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스토리텔링 여행 #2. 일상에 지친 싱글들에게 반짝이는 위안을

“지금 행복하기!” 책을 읽다 짧은 문장에서 울컥했다. 막연한 미래의 행복만을 기다리며 일상을 허덕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주어진 시간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일까. 그러기 위해서 꼭 필요한 과정이 있다. 바로 마음 살피기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언제 즐거워하는지를 아는 것 말이다. 일상에서 벗어나 나만의 보물을 찾는 여행을 떠났다.

글·사진 유정열 여행작가

 

TRAVEL STORY

청동기부터의 오랜 역사와 천혜의 자연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보물 같은 여행지, 충북. SRT매거진과 한국관광공사 세종충북지사가 함께 충북의 숨겨진 매력을 하나씩 소개합니다.

세종호수공원의 세호교는 호수를 가로지르는 다리로 멋진 포토존이다

넉넉한 호수의 위안, 세종호수공원
호수를 좋아한다. 네팔을 여행할 때였다. 안나푸르나 트래킹을 마치고 포카라에서 휴식을 취했다. 그곳에 아름다운 페와호수가 있었다. 모든 것을 품고 있는 호수였다. 하늘과 구름, 히말라야산맥, 마을과 어부 그리고 나까지. 지친 몸과 마음을 잔잔한 물결로 보듬어주는 것만 같았다. 넉넉한 호수의 위로였다.

첫 여행지로 세종호수공원을 선택했다. 한국에서 가장 큰 호수라는 사실에 끌렸다. 그만큼 더 넓은 품으로 나를 안아줄 것만 같았다. 세종호수공원은 금강의 강물을 끌어와 만든 인공호수다. 축구장의 62배 크기로, 공원 전체를 둘러보려면 도보로 약 1시간 정도 걸린다. 중앙광장에서 무대섬을 가로질러 물놀이섬, 수변전통공원을 돌아 다시 무대공원으로 오는 것이 가볍고 좋다.

흐드러지게 핀 꽃과 푸른 나무들이 어우러진 산책로는 걷는 즐거움이 있다. 나무 데크를 따라 물 위를 걸으며 다양한 수생식물을 볼 수 있는 물꽃섬도 조성되어 있다. 호수 옆, 장남평야의 이름을 딴 정자 장남정에 오르면 호수공원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일몰과 야경을 감상하기 위해 세호교를 건너 은빛해변으로 향했다.

낮 동안 뜨거웠던 해는 지면서도 오렌지빛 여운을 남긴다. 어두워지면 국립세종도서관과 호수공원, 무대섬에 조명이 들어온다. 푸른 밤을 점점이 밝히는 불빛이 평온하다.

‘밤이나 낮이나 호숫가에 철썩이는 낮은 물결소리가 들리는 곳, … 한밤에 온통 반짝이는 빛으로 가득한 곳.’ 예이츠의 시 ‘이니스프리 호도’의 한 구절이다. 복잡한 런던 거리를 걸으며 유년의 추억이 있는 이니스프리 섬을 그리워하는 시인처럼, 호수의 찰랑거리는 소리는 오래도록 남아 위안을 준다.

수변 데크를 따라 한 밤의 산책을 즐기는 가족의 모습이 여유롭다

오래된 저수지가 들려주는 여유, 제천 의림지

숨 고르기가 필요한 순간이 있다. 중심을 잃고 이리저리 흔들릴 때 나만의 맞춤 처방은 탁 트인 곳에서의 산책이다. 뿌리를 단단히 하기 위해 의림지로 향했다. 제천시 북쪽에 위치한 의림지는 밀양 수산제, 김제 벽골제, 상주 공갈못과 함께 삼한시대부터 이어져 왔다. 청풍호가 있는 남쪽은 물이 풍부했지만, 북쪽은 물이 무척 귀했다. 옛 선조들은 인공으로 저수지를 만들어 농사를 지었다.

둘레 약 2㎞로 느긋하게 1시간 정도면 돌아 볼 수 있다. 관광안내소에서부터 산책을 시작했다. 길 건너편에는 어릴 적 추억을 떠오르게 하는 작은 놀이공원 의림지 파크랜드가 있다. 무지개다리를 건너면 매점과 쉼터가 있다. 예능 프로그램 ‘1박 2일’을 촬영했다는 빛바랜 안내문이 커다랗게 붙어있다.

이어서 방죽을 따라가면 울창한 소나무길이 나타난다. 몇백 년의 세월이 지나는 동안 소나무는 점점 물가로 기울어져 마치 고개를 숙여 물을 마시는 것처럼 보인다. 1948년에 세워진 경호루를 지나 방죽을 따라 간다. 순조 7년(1807)에 세워진 영호정과 울창한 송림길이 멋지다. 방죽을 벗어나 조금 더 가면 가야금의 대가인 우륵이 풍경을 감상하며 노후를 보냈다는 우륵정이다.

주변에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한 커플이 블루길을 잡았다며 좋아하는 모습에 덩달아 미소가 지어졌다. 한가로운 풍경과 마주하고 있으니 여유가 스며들었다. 그동안 주위를 바라볼 틈도 없었다. 햇살 눈부신 낮도, 계절이 지나 꽃이 피고 지는 것도 말이다. 찬찬히 자신을 보듬을 틈이 필요했다. 하늘을 담은 호수가 붉게 물들었다.

우륵정에서 평화로이 찾아오는 어둠을 맞았다면, 역사박물관으로 향할 차례이다. 건물 전면에 오색으로 점등된 조명이 의림지를 형상화한 연못에 반영이 되어 근사하다. 의림지 수경분수를 지나 무성한 나무숲 곁을 지나는 수변테크길은 몽환적이기까지 하다.

청주 시내의 일몰과 야경을 볼 수 있는 수암골 전망대는 시원한 바람을 즐기는 곳이기도 하다

반짝반짝 작은 꿈, 청주 수암골
세 번째 보물을 찾아 청주 수암골로 향했다. 수암골은 6·25전쟁 후 피난민들이 정착하면서 형성된 마을이다. 고향을 떠나 온 피란민들은 주위의 재료로 얼기설기 집을 만들었다. 대문도 없고, 울타리도 없는 집이었다. 흔히 말하는 달동네로, 꼬불꼬불 좁은 언덕길을 따라 지금도 허름한 집들이 남아있다.

여러 드라마와 영화의 배경지가 되면서 입소문을 탔다. ‘제빵왕 김탁구’의 촬영지였던 팔봉제과도 이곳에 있다. 도전을 즐기는 사람만이 진정 원하는 꿈을 이룰 수 있다던 김탁구. 꿈을 꾸는 사람은 아름답다. 도전하기 위해 용기를 내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가. 실패에 대한 불안감에 돌다리만 두드리고 있지는 않은지, 그의 명대사를 다시 한 번 곱씹어 본다.

‘나의 최고는 1등이 아닙니다.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최선을 다해 보이겠다는 뜻입니다. 지금 제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건 최선밖엔 없으니까요.’

수암골은 2007년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통해 벽화가 있는 마을로 바뀌었다. 바닥에는 걸으면 음악소리가 들려올 것만 같은 피아노 건반이 그려졌고, 방치됐던 연탄재에는 익살스러운 미소가 생겼다. 담벼락을 따라 붉은 장미와 능소화가 넘실거리며 소소한 풍경이 골목으로 이어진다.

벽화마을과 드라마 속 장소를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몰렸다. 유명세를 치르면서 카페가 하나 둘씩 들어서더니 청주의 대표적인 카페촌으로 자리 잡았다. 소위 ‘풍경 맛집’으로 불릴 만큼 시원한 전망을 갖췄다. 카페 옥상에 자리를 잡았다. 청주 시가지가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더위도 잠시, 탁 트인 하늘에 속이 맑아지는 기분이다. 시원한 아이스커피와 달달한 케이크 한 입,읽고 싶었던 책 한 장, 어느새 해가 뉘엿해진다.

오르막길을 따라 전망대로 향한다. 달동네의 유래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달과 가까운 동네라는 풀이가 가장 마음에 든다. 힘든 오르막길마저도 낭만적이게 느껴진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고 사람들은 난간에 기대어 풍경을 감상한다. 해가 산 너머로 사라지고 푸른 장막이 둘린 하늘, 그 아래 사람들이 밝힌 별들이 도시를 반짝인다.

색색의 조명으로 가득한 단양의 수양개빛터널 산책로는 마치 동화 속을 걷는 것같은 기분을 준다

나와 데이트하기, 단양 수양개빛터널
무심코 SNS를 훑어보다 한 사진에 시선이 꽂혔다. 영화 ‘라라랜드’를 연상케 하는 불빛 사이에 서 있는 연인이다. 장소는 수양개빛터널, 검색해보니 취향 저격의 장소다. 연인들의 성지 같은 곳에 혼자라서 궁상맞아 보이는 건 아닐지 근심도 들었다. 자신의 마음을 살피기로 해놓고 남들의 시선부터 신경이 쓰인다. 오늘만큼은 나 자신과 데이트를 하며, 사랑하는 연인을 대하듯 아껴줄 것이다.

단양읍에서 나와 차 한 대가 간신히 지나갈 도로와 터널을 지났다. 옛 기찻길을 도로로 만든 것이어서 폭이 좁다. 일방통행 신호대기 후 건너에 차가 없다는 신호를 받아야만 갈 수 있다. 조마조마한 스릴감마저 느끼며 수양개선사유적박물관에 도착했다.

수양개빛터널은 박물관 내부에 있는 카페를 통해 갈 수 있다. 수양개빛터널은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길이 200m, 폭 5m의 지하터널이다. 방치돼 있던 시설을 국내 최초의 빛 터널로 재탄생시켰다. 구역별로 테마가 나뉘어 있고, 조명들이 시시각각으로 변하기 때문에 천천히 즐기며 이동하는 것이 좋다.

터널에 들어서자 반짝이는 빛 망울이 눈에 들어온다. 줄로 대달아 놓은 작은 조명들이 천정의 영상과 만나 몽환적인 분위기가 연출된다. SNS에서 본 그곳이다. 주위 연인들이 서로 사진을 찍어주며 좋아한다. 사랑이 눈부신 것은 서로가 스며든 것일 테다. 영롱한 빛처럼 말이다. ED장미꽃이 늘어서있는 넝쿨 통로를 지나면 신나는 음악과 미디어 파사드가 빚어내는 화려한 레이저쇼가 펼쳐진다.

터널을 나오면 비밀의 정원까지 오솔길이 이어진다. 나무 사이로 다람쥐와 사슴 등 조명으로 만든 숲속 동물을 만날 수 있다. 비밀의 정원에는 5만 송이 LED 장미와 일루미네이션 장식과 다양한 조형물이 있다. “여러분 여기서 사진을 찍으세요.” 라고 말하는 것처럼 곳곳에 있다. 사람들은 빛의 향연을 온몸으로 즐긴다. 이 시간만큼은 나도 빛을 즐긴다. 스스로 빛나지 않은 별이 없듯, 나를 사랑하는 마음을 듬뿍 담는다.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 옆의 달은 해가 지고 조명이 들어올 때 사진에 담으면 더욱 멋있다

희망의 달을 품은 충주 중앙탑사적공원
어느덧 보물찾기도 마지막이다. 목적지는 충주시에 위치한 중앙탑사적공원이다. 높직한 토단 위에 우뚝 솟은 중앙탑 주변에 조각공원을 더했다. 탑의 정식명칭은 탑평리칠층석탑으로 국보 제6호다. 통일신라 때 나라의 남쪽과 북쪽 끝에서 두 사람이 똑같이 출발했고 중간에 마주친 곳에 탑을 세웠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이 탑은 중원문화의 상징이다. 통일신라 석탑 가운데 높이 14.5m로 가장 높고 유일한 칠층석탑이다. 탑 앞에 팔각연화문 석재가 놓여있다. 이곳이 절터였음을 알려주는 흔적이다. 지금은 흔적조차 알 수 없지만 탑만이 남아 과거의 위용을 보여주는 것만 같다.

중앙탑사적공원은 요즘 SNS에서 핫한 플레이스다.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의 촬영지로 극중 윤세리와 리정혁, 5중대 부대원들이 재회하는 장소로 나왔다. 특히 야경은 관광객들에게 인생샷을 찍을 수 있는 장소로 주목받고 있다.

야경이 멋진 곳은 탄금호 무지개길이다. 지난 2013년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세계조정선수권대회에서 차량을 이용해 경기를 중계하던 중계도로에 경관조명을 설치했다. 오색의 조명이 사람들의 발걸음을 비춘다. 도로 옆에 설치한 달이 수면 위 반영을 그리면서 운치 있는 풍경을 만들어 낸다. 사랑의 불시착 중 서단과 구승준이 북한에서 키스하는 장면이 이 길에서 촬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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