고 파는 단기 투자가 아니라, 노후를 대비하며 장기 투자자로 남기를 바라죠. 한 가지 섭섭한 건 있습 니다. 뉴스를 보면 주식계좌가 몇 만 개나 개설되었다는데 저희 회사가 아니라 다른 곳에 가서 열었더라고요. 남 좋은 일만 했다니까요(웃음).”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코로나19로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 1987년 블랙먼데이, 1997년 외환위 기, 2008년 리먼 브라더스 사태를 겪은 존 리의 의견이 궁금했다. 역시 명쾌한 답이 돌아온다.

“누군가는 1929년 경제대공황을 회복하는 데 50년이 걸렸 다고 경고합니다. 이건 교통사고가 날 수 있으니 거리로 나가지 말고 땅속으로 다니라는 말과 다를 바 없습니다. 위기는 이름만 다를 뿐 항상 같습니다. 위기 때마다 시장은 폭락했지만, 인간은 항상 극복했습니다. ‘이번 위기는 다르다’ 는 건 공포를 조장할 뿐이죠. 오히려 복잡한 경제적 원인보다 백신만 개발되면 해결할 수 있는 바이러스가 더 낫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냉철한 판단, 거침없는 분석을 내놓는 투자전문가 존 리가 아닌 인간 존 리의 모습이 궁금해진다. 그는 “탁구를 좋아 하고, 전국 곳곳에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로 여행을 좋아 하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광화문 주변에 살아 인근 산과 고궁, 미술관 산책을 즐긴다는 그의 여행 취향을 물었다. 지극히 ‘존 리다운’ 답이 돌아왔다.

“돈 안 드는 곳을 좋아합니다. 하하”

<엄마, 주식 사주세요> 존 리 | 한경BP | 2016
세계 어느 나라 사람보다 열심히 일하는 한국인. 그러나 왜 가난한 노년을 보내는 걸까. 날카로운 통찰력을 바탕으로, 자녀를 부자로 만들고 부모도 풍요로운 노후를 보내기 위해 실천해야할 구체적인 방법을 담았다.

투자전문가 존 리에게 영향을 준 책 2

<전설로 떠나는 월가의 영웅> 피터 린치, 존 로스차일드 | 국일증권경제연구소 | 1995
<스노볼-워런 버핏과 인생경영> 앨리스 슈뢰더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
월스트리트의 전설적인 투자가 피터 린치와 워런 버핏의 인생, 그리고 투자 철학을 담고 있는 책이다.
‘한 기업에 오래 투자해야 한다’ ‘주식투자는 기업과의 동업이다’ 같은 나의 투자 철학을 세우는데 많은 영향을 미친 인물들이기도 하다. 이제 막 투자를 시작했거나, 투자에 관심이 있는 모든 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보고 자신만의 투자 철학을 세우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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